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20화 (320/519)

320화

장광윤은 봉황성주인 진왕(眞王)과 협상하기로 마음을 먹고 대신들에게 하명했다.

“진국에서 위해 항구를 점령한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조정에서 논하지 마시요.”

“에이.”

“봉황성의 수군이 더 이상 공격은 안 하나요?”

“전하, 공격할 만한 것이 이제는 해안에는 거의 없사옵니다. 어선도 한척도 남아있지 않고 그저 해변에서 조개를 줍거나 낚시질로 겨우겨우 잡는 정도이옵니다.”

“북쪽의 해변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질도 못 하나요?”

“전하, 그러하옵니다. 만약 그물질이라도 하다가 봉황성의 수군에게 발각 당하게 되면 그물질한 어부가 있던 주변 마을을 화포로 공격하옵니다.”

“지독하군. 어찌 그것을 소상하게 안 단 말인가?”

“전하, 첩자가 있는지 몰라 철저하게 조사해 봐도 첩자는 전혀 없는데 정확하게 알고 공격하옵니다.”

“허, 그 사람들은 눈이 그렇게 좋은가? 몽골 출신이라?”

“그 때문에 어부들이 고향을 버리고 모두 산으로 들어가 광산 일에 전념해서 의외로 광물의 생산량은 전에 비해 증가 했사옵니다.”

판옥선에서 어부들이 그물질하는 것을 발견하는 거야 망원경으로 먼 거리에서 살피기 때문이다. 그런 첨단 군사장비가 있는 줄 모르니 이들이 생각하기에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협상뿐이 살길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추해도 사는 길은 그 길 뿐이야.’

이렇게 판단한 장광윤은 대신들이 모두 퇴청하자 협상안을 제시한 대신만 따로 만나 의견을 나누었다.

“진국과 협상합시다.”

“전하, 영명하신 판단이옵니다.”

편전에서 옆에 아무도 없이 은밀하게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조정 대신들 중에 첩자 짓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여전히 명나라의 진왕(眞王)인 대부마도위라 협상은 극비리에 진행해야 한다.

이런 협상비밀이 외부로 노출되면 분명 자신들이 이간계를 썼다고 봉황성에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더욱 심한 압박을 가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충분히 하천을 타고 들어와 공격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유방천을 통해 거슬러 올라와 도성인 유방성을 얼마든지 함포로 공격할 수 있었다.

장광윤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마음이 급해서 대신에게 물었다.

“협상하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겠나?”

“전하, 어차피 재물을 넘겨주어야 하니 금괴가 좋을 것 같사옵니다. 금괴가 제일 유용하게 통용되는 재물이고 더불어 미녀를 보내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하옵니다.”

“그렇지. 황금이 싫고 미녀가 싫은 사람은 없으니 그게 좋겠군.”

산동에는 금광들이 많아 황금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더구나 어부들이 광업에 종사하자 생산량이 증가했다. 사실 그런 황금 때문에 상인 출신인 장광윤이 왕국을 세울 수 있었다. 많은 황금은 귀신도도 부린다고 했다.

장광윤은 자신 소유인 금광에서 생산되는 황금을 이용해 군사를 양성해 결국 왕국을 만들었다. 지금도 금광에서 나오는 황금의 위력으로 심복부하들을 부리고 있었다.

“봉황성주의 성향도 잘 모르는데 미인계가 잘 통할까?”

“전하, 영웅이나 권력자는 본시 호색하는 법이고 또한 봉황성주는 이미 많은 미녀를 옆에 두고 있사옵니다. 그는 왕궁에 수백명의 궁녀들을 데리고 있사옵니다. 그런 자이오니 미녀를 싫다고 할리는 없사옵니다.”

“그렇지. 봉황성에는 유달리 궁녀들이 많다고 하지.”

“전하, 하지만 보아하니 여자에 대한 독특한 취양이 있다고 보이옵니다.”

“어떤 취향을 말하나?”

“왜에서 밀수하러 왔던 상인들의 말을 빌린다면 그는 남색도 자주 즐긴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미녀의 경우는 특히 키가 커야 하고 피부색이 남달라야 된다고 하더군요.”

