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30화 (330/519)

330화

왕미령이 고려여각으로 떠나자 최인범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군의관의 표정으로 보아 상당히 심각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앞으로 그녀를 어찌 대해야 할 지 매우 난감했다. 아무래도 외롭게 혼자 지내게 놔두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 같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심하게 망가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왕미령은 심약한 성품인 것은 틀림없었다.

‘하필이면 저렇게 변하다니.’

이렇게 생각하며 고민하는 중.

수비대장과 관료가 찾아와 최인범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철갑웅과 다소 떨어진 곳으로 가서 뭔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 황제와 진왕이 만나게 되자 주변에 병사들을 배치하는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였다.

본시 황제와 만나게 되면 당연히 황제의 근위병만 주변에 두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미 주변에 진왕의 근접경호원들이 만나는 장소를 완전히 장악해 버리자 좋게 타협점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철갑웅은 관료가 모든 경호원을 철수시키라는 말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요? 그게 무슨 소리요. 진왕께도 경호원을 데리고 다닐 충분한 위치이시니 그렇게는 절대로 못하겠소. 보잘것없는 관리처럼 대하려고 한다면 내가 진왕마마께 권해서라도 그냥 떠나겠소.”

결국 합의를 보게 되었다. 접견 장소인 칭해루에는 철씨 삼형제와 경호대장이 근접사위 자격으로 무기를 소지하고 동쪽문을 지키기로 했다. 바다에 이르는 노룡두 쪽에는 진왕의 경호원들 100명만 포진하기로 했다.

서쪽문은 당연히 북경에서 오는 황제의 근위대장이나 근위병이 포진한다. 그리고 서쪽의 광장이나 산해관의 천하제일관이란 누각들에는 모두 황제의 병사들이 포진하기로 결정되었다.

“만약을 위해 양쪽 모두 활은 지니지 않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런 합의가 끝나자 관료와 수비대장은 칭해루를 자세하게 살폈다. 화약 무기가 군대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화약으로 만든 폭약이 혹시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제야 경호 실장인 이창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

“주변에 폭탄이 있는지 모조리 살펴, 해변에도 있나 단창으로 찔러보고.”

“넷!”

아무리 엉망인 명나라 군대지만 그래도 황제를 보호하기 위한 경호체계는 배울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이창수는 명나라 관료에게 다가가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전임자가 있어 경호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경호 방법에 대해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것이다. 진왕의 동선으로 미리 움직여 조사하거나 원거리에서 저격할 만한 장소를 미리 선점해 놔야 된다는 등을 배우고 있었다.

그저 상식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부대나 군사들을 배치하는 방법과는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흠! 아무래도 돌아가면 조선의 국왕 경호 방법도 참고해서 경호실의 자체 규범을 만들어 놔야겠어.’

그저 근접경호원들을 데리고 옆에 졸졸 따라다니는 방식의 경호에서 제일 초보단계에 불과한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이창소는 판옥선에서 파오를 내려 작은 백사장에 치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100명씩 교대로 칭해루를 철저히 지켜. 장교들은 혹시 칭해루 쪽에 대포가 방열되어 있는지 산해관의 부대를 방문해 조사를 보고.”

“넷!”

경호원들이 나름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판옥선에 올라온 최인범은 뱃전 끝으로 군의관을 데리고 가서 물었다.

“진맥하니 어떤 증상이던가?”

“전하, 아편에 심하게 중독됐습니다. 그리고 몸에 아주 탁한 기운이 많은 것으로 보아 수은을 넣어 만든 이상한 약도 장기적으로 복용한 것 같습니다.”

“뭐라? 그렇다면 수은 중독에도 걸렸다는 건가?”

“그러하옵니다. 아편보다 더 심각하게 수은 중독이 되어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가망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막연하게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말해.”

“전하. 황공하오나 치료를 하고 못하고의 정도가 문제가 아니오라 저런 상태라면 수은 중독의 고통 때문에 아편을 끓을 수도 없고 결국 폐인이 되어 죽게 되옵니다. 소신의 판단으로는 1년을 넘기기 어렵사옵니다.”

물에 녹는 중금속인 수은의 만성적인 중독 증상에는 전형적으로 세 가지 증후가 나타난다. 입에 염증이 생기고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떨고 마지막으로는 심하게 정신적인 변화가 있다.

몸에 퍼진 수은의 무게 때문에 어딘가 심하게 결리고 쑤시는 고통이 수반되니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진통효과가 있는 아편을 복용한 것 같았다.

군의관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전하, 외람된 생각이지만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좋다고 보이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상 증세도 심해지고 추한 모습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사람의 형상도 아니게 심하게 변하옵니다. 그러니 그런 점을 유념해 주옵소서.”

“허! 어찌 이런 일이.”

왕미령이 수은에 중독된 것은 아무래도 황후인 왕미미의 짓 같았다. 그녀가 분명 가정제가 수은을 넣어 만든 비약을 어떤 감언이설로 꼬였던 장기적으로 먹여 중독 시킨 것이 확실했다.

‘죽일 연놈들이군.’

전에야 왕미미를 애절한 마음으로 불쌍하게 여겼다. 하지만 사태가 이리 변하자 가정제나 똑 같은 부류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가정제를 만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일 가정제를 만나서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보고 나서 왕미령에 대한 문제는 결정하는 것이 좋겠군.’

아편쟁이로 변했지만 아내이니 봉황성으로 데리고 돌아가 최선을 다해 치료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잔악한 짓을 저지른 가정제나 왕미미에 대한 처벌이야 후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옆에 있으면 오염되어 같이 미친다더니 결국 나까지 미친놈의 영향을 받는군.’

