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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38화 (338/519)

338화

최인범이 산동으로 먼저 간다는 말에 소피아가 조용히 권했다.

“폐하, 이제 그만 황궁으로 가세요. 남경의 헌강왕과 협력하려면 정향대공주를 저대로 놔두면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험! 너무 어리잖아.”

“어리다니요. 이미 성인이 된지가 오래 됐는데요.”

“알았어. 염창으로 가서 소금을 가지고 산동부터 들리고 봉황성으로 가지.”

“꼭 봉황성으로 가세요.”

“알았소.”

전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제는 충분히 성인이 되었고 또한 남경의 헌강왕과 협조를 잘 하려면 정향 대공주를 품에 거두어야 될 때가 되었다. 이미 예정된 일이지만 자꾸 미루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많아 흘렀다.

‘이제 조금은 성정이 유순해졌으려나?’

어째 자신의 부인들은 다들 똑 같이 기가 너무 드세니 유순한 여자가 좋아 보여 해보는 생각이다.

한편 산동 반도의 위해 항구에서 현풍 여각······.

현풍 여각은 이제 전보다 규모도 대폭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산동 지역이나 또는 더 먼 곳에서 사온 어린 명나라 출신인 여자들 수도 이제는 30명이 넘었다.

또한 처음에는 돈벌이만 시켜주면 그 일만 하고 충성하지 않던 여자들이나 그녀들의 남편들도 점차 심복으로 변했다. 그런 수가 벌써 수십명이 되었다.

해군의 협조를 받아 소금교역으로 사업하고 있는 현난풍(정난정)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돈벌이가 잘되는 가운데 정난정은 수시로 염창 시의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들에 대한 소식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다 심복인 단양 댁의 보고에 온몸을 떨며 이를 바득 바득 갈았다.

“으으득! 으드득! 그놈들이 여기에 있었단 말이지?”

“예, 마님, 영창에서 일하던 그놈들은 이곳으로 왔다가 마님이 살아있는 것을 알자 집단으로 도망쳤다고 하옵니다.”

“몇 놈이나?”

“염창에서 일하다 죽은 놈은 반이 넘고 반 정도는 해군의 격군이 되어 이곳으로 왔으나 도망치는 과정에 사살 당하고 일부만 사라져서 정확하게 몇 놈이 살았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10명 정도는 살아 있는 것 같답니다.”

“뭐하며 살고?”

“별로 떨어지지 않은 산속에서 산적 질로 겨우겨우 연명하나 봅니다.”

안방의 보료에 앉은 정난정은 이런 보고에 눈에서 파란 불을 품어내고 있었다. 위해 항구에서 숙박업인 여각과 음식점 그리고 주점을 비롯해 매춘업을 하게 되자 빠르게 큰돈을 모았다.

더구나 해군에서 제태국으로 넘기는 소금의 거래량이 많아지자 정난정은 그저 돈을 갈퀴로 긁어 담는 정도로 쉽게 벌었다. 대진국은 관료나 해군에게 뇌물을 주면 중죄로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만고의 진리인 뇌물 공여를 정난정이 안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해군들의 복리후생을 위한다고 하며 가끔 많은 돼지를 기부하거나 또는 새로 유행하는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김치를 보내주어 해군과 더욱 밀착됐다.

그렇게 하자 그것이 투자가 되어 해군들은 현풍 여각으로 몰려와 장사는 더욱 번성하고 잘됐다. 그렇게 해서 정난정은 이곳 위해 해군 기지 내에서는 막강한 힘을 지닌 인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단양 댁이 전하는 말에 정난정은 잊고 있던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찌 하시라도 잊을 수 있으랴? 자신은 물론 5명의 여종들을 집단으로 윤간하고 결국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수장시킨 놈들을 잊을 수는 없었다.

원수들이 어딘가에 반드시 살아 있다고 판단한 정난정은 수소문해서 자기를 수장시킨 놈들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그 죽일 놈들은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창 시에서 벗어나 이곳 해군의 격군으로 왔다.