이런 소문이 이곳에 들린 이유는 최인범이 대마불과 같이 자는 모습을 본 왜녀들이 퍼트린 것을 들은 왜의 밀수선장이 알려준 내용이다.

지금이야 완전히 주인장을 발부해 그렇게 밀수하는 상인이 없었다. 하지만 그 직전에는 밀수선이 왜에서 들어와 화약을 제조할 황과 은을 거래했었다.

그리고 조선의 웅진 반도나 경기만 지역에서 오는 밀수선들도 있어 최인범에 대한 소식도 듣고 인삼이나 기타 쌀도 거래했었다.

그런 모든 밀무역이 봉황성의 해군들 때문에 이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필요한 물자는 봉황성과 거래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전에는 남아서 팔아먹던 소금이 모자라서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변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봉황성 성주인 최인범과 좋게 타협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봉황 성주에게 어떤 여자를 보내면 되는지 생각해 둔 것이 있나?”

“전하, 있사옵니다. 전에 남쪽의 보타도에서 서양에서 온 상인들이 데리고 온 천축국 출신인 여자들이 있사옵니다. 그 애들이 이미 장성해 절색인 미인으로 변했고 특이한 춤사위가 일품이오니 그 여자들을 모조리 봉황성으로 보내면 어쩔까 하옵니다.”

“천축 미인이라.”

“그렇습니다. 그 여자들을 보내면 우리와 협상하려고 할 것이옵니다.”

여자들을 팔아먹은 서양인들 말에는 작은 소국을 공격해 왕국을 멸망시키고 공주들과 시녀들을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 20명의 시녀들과 같이 매입해 산동지역으로 데리고 왔다. 결국 성인이던 시녀들은 6년을 비첩으로 데리고 있다가 심복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무튼 천축국 출신은 명나라 여자들과는 다르긴 많이 달랐다. 즐겨 입는 옷매무새도 그렇고 눈매와 피부색도 달라 독특하기는 했다.

“그 여자애들을 모두?”

“예이. 다들 피부색이 다르니 모두 보내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러자 장광윤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야 유방 왕궁이 다 지어지면 그 여자들을 모두 자신이 후궁으로 삼을 요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색하는 장광윤은 잠시 아깝다는 표정을 짓다가 겨우 대답했다.

“좋소. 다다익선이니 모두 보내도록 하시오.”

“예이.”

자신이 탐할 생각이던 미녀들이라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지금 사방에서 압박되는 나라의 위급한 사정으로 보아 빨리 협상하는 것이 좋았다. 만약 봉황성과 좋게 협상하지 못하면 후대는 고사하고 당대에 멸망하게 생겼으니 우선 그것이 더 급한 것이다.

결국 많은 금괴와 천축국에 있는 작은 왕국의 왕녀들이라는 미녀 3명을 그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봉황성으로 갈 때 미녀도 데려가고 금괴도 가지고 가도록 하시오.”

“에이.”

외교술에는 오랜 근공원교(近攻遠交)가 어떤 나라도 적용되는 진리라 장광윤은 봉황성을 먼 나라로 보고 명나라는 접한 나라라고 판단한 것이다.

최인범은 비사성을 차지하고 나자 바로 발해와 황해를 장악했다. 그리고 산동 반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자 위상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제태국의 군왕인 장광윤이 굴욕적으로 많은 조공을 최인범에게 바치기로 결정을 내리는 동안. 조선에서도 최인범을 두고 조정 중신들 사이에 격론이 오가고 있었다.

한양의 대궐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후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주상이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기쁜 일이다. 새로 맞이한 민비인 중전의 몸에서 드디어 왕자 탄생한 것이다.

그러자 조정 중신들 사이에는 서둘러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자는 의견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조선국의 후계자 책봉 문제를 이미 봉황성주로 진왕인 최인범에게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조정 중신들은 이 때문에 패가 갈려서 격론이 오갔다.