최인범은 군의관에게 물었다.

“혹시 인삼을 많이 먹으면 치료가 가능하지 않나?”

“전하, 소인 판단으로는 그 단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그러니 그냥 가만히 놔두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보이옵니다.”

해군의 군의관으로 있지만 현재 비사성에서 제일 실력이 좋다는 군의관의 말이니 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 다부지게 명령했다.

“이런 사실은 비밀을 유지하도록.”

“넷!”

최인범은 왕미령이 죽게 생겼다는 사실에 심하게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가 여럿이 있다고 해서 그녀를 허수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자주 멀리 외유를 떠나고 있으니 그래도 그녀의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살라고 산해관에서 머물게 했다.

‘이건 내 실수야. 너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품인데.’

비슷한 환경인 소피아는 당당히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지만 유학자의 딸로 살았던 터라 아무래도 야생마처럼 산 소피아와는 전혀 다른 여자다. 그런데 똑 같이 대했으니 결과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고 가정제를 만나고 나서 산해관의 사업을 빨리 정리하고 그녀를 데리고 봉황성으로 갈 생각만 가득했다.

심란한 상태라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하고 거의 뜬 눈으로 지세우고 나서 늦게 서야 잠시 눈을 감고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입맛도 없으니 죽이나 끓여 오지.”

“넷!”

죽을 거의 먹지 않던 최인범이 아침에 죽을 찾으니 철갑웅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어제 왕미령을 만나고 나서 진왕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 아직 저렇게 심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진왕은 때로는 희로애락에서 벗어난 도사처럼 어떤 일이 터져도 별로 기쁘게 표정을 나타내거나 또는 감탄사를 토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것이 때로는 무섭게도 느껴지지만 아무튼 철갑웅이 보기에 정이 많은 것을 사실이다.

옆에서 항상 따라다니며 실수도 많이 했지만 입으로는 심하게 경고를 해도 어떤 처벌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정이 많아서 그런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 주군이 아침을 죽으로 먹을 정도라면 보총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군의관이 와서 진맥을 하고난 이후에 더 심해졌으니 아무래도 왕미령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어휴! 답답해 미치겠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더구나 주방장이 끓여온 전복죽도 몇 수저 뜨더니 옆으로 밀치니 철갑웅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전하, 도대체 무슨 일이옵니까? 식사도 전혀 못하시고요?”

“그냥. 철 대령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니 먼저 가서 접견 장소나 확인해.”

“넷!”

잠시 뒤에 철갑웅이 산해관으로 가정제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자 최인범은 판옥선에서 내려 칭해루로 가게 되었다. 마루만 깔려 있던 칭해루에는 고급 양탄자와 붉은 비단천이 깔려 있고 용문양의 커다란 용상이 놓여 있었다.

‘그런 개자식에게 내가 엎어져야 하나? 엿 같이.’

욱하는 심정으로 철갑웅에게 명령했다.

“철 대령. 가서 큰 의자 하나 가져다 놔!”

“넷!”

자신의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눌 요량이다. 전에야 최대한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왕미령의 상황을 보니 도저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심사가 심하게 뒤틀려 버렸으니 가정제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오늘 죽이고 끝장을 볼까?’

그러나 그것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는 오점이 될 것이다. 더구나 서로 손님의 입장에서 만나는 면담장소에서 그런 짓은 창업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전쟁과 암살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대외적으로는 가정제가 자신을 높이 평가해 의친왕으로 봉한다니 그런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는 없었다.

‘어휴! 열 받아.’

자신의 아내를 죽게 만들었으니 가정제의 아내들을 마구 능욕해 버리고 싶다는 치졸한 복수심도 떠오르고 있었다. 심란하게 무수한 생각을 하는 동안 철갑웅이 큰 의자를 가져왔다.

아무래도 용상보다 작은 의자라 최인범은 그만 화를 냈다.

“철 대령, 의자가 겨우 그것 밖에 없냐?”

“넷! 제일 큰 의자가 이것뿐이옵니다.”

“썩을. 의자가 몇 푼이나 간다고 의자도 하나 잘 만들어서 다니지 못하고.”

이윽고 요란한 음악이 들리며 먼저 근위대 병사들이 들어오고 가정제가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가정제를 비롯한 대신들이 같이 왔다.

가정제는 옆에서 환관들이 부측을 해서 겨우겨우 걸음을 옮기는 정도다. 눈가에는 이미 죽음이 그림자가 아주 진하게 서려 있었다. 의술에 조예가 전혀 없어도 가정제는 금방 죽게 생긴 모습이다.

‘개자식. 죽으려면 혼자서나 죽지 물귀신 작전으로 여럿을 끌고 가네.’

가정제가 용상에 앉고 나서 의자를 보더니 치우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최인범이 도발이라도 하듯이 환관이 치우기 전에 가서 앉아 버렸다.

“허억!”

매섭게 노려보며 의자에 앉자 가정제가 너무 놀라서 움찔했다. 환관들도 마찬가지고 그제야 최인범이 완전무장한 상태라는 것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진한 살기가 풍기고 작위를 받아 좋다는 표정이 전혀 아니다.

‘뭐가 잘 못 됐어.’

여기서 조금만 잘못하면 피비린내가 나는 살육장으로 변하게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환관들도 그렇고 대신들도 다들 어떤 공포감이 강하게 밀려드는 느낌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왕께서 엄청나게 화가 났어. 이거 자칫하면 살인사건이 터지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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