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천성이 본래 자숙하며 사는 성품이 아니다. 정난정은 안정적으로 재물이 모아지게 되자 과감하게 투자해보기로 결심했다.
여각에서 여자 종업원으로 일하며 매춘행위를 하는 것은 사실 숙박비 이외에 별도로 챙기는 재물이 없었다. 그래야 싼 인건비로 여자들을 부리니 한계가 있었다.
사람이란 자신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수십명의 사공을 상대했어도 자신이나 시녀들이 죽지 않고 살았다. 그런 점에 착안해 본격적으로 매음굴을 운영하기로 했다.
‘더구나 불법도 아니고 소녀들을 얼마든지 명나라에서는 돈을 주면 부모들도 파니 그것을 해보는 것이 좋아.’
이제는 오직 재물만이 자신을 보호해줄 보호막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산적과 같이 도망쳐 오게 된 무당에게 넌지시 제시했다.
“완충지대로 가서 현지 주민들과 잘 접촉해서 소녀들을 사와.”
“뭐하시려고요?”
“그야 자네도 대략 짐작하지 않나? 되도록 가난한 애들로 모아서 와. 말썽이 안 생기게 부모가 파는 애들로.”
“알았어요.”
살기가 어려운 난세다 보니 명나라의 제태국이나 남쪽 지역에서는 특히 부모들이 어린 딸을 팔아먹는 일들이 아주 흔했다.
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어린소녀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되었다. 이후 현풍 여각에서는 의외로 참기름이나 들기름 그리고 피마자기름 소요가 전보다 대폭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곳 현풍 여각에서는 새로운 작물인 고구마를 잘라서 튀김을 만들어 파는 장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기름의 용도야 튀김용 이외에도 무궁무진했다. 이곳은 고구마튀김 이외에 소녀들과 접한 사내들이 다들 ‘고소영’라고 칭하는 유명한 매음굴로 변하고 있었다. 매음굴에서 일하는 소녀들을 접하면 고소하고 매우 어리다는 의미지 다른 뜻은 없었다.
한편 북경의 자금성에서는 엄숭을 비롯한 대신들이 모여 회의 중이다. 요동 끝의 대련 지역에 비사성이란 거대한 성곽 축조되고 병력이 모아지자 소란스러웠다.
명나라의 대신들이 보기에 자신들의 예상과 달리 병력 규모가 너무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엄숭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계에게 물었다.
“이름도 고구려서 사용하던 비사성이라고 부르고 병력이 그렇게 많다면 문제가 있지 않소?”
“그게 왜 문제가 되나요? 거기는 본시 두 가지 명칭으로 오래 전부터 부르던 곳인데요. 병력이 많아지는 이유야 산동 반도의 역도들 때문이고. 그들을 물리치려면 그만한 병력은 있어야 되지 않아요?”
엄숭은 이의를 거는 서계가 못마땅해서 다시 물었다.
“그야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산동 반도를 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니 문제라는 거요. 자네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나 보군.”
“산동 반도를 치려면 지금 진왕께서 가지진 병력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우리 대명의 중앙군의 정예군 5만명을 동원해도 격퇴를 못한 반란군을 어찌 바다로 막혀 있는 진왕께서 격퇴한다는 겁니까?”
“험!”
서계가 논리정연하게 반박하자 엄숭은 그저 헛기침만 토했다. 그러자 서계가 다시 추가로 설명했다.
“진왕께서 더 많은 병력을 모으도록 우리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게 어느 정도 끝나면 그때 우리 중앙군과 협공으로 공략해야 됩니다.”
“협공 작전을 펼치자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남경의 군사도 북진하게 하면 됩니다.”
서계의 의견에 엄숭은 더 이상 진왕이 늘리고 있는 병력에 이의를 걸지 못했다. 그래도 꺼림칙해서 엄숭은 가정제를 편전으로 찾아가 만났다.
너무 아편을 피워서 그런지 편전까지 아편 냄새가 찌들어 있었다. 아미 심한 아편 중독에 걸린 가정제는 힘이 하나도 없이 허우적거리며 편전으로 나왔다, 가정제는 이미 아편을 비롯해 각종 마약에 절어버려 눈동자는 완전히 트릿하게 변해졌다. 황제가 트릿하면 아래서 재물을 먹기가 좋으니 엄숭이야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국록을 먹고 있으니 슬며시 진왕의 군대가 너무 방만하게 커진다고 보고를 했다.
