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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33화 (333/519)

333화

산해관에서 자신들의 돈줄이자 파당의 우두머리인 엄숭이 죽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상태로 의친왕이 힘을 발휘한다면 엄숭의 졸개들인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어찌 했으면 좋겠소? 무서울 정도로 힘이 강해지는 의친왕을 저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소?”

“놔두다니요? 의친왕 패악무도한 놈입니다. 감히 폐하를 겁박해 그런 무서운 짓을 저지르다니요. 아니 조정 중신을 그런 식으로 목을 자르는 짓이 어디에 있답니까?”

“그렇소? 그는 너무 무도한 놈이오.”

한참 욕을 해보지만 당장에 무슨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는 이미 비사성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에 별로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흥분하던 무리는 차츰 이성을 찾자 살기위해 모사를 꾸미기 시작했다.

“우리 힘으로 부족하니 동창과 힘을 합칩시다.”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누가 그런 일을 담당할 거요? 그리고 태감들도 패가 많은데.”

“우선 우리부터 의견을 통일합시다.”

“좋소! 뭉쳐야 하는 때요.”

결국 엄숭의 졸개들은 그동안 약간 거리감이 있던 태감들에게 접근해 같이 의친왕을 몰아내는데 힘을 보태기로 제안했다. 동창의 조직은 전에 최인범을 암살하려고 시도도 했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소. 우리도 최대한 돕겠소.”

“전처럼 싸우지 맙시다.”

도저히 독자적인 힘으로는 의친왕의 기세를 누르기 힘들다고 판단해 연합전선을 펴기로 했다. 이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엄숭과 반대를 이루던 패로 가정제는 희망이 전혀 없는 군주라고 평가하는 무리들이다. 이들도 은밀하게 모여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서계도 결국 사직했다고 하니. 그는 지금 어디로 갔소?”

“고향으로 간다고 하더니 중간에 가족들과 같이 홀연 사라졌어요. 아무래도 의친왕이 있는 비사성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허! 서계까지 비사성으로 넘어 갔다면 우리 명나라의 운은 이미 끝났다고 보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으니 우리도 서계가 확실하게 넘어갔다면 같이 비사성으로 넘어 갑시다.”

“그럽시다.”

물론 가족들이 있고 지금까지 누리던 기반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야 있어도 쉽게 떠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비교적 나이가 젊고 가족 수가 적거나 또는 기반이 약한 사람들은 서둘러 천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신들도 있고 무신들도 있다. 비사성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수가 또 다시 늘어나 버렸다.

그곳으로 가서 새롭게 벼슬을 해보려는 사람도 있다. 또는 새로운 문물이 많다는 그곳으로 가서 어찌 세상이 돌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봉황성에서는 소금도 다른 방식으로 생산한다고 하더군.”

“그게 사실이고 또 다른 새로운 작물도 있다면 거기야 말로 무릉도원이 아니요?”

“무릉도원은 아니더라도 여기 보다는 살기가 좋은 곳은 확실하니 떠납시다.”

이유가 어디에 있건 대륙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제태국과 대적하고 있는 명나라의 중앙군 내부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디서 흘러나온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제태국과 의친왕이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군관들이 서로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태국과 의친왕이 밀약했다고 하더군.”

“설마? 얼마 전에 진왕은 산해관에서 의친왕으로 봉해졌는데?”

“이처럼 난세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그리고 의친왕은 황제 때문에 왕 왕비까지 졸지에 죽어버렸다고도 하던데. 그게 사실이면 황제와는 철천지원수지.”

“아니? 황제가 왕 왕비에게 뭐라고 협박하고 소리라도 쳤나?”

“그거야 잘 모르지. 하지만 소문에는 황제 때문에 죽었다는 거야.”

오래 전에 가정제는 황후에게 큰 소리를 치고 협박해 너무 놀라 졸도해 죽어 버린 사실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들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던 군관들은 조심스럽게 앞날을 걱정했다. 제태국과 의친왕이 손을 잡은 것이 사실이면 자신들은 군세에서 많이 밀린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딸리지?”

“당연하지.”

제태국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다. 더구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의친왕과 힘을 합치면 자신들은 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 문관들과 같이 무관들도 새로운 주인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군문에 있는 몸이라 이동이 어렵다. 하지만 소규모 부대 단위로 슬며시 부대를 이탈해 비사성으로 사라지는 일들이 발생했다. 전체의 수로 보아서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 때문에 중앙군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뭐라 어제도 100명이 사라져?”

“넷! 꼭 100명 정도가 사라지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배편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실제로 위해 항구를 통해 진왕은 제태국과 교역을 시작했다. 물자가 풍부해진 제태국은 빠르게 왕성을 건설하고 본격적으로 군대를 강화하는 전략에 국력을 결집시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대운하 지역이 가끔 기습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이제는 남북 간의 운송 수단이 어려워졌다. 그러니 북경은 점점 살기가 힘든 지역으로 변했다.

비사성에 있는 의친왕에게 목을 매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소금이나 어물 그리고 미곡을 보내주고 있으니 문제가 있더라도 협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와 동시에 남경에서도 헌강왕이 중앙 정부의 명령 없이 군사를 대규모로 양성했다. 더구나 그동안 북경으로 보내던 미곡이나 기타 물자를 대운하가 막혔다는 이유를 핑계로 삼아 전혀 보내지 않고 있었다.

소문에는 남경도 조만간 새로운 나라를 선포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나라가 어려 조각으로 나누어지게 생겼다.

“허어! 난세로군.”

“난세도 보통 난세인가? 잘못하면 춘추 전국 시대로 변하겠어.”

“허! 그렇겠군. 사방에서 자신이 왕이라고 외치겠어.”

