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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32화 (332/519)

332화

목이 잘려 죽어버린 도중문의 목이나 몸에서 품어 나오는 붉은 피가 칭해루 마룻바닥에 흥건했다. 그러자 진한 비린내가 강하게 풍겼다. 음습한 기운을 품고 찬바람이 불자 누각에 있는 대신들이나 환관들은 이제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

“클럭! 클럭!”

너무 숨을 멈추다 보니 엄숭은 자신도 모르게 기침을 토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다시 크게 외쳤다.

“서계는 간적 엄숭과 엄사번의 죄를 논하라!”

의친왕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엄숭과 그의 아들인 엄사번은 이미 혼이 나간 가정제 앞에 엎어져 울면서 애원했다.

“폐하! 살려주세요. 폐하! 저는 억울하옵니다.”

“폐하! 폐하!”

엄숭 부자가 엎어져 애원하지만 가정제는 이미 눈동자가 완전히 옆으로 돌아가 버렸다.

사팔 뜨기처럼 이리저리 굴리면서 딴 곳만 바라보았다. 정신병자의 경우 심한 공포감에 휩싸이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전혀 다른 세계를 뇌리에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정제도 지금은 그저 아주 어려서 부모님들이 자기를 귀엽게 키워주던 모습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히쭉 거리고 있었다.

“히히!”

가정제의 이런 괴이한 행동 때문에 칭해루는 더욱 괴기스러운 강한 기운이 풍겼다. 그런 가운데에도 서계의 입은 거침없이 엄숭 부자에 대한 죄를 논했다. 붓 끝은 살아서 움직이는 듯이 펄펄 날며 하얀 종이에 계속 써내려갔다.

한 인간이 어찌 일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나? 할 정도로 엄숭이나 그의 아들이 저지른 죄상은 너무나 많았다.

뇌물수수, 뇌물공여. 살인, 살인교사, 공금횡령, 인육거래, 밀무역, 간첩죄, 황상 모독죄, 황족 모독죄과 불경죄 등 수많은 죄를 열거하고 끝냈다.

그러자 최인범은 다를 대신들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서계가 말하는 엄숭 부자에 대한 논죄에 불만이 많은가 보군요. 그렇게 서계의 논죄 방식이 마음에 안 드나요?”

“아니옵니다.”

분위기로 보아 4명의 목을 잘라야 무서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생겼다. 대신들을 급하게 서계가 쓴 곳에 연명으로 서명을 하면서 혹시라도 빠진 죄가 있으면 그곳에 추가로 적었다.

그것이 끝나자 엄숭 부자의 목도 댕강 잘리고 칭해루 바닥은 더욱 많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이제는 끝나다 싶었지만 여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던 가정제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남은 한 명은 누구지?”

네 명이라고 했으니 남은 목은 혹시 자기가 아닌가? 하고 염려해서 슬며시 물어 보는 것이다.

“헉!”

가정제가 던진 물음에 대신들은 외마디를 토하며 기겁했다. 겨우 살았다고 판단하던 목숨이 또 다시 경각에 달렸다고 느꼈다.

더구나 최인범이 누굴 지목할까 하는 눈빛으로 자신들을 매섭게 바라보니 전신이 오싹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치고 지은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다들 겁이 났다.

달달달.

모두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지나가는 소리로 가볍게 응수했다.

“폐하, 잘라진 목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니 오늘은 이쯤하고 끝내겠사옵니다.”

“왜? 불경죄를 저지른 서계의 목이라도 자르지.”

이런 소리에 서계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황당한 황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저런 멍청하고 어리석은 황제를 위해 뭐를 했나 싶었다.

‘내가 시대를 잘 못 태어 난거야.’

그마나 지니고 있던 어떤 의지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학문이고 벼슬이고 세상을 바로 잡고 싶다는 어떤 무엇이 사라져버렸다.

최인범도 가정제의 이런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 서계에게 지시했다.

“자네는 북경에 있다가 보면 죽을 수밖에 없어 보이는군. 빨리 사직하고 낙향하는 것이 좋겠어.”

“전하, 즉시 사직하고 떠나겠사옵니다.”

서계는 크게 외치고 즉시 사직한다는 문서를 써놓고 급하게 칭해루를 벗어났다.

그가 떠나고 나자 이미 죽은 세 사람의 머리는 효수(梟首)형이라 긴 장대에 걸려 산해관의 천하제일문 앞에 걸렸다.

이어서 이미 죽어 버린 세 사람에 대한 후속조치가 내려졌다. 그들의 재산은 모두 몰수한다는 조치가 내려지고 그의 식속들은 모조리 노비신세로 변하게 되었다.

가정제는 두려워서 그런지 뜬금없이 수많은 궁녀들을 바라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두중문도 없으니 너희들도 자금성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 앞으로 모두 의친왕에게 가도록 하라.”

“에이!”

겹에 질려 있던 상궁이나 궁녀들은 다들 급하게 대답했다. 모두 ‘살다보면 이런 좋은 일도 생기는 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궁녀나 시녀들도 귀가 있어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의친왕은 절대로 여자를 함부로 탐하지 않는다. 궁녀들도 본인이 원한다면 일정 기간이 지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시집을 보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려한 황궁의 생활 보다는 이제 평범한 아내의 삶이 좋아.’

일부는 너무 어려서 그런 사실을 몰랐다. 일부는 화려해 보이는 황궁의 생활이 좋아 보여 궁으로 들어온 여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황궁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 삶인지 다들 깨우쳤다.

우루루. 후다다닥!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수백명의 여자들은 급하게 판옥선으로 내달렸다. 혹시라도 가정제의 마음이 또 다시 다른 쪽으로 바뀔까 염려해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가정제는 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그냥 하는 소리인지 모르나 한마디 토했다.

