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산해관을 떠나 비사성으로 향하는 판옥선에서 철갑웅이 은근히 걱정되어 물었다.
“전하, 천진의 소 왕비님을 비사성으로 불러야 되지 않나요?”
“그 문제는 소 왕비가 결정할 거야. 상황이야 이미 잘 알 것이니 적당히 손을 털고 비사성으로 옮길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전하, 그래도 뭐라 미리 말씀을 하시는 것이.”
“철 대령은 왜 그리 걱정이 많은가? 소 왕비도 왕 왕비와 같이 될까 걱정하나? 사람이란 본시 기질이 있고 성품이 다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소 왕비는 이미 비사성에 거처도 마련해 두고 있으니 빨리 결정을 내려서 오게 될 것이야. 같은 부족이라고 너무 걱정하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너무 큰일을 겪고 보니 불안해서요.”
최인범은 왕미령의 중독 사실을 계기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큰일을 벌였다. 소위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다. 명나라의 최고 권력자이던 엄숭을 처벌해 버림으로 명나라를 완전히 혼돈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산동반도에 제태국이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나라 전체가 더욱 난국으로 흘러야 돼.’
자신의 불찰로 왕미령이 죽은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두고 슬퍼만 할 위치가 아니다. 더구나 이미 난국으로 만들어 버려 조금만 방심하면 상황은 어떤 쪽으로 흐를지 모른다.
‘남경에서 헌강왕이 군사를 키우기 시작했다면 제일 세력이 크니 뭔가 견제할 세력이 필요해.’
그러나 마땅한 대상이 없었다. 지금쯤 포르투갈에서 마카오 정도를 원 역사처럼 거점을 잡는다면 조금은 견제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정확하게 모르니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그들은 소총을 소지하고 있으니 만약 그것이 남경 세력에 흘러들어가고 소총의 중요성을 알고 확대 보급을 한다면 그 또한 큰 문제다.
‘만만한 상대가 나서서 제일 강한 세력이 될 남경을 적당히 견제해 주면 좋은데. 그렇다고 대만이 어떤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륙을 혼전 양상으로 몰고는 가야하지만 너무 나라가 많아져도 곤란하다. 적은 나라로 갈리면 통일될 염려가 많으니 각자 독립적인 나라로 유지될 정도가 제일 적당했다.
그래야 그들 사이에서 해상권을 장악한 진국이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이 대륙을 난국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구상을 하며 비사성으로 떠나는 사이. 산해관이나 천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화물선인 조운선을 타고 비사성으로 떠나고 있었다.
전부터 왕미령과 관련이 있던 사람들도 있고 또는 남을 따라 이주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이한 것은 이들은 모두 도공. 목수. 광산기술자, 세공사, 대장장이 등이다. 이들은 왕미령이 북경의 황후 힘을 빌려 당산지역에 대규모로 광산업을 시작하려다가 중단되어 떠나는 사람들이다.
“왕비님이 없어도 터는 잡을 수 있겠지?”
“걱정하지 마, 시녀장이 책임진다고 했잖아. 우리야 관료를 하기 위해 이주하는 것도 아니니 가서 도움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터를 잡을 수 있어. 그곳은 기술자는 우대하는 곳이잖아.”
“조금 불안해서.”
이들 기술자들은 북경의 조정과 관련이 있던 상당한 실력을 지닌 고급인력이다. 황후와 결탁해서 왕미령이 기술자를 모았기 때문에 의외로 중요한 화포나 기타 주물기술 또는 세공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아졌다.
이주민들은 왕미령의 자살로 명나라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왕미령이 데리고 있던 시녀장의 말을 믿고 무작정 비사성으로 떠나고 있었다.
목수들은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었다.
“우린 봉황성으로 가서 사찰을 지어야 한다는군.”
“그렇다면 쉽게 그곳에서 터를 잡겠어.”
“당연하지 최소한 1년 이상은 일거리가 있잖아.”
군사력이 확장되고 경제력이 집중되면 건축경기가 살아나는 것은 세상의 이치라 목수들이야 걱정이 없었다. 물론 다른 기술자들도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신들의 일거리가 많아지니 걱정하지는 않았다.