동북쪽에는 진국. 그리고 해서여진과 건주본위라 불리는 여진족이 있다. 몽골 초원에는 힘이 강해진 북원, 북경에는 정신병자로 소문난 가정제가 이끄는 명나라, 서쪽에는 모습도 전혀 다른 타타르 부족, 남쪽에는 헌강왕이 이끄는 또 다른 명나라, 동쪽에는 제태국이 이미 생겼으니 벌써 5개 조각으로 나뉜 것이다.

서쪽의 신장에서는 유랑생활을 하던 타타르 부족이 그곳을 점령하고 나서 기마병의 수를 대폭 늘린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들이야 그저 본래 조공만 바치던 눈이나 피부 색깔도 전혀 다른 이민족들이 아닌가?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

“그렇지 않아. 타타르 부족이 점령한 이후로는 점점 동쪽으로 이동한다니 문제지. 더구나 그쪽으로 통하는 교역로가 완전히 막혔잖아.”

“허! 그럼 비단가격이 떨어지는 건가?”

“그렇게 될 수도 있어.”

한편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 가운데 산해관에서 돌아온 가정제는 심한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중문 제조해 넘겨주던 비약이 떨어져 심한 금단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건청궁의 침소에서는 가정제가 온 방을 헤매며 고통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아고고. 머리야 나죽어! 으아악!”

시녀들과 상궁들은 너무 무서워 접근을 못하고 있었다. 이런 때 잘 못 옆으로 가서 돕는다고 하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가 있었다.

“뭐하나? 약을 안 가져 오고!”

이미 죽어버린 두중문이니 그가 만든 비약이 있을 턱이 없었다. 상궁들이나 시녀들이 다들 겁에 질려 있는 상황에 황후가 조 귀비와 나타나 푸른 약을 넘겨주며 말했다.

“폐하, 너무 고통스러우면 이약이라도 드셔 보세요. 진통제이니 조금 나아질 겁니다.”

“어서!”

다급한 입장인 가정제는 독약인지 뭐인지 살필 정신도 없이 입에 알약을 넣고 삼켰다. 그러자 잠시 뒤에 머리가 바수어 질것 같던 고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황후! 나에게 준 약이 있소?”

“예, 조금 있사옵니다. 하지만 저도 똑 같은 고통이 오니 당장 많이 드릴 수는 없사옵니다. 우선 서로 나누어 들면서 새로 제조해 보도록 하죠.”

“고맙소. 황후가 나를 또 살리는 구료.”

이런 황제를 보며 황후와 조 귀비는 눈빛을 마주하며 비웃고 있었다.

사실은 주중문이 죽기 전에 제조한 모든 단약을 황후가 차지해서 그저 색만 다르게 염색했다. 물론 크기도 전에 비해 작게 만들어 수량을 늘려 놓았다.

더구나 전에 자신들에게 먹으라고 넘긴 약들도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었다. 자신들은 비약의 중독 정도도 매우 약하고 사실 큰 문제는 없었다.

‘죽으려면 혼자나 죽지.’

중독 증상이 미약했기 때문에 조선에서 오는 인삼을 복용해 많이 해소되었다. 자신들은 이렇게 몸을 아끼고 있지만 친하던 왕미령에게 약을 많이 먹인 이유는 그녀가 자신들의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했기 때문이다.

같이 살자고 애원했으나 거절하자 앙심을 품었다.

결국 왕미령을 끌어들이려면 비약을 먹여 중독 시키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고 판단했다. 외롭다는 핑계로 왕미령을 황궁으로 자주 불러서 음식을 먹이며 슬며시 비약을 타서 중독 시켰다.

그리고 고통을 줄여준다고 진통 효과가 있는 아편을 먹여버린 것이다. 결국 거의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던 그 음모는 의친왕이 왕미령의 중독 사실을 눈치 채서 틀어져 버렸다.

가정제가 잠들자 두 여자는 교태전으로 와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앞으로 누굴 지목하지?”

“가다려 봐야죠. 이미 난세로 접어들었으니.”

자신들이 굳이 의친왕을 지목한 이유는 그가 잘났기 때문이었다. 기왕에 남의 남자 자식을 낳을 바에는 그가 제일 적격자라고 판단했다. 단순한 아들만 원한다면 얼마든지 어떤 놈의 씨를 받아내도 그만이다. 변장하고 나가서 접할 수 있는 힘 좋은 걸인도 널려 있다. 여자가 치마만 걷으면 정신없이 덤비는 굶주린 군졸도 있다. 의친왕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접한 여자는 함부로 해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번만 접했으면 성공인데.”

“그렇죠.”

단 한번만 접하면 성공한다고 장담하는 이유는 두 여자 모두 꼭 의친왕의 아들을 낳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충 그와 비슷한 골격을 가진 놈을 이미 적당한 곳이 잡아 놓고 사육중이다.

“마마, 이제 그놈은 쓸모가 없으니 죽이시죠?”

“그래, 의친왕은 절대 우리와 접하기 틀렸으니 죽이자고.”

“황후마마, 제가 가서 죽이겠습니다.”

“그래, 나보다는 움직이기 편하니 귀비가 다녀와. 절대로 딴 마음먹지 말고.”

“예.”

두 여자는 이미 한번 변신을 시도했지만 상대를 잘 못 골라 새로운 변신을 시도할 요량이다. 두 여자는 이제는 황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급해졌다.

‘죽일 몸이 주변의 여자들을 모조리 순장도 한다니 그러기 전에 아들만 하나 만들고 죽여 버리자고.’

황궁 내부에서도 엄청난 모의가 벌어지고 있으니 나라는 총체적으로 난국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인범은 왕미미 황후와 조 귀비가 모의해 은근히 제시한 난잡한 교접(交接) 대신에 자신이 오래전에 선택한 난교역(難交易)과 난국(難國)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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