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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31화 (331/519)

331화

황제와 마주 앉은 진왕은 누가 봐도 덩치도 크지만 무서운 제왕의 풍모다. 더구나 완전 군장하고 큰 장검을 차고 일반 사람은 검으로 부를만한 대검을 4자루나 차고 있으니 겁이 났다.

더구나 동쪽의 문 옆에는 마치 전설에 나오는 관운장이 사용했다는 청룡언월도로 보이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언월도를 든 철씨 삼형제를 보자 몸이 저절로 쪼그라들었다.

달달달.

마치 죽음의 심판자인 염라대왕과 죽음의 대리자인 사신들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처음 들어올 때는 여유 만만하던 표정들은 다들 경직되고 눈동자만 바쁘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어떤 핑계라도 생긴다면 여기를 빨리 벗어나고 싶기만 했다.

태어나서 이런 무서운 분위기는 처음이다. 가정제가 난폭하게 대신들을 처형하라고 자랄 발광할 때도 이런 공포감은 느껴지지 못했다.

‘허! 진왕을 죽음의 종결자라고 왜인들이 부른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이야.’

왜의 하카타 항구에서 벌어진 사무라이들의 몰살 사건은 이미 명나라에도 널리 퍼졌다. 그리고 그때 죽은 왜의 무사들 수가 대체적으로 수천명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막상 진왕을 마주하고 더구나 화가 나서 눈에서 푸른빛이 나고 서늘한 느낌이 드는 살기를 강하게 품어 나오자 너무 무서웠다. 진왕이라는 권위에 눌린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저 본능의 저 밑에서부터 저절로 우러나온 너무 강한 자와 마주친 공포감이다.

더구나 진왕 옆에는 호랑이도 물어 죽인다는 백두도 잔뜩 긴장해 몸을 웅크리고 있다. 언제고 누군가의 목을 물어버리려는 예비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활짝 열려 있는 칭해루의 양쪽 출입구로 강한 해풍이 휘몰아쳤다.

쉬이잉! 쉬이이익!

마치 귀신이 소리를 내는 것 같은 귀곡성처럼 들렸다. 바람소리가 더욱 거세지며 진눈개비가 강하게 몰아쳤다.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주변이 갑자기 차가워지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더욱 몸이 떨려왔다.

달덜덜. 다다다다.

대가 약한 사람은 이빨까지 마주치며 떨었다.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인 가정제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겨우 명령을 내렸다.

“태감! 어···서! 채~책~봉서를!”

의친왕으로 책봉하며 뭔가 당부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이제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괴기스러운 무서움만 가득한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환관들이나 대신들도 마찬가지다. 가정제의 명령을 받은 태감은 교지가 적힌 황금빛 두루마기를 급하게 펼치고 더듬더듬 읽었다. 혹시라도 책봉서가 마음이 안 든다고 무섭게 생긴 장검을 빼서 자기 목을 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두려웠다.

교지의 내용은 이미 연락을 받은 그대로 봉황대흑산산동대진군(鳳凰大黑山山東大眞君) 의친왕(義親王) 요동산동발해동해 수륙대도독 태대장군 (遼東山東渤海東海 水陸大都督 太大將軍)이다.

교지를 읽고 나서 태감이 공손하게 최인범에게 넘겨주자 한손으로 받아 뒤로 풀쩍 던져 버렸다.

“헉!”

황제의 교지는 뒤로 날아가 마룻바닥에 떨어져 좌르륵 펴졌다. 누가 봐도 불경스러운 행동이 분명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이창수가 빠르게 교지를 집어 들어 둘둘 말아서 품속에 소중하게 간수하고 약간 뒤로 물러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소신이 동작이 너무 꿈 떠서.”

의친왕이 교서를 받으라고 던졌는데 자신의 불찰로 이상하게 됐다는 의미다. 그나마 황제의 체면을 조금은 세워주는 언사다.

최인범은 이어서 가정제를 노려보며 물었다.

“형님폐하께서는 아우인 저에게 따로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이렇게 말하자 가정제는 그나마 조금 정신이 수습된 표정으로 변하며 더듬거리고 답했다.

“짐이 아우에게 따로 할 말이 있겠는가? 그저 항상 고맙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내면 그만이지. 그리고 앞으로 아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뭐든 하시게. 북경으로 와서 정치를 한다면 내 당장이라도 섭정왕으로 봉해 주겠네. 아무튼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앞으로 아우님 것이니 그리 아시게.”