한편 천진에서 거대한 사업을 벌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소피아는 왕미령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산해관에서 지내면서 서로 협조를 해가며 때로는 묘한 경쟁심으로 견제했다. 그런 왕미령이 죽자 소피아는 큰 위기감이 생겼다. 황후와 사이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하고는 전혀 달라질 거야.’
황후인 왕미미는 왕미령과 전혀 다른 성품이라는 것을 요즈음에 알았다. 본래 그런 성품인지 가정제에게 물들고 황궁 생활로 변한 것인지 모르지만 권력욕구도 강하고 아집도 무척 강했다.
‘황후라지만 친하던 왕미미가 죽어도 나타나지 않고. 전에는 수시로 부르고 산해관에 오더니.’
아편과 수은 중독으로 비관해 자살했다지만 분명 황후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내가 모르는 무서운 음모가 있었는지도 몰라.’
소피아는 느낌만 이상하지 황후가 벌인 음모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내용이야 최인범만 겨우 감을 잡아 아는 정도다. 왕미령이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아 비밀은 지켜지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판단한 소피아는 측근인 호위대장인 타말과 후세트 시녀장을 불러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타말은 조심스럽게 소피아에게 건의하고 있었다.
“마마, 천진도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왕 왕비님 사망으로 분위기가 점차 이상해지고 있사옵니다.”
타말의 말에 후세트 시녀장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마, 아무래도 천진을 떠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 왕비님이 돌아가셨으니 왕 황후와 우리 발해 상단과의 사이가 전보다 더 나빠질 것이옵니다. 그러니 비사성으로 사업체를 모두 옮기는 것이 좋사옵니다.”
소피아는 같은 남편을 두고 견제하던 여자로 왕미령이 수은 중독과 아편 중독으로 결국 자살을 선택한 사실에 누구보다도 충격이 컸다.
우선 급한 대로 남편이 연락을 해와 산해관의 사업체를 자신의 관리 하에 두었지만 분위기는 전과 사뭇 달라졌다. 표면적으로야 남편이 황제의 의동생인 의친왕으로 변하고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정상적이라면 사업할 여건이 더 좋아져야 하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다.
타말은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족장님께서 서쪽의 신장에서 나라의 기틀을 잡은 사실도 북경에서 이제는 알고 있으니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그야 알지만 갑자기 떠나기는 어렵잖아?”
“마마, 어려울 것은 없사옵니다. 사업체의 일부만 처분하면 됩니다. 그리고 여기 사업은 명나라 사람에게 맡기시면 되고요.”
타말의 생각은 사업체를 완전히 정리하자는 뜻이 아니다. 소피아를 비롯한 타타르 부족 출신과 중요한 인물들만 비사성으로 떠나 그곳에서 사업을 새로 시작하자는 뜻이다.
산해관에서 엄숭과 두중문을 처형한 사실이 일반백성들 사이에서는 크게 호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관료들이나 명나라 일부 상층부의 분위기는 전혀 그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시녀장도 계속 걱정했다.
“마마, 저들이 언제 마마를 노릴지 모르옵니다. 자칫하면 인질이 될 수도 있사옵니다. 그리되면 의친왕 전하께 큰 부담이 되옵니다.”
“아무래도 점점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돌아가겠지?”
“그렇습니다. 동창 조직이 전에 비해 천진과 북경의 사업체들을 감시하는 활동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타말도 거들었다.
“마마, 한족들이 의친왕 전하를 그냥 놔두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명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오랜 기간 북방의 이민족인 원의 지배를 받다가 한족들이 다시 대륙을 차지해 세운 나라다. 그런데 한족들이 이민족인 최인범을 곱게만 볼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자세한 내막은 남편을 만나봐야 모든 정황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정확하게 아는 상황만으로 판단해도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감지했다.
‘너무 빨리 난국으로 변했어.’
명나라 입장에서는 반역무리인 제태국과의 진국과의 교역은 이제 비밀 아닌 비밀이다. 누가 굳이 작심하고 비밀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질 수밖에 없는 교역이다.
‘너무 방대하게 교역 규모를 늘린 것이 문제야.’
