339화
약간 슬퍼 보이는 표정을 보던 정난정이 다가와 물었다.
“왜? 전부터 아는 사내인가?”
“예, 마님, 전에 알던 사내로 날 무척 좋아했죠. 그런데 여기서 적으로 만났네요.”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기구했다. 현장화의 말에 정난정은 문뜩 자기를 무척 좋아하던 윤원형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신은 과연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원수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현장화처럼 죽일 수 있을까?’
왜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윤원형은 앞으로 만나면 원수로 만날 것 같았다. 일단 산적들에게 풀린 산인들을 돌려보내고 산적의 무리가 더 없다는 생각에 숲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별로 깊지 않은 숲에는 작은 움막들이 있고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모두 손과 발이 묶여 있고 말을 들어보니 산적들에게 납치를 당한 여자들이다.
“모두 여각으로 데리고 가자.”
“넷!”
데리고 가서 풀어줄 생강이야 애당초 없었다. 모두 매음녀로 써먹기 위해 데리고 가는 것이다. 정난정은 이미 여자들이 불쌍하거나 또는 애처로워 보인다는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모두 20명이나 되는 여자들이니 장정들을 동원해 거둔 실적으로는 아주 좋았다. 기분이 좋아진 정난정은 장정들에게 지시했다.
“각자 한 명씩 차지해서 처리해.”
“넷!”
고생한 수고비 대신으로 여자들을 넘겨주었다. 앞으로 여자들은 다른 사내에게 몸을 팔고 그 돈은 모두 사내에게 넘겨줘야 하는 신세로 변한 것이다.
충성심도 다 재물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라 정난정은 위해에서 밤을 장악한 여왕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도 같이 이동해 올 때와 다르게 이틀이 걸려 현풍 여각으로 돌아 왔다.
“허억!”
현풍 여각에 들어서던 정난정은 건장한 체구의 사내를 보고 놀랐다. 무섭게 생긴 장검을 든 사내가 여각의 탁자에 홀로 앉아 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누구지?’
그러나 미처 그런 생각이 떠올라 입으로 말이 튀어 나오기 전에 장단지에 무서운 통증이 느껴져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있던 군인이 호되게 검집으로 강하게 후려진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워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 거렸다.
“실장, 여자를 그리 험하게 다루면 되나? 나는 현난풍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문을 닫고 밖에서 대기해.”
“넷! 태왕폐하!”
군인의 외침에 정난정은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전에는 뭐를 했던 자신을 일부러 찾아온 사내는 바로 천하를 호령하는 대진국의 태황이다. 태황이라는 위엄도 있지만 매섭게 자기를 노려보는 눈도 무섭고 커다란 덩치에서 품어 나오는 강한 느낌에 저절로 몸이 오그라들었다.
달달달.
태황 옆에는 하얀 털을 지닌 백두가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크르릉! 크르릉!
소문으로 듣던 호랑이도 물어 죽인다는 전설 같이 들리던 풍산개가 틀림이 없었다. 그래도 평범치는 않은 정난정을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입을 열었다.
“폐하, 어인 일로?”
“정난정, 그대는 정경부인이 될 팔자인데 왜 여기서 이러고 사나?”
“아!”
아주 오래전 풍기에서 보낸 이상한 서찰의 주인공이 바로 태황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정난정은 그런 이상한 예언서 따위는 이제는 믿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뭔가 이룬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 다부지게 답했다.
“폐하, 인생이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니 과거의 그런 허울은 모두 잊고 사옵니다.”
“그래? 그래서 몸에서 아편 냄새가 진동하도록 아편을 피우면서 사나? 아편을 먹거나 마시거나 소지하거나 판매하는 모든 행위는 대진국에서는 중범죄인지 모르나?”
법을 위반했다고 말하자 정난정은 이제 죽었다 싶어 엎어져서 애원했다.
“태왕폐하, 살려주세요.”
아편을 소지하고 피우며 판매까지 했으니 여자도 중형을 받아 사지라고 불리는 염전으로 끌려가게 생겼다.
최인범은 월녀에게 편지를 받아 정난정이 살아 있고 위해 해군기지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난정을 죽이기보다는 그냥 놔두다가 써먹겠다고 판단했다.
지금 제태국과 관계는 비공식적으로 서로 교역하는 사이다. 그렇다고 제태국을 마냥 성장하도록 놔두기고 곤란하고 또 완전히 격퇴시켜도 안 되는 묘한 상황이다.
그래서 최인범은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정난정이 벌이는 사업 형태를 보고 뭔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적당히 이용할 구상이라 만나서 엄하게 겁을 주는 것이다.
“일단 살려주지. 하지만 앞으로 사는 것은 잘 판단해야 될 거야.”
최인범은 이렇게 말하고 현풍 여각을 떠났다. 그리고 해군기지를 돌아보며 앞으로 관할 구역을 서쪽으로 더 넓히도록 지시했다.
“함대장, 이곳도 최소한 육군에서 1개 예비사단을 주둔 시킬 정도는 되어야 하니 서쪽으로 범위를 넓이도록해.”
“넷! 명을 따르겠나이다.”
“방어하기 좋은 위치를 경계로 삼고.”
“넷!”
위해 해군기지에 자리한 지역의 터가 범위가 너무 좁아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하거나 또는 방어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쌀농사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 전체의 조달이 어렵다면 다른 작물이라도 심어 식량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법위까지 넓히기로 했다. 이곳은 감자나 고구마가 모두 재배되니 토지만 넓으면 자체적으로 식량 조달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지시로 전에는 제태국과 완충지대라고 불리던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대진국 백성으로 포함되었다. 그래서 동쪽 끝에서 50리에 이르는 지역까지 대진국의 영토로 포함되었다.
