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약 10만명이 떠나기 때문에 북쪽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선발대는 빠르게 북진했지만 예비 병력에 속한 군인들은 어김없이 도로 보수 공사장에서 일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졸지에 공사장 인부처럼 일하게 되자 병사가 투덜거렸다.
“이게 뭐야? 미곡을 배급해 줘서 공짜인 줄 알았더니 도로를 내고 성곽을 보수하는 인부네. 공병부대로 배속할 때 내가 알아 봤어.”
“공병대는 덜 위험하잖아. 자네는 전쟁터에 가고 싶지 않다며.”
“후방에 떨어지면 그냥 보초만 서는 줄 알았지 이렇게 공사장에서 일할 줄 알았나.”
조선이나 몽골 여진 출신은 대부분 정규 사단 병력에 포함되었다. 그들은 선발대로 먼저 떠났다. 그러나 명나라나 제태국에서 오게 된 이주민의 청년들은 대부분 공병부대로 투입되어 후방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배치된 이유는 어떤 차별 정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아직 훈련 상태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예비 부대원의 8할은 모두 공병부대원으로 편제를 새로 만들었다. 공병 부대원들은 이동하며 도로를 건설했다. 때로는 하천에 교량도 놔야하고 부대의 주둔지로 가면 새로 막사도 건설해야 한다.
물론 필요한 방어시설인 성곽도 새로 축조하거나 또는 고대 성곽을 새롭게 보수해야 한다.
고구려의 천리장성은 명나라에 있는 만리장성과는 전혀 다르다. 장성 밖이나 안은 그저 도로만 나있고 중간 중간에 요서 지역에서 요동으로 넘어올 수 있는 요충지에 산성만 건설해 놓은 형태다.
사실 그 때문에 효율성을 보면 오히려 만리장성보다는 전략적으로 매우 우수한 장성이다.
최인범이 고대 천리장성을 복원한다는 것은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의미다. 비록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자연지형의 변화가 적었다. 그 때문에 고대성이 있던 자리는 굳이 다시 살피지 않아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이라고 판단했다.
같이 가며 계속 투덜대는 오랜 친구인 일병에게 공병대 장교인 중위가 한마디를 던졌다.
“자네는 노력도 안하고 왜 그리 불평이 많나? 한글을 배워야 장교가 된다고 그렇게 권해도 안 해서 나처럼 장교도 못되고. 어디 진국이 공짜로 밥 주는 나라인줄 아나? 잔말 말고 빨리 돌이나 날라.”
“내가 미쳤지. 친구를 부려먹는 자네 말만 믿고 따라 왔으니.”
“내가 언제 자네에게 그저 놀면서 지내도 잘 살게 해준다고 권했나? 노력하는 만큼 잘 사는 곳이니 여기로 오자고 권한 거지.”
대부분 불평하는 사람들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덩달아 따라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그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이주해온 젊은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토하고 있었다.
그들은 군대로 입대해서 전쟁터로 가서 지내기도 싫었다. 그러니 준사관이나 장교도 원치 않아 3년만 복무하면 끝나는 일반 사병으로 입대했다. 그래서 적당히 요령만 피우고 살 생각으로 이주해 왔으니 불평들이 많았다.
그러나 세상 어느 곳도 마찬가지지만 이곳은 그저 공짜로 놀고서는 살 길이 없는 나라다. 거리서 구걸하면 바로 구속되어 중노동을 해야 하는 염전으로 보내진다. 염부로 100일을 죽게 강제노역을 해야 풀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구걸하면 부모가 구속되어 염전으로 끌려가게 된다. 어려워도 자식들에게 구걸을 시킬 수 없는 곳이 진국이다.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병사들도 차츰 이곳 진국의 제도에 적응하고 있었다.
“힘들지만 분명 기회가 많은 땅이야.”
“그러니 힘내자고.”
덤으로 따라 왔던 어떤 사연으로 왔던 이들은 이제는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다. 입국은 너무 쉽지만 출국은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사성의 외성에 있는 군단 사령부의 지휘소·····.
지휘소에 있는 초대형 지도를 대형 탁자에 펼쳐놓고 최인범은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며 작은 모형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전하! 독산성에 예비사단을 편성해 부대 배치를 끝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그러면 그곳에 시장을 두면 되니 내무부로 연락해서 장관에게 빨리 관리들을 보내라고 해. 시의 명칭은 독산 시로 정하고.”
