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23화 (323/519)

323화

<여자의 변신과 생존술>

장강의 하구를 떠난 월녀 일행은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향했다. 남쪽에서 부는 해풍을 타고 돛을 높이 올려 이동하자 제법 빠르게 움직였다.

“공주님, 올 때 보다 2배는 빠르게 가겠네요.”

“너무 급하게 가지 마세오.”

“넷!”

순풍으로 이동하게 되자 쉽게 대정현의 항구에 도착했다. 백두선단은 입항세를 물어야하기 때문에 비단을 대정 현감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반은 입항세로 계산하고 반은 저기 움막에 사시는 분의 생활비로 사용해 주세요.”

윤원형을 도와준다는 말에 대정 현감은 혀를 찼다.

“허! 미친 사람을 도와줘야 뭐가 있다고?”

그러나 대정 현감과는 달리 월녀는 윤원형이 완전히 미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정신이상의 증세가 있다지만 어쩌면 그것이 거짓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미친 척해서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는지도 몰라.’

자신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윤원형은 의지가 보통은 넘는 사람이다. 자신의 재력으로 비단 몇 필이 아주 별것이 아니다. 하지만 눈치가 보여 윤 대비도 돕지 못하는 상황인 윤원형에게는 큰 재물이라 곤궁한 유배 생활은 다소 면할 수 있었다.

‘혹시 모르니 버리는 셈치고 적선 좀 하자고.’

월녀는 상단을 이끌고 대정 현을 떠나 추자도를 경유해 목포 만호에 도착했다. 그러자 전에 목포 만호였던 사람이 이제는 군수로 변했다고 하며 반겼다.

“어머나, 승차하셨군요.”

“모두 공주님 덕분이죠.”

목포 항구는 교역 사무소가 생기자 군으로 승격해 점차 인구가 모여들고 취급하는 물동량이 많아졌다. 월녀는 이곳에서 10척은 천먹쇠에게 맡겨서 다시 영파로 가는 무역을 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10척은 왜의 하카타로 가는 무역을 하라고 양돌쇠에게 맡겼다.

“먹쇠 오라버니는 너무 급하게 떠나지 말고 직영하는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만 가져가도록 해요.”

“알았어.”

“돌쇠 오라버니는 비단을 가지고 왜의 하카타로 가서 파시고요.”

“알았어. 올 때 황을 사오면 되지?”

“예, 황하고 은 그리고 구리를 사오면 되요.”

이런 조치를 취하고 나자 황금은 주고 30척의 조운선을 빌려 자신의 소유인 10척과 같이 소금과 나주 쌀, 나주 배를 사서 목포를 떠나게 되었다. 남경에서 선물로 받은 말이나 기타 애완동물도 봉황성으로 보내야 한다. 그 때문에 한양으로 향하지 않고 직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순풍이 계속부니 가다가 백령도에서 보급 받으면 충분하겠어.’

좁은 수로인 섬 사이를 통과해 먼 바다로 나오자 중요한 항로인 격렬비열도를 향했다. 그쪽을 지나치면 암초도 없고 직선으로 백령도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한편 월녀가 항하는 격렬비열도에서 지내는 정난정은 동굴 속에서 여전히 생활하고 있었다.

가을의 찬바람이 불고 날씨까지 흐리자 바위틈에서 지내는 정난정은 몸을 웅크리고 바다에서 채취한 주먹만 한 조개를 모닥불에 굽고 있었다. 가끔 진주가 나오는 조개라 집중해서 채집했다.

지글지글.

입맛을 당기며 조개를 쳐다보던 정난정이 중얼거렸다.

“호호! 고년! 몸이 뜨거우니 먹어 달라고 잘도 쩍 벌리네.”

이미 약간은 정신분열 증상이 생긴 처지다. 이렇게 말해도 들어줄 사람이나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이곳에서 혼자 살았는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이곳 격렬비열도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어부들을 목격한 경우가 있었다. 동시에 3척이 나타났다. 그런데 하필이면 옷을 완전히 훌러덩 벗고 바다로 들어가 조개를 잡고 바위 위에서 쉬고 있을 때 어부들이 나타났다.

정난정은 너무 반가워 벌거벗은 상태로 크게 소리치며 펄쩍 펄쩍 뛰었다. 그러자 사람이 도저히 살수 없는 무인도에서 벌거벗은 여자가 소리치며 날뛰자 어부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어부들은 정신없이 배를 몰고 동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정난정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너무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서 정난정은 겁이 나서 도망치는 어부들에게 심하게 욕을 퍼부었다.

“가다가 되져버려.”

미치면 신기가 있는 것인지 모르나 잘 도망가던 어선들이 때마침 불어온 돌풍 때문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한척이 훌러덩 뒤집어졌다.

다행이 물에 빠진 어부들은 다른 어부들이 구해서 무사히 돌아갔지만 이후로는 이곳은 조업해서는 안 되는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난정을 목격한 어부들은 다들 귀신에 홀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 무당을 찾아가 귀신을 몰아내는 굿을 했고 무당은 정보에 밝으니 자연히 그곳에서 여러 명의 여자들이 수장된 사실을 알고 귀신이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이후로는 격렬비열도는 조업금지구역으로 정해져 버렸다.

아무튼 그런 내용이야 정난정이 알 길은 없다. 이후로는 항상 옷을 입고 물질도 하며 기다렸지만 어부들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원망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미치다 못해 완전히 득도한 여자처럼 변했다. 그저 무념의 상태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래도 무슨 미련인지 가끔 높은 바위산에 올라가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지나가는 배가 보이나 살피는 것이다.