물건을 이리저리 운반해 이윤을 남기는 장사꾼은 혼란한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이유는 그만큼 위험 요소가 많아져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규모의 대상인들이 하는 걱정이고 그보다 더 큰 대상인은 오히려 난세를 좋아했다.
나라간의 전쟁만큼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경제의 흐름을 잘 아는 남편은 분명 이런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 난세로 세상을 이끌기 위해 일을 크게 벌였다고 판단했다.
‘왕미령 때문에 전하의 결심이 조금 빨라진 것뿐이야.’
일부에서는 왕미령을 남편이 방치했다고 비난하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얼마든지 선택의 길은 열려 있었다. 왕미령은 본시 한족이라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북경의 권력 힘에 유혹 당한 것이다.
허울뿐인 작위 그리고 명나라 황제라는 권력의 힘을 빌려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고 했던 의타심이 결국 비참한 죽음으로 몰았다.
‘나도 공연히 사업에 미련을 두다가 후회하지 말고 떠나는 것이 좋겠어. 어쩌면 천진보다는 비사성이 사업하기가 더 좋을 수 있어.’
비사성으로 가면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얼마든지 사업을 벌일 수 있다. 남편의 힘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자신만의 힘으로 크게 사업을 벌이고 성공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판단했다.
“타말, 우리 비사성으로 떠나자. 일단 쉽게 그리고 남이 잘 모르는 재산부터 처분해서 비사성으로 보내.”
“넷!”
“사람이 중요하니 사람들부터 먼저 보내고. 특히 세공사 등 구하기 어려운 고급 기술자는 최대한 비사성으로 보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표면적으로 전쟁을 선포하거나 또는 적대한다고 선포를 안했다. 하지만 이미 북경의 정권과 진국은 적대국으로 변한 상황이다. 그러니 재물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빼돌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소피아는 이제는 독립한 왕도정을 만나서 권했다.
“왕 대인, 그대도 나와 같이 비사성으로 가지. 내가 보기에는 여기는 너무 위험해. 비사성으로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해 보는 것이 더 좋아.”
“아닙니다. 누군가는 남아 있어야죠.”
“그건 모두 다른 사람이 해도 되니 떠나자고.”
남겠다는 왕도정도 설득해 결국 그의 사업체는 오래전부터 연결된 대상인인 왕담보에게 넘기게 되었다.
고려여각은 완전히 국가정보원이 관리하는 사업체로 넘겼다. 물론 발해 여각도 마찬가지로 국가정보원에게 넘기게 되었다. 국가정보원은 자신들과 무관하게 여각을 판매하고 새로운 거점을 만들 것이다.
또한 천진과 북경의 사업체들은 만리 상단의 양유승에게 넘기게 되었다. 양유승을 만나자 소피아는 왕미령이 하려던 사업 중 일부를 말해 주었다.
“당산의 석탄을 깨서 비사성으로 판매하세요. 우리가 운반은 해가죠.”
“아! 비사성은 연료를 대부분 석탄으로 사용한다죠?”
“그렇습니다. 그러니 당산에서 생산된 석탄을 해안까지 운반해 넘겨주세요. 비단길이 막혀 장사하기 어려워졌으니 이참에 사업체를 새로 하나 만드세요.”
“알겠습니다. 비사성에서 사가겠다면 해보죠.”
안전을 위해 몸이야 비사성으로 떠나지만 명나라 사람을 통해 계속 사업할 생각이다.
결국 소피아는 그동안 잡은 사업기반을 일부는 국가정보원에게 일부는 매각, 일부는 명나라 상인과 합자형식으로 변경해 버렸다.
난국으로 변한 대륙이라 이제는 보다 더 유리하면서 안전한 비사성으로 거점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산동 반도 끝으로 가서 거점을 잡아볼 계획이다. 그곳은 조선과 명나라 제태국 진국을 아우르는 중요한 거점이기 때문에 선택했다.
남편인 의친왕은 대륙을 완전히 난국으로 만드는 군사적이나 정치적인 행보를 함다. 소피아는 그 결과물을 뒤에서 챙겨서 완성해 가는 구도로 판은 전개되었다.
한편 비사성에 도착한 최인범은 동아시아 전체를 더욱 혼란스러운 난국 상항으로 만들기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