그래서 경계로 정해진 것이 월호와 조양호를 연결하는 국경선으로 새로 결정되었다. 중간에 낮은 늪지대도 많아 별 어려움 없이 남북을 연결하는 운하를 파서 해자를 만들고 운하를 파서 나오는 토사로는 동쪽에 판축 공법으로 토성을 건설하고 부두 시설을 늘리기로 했다.
최인범이 판단하기에는 어떤 큰 영토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대륙과 연결되는 항로의 중요한 거점이자 무역항만 건설되어 잘 지킬 수 있다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최인범은 앞으로 소금이나 미곡 그리고 황은 모두 정상적으로 조운선을 이용해 거래를 한다고 지시했다.
“앞으로는 백두 상단이나 단동상단에서 새로 건설되는 조양 항과 월호 항에서 조운선으로 인계가 되니 소규모로 하던 밀무역은 모두 중단해.”
“넷!”
그나마 명나라 눈치를 보기 위해 밀무역 형태를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조운선을 이용해 거래를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운선을 가지고 직접 제태국의 항구로 보내는 것은 아직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기존에 현풍 여각에서 하던 업무는 이제 규모를 늘려 현난풍이 민간인 배를 이용해 필요한 곳으로 나르도록 허가를 내주도록 해.”
“넷! 명을 따르겠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현풍 상단은 밀무역을 하는 불법 조직이고.”
“잘 알겠습니다.”
더구나 그 밀수선은 특별히 제태국이나 멀리 장강까지 밀무역을 허가하되 때로는 약탈도 가은한 사략함대로 운용하도록 지시했다.
“폐하, 그렇다면 결국 허가 난 왜구나 다름이 없겠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최인범은 결국 음지에서 벌여야하는 견제 수단으로 정난정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최인범이 위해 항구를 떠나 봉황성으로 가는 중 정난정은 해군의 3 함대장을 만나게 되었다. 설명을 들은 정난정은 쉽게 이해했다. 허가 난 해적질에 밀무역을 하라는 뜻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위해 지역 남쪽은 무인지경으로 대진국에서 해군을 보내지는 않는다는 뜻이군요.”
“그렇지. 빨리 이해하는군. 하지만 언제고 문제가 되면 소탕 대상으로 변하게 되니 증거를 남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정난정은 그동안 모은 재물로 낡은 조운선 5척을 매입했다. 본격적으로 밀무역과 동시해 해적질을 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연히 모든 거래는 불법이라 약탈해온 재물은 현풍 여각에서 세탁하게 되는 것이다.
선장이나 사공을 쉽게 구한 정난정은 5척을 이끌고 슬며시 위해 항구를 떠나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미 산적의 소굴을 털어 쉽게 재물을 차지한 정난정은 무역도 좋지만 약탈을 먼저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정난정이 이끄는 해적선은 고요한 황해 바다를 소리 없이 이동했다. 바람이 전혀 없는 무풍인 상태는 범선에게는 최악이다. 힘들게 노를 저어서 멀리까지 이동했다.
철썩! 철썩!
어두운 밤에 빠른 속도로 이동해 멀리서 불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외딴 곳으로 해적 선박이 접안하기 좋은 지점이라 미리 해안을 따라 움직인 첩자가 상륙할 위치를 알리는 것이다.
일정한 거리에 도착하자 불빛이 둘로 늘었다. 불이 둘이라는 뜻은 주변에 군사들이 전혀 없어 안전하다는 뜻이다. 접안할 장소에 어민들도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윽고 한적한 해안에 해적선들이 접안했다. 그와 동시에 여각에서 지내던 장정 100명이 빠르게 하선했다. 다들 왜인들이 사용하는 장검을 들고 있었다. 어차피 적을 속이기 위해서라 왜구로 위장한 것이다.
100명의 장정으로 구성된 약탈부대는 어둠을 뚫고 빠르게 해변에서 10여리 떨어진 작은 마을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자 선장이 크게 외쳤다,
“선수를 바다 쪽으로 돌려 놔!”
“넷!”
이제 약탈부대가 마을로 가서 약탈하고 돌아오면 빠르게 적재를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교전이 벌어지면 배를 방어하기 위해서 포진되어 있었다.
“마을 하나만 털고 철수한다지? 말이나 가축 그리고 여자들도 끌고 오겠지.”
여기는 제태국이 관할하는 적진이라 다들 긴장한 모습이다.
한편 해적선을 떠난 장정들은 어둠을 뚫고 빠르게 이동했다. 다들 구보로 이동 중이라 일정한 속도로 뛰었다.
처음에는 무질서해 보이더니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다. 같이 뛰어가는 정난정은 이런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 저들은 훈련이 잘된 해군 같은데.’
이윽고 비록 크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고을이라고 불리지만 그저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장정들이 마을을 향해 일정하게 포진하자 드디어 정난정이 크게 외쳤다.
“돌격!”
“와!”
“돌격!”
크게 함성을 지르며 장정들이 마을의 정면을 향해 달려갔다.
사각 사각.
입구에 서있던 젊은 청년은 크게 소리치지도 못하고 목이 댕강 떨어졌다. 정난정은 계속 마을 안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으아악! 으악! 캬아악! 캬악!”
마을 안은 그제야 잠자다가 놀란 마을 사람들이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정난정과 현장화는 거의 동시에 마을 뒤편에 있는 다소 큰 기와집의 안채로 뛰어 들어갔다.
이곳이 제일 부유한 집이라 이곳만 털고 해적선을 타고 멀리 떠날 예정이다.
쾅! 쾅! 쾅!
“캭!”
“캬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