이때 멀리 남쪽에서 40여척의 큰 배들이 바람을 타고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대규모 선단이 섬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어마나, 배다 배야.”

정난정을 급하게 바위산에 단단히 묵어 놓았던 덤불에 불을 붙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급해서 그런지 불을 붙이지 못하고 너무 급한 나머지 치마를 훌러덩 벗어 손에 들고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많은 배가 섬으로 점점 다가오자 크게 외쳤다.

“살려주세요!”

그러나 여자가 치마를 벗어 흔들자 선원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섬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무인도에 여자가 손을 흔드니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헉! 물귀신이야.”

언제부터이지 모르지만 격렬비열도에서 여자를 발견하면 배가 침몰한다는 소식이 충청도나 전라도의 뱃사람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졌다. 그러니 자신들의 잡아먹을 물귀신이라고 판단하고 섬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살려주세요!”

정난정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더욱 크게 외치며 치마를 펄럭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선실 안에서 편하게 누워 잠을 자던 월녀가 슬며시 일어나 선원들이 술렁이자 물었다.

“무슨 일이이에요?”

“섬에 물귀신이 나타났어요.”

선원들과 달리 세상에 물귀신은 없다고 믿는 월녀는 지니고 다니는 망원경을 꺼내 길게 빼고 섬을 살폈다.

“어마나, 터럭이 다보여.”

치마를 훌러덩 벗고 있으니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니 더 은밀한 곳도 속속들이 모두 보이고 있었다.

월녀는 망원경으로 살피다가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섬에 가깝게 대도록 해요.”

“공주님, 가깝게 접근하면 암초가 많아 위험합니다.”

“조심해서 대도록해요.”

월녀가 재차 명령을 내리자 선원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월녀가 타고 있는 배는 무역선이지만 선원들은 단순한 민간 신분이 아니고 진국의 해군들이다.

선상반란이 일어나 너무 끔찍한 사고가 나자 최인범은 월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 주변에 해군을 딸려 보낸 것이다. 비록 민간 복장을 하고 있지만 소속은 해군이라 군기가 엄했다.

어렵게 섬의 가까운 곳에 배를 대자 정난정은 거의 날아다니는 것 같이 섬의 바위를 달려서 내려왔다. 급하게 동굴 안으로 들어가 그동안 조개를 잡다가 나온 진주를 챙겼다.

전에 소금이란 재물을 너무 많이 탐하다가 처참한 사건을 경험했지만 이제 밖으로 나가면 재물이 힘이니 진주를 챙기는 것이다.

흑진주도 있으니 이런 정도면 그래도 한동안 고생을 안 하고 지낼 충분한 재물이 된다. 이제 윤원형을 다시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말이 사랑이네 뭐지 그딴 수작은 이제 그만 두기로 했다.

‘혼자서 살자고.’

지조 때문도 아니고 그저 남자들이라면 치가 떨려서 그렇다. 그때를 생각하면 남자라고 생긴 인간들은 모조리 목을 댕강 댕강 잘라서 죽이고 싶었다.

밀려드는 파도 때문에 접안하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해변에 도착한 정난정은 선원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뱃전에 줄만 내려 주세요. 제가 갈게요.”

정난정은 크게 외치며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익숙하게 헤엄을 쳐서 배로 접근했다. 바닷물을 가르고 빠르게 접근하는 정난정을 바라보던 선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해녀들 보다 더 솜씨가 좋네.”

“그러게.”

사람이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게 된다. 물론 성정이 허약한 사람은 그냥 주저앉고 말지만 강한 사람은 빠르게 적응해 오히려 숨겨진 능력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되었던 정난정은 독한 여자라 오랜 기간을 섬에서 살아남았으니 그녀는 전과는 전혀 다른 여자로 변했다. 물속으로 잠수하는 능력이나 갈매기를 잡아먹으며 생긴 돌팔매질 등도 뛰어나게 변했다.

더구나 산을 타는 솜씨도 뛰어나서 어느 남자들 보다 뛰어난 능력이 배양된 것이다. 그리고 본래 어려서 천한 신분으로 살았기 때문에 적응하기는 쉬웠다.

바다로 뛰어들어 뱃전으로 다가온 정난정은 아주 익숙하게 밧줄을 잡고 배로 올랐다.

다다다다.

그리고 배에 오르고 나서 월녀를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어머나, 너무 예쁘다.’

이제는 잊어가던 어려서의 자기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른 정난정은 처녀가 우두머리라는 느낌을 받자 얼른 엎어져 인사했다.

“아씨, 저는 난풍이에요. 정신을 잃고 보니 여기서 혼자·······.”

완전히 이름을 개명해 버리려고 했지만 그건 조금 뭐해서 난풍이라고 작명해 토하고 있었다. 혹시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 해를 당할 염려가 있어 다른 이름을 말한 것이다.

“예쁜 이름이군요. 저는 최월녀라고 해요. 혹시 성이 뭐고 고향이나 여기로 오기 전에 어디에 살았는지 기억은 해요?”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약간 이상해 보여 물었다. 그러자 정난정은 태연하게 답했다.

“몰라요. 전에 살았던 기억은 전혀 없어요.”

그러나 월녀는 이미 정난정을 어느 정도 알아보았다. 전에 얼굴을 본 사실이 없지만 여기서 벌어진 사건을 알고 있고 여자가 입고 있는 치마의 재료가 비단이라 정난정으로 짐작했다.

‘앞으로 지난 과거를 묻어 버리고 살 생각이야.’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생각해 봐도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사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손에 흑진주가 든 주머니가 들려 있자 가볍게 응수했다.

“앞으로 현난풍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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