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만나자 마자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최인범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물건에 대해 물었다.
“왕비마마, 제가 오라버니의 취향을 잘은 모르지만 우선 정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고아들을 무척 많이 돌보고 있어요.”
“그러면 왕궁에 있다는 애들은 그냥 고아를 돌보기 위해 거두었단 말이군.”
“예, 그리고 오라버니는 애완동물을 무척 좋아하고 특히 말과 개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군요.”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왕비는 딸의 근황에 대해 말했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이지만 결국 혼인은 했지만 여전히 진짜 부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월녀는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직 신혼방도 꾸리지 않았다고 하니 걱정되시겠네요.”
“서로 잘 얼굴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니 걱정되어······.”
“어머, 그런 소식은 저도 가끔 듣기는 했어요. 저도 봉황성에 가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는데 소문이 사실이군요.”
왕비는 월녀에게 자신의 딸이 처한 매우 곤욕스러운 상황을 대략 설명했다. 이번에 조선이나 봉황성으로 돌아가면 진왕에게 잘 좀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시집간 딸이 가깝게 사는 처지도 아니다 보니 왕비는 월녀에게 부탁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이번에 봉황성으로 가서 만나게 되면 말씀을 전하지요.”
“고마워요.”
대답이야 쉽게 하지만 사실 오라버니의 가정사에 개입할 마음은 없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오빠 부부 문제에 끼어들어.’
아무리 의남매로 최인범이 유달리 자신을 보살피고 있지만 여전히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월녀는 소금을 헌강왕에게 넘기고 대신 비단과 황금으로 바꾸어 남경에서 떠나게 되었다. 아울러 봉황성에서 꼭 필요한 금속인 주석이나 또는 구리를 대량으로 매입했다.
목포에서 제주의 대정을 거쳐 장강 하구로 오는 항로가 완전히 개척되었으니 앞으로는 다른 책임자가 정기적으로 소금을 운반해 주기로 결정되었다.
왕부의 집사와 작병인사를 나누며 그에 대해 명확하게 말했다.
“다음에는 매번 10척이 오게 될 것이니 그렇게 아세요.”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도 남경까지 오시나요?”
“아닙니다. 항주나 영파까지만 운반하게 될 겁니다.”
“잘 돌아 가세요.”
헌강왕은 나름 애완동물을 좋아한다고 하자 큰 앵무새나 기타 애완동물인 조류들을 선물로 보내주게 되었다. 말도 좋은 것으로 골라 10필을 보내게 되었다.
주변에서 딸을 돌봐야 한다며 가무에 능한 소주 미인을 20명이나 시녀로 보냈다. 말이야 시녀라고 하지만 사실상 비첩으로 보내는 것이다.
월녀는 남경을 떠나 빠르게 장강 하구를 벗어나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를 경유해 목포만호에서 비단은 왜로 보내고 황금으로 다시 소금을 사서 봉황성으로 갈 예정이다.
배들이 항로를 북쪽으로 잡자 옆에 있는 천먹쇠와 양돌쇠에게 물었다.
“오라버니들은 구경 잘했어요?”
“구경은 무슨 어수선하고 정신만 없던데. 무슨 집들이 그렇게 큰지 다들 집이 어마어마하게 크더군.”
“여긴 전에 황제가 살던 곳이라 그렇죠.”
“그거야 알지만 아무튼 조선과 다른 것은 집들이 대궐처럼 보여서 너무 이상했어.”
두 녀석은 구경이야 잘 했지만 말도 통하지 않으니 답답했다. 남명 사람들의 말이 빠르게도 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니 그저 귀만 먹먹했다는 것이다.
“그럼 다시 구경하기 위해 또 오셔야 되겠네요.”
“여기를 또 오려고?”
“아뇨, 저야 한양에 있어야죠. 오라버니나 다시 와서 구경하세요.”
누군가에게는 남경을 오가는 상단의 책임자로 임명해야 된다. 그 때문에 천먹쇠는 남경을 책임지게 하고 목포에서 왜로 다니는 선단은 양돌쇠가 상단의 책임자로 결정되었다.