“폐하, 진왕의 군세가 저렇게 커지면 자칫 북경을 위협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니 폐하, 철저하게 대비하셔야 하옵니다.”
“또 그 소리요? 진왕이 북경을 왜 위협한다고 보는 거요.”
“군대의 수가 10만명이 넘는다고 하옵니다.”
“10만명은 아니고 약 5만이라고 하던데 그대는 매번 허풍이 너무 심하군. 그곳의 병력이 북경으로 침공해 오려면 바다를 넘던가 아니면 요동과 진창인 요택을 넘어서 와야 하는 것은 아시오?”
“예.”
“그걸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절대로 북경으로 오지는 못한다는 것은 이미 오호도독부에서 누차 검토해 보고나서 최종적으로 결론이 난 일이 아니요.”
“폐하, 그들은 배를 이용해 침공할 수도 있사옵니다.”
“뭐요? 그대는 왜 그리 진왕을 자극하는 말을 하는 거요? 우리에게 필요한 소금도 보내주고 더구나 조선에서 나오는 맛좋은 미곡도 보내주는데.”
“너무 많은 배를 보유하고 있사옵니다.”
가정제는 트릿한 눈으로 다시 응수했다.
“무슨 소리요. 배 한 척당 겨우 100명의 병사를 태우는 정도인데 그런 배가 1000척으로 늘어나도 겨우 10만명의 병사가 아니요? 더구나 1000척의 배는 고사하고 조운선을 포함해도 불과 300척도 안 되는 배를 보유했다고 무슨 침공을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거요.”
“폐하, 비사성에서는 천진이 지척이니 여러 번을 배들이 왕래해서 병력을 보낼 수도 있사옵니다. 그러니 유념하셔야 하옵니다.”
엄숭은 계속해서 진왕에 대해 경계하라고 주청을 드리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주청을 드리는 엄숭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가정제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진왕의 군세가 너무 강해지면 가정제의 힘도 어쩌면 덩달아 강해져 자신을 내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진왕은 나와는 상극인 충신이야.’
엄숭이 판단하기에는 진왕은 가정제의 오른팔로 성장해 북경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모조리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충신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충신이라 그는 제거 되어야 하는 인물이다.
명나라 조정은 그동안 여진족들의 준동을 사전에 막기 위해 심양의 건주본위를 통해 엄청난 은괴를 여진족들에게 보내 주어 달랬다.
그러나 이제는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족들은 거의 준동할 기세가 없었다. 다들 진왕의 군세에 눌려 봉황성에 흡수되거나 일부는 쥐 죽은 듯이 몸을 사리며 아주 조용했다.
지금으로는 진왕을 이용한 가정제의 이이제이 수법이 아주 잘 진행되었다.
‘진왕을 제거하지 않으면 내가 중간에서 재물을 챙길 수 없어.’
엄숭은 조용한 요동지역은 원치 않았다. 적당히 소란스러워야 그것을 빌미로 재물을 챙길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조선 국왕의 책봉을 빌미로 뇌물도 챙겼으나 그것도 이제는 사라졌다.
엄숭은 그동안 제태국으로 변한 산동의 소금을 뒷거래해서 많은 재물을 차지했다. 더구나 건주본위를 통해 여진족들에게 보내던 은괴를 중간에 착복하는 행위로 엄청난 재물을 지녔다. 그러나 그런 재물의 많은 부분이 애첩인 진향을 통해 투자했다가 홀라당 날아갔다.
‘하필이면 조선으로 비단을 가져가던 무역선이 반란군의 수군에게 나포되다니 운도 지질하게 없어.’
사실은 백삼수가 반란군에게 나포됐다고 거짓을 꾸며 중간에서 모조리 챙겨 천진의 소피아에게 가져다 준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그 재물은 이미 봉황성으로 보내져 사용됐다는 것은 더더구나 몰랐다.
진왕이 봉황성을 시작으로 세력이 커지자 건주여진이나 다른 여진족들에게 보내던 은괴를 보내지 않아도 되게 변해 버렸다. 엄숭의 입장에서는 저절로 벌리던 돈줄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계속해서 진왕을 의심하고 견제하라고 주장하자 가정제는 드디어 중대한 발표를 했다.
“좋소.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전에 과인이 진왕을 의동생으로 삼겠다고 한 사실도 있으니 그와 같이 그에게 새로운 작위를 내리도록 합시다.”