그들이 벗어나게 된 사연은 증거가 없다고 해서 단순한 밀수범이란 죄만 선고 받아 격군으로 풀려난 것이다. 그러다 이곳으로 와서 살아있는 정난정을 보자 모두 살기 위해 기지를 탈출한 것이다.

이곳에는 해군의 묵인 하에 밀 교역을 하는 등짐장수 패거리가 많았다. 소금이나 미곡은 모두 규모가 큰 현풍 상단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다른 소소한 물건의 거래는 소규모인 밀수업자들이 담당한다.

“우리가 한 번도 그놈들과 마주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사람 수 때문이군.”

“마님, 그렇습니다. 그놈들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있답니다.”

“알았어, 장사들을 모두 모이라고 해.”

“넷!”

정난정은 심복으로 변한 기둥서방들인 장사들을 모으고 자신도 시퍼런 장검을 숫돌로 갈았다. 지난 일과 같은 경우는 한번이면 족하다고 판단한 정난정은 이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틈만 나면 검술을 익혔다.

원수를 만나면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놈들의 목을 자르고 또 그곳도 잘라 버릴 생각이라 독기를 품고 무술을 연마했다. 목적이 뚜렷하고 또 총명한 정난정은 빠르게 검술을 익혔다.

그래서 비록 높은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허접한 칼잡이 보다는 솜씨가 좋았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고려해 연검술을 익혔다. 연검이란 칼이 너무 가늘고 탄력이 있어 허리에 감아도 될 정도의 검을 말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허리에 검을 두르고 다니고 있었다.

그녀에게 연검술을 알려준 여자는 역시 단양에서 왔다는 무당이다. 그녀는 산적 패거리라고 추포되어 관아에서 관기로 일하다가 이곳으로 도망쳐 온 여자다.

정난정이 검술을 배우려고 하자 무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쌍검술을 알려주었다. 전에는 그저 푸닥거리에 써먹던 검술을 남을 해하기 위한 살검술로 변화시켰다.

아무튼 무당은 이제 남장한 호위무사로 변해 현장화로 불리고 있었다. 현장화는 살수 조직인 장정들의 우두머리다.

장정들이 모아지자 그들 중에 힘이 좋고 무술이 높은 10명에게 빈 상자를 짊어지게 했다.

12명으로 조직된 정난정 일행은 산적들이 숨어 있다는 산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위해 해군기지를 떠난 지 하루가 지나자 산적들이 있다는 작은 산에 도착했다.

“마님, 여기 정도랍니다.”

“알았어.”

정난정이 주변을 살펴보니 비록 산은 높지 않으나 나무가 우거지고 산적이 숨어 살기는 적당해 보였다.

“흠! 꼴에 터는 잘 잡았군.”

정난정 일행은 앞에 등짐방수들이 가는 모습을 보며 다소 떨어져 따라가고 있었다. 명나라의 등짐장수들을 산적들이 털게 되면 달려들어 잡아볼 요량이다.

좁은 산길에는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계속해서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중에 앞에서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려!”

“살려줘!”

먼저 앞서서 가던 명나라의 등짐장수들이 크게 비명을 지르며 고개 길의 위에서 우르르 달려왔다. 분명히 기다리고 있던 산적들이 나타난 것이 확실했다.

“가자!”

정난정이 이런 지시를 내리자 장정들은 지고 있던 빈 상자를 벗어 던지고 장검을 뽑아들고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비탈진 고개 길이지만 힘이 좋은 장정들은 빠르게 내달렸다. 멀리에서 반대편에서 오던 상인들이 보이고 여전히 크게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캬악!”

“으아아악!”

산적에게 죽어가는 상인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정난정과 장정들은 더욱 빠르게 내달렸다.

이윽고 고개 위로 오르게 됐다. 20여명의 산적들이 10여명의 상인들 주변에 모여 있었다. 흉악하게 생긴 산적들 주변에는 붉은 피를 흘리며 여러 명이 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

“저놈이 살아 있군.”