“힘들면 나중에 그만 두시던가 하고요.”
“알았어. 고맙다.”
월녀가 많은 이들을 남기는 소금 장사로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멀리 요동반도 끝의 비사성도 각종 건설 공사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낙엽이 지는 가을로 접어들게 되자 요동 벌판은 황금빛 물결들이 출렁였다. 대련 항에는 많은 어선들이 들어와 포구에 수많은 수산물을 토해놓고 있었다.
와글와글.
경매 방식으로 수산물은 거래되고 있었다. 경매 대금의 정산은 모두 새로 발행된 철제인 대진통보로 정산되었다. 그동안 봉황성에서만 발행하던 대진통보(大眞通寶)를 이곳에서도 발행해 유통시키고 있었다.
화폐단위는 원(圓)으로 1, 5, 10, 50, 100, 500 원(圓)의 6종류의 철제 화폐를 발행하고 1000원(圓) 부터는 은화다. 화폐가치는 관청에서 1원이면 미곡 1홉을 바꿀 수 있어 1000원(圓)이 미곡 1가마다.
대부분 10원 단위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하지만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수산물에 대해 0.5할의 수수료와 1할의 소득세를 공제하고 정산한다. 그 때문에 1원이나 5원짜리 동전의 유통량이 많아졌다.
화폐를 대련에서 발행하면서 대련시는 이제 대련직할시로 변했다. 진왕의 봉토지라는 의미도 있지만 봉황성과 거의 같은 행정기구로 관청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바꾼 것이다. 화폐까지 여기서 발행하고 직할시로 변하자 이곳 비사성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이곳에는 여전히 각종 공사에 많은 강제노역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공사를 끝내는 거야?”
“공사야 끝날 수 없지. 계속해서 성의 규모도 늘고 도로도 새로 내잖아.”
대련만 양쪽에 있는 지역에 해안 포대를 설치했다. 그리고 발해와 접한 금주만의 해안에도 석성을 쌓고 각 포진지와 연결하는 도로를 돌로 쌓아 외성을 만들고 보니 대련항은 완전히 요새로 변했다.
사람의 힘이란 정말 대단했다. 별로 우수하지도 않은 축성 도구를 이용해 대부분 인력의 힘으로 성을 쌓았지만 빠른 속도로 성곽은 만들어졌다. 수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작업을 하다가 보니 빠른 속도로 건설되었다.
물론 단기간에 모두 완성될 수는 없지만 일단 대략 윤곽은 드러나게 되었다. 돌로 쌓거나 흙으로 쌓을 부분은 작업이 끝났다. 곳곳에 세워질 망루나 또는 성문 그리고 성벽을 높이기 위해서 구운 벽돌이 생산되면 추가해서 보강 공사를 할 예정이다.
점점 거대한 성의 규모가 드러나자 일하는 인부들도 놀라고 말았다.
“와! 엄청난 규모야.”
“이렇게 클 줄은 몰랐네.”
외성이라고 불리는 성의 규모는 실로 엄청났다. 대련항 왼쪽에 있는 대서산에도 석성이 건설되었다. 이곳에도 이미 아주 오래전에 쌓은 성터가 있었다. 당초에는 대서산까지 석성을 쌓은 계획이 없었으나 해안의 돌출된 중요한 지점에 많은 해안 포대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해안을 따라 도로를 내게 되어 그것이 대서산 전체를 감싸는 성곽으로 변한 것이다.
인간이란 본시 뭔가 시작하다 보면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자연석을 이용해 도로를 내기 위해 흙이나 돌로 쌓다가 보니 욕심이 생긴 최인범은 대련 직할시장으로 결정된 안정만에게 명령했다.
“안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내는 작업을 계속하시오.”
“넷!
성곽을 겸한 해안도로를 내다보니 전에는 사용하지 못한 해변에 자연스럽게 작은 규모의 어항들이 만들어졌다. 대련항이 발전한다고 판단한 섬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어선들이 많아지게 되자 자연히 그들이 서항(西港)과 북항(北港)사용하게 되었다.