“세상인심이 저렇군. 내가 죽으면 순장이라도 당할까 저렇게 다 도망치는군.”

이런 가정제의 말에 최인범은 아직도 명나라에는 순장 제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적인 사고력을 지닌 최인범은 순간 참으로 세상은 공평하지 않음을 절감했다.

세상이란 어느 시대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공평한 삶을 살수는 없었다. 그러나 순장 제도야 말로 참으로 비인간적인 처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서 그런 문제를 잘 확인해야 되겠어.’

이어서 가정제는 최인범에게 비단 2천필을 하사했다. 보아하니 그런 생각이 당초에는 없었으나 궁녀들을 넘기고 보니 그녀들을 돌보라는 뜻으로 주는 것 같았다. 그도 아니면 엄숭 부자의 재산과 두중문의 재산을 몰수하게 되었으니 후하게 선심을 쓰는 지도 모른다.

두중문은 그동안 비약을 만들어 황제에게 바치며 그때마다 엄청난 은자를 차지했다. 가정제도 자신이 두중문에게 넘겨준 재물이 많다는 것이야 잘 아니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다.

가정제는 환관들의 부축을 받아 칭해루를 떠나 급하게 북경으로 향하게 되었다. 산해관의 칭해루에서 그동안 엄청난 권력을 부리던 엄숭 부자와 도중문의 처형한 사실은 산해관은 물론 멀리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칭해루를 청소하며 그곳 바닥에 흘린 많은 피를 발견하고 혈해루(血海樓)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최인범은 고려 여각으로 이동했다. 이제 이곳에서 벌인 사업을 정리하고 왕미령을 데리고 돌아갈 생각이다. 그러나 고려 여각으로 가자 이미 여각에는 긴 흰 천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시녀장을 보자 급하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전하, 왕비님께서 조금 전에 자진하셨어요.”

“뭐라?”

급하게 고려 여각 옆의 저택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의 안방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왕미령이 몸이 퍼렇게 변해서 죽어 있었다. 이미 몸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의친왕 전하께서 간악한 엄숭과 두중문을 처형했다는 소식을 듣자 왕비마마께서 한동안 한숨을 쉬시더니 그만 극약을 먹고 자진하셨사옵니다.”

“누가 왔다가 간 사람은 없고?”

“전하, 황후마마와 조 귀비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다녀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진하셨사옵니다.”

이렇게 말하며 시녀장은 유서인 서찰을 보여 주었다, 쓰면서 울었는지 서찰에는 눈물 자국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저 그동안 너무 고맙고 외로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는 후회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아편이나 수은에 중독이 되도록 변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단 한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끝내 혼자서 떠안고 떠났군.’

사람이란 돌봐야 사는 부류도 있고 그저 방치해도 잘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최인범은 보호해야 되는 여자를 방치하는 큰 실수를 범해 일이 이 지경에 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의친왕의 왕비인 왕미령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왔다. 문상객을 일일이 대응하는 사람은 왕미령의 오빠인 왕도정이다.

황궁으로 연락이 되었는지 예부상서가 찾아와 문상하며 비단 1천필을 보내 주었다. 열불이 나서 태워버리려고 하다가 재물이 무슨 잘못이냐는 생각으로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잘 보관 해. 왕 왕비를 위해 쓸모가 있을 것이니.”

“넷!”

왕도정은 자신의 누이가 아편과 수은에 중독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일단 장례식을 끝내고 화장을 마치고 나자 최인범은 왕도정에게 내막을 설명해 주게 되었다.

“전하, 소신이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저 장사에만 정신이 없어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 지난 일을 더 이상 거론하지 말게.”

“에이.”

최인범은 봉황성으로 유골을 가지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 자손도 없고 죄를 지은 몸으로 죽었다며 근처의 절에 봉안하는 것으로 끝내자고 왕도정이 주장했다.

측근인 철씨 삼형제도 유골을 가져가야 속만 쓰리다고 만류했다.

“전하, 굳이 가지고 갈 필요가 있나요?”

“아니야. 내 불찰이 너무 크니 설사 절에 봉안해도 내 옆에 두어야지. 그래야 나도 앞으로 같은 실수를 다시는 안 하고. 마침 황궁에서 보낸 비단도 있으니 사찰을 지어서 봉안하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왕비가 죽었으니 큰 저택은 필요가 없어 매각했다. 시녀들의 일부는 봉황성으로 가고 나머지는 본인이 원하면 모두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또한 일부는 천진으로 가서 소피아 밑에서 지내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결국 여각은 소피아가 별도로 관리인을 두어 운영하게 되었다. 고려여각은 본시 국가정보원의 정보조직도 가동되고 있으니 폐쇄할 수는 없었다.

왕도정에게도 일부 재산이 넘겨져 완전히 독립시키게 되었다.

“그래도 기반이 여기 산해관에 있으니 잘 지내게.”

“감사하옵니다.”

“힘들면 누이처럼 바보같이 혼자서 속을 끓이지 말고 봉황성으로 와. 누이에게 내가 힘들면 언제고 봉황성으로 오라했더니 나를 믿지 못한 것 같아. 자네는 나를 믿고 힘들면 언제라도 봉황성으로 와.”

“넷!”

최인범은 허허한 마음으로 산해관을 떠나 비사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산해관을 보며 다짐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오면 그때는 네 목을 잘라주마.’

정확하게 누굴 지목하는 의미보다 그저 너무 허망해서 토하는 푸념이었다. 진왕이 의친왕으로 봉해지고 또한 산해관에서 간신들의 처형과 왕미령의 죽음은 엄청난 파장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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