“전하, 치안유지를 해야 하니 바로 경찰서장과 경찰도 보내야 되겠네요.”
보고하는 이창수 경호실장을 보며 즉시 답해 주었다.
“아니, 경찰서장은 보내지 않아도 돼. 그 지역에 살던 촌장이나 또는 촌장의 추천을 받아 현지인을 시키고 경찰도 현지인들이 하도록 조치를 취해.”
“넷!”
예비 사단이 주둔하는 지역에는 행정 구역인 시(市)로 정해지게 되었다. 예비사단 병력이 5천명이고 그의 가족이 최소한 1만명은 된다.
예비 사단의 주둔지는 인구수가 전에 정착하고 있던 건주 여진족들과 포함해 최소한 3만명이 넘게 되어 시로 행정 단위를 정했다.
최인범은 본시 그곳에 살던 현지주민에게 뭔가 줘야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곳 지리를 잘 아는 주민들이나 유지들을 경찰로 채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 일방적인 점령 방식이 아닌 더불어 산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시장이나 군수 그리고 읍 면장 그리고 필요한 관리는 차츰 명나라나 조선에서 실시하는 향시와 같이 도청소재지에서 선발해 정9품이나 종9품으로 임용된다. 차츰 차츰 품계를 올릴 생각이다.
그래서 새로 생긴 것이 정10품과 종11품으로 그들은 육군의 병장, 상병, 일병, 이병의 봉급을 받는 마치 임시직 같은 벼슬이 생겼다.
3년 복무기간을 마치면 아주 기본적인 시험을 보아 통과하면 종9품인 관료로 임명되는 특혜가 주어진다. 그 경우 대부분 최말단인 경찰인 순경이나 또는 제일 하위직급인 일반직 행정 공무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준사관인 하사의 경우는 전역하면 바로 종9품으로 채용이 가능해 군인으로 잘 근무하면 전역 후 취업의 길을 만들어 두었다.
이런 새로운 제도를 만들자 시장들을 대동하고 비사성으로 찾아와 있던 내무부 장관인 이황이 의문을 표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그리되면 나중에 경찰이나 공무원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 아니온지요?”
“아, 그렇지 않아요. 이병부터 신분은 군인이지만 행정관청이나 또는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의무경찰이나 도는 의무공무원 제도를 두어 우선은 그들이 각급 관청에서 근무하게 되니까요.”
“그렇군요.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은 제도군요.”
“그리고 큰 문제가 없으면 지역 파출소의 경우는 현역 군인이 당분간 대행합니다.”
“예비 사단이 필요한 이유를 알겠군요.”
이런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당연히 공무원의 인건비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문제지만 한글을 배운 공무원을 모집하기가 쉽지 않으니 인력 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나중에는 법을 조금만 개정해서 현대식의 공무원 채용이나 경찰 공무원 채용 제도와 같이 바꿀 생각이다.
현재 조선에서 사용하는 포졸이나 나졸 제도와 비슷했다. 하지만 훨씬 발전된 제도라 이황 장관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전하께서는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을 쉽게 구상하시는 거야.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아무튼 무슨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어떤 제도나 기구를 만드는 방법은 귀신이 곡할 정도로 너무 쉽게 척척 만드니 신기할 뿐이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런 것을 배운 거야.’
이런 것도 잘하면서 무술도 뛰어나니 이황이 보기에도 분명 하늘에서 내려 보낸 큰 인물이다. 이황만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서 접하면 접할수록 군주의 뛰어난 능력에 놀라고 있었다.
최인범은 이황 내무장관에게 차분하게 지시했다.
“장관은 잘 판단해서 지방 관청에 보낼 공무원 수를 조정하세요. 자체적으로 관료들의 급료를 주지 못할 정도면 그곳은 자연히 폐지되는 관청이 되니까요.”
“넷! 명심해서 잘 조정해 보겠습니다.”
“물론 중요한 거점에 만드는 관청들이니 그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관료들은 지역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넷! 그 점을 유념해서 각부 장관들과 관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자칫하면 관료들의 급료 때문에 나라 살림이 어려워질 수 있어 이런 당부를 하는 것이다.
결국 특별히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곳이 아니고 그만한 조세 수익이 없으면 관청이 둘 수 없도록 했다. 그러니 관청의 수가 늘거나 관료수가 방만하게 느는 것은 어느 정도 통제된다고 판단했다.