대련지구에서도 제일 땅 끝에 있는 노철산에 있는 포진지를 방문한 최인범은 이곳에 봉화대를 겸한 관측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해안도로야 대련 시장이 책임지지만 육군에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연대장에게 지시했다.
“봉화대는 10길 정도로 높이고 그 위에 10길 정도 높이로 관측소를 세우도록 해.”
해안은 도저히 배들이 접근할 수 없어 사실상 굳이 성벽을 쌓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남쪽의 산동반도나 서쪽 천진 방향에서 배들이 오는 것을 관측하기 위한 관측소와 포진지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규모가 제법 큰 성이자 포진지가 건설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련항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비사성은 대서산성인 외성까지 이어지게 되어 더욱 큰 거대한 성으로 변했다.
한창 해안도로인 성곽 축조 공사장을 다니며 살피고 있는 가운데 경호실장인 이창수 중령이 급하게 다가와 보고했다.
“전하, 천진에서 소 왕비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소피아가 오다니 지금 어디에 있나?”
“부두의 수산물 경매시장에 계시옵니다.”
갑자기 어떤 기별도 없이 소피아가 찾아 왔다니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말에 올라 빠르게 달려 부두로 가게 되었다.
수산물 경매장으로 가자 시장에는 소피아가 건장한 체구를 지닌 시녀들과 같아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큰 생선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커다란 표범 2마리가 황금 줄을 매달려 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소피아는 아설화가 애완동물로 표범을 기르자 자신도 표범새끼를 구해서 키우고 있었다.
‘헉! 표범을 끌고 왔어.’
봄에 착 달라붙는 가죽 갑옷을 입은 소피아의 모습은 아주 이색적이다. 더구나 승마용 긴 가죽 장화까지 신고 채찍까지 들고 있으니 최인범의 눈에는 야하게 느꼈다.
‘왕비가 저러고 다니다니.’
최인범이야 전생의 기억 때문에 요상한 복장의 요부로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소피아의 이런 복장이나 표범 때문에 두려워 슬슬 눈치를 보았다. 본시 성깔이 보통은 넘는다고 하던 왕비가 옆에 건장한 시녀들과 더구나 표범까지 달고 다니자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어 소피아와 같이 말을 타고 다소 한적한 해변으로 가게 되었다.
“무슨 일로 갑자기?”
“무슨 일은요. 아내가 남편을 만나는 데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그건 아니지만.”
오랜 만에 만나게 됐으니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야 있어 경호원들은 급하게 해변에 파오를 쳤다. 여전히 관공서 건물이나 그들이 지낼 사택은 공사 중이고 최인범은 대부분 야외에서 파오를 이용해 지내고 있었다.
진하고 격렬한 밤을 지세우고 나서 새벽에 일어나 동쪽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소피아가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저도 왕비니 한 번은 봉황성에 가보려고 왔어요. 산동 반도 북쪽이 안정을 찾고 뱃길도 안전하다고 해서 왔지요. 뱃길은 너무 단순하니 여기서부터 말을 타고 봉황성에 가보려고요.”
“알았어, 나야 여기서 더 머물러야 하니 혼자 다녀오시오.”
이런 대화를 나누던 소피아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부탁했다.
“우리가 있는 여기에 별궁을 하나 세우면 어떨까요?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제가 알아서 지을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말릴 필요는 없지. 아무튼 너무 크게 짓지는 마시오. 크면 관리하기만 힘드니까요.”
“알았어요.”
결국 소피아의 요구대로 이곳 해안에 별궁을 짓기로 결정했다. 대로는 해풍도 심하게 불고 해안절벽 위라는 점도 있어 여러 가지를 고려해 돌과 벽돌로 짓는 방법이 결정되었다.
이틀간 머물며 건축 기술자와 별궁 건물 신축에 대해 상의하면서 최인범과 같이 다니던 소피아는 건장한 체구인 20명의 시녀들과 같이 말에 올라 봉황성으로 떠났다.
남편에게는 오게 된 용건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소피아는 첩실에 불과하고 과부로 시집온 진미향을 두둘겨 잡으러 온 것이다.
‘덤으로 들어온 과부 주제에 겁도 없이. 우리 왕비들을 장기판의 졸로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