이렇게 가정제가 말하자 서계가 나서고 있었다. 아무리 진왕에게 의존한다고 해도 황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 섭정왕을 운운하는 것은 너무 과한 내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서계가 한발 나서서 읍소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폐하, 섭정왕이란 가당치 않사옵니다.”

“허! 뭐가 가당치 않다는 것인가? 본시 황제가 어리거나 또 정사를 돌보기 힘들 정도로 몸이 허약하면 대신 정사를 돌보는 섭정왕을 두는 것이 온당하지. 그대가 보기에는 짐의 몸이 지금 정상으로 보이나?”

이제 거의 이성적으로 뭘 판단하지는 못하고 오직 자신의 몸에 대한 안위만 생각하는 가정제다. 그러다 보니 왕 황후가 그에게 제안한 묘책이 바로 섭정왕이다.

진왕은 만고에 충신이니 그가 만약 북경으로 오게 되면 섭정왕으로 봉하고 그에게 정사를 맡긴다면 세상을 평안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조치하면 복잡하기만 하고 머리만 어수선해서 건강만 악화시키는 정치를 안 하니 생명은 온전하게 보전하며 오래 살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너무 허약해지고 전에 궁녀들에게도 교살 당할 위기에 처했던 가정제는 심한 정신분열과 함께 주변 인물을 이제는 전혀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왕 황비와 조 귀비만 믿었다.

전에는 믿고 의지하던 환관은 물론 그들의 조직인 동창이나 엄숭도 믿을 위인들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서 왕 황후와 조 귀비가 가끔 진왕을 곁에 섭정왕으로 부르라고 했던 사실이 떠올라 엉겁결에 분위기에 압도되어 덜컥 섭정왕을 입에 담고 말았다.

서계가 나서서 이의를 걸자 가정제는 짜증이 났다. 정신분열 증상이 있는 사람은 남이 자신의 말에 이의를 달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놈은 틀린 말은 안하지만 꼭 내 심기를 거스른단 말야.’

가정제는 짜증도 나고 이상하게 공포감이 생기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과인은 이미 말했지 않나. 내 모든 것은 앞으로 아우님 것이라고. 그런데 섭정왕이 뭐 대단하다고 자꾸 토를 달고 그러나. 그대도 전에는 진왕이 만고의 충신이라고 칭찬을 자주했으면서. 아무튼 그 문제는 아우님이 북경으로 와야 되는 일이니 미리 그런 말을 하지는 말아.”

“에이.”

이런 가정제의 말에 최인범은 황후나 왕미령 그리고 조 귀비가 꾸민 음모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녀들은 자손이 전혀 없는 가정제라는 점을 이용해 최인범의 아이를 낳고 섭정왕인 가정제에게 몸을 의탁하려고 했던 것이다. 젊고 젊은 자신들의 성적인 욕구도 필요 했지만 그리되면 그래도 후비 자리는 차지해서 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흠! 진빈의 경우를 봐서 그리 결탁한 것이군.’

한편 정신병자인 가정제에게 시달리며 사는 그녀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행동이다. 궁녀들이 황제를 죽이려고까지 했을 정도니 안 봐도 훤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 왕미령을 끌어 들이기 위해 수은 중독과 아편 중독에 걸리게 했다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할 죄악이라고 판단했다.

‘죽일 연놈들이야.’

자신의 아내까지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탁한 사실을 발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가정제의 목을 자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미 살심이 깊어져 외부로 심하게 표출될 정도인 최인범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낮은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폐하, 폐하의 모든 것이 제 것 일 수는 없사옵니다. 하지만 오늘 형님폐하께 아우인 제가 둘의 목을 요구할까 하옵니다.”

“크억!”

둘의 목을 요구하자 기가 센 서계도 겁에 질려 엉겁결에 뒤로 얼른 물러났다. 대신들이나 환관들 그리고 군위병인 군관들도 마찬가지다.

겁에 질린 가정제는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급하게 물었다.

“아우님, 설마 내 목은 아니겠지?”

“그거야 당연하죠. 제가 감히 어찌 형님 폐하의 옥체를 운운하겠사옵니까? 둘의 목만 처리하고 저는 봉토지로 떠날까 하옵니다.”

목을 잘라버릴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니 가정제는 너무 기뻐 급하게 답해 주었다.

“의친왕이 자른다면 그는 당연히 그만한 중죄가 있을 것이니 마음대로 자르시게. 그런 죄인들이라면 2명이 아니라 백명이고 천명이고 마음대로 자르시게.”