“폐하, 직위를 또 내리려 하옵시면?”
“의친왕인 대진군왕으로 봉할 생각이요.”
의친왕(義親王)에서 친왕(親王)이란 본시 황제의 친형제에게 내리는 작위다. 그리고 의(義)를 사용하는 이유는 의형제라는 뜻이다.
대진군왕(大眞君王)은 큰 진왕이란 뜻보다는 대련과 봉황성 즉 여진족들이 사는 땅에 봉토지로 가진 제후로 앞으로는 대진이란 성을 사용하라는 뜻이다.
황제나 왕의 경우 공이 많은 신하에게 군호도 내리지만 때로는 새로운 성을 하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 예를 따라 새로운 성을 하사한다고 했다.
가정제는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서 설명했다.
“진왕이 조선 출신이라 유달리 자신의 조상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대도 잘 알 것이오. 과인이 일단 새로운 성을 하사함으로 조선과 완전히 결별하게 하고 과인을 찾아와 작위를 순순히 받는다면 그의 충성심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니요?”
돌아버린 사람이라고 해서 머리에 든 지적능력이나 사고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가정제는 나름 고심해서 묘안을 내놓았다. 물론 자주 접하는 왕 황후가 옆에서 조언을 많이 해서 결심했다.
자신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최인범에게 새로운 성을 내림으로 그의 진심을 확인하자는 뜻이다.
“폐하, 그러면 진왕께서 순순히 작위를 받기 위해 자금성으로 오겠사옵니까?”
“그건 어렵다고 보내. 전에 자네가 진왕을 암살하려고 시도한 사건도 있으니 자네가 있고 한양에서 암살을 시도한 동창이 있는 자금성으로 오지는 않을 거요.”
“폐하, 소신은 그런 사실이 없사옵니다.”
“무슨 소리를 하나? 그 사건의 내막은 이미 과인이 알고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최인범을 암살하려고 시도한 천진의 암살미수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요동초원에서 건주여진 부족장이 벌인 암살 미수 사건을 염두에 두는 말이다.
‘헉! 폐하께서 결국 그 사건의 내막을 소상하게 알았군.’
엄숭은 사실 윤임의 요청을 받아 건주본위의 영향력을 발휘해 요동에서 활동하는 서여진의 부족장을 보내 최인범을 살해하려고 했다.
그때야 최인범은 평범한 유학생에 불과했다. 그 당시 조선의 국왕이 윤비 소생의 딸을 시집보내 부마도위로 삼으려고 해서 약간 주목했었다.
당시 중전이던 윤 대비를 견제하려는 윤임이 넘겨준 뇌물에 눈이 어두워 병력을 보내도록 협조한 것에 불과했다. 아무튼 황제가 그런 사실을 동창의 조직을 통해 알고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때와는 신분이 달라진 진왕인 최인범도 요동에서 벌인 암살 미수사건에 자신이 깊이 개입된 사실을 지금쯤은 알 수 있었다.
엄숭이 최인범을 상당히 견제하는 깊은 속에는 그런 내막이 있는 것이다.
약간 미쳐버린 가정제가 그 사건의 내막을 안다면 왕 황후에게도 떠벌려서 알 것이고 주변의 시녀들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북경 전체의 관료나 대상인들이 대부분 이미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제 진짜로 몸조심해야 될 때야.’
자신을 탄핵하려는 무리가 북경이나 명나라 전역에는 수도 없이 많은 상황이다.
이미 최인범은 가정제가 의형제라며 형제인 황자에게 내리는 친왕의 작위를 내린다고 결심했다. 그러니 여기서 더 반대하다가는 이것이 문제가 돼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수도 있었다.
“폐하, 그럼 어디로 정하시련지요?”
“굳이 경이 그것을 알 이유가 있소? 아무튼 과거의 사건도 있으니 의친왕으로 봉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 필요가 없소.”
전 같으면 자신과 상의할 사안이나 이렇게 말하고 가정제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퇴청한 가정제는 이내 교태전으로 들어와 왕 황후에게 말했다.
“그대가 산해관의 왕 왕비를 만나서 언제 어디가 작위를 주는 장소로 좋은지 협의해 보시오.”
“폐하, 명을 따르겠나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특별한 의식세계로 뭔가 모의하던 왕 황후는 회심에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왕 황후도 가면을 벗고 변신을 시도할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