산적들 중에 언젠가 봤던 놈의 얼굴을 발견한 정난정은 빠르게 내달렸다. 산적 무리와 가까워지자 신이 나서 크게 외쳤다.

“죽일 놈! 너 잘 만났어!”

철천지원수 놈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이놈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특이하게 자신을 범했던 놈이다 더 또릿했다.

신이 나서 상인들을 약탈하던 산적들은 당황했다. 장검을 든 장정들이 떼지어 몰려 오자 산적들 중에 한 녀석이 크게 외쳤다.

“튀어!”

후다닥!

겁에 질린 산적들은 허겁지겁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그러나 제일 먼저 고개 위로 오른 정난정은 눈에 확 뜨이던 산적 두 놈을 급하게 따라갔다. 도망치는 놈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원수! 서라!”

철천지원수를 드디어 여기서 만났다. 오래전에 자신을 번갈아 덮치던 산적 놈들을 발견했다. 정난정은 불타오른 복수심으로 놈들의 뒤를 급하게 따라갔다.

다른 산적 놈들이야 눈에 보이지 않았다. 철천지원수인 두 산적들만 눈에 확 들어왔다. 하필이면 두 산적들이 도망치는 곳은 마른 잡풀이 무성했다.

“이놈!”

사각!

“크아악!”

정난정은 들고 있던 연검을 크게 휘둘렀다. 도망치던 산적의 등에는 붉은 피가 품어져 나왔다. 이어서 바로 옆에 같이 도망가는 산적의 목도 칼날이 번쩍였다.

휘익! 사각!

“컥!”

단번에 목이 베어져 덜렁거렸다. 반쯤 잘라진 목에서는 검붉은 피가 확 품어져 나왔다.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허접한 놈들이다.

“크르륵. 크르륵.”

목이 반이나 잘려 나간 놈은 이미 죽었다. 하지만 등에 칼을 맞은 놈은 눈 위에 붉은 피를 흘리면서도 아직 숨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정난정은 확인 사살하듯이 두 녀석의 다시 사이의 중심에 연검을 깊숙하게 박으며 휘저었다.

푹! 푹!

두 놈의 중심을 잘라 죽이고 나자 정난정은 그제야 외쳤다.

“다 죽여!”

세월이 너무 흘러 두 녀석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늙었다. 염전에서 아마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의 기본 형태야 별로 변하지 않았다.

“확실하군.”

삶이란 누구에게는 기쁜 일도 누구에게는 최악일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당한 복수를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이제야 원수를 갚았어.’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난정은 그동안 줄 곳 복수부터 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었다. 그렇게 해야 뭘 새로 시작하던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정난정은 약간의 재력이 생기게 되자 두 녀석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오래 벼르던 복수를 달성하자 강한 성취감이 들었다. 가슴이 너무 벅차오르며 뿌듯해졌다.

만감이 교차되고 잠시 지난 일을 생각하는 동안. 장정들의 칼날에 산적들은 죽어 갔다.

사각!

“크아악!”

“살려주세요.”

사각!

연장화는 죽어 있는 산적들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약간 놀라며 외쳤다.

“마님, 원수들이 확실한가요?”

“우리가 운이 좋았어. 모두 확실해.”

정난정은 장정들에게 지시했다

“시체를 모조리 모아서 골짜기에 넣어!”

“넷!”

시체는 모두 12구로 상인 2명과 산적 10명이다.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르는 다른 산적이 있을 수 있어 주위를 돌아보았다. 짧은 전투가 벌어진 고개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역겨운 피 냄새가 확 풍겼다. 높고 푸른 하늘에서는 까마귀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현장화는 산적들의 시신 중에서 한 구를 따로 놓고 주변에서 나무를 모아 불을 지폈다. 그녀는 상당히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당으로 살던 시절에 남자를 품는 기쁨을 처음으로 안겨준 산적을 여기서 다시 만나 죽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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