“형님폐하께서 그리 하명하옵시면 소신은 이 자리에서 넷만 자르겠나이다.”

칭해루까지 따라온 사람은 근위군관을 제외하면 환관을 포함해도 불과 10명 정도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4명을 죽인다니 칭해루는 일순 조용해지고 말았다. 반은 여기가 죽음의 자리다.

쉬이익! 히위이익!

다시 찬바람이 불며 더욱 서늘한 바람이 불자 칭해루는 무서운 괴기가 서렸다. 다들 너무 두려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면 자신이 지목될까봐 너무 두려웠다.

“철 대령! 호명하는 놈은 이 자리에서 목을 당장 잘라서 효수해!”

“넷!”

“먼저! 서계!”

이 소리에 철갑웅과 두 형제가 재빠르게 서계의 양쪽 팔을 잡아 앞으로 끌고 와 무릎을 꿇렸다. 철갑웅이 언월도를 높이 들고 강하게 내려칠 준비를 했다. 그러자 강단 좋은 서계도 눈물을 흘리며 속으로 탄식을 토했다.

‘후우! 입이 방정이라 큰 화를 불렀어.’

아무도 나서지 않은 중에 섭정왕을 봉한다고 하는 황제의 의견에 이의를 걸었으니 찍혀 버린 것이다. 나름 꿈을 가지고 그래도 꺼져가는 명나라 사직의 불길을 살려보려던 자신의 야심은 이제 끝나나 싶었다.

최인범은 이내 서계를 향해 외쳤다.

“서계, 그대의 요사한 혀처럼 붓 끝이 날카로운지 보고 나중에 처리하지. 지금부터 호명하는 놈들의 죄를 그대가 아는 한 논죄를 철저히 해보게. 마음에 들면 내 그대가 저지른 황족 모욕죄를 용서해서 살려주지.”

이런 명령에 사계는 죽었다가 겨우 살아난 기분이다. 분명 다른 사람의 죄상을 잘만 적어 기록한다면 살려준다는 뜻이니 일생일대의 목숨을 걸고 명문을 써야 함을 직감했다.

진왕은 비록 별장원이라고 하는 장원을 했지만 과거시험장에서 단번에 두 권이나 되는 한문 소설을 쓴 걸출한 문장가다. 그런 의친앙의 마음에 들게 문장을 만들려면 자신의 혼을 실어서 써야 됨을 알았다.

일단 서계는 호명이 되었지만 그래도 구명의 길이 열렸다. 태감이 정신없이 문방사우를 서계 앞으로 가져다주면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잘 써보시게.”

최인범은 대신들이나 환관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즉시 명령을 내렸다.

“불도사 도중문! 서계는 도중문의 죄를 논하라!”

도둥문은 본시 하급관리를 하다가 용호산에서 도사에게 도술을 배우고 결국 그런 도술로 자금성으로 들어와 불로장생약을 만든다고 인육도 사용하고 수은도 사용한 장본인이다. 물론 그의 죄는 그것만이 아니다.

기겁한 도중문이 가정제를 향해 엎어져 하소연을 토했다.

“폐하, 살려 주옵소서. 저는 폐하의 명에 따른 죄밖에 없사옵니다.”

이미 분위기에 압도된 가정제는 그런 도중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게 왜 자신을 끌고 가는지도 모르고 왜 저러는지도 잘 모른다는 멍한 표정이다. 정신 이상 증상이 있는 사람은 정도 이상의 공포감에 휩싸이면 완전히 머리가 백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죽음의 칼날 앞에 쓰게 되는 서계의 붓은 매우 날카롭고 과감했다. 평상시에는 감히 도중문의 죄를 논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죄상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역대 왕조에서도 처음 있는 사건인 임인궁변의 원인도 도중문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논했다. 서계는 문장 하나하나에 그의 잔악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논하면서 빠르게 적었다.

서계가 논하며 글을 쓰기를 멈추자 최인범이 명령을 내렸다.

“도중문의 죄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니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어. 즉시 집행해.”

휘익! 툭! 대구루루.

싹둑 잘라진 도중문의 머리가 하필이면 굴러서 가정제의 발끝으로 갔다. 기겁한 가정제가 엉겁결에 용상 위로 양발을 올리며 쪼그리고 앉아 덜덜 떨었다.

가정제는 근엄함이나 어떤 권위도 전혀 보이지 않아 참으로 궁색하고 초라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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