어느 곳이고 관료나 조직의 구성원은 반드시 자신들의 밥그릇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조금만 소홀하면 기구를 방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경제적인 힘이 없으면 그곳에는 관청을 아예 두지 않는다고 기본적인 지침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유학자 출신인 이황 내무장관은 왜 전에 자신에게 경제학 공부를 하라고 서책을 위화도로 보냈는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전하께서는 특별한 분이야. 군사력에 치중하는 것 같아도 결국 경제력이 나라는 지탱한다는 개념이 확실한 분이야.’
이러니 자연 새로운 기구를 만들려면 항상 경제적이 효과를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조선의 예조는 무슨 의식 절차에 많은 재물을 소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국(眞國)의 경우 외무부에서 담당하나 특별하게 잔치와 행사가 거의 없었다.
황제로부터 의형제라며 받게 된 의친왕으로 봉해져도 그것으로 끝이다. 축하 잔치는 고사하고 국수 한 가닥 신하에게 내리는 법도 없고 무슨 선물을 달라는 식도 아니다. 더구나 왕실의 소요 비용도 거의 왕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염전이나 상단 수익으로 충당했다. 그러니 신하들의 입장으로 잔치하자고 큰 소리를 치기도 어렵다.
이황은 자린고비처럼 재물을 아끼는 점이 좋기도 하지만 걱정이다.
‘이거야 원. 너무 짜게 예산을 집행하니 힘들어 죽겠어.’
고위 관리라고 해야 급료 이외에는 뇌물로 일원도 받아먹기 어렵고 공금으로 술 한 잔을 구경하기 힘들다. 조선보다 급료가 2배가 많아 아내에게 가져다주면 그 후로는 술이라도 한잔 하려면 아내에게 용돈을 타서 써야 하는 형태로 변했다.
‘재산이야 쉽게 모아지지만 사는 재미가 많이 사라졌어.’
그렇다고 조선처럼 이미 있는 염전을 왕실에서 차지해 독점하는 방식도 아니다. 군왕이 고안해낸 새로운 방식의 염전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상단 운영도 거의 많은 부분을 왕실에서 차지하지만 그것도 본시 그렇게 처음부터 시작해서 그리 된 것이라 왕실에서 사업을 독점한다고 불평할 사안들도 아니다.
최인범은 봉황성의 왕궁 새로운 건설에 관심이 가서 물었다.
“장관, 왕궁은 어느 정도나 지어졌나요?”
“아직 기초만 다듬고 왕궁의 담장과 해자만 깊이 파고 있사옵니다. 필요한 목재를 함선 건조에 모두 투입하게 돼서요.”
“그렇군요. 급하게 서두를 것이 없으니 천천히 세우도록 해요. 그러나 봉황산성 내에 건축하는 봉황사의 경우는 왕비의 유골을 봉안해야 하니 빨리 지어야 합니다.”
“넷!”
드디어 선발대가 안산시 지역에 도착해 그곳에도 예비 사단을 만들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됐어! 이제야 1차 목표 지점에 도달했어.”
결국 북진을 시작한지 불과 보름 만에 독산, 건안, 안시, 안산, 영구라는 5개의 시를 건설하고 예비사단을 5개를 주둔시키게 되었다.
다행이 이미 그쪽에서 유입된 이주민들도 있고 어느 정도의 교역도 전부터 해오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빠르게 완전히 진국 통제 하로 흡수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자연히 오른 쪽에 있는 도시나 마을들은 진국으로 통합되었다. 그 때문에 새로운 관료를 임명해 지역으로 보내고 제일 먼저 시 지역에는 예비 연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최전방이라고 판단되는 지역은 예비사단을 두고 후방으로 판단되는 곳은 예비 연대를 두는 형태다. 이런 보고를 받는 가운데 천진에서 소피아가 철수해 비사성으로 왔다.
“적절할 때 철수해서 왔군.”
“웃으시는 것을 보니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군요.”
“그렇소. 드디어 안산까지 우리 관할로 만들게 됐소.”
“어머나, 정말요. 이제 진짜 전쟁만 남았군요.”
안산까지 진출했다는 말에 소피아는 전쟁이 벌어진다고 장담했다. 그녀가 장담하는 이유는 그곳에는 건주본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에 최인범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명확하게 답해 주었다.
“전쟁은 최대한 늦춰서 할 생각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