“아니? 황제도 아닌 진왕이 전권을 가지고 조선의 국왕에 대해 책봉을 하느냐 마냐를 결정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게 꼭 그렇게 노엽게 받아들일 것은 없어요. 봉황성에서 승낙만 하면 무조건 승인해 준다는 뜻이니 꼭 그렇게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뭐가 그런 거요? 그렇다면 우리는 두 나라를 섬기라는 뜻이 아니요?”

“섬기다니요. 어차피 북경으로 가더라도 대신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그들이 먼저 승낙해야 나중에 황제께서 책봉사를 보내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런 쪽으로 좋게 생각하면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지요.”

연일 그 문제 때문에 격론이 오가자 주상은 드디어 하교를 내렸다.

“경들은 들으세요. 양쪽 모두 일리는 있지만 아직은 원자가 너무 어리니 그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지 마세요.”

“전하, 기왕에 거론 된 일이오니 서둘러 마무리 하는 것이 좋사옵니다.”

“서둘러 되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봉황성주인 진왕과 나는 의형제니 조카인 왕자가 태어난 사실은 알릴 필요성은 있어요. 그러니 원자 탄생을 알리는 것을 겸해서 봉황성으로 사신을 보내도록 해요. 그러면 아마 좋은 방법을 말해 줄 겁니다.”

이렇게 말하자 주세붕이 슬며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전하,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사옵니다. 봉황성으로 가서 내무장관을 하고 있는 이황이 큰 문제입니다. 조선을 버리고 떠났다고 해서 그의 문집을 태우고 흔적을 지우는 사태가 벌어져 그쪽에서는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옵니다. 그러니 함부로 사신을 보내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사옵니다.”

이렇게 말하자 주상은 그제야 지난 일이 떠올랐다.

조선에서 벼슬하다가 진국으로 넘어간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유독 그의 행동을 비난하게 됐으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황의 문집이나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한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고 판단했다.

“아, 과인이 너무 짧게 생각을 했군. 이황이 상당히 섭섭할 거야.”

“전하, 그러하옵니다. 물론 위화도에서 머물다 북쪽으로 넘어간 것은 조금은 고약하고 요상한 행동이지만 아무튼 소신의 생각으로는 거기서 고민하다가 보니 그리 된 것 같사옵니다. 전하. 그러니 함부로 봉황성으로 사신을 보내는 일을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알았소. 원자의 나이가 어리니 그냥 덮어 두기로 합시다.”

자신의 몸이 전에 비해 갑자기 약해지자 아들을 빨리 세자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하자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한편 멀리 남경에서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제주도를 떠난 월녀가 이끄는 상단은 드디어 남경에 도착했다. 30척의 조운선이 일시에 소금을 싣고 들어오자 남경 지역은 난리가 났다. 그나마 산동지역에서 은밀하게 거래되던 소금도 중단되어 앞으로 소금 구할 일이 큰 걱정이던 터에 충분한 양의 소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번에는 10척이더니 이번에는 30척이나 보냈어.”

“조선은 저렇게 많은 소금을 어찌 생산하는 거야? 산에 나무가 하나도 안 남았겠어.”

여전히 천일염이 아니고 염수를 가마에 넣고 불을 때서 생산하는 자염 방식만 알기 때문에 나누는 대화다.

남명의 헌강왕은 멀리 조선에서 소금을 싣고 찾아온 월녀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소금을 가져와 좋기도 하지만 월녀가 오자 고심하던 문제를 풀 어떤 단서가 생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월녀와 같이 온 선장들로부터 이곳으로도 딸의 진정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르게 정향 대공주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거의 생과부 신세로 지내고 있다고 하니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다.

더구나 요상한 여자에게도 치여서 기를 못 펴고 산다니 열불이 났다.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느낌도 들어서 그런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동침조차 못했단 말이지.’

한편으로는 열불도 나지만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아무래도 전에 쓸모없는 화포를 보낸 것도 원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속이 너무 좁았어. 사위는 후하게 도와주려고 소금도 보내주는데.’

월녀는 봉황성주인 사위가 특별히 대하는 유일한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자 헌강왕은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왕이나 되는 남자가 채신머리없이 직접 나설 수는 없어 소주 미인인 부인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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