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요동 끝의 비사성 위용>
동북방에서 사는 유목민과 항상 대립하던 한족들이 통일을 이루면 반드시 동진해 침략했다. 그때마다 대부분 요하를 기점으로 길게 늘어선 산성들이 큰 역할을 했었다.
최인범은 김신완 함대장과 지도를 펼쳐 놓고 기본적인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비사성을 완전히 요새화해서 산성을 만들고 해군 기지를 만들면 그 때 본격적으로 산동 반도를 공격할 생각이오.”
“전하,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섬에서 사는 어민들은 모조리 소개령을 내려 공도로 만들어야 되겠군요.”
“그렇소. 우선 요동과 접한 섬부터 완전히 소개하고 나서 차츰 확대해 나갑시다.”
최인범은 비사성을 기점으로 바다를 먼저 장악하고 그 이후에 과거 고구려 천리장성이 있었던 지점을 이어가며 북쪽으로 진출할 생각이다.
그래서 심양에 있는 건주본위를 남쪽의 비사성과 동쪽의 통화에서 압박하는 방법으로 흔히 사용하는 양동 작전을 펼칠 요량이다.
“명나라가 준동하면 우리는 대릉하나 요하 등에서 함대를 이용해 막아야 합니다.
“전하, 그러면 분명 명나라에서는 북쪽을 통해 진격할 겁니다.”
“그건 북원의 세력과 밀착 되어야 하니 쉽지는 않죠. 자칫하면 북원이 우리와 손을 잡으면 협공당해 몰살할 위험성이 높지요.”
앞으로 내실을 다지며 아무래도 몽골과 협조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이제 외교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에 도달했다.
‘소피아가 타타르 부족을 이용해 몽골을 견제해 줘야 하는데.’
모든 것은 후에 벌어질 일들이고 우선은 비사성의 증축과 해군기지 건설이 급했다.
요동의 땅 끝에 위치한 비사성은 대륙에서 해로를 통해 요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이곳은 요동을 방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거점이자 또한 대륙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전략 요충지다. 고구려시절에 쌓은 천리장성의 맨 남쪽 끝에 위치한 산성이다.
비사성을 중심으로 사방 100리가 자신의 봉토지로 확정되자 최인범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판옥선 30척으로 구성된 제2함대를 보내 해군기지를 만들도록 했다. 이어서 이곳에 3개 정규연대를 양성시키기 위해 철갑웅이 이끄는 제1연대 기마병 5천명을 보냈다.
그렇게 조치를 취했지만 부족하다고 판단해 조선에서 이주한 1만명도 비사성으로 이주하도록 했다. 그런 상태에서 제1함대 소속인 30척의 판옥선과 70척의 조운선이나 기타 어선을 총동원해 많은 무기를 싣고 떠나고 있었다.
판옥선에서 망원경으로 육지 쪽을 바라보던 대마불이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전하, 제2연대 기마병도 서쪽으로 이동 중이네요.”
“비사성을 보수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 가는 거야.”
“전하, 비사성을 완전히 새로 쌓으시려고요?”
“그래야지.”
비사성의 전략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최인범은 비사성을 완전히 새로 쌓을 생각이다. 기존에 있는 성을 확장해서 더 규모가 큰 산성으로 만들어 완전히 요새지로 만들 계획이다.
먼 훗날은 모르지만 거대한 산성이 주는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명나라가 비록 힘이 약하지만 사실 과거 수나 당나라 시절보다 인구가 대폭 늘어나 머릿수로는 엄청나다.
대륙에는 사람이야 많으니 혹시 진국과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과거보다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해 동쪽으로 침입할 위험성이 매우 높았다.
‘가정제가 돌아버린 놈이라 어떤 미친 짓을 벌일지 몰라.’
명나라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비사성이 필요하고 요동이나 북경을 공격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곳이라 신경을 쓰고 있었다.
100척으로 구성된 선단은 요동의 해안선을 따라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같이 가는 해군은 물론 일반인들도 다들 상기된 표정들이다.
“비사성으로 가면 잘 살게 해주겠지.”
“당연하지. 처음은 고생이야 좀 하겠지만 전하의 직할 봉토지라 아마 빠르게 발전할 거야.”
새로운 땅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내해인 황해의 끝은 여름이지만 바람도 약하고 파도도 매우 잔잔했다. 염창 시에서 이른 봄부터 생산된 누런 천일염은 진국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우선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겨 많은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 또한 멀리 북쪽의 해서여진과도 활발하게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불어 동쪽 끝의 연해주(간동도)를 새로 개척하는 사업도 벌일 수 있었다.
대규모로 선단을 이룬 배들은 드디어 장하만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배들은 장하(庄河) 하구에 있는 부두에 접안했다.
“와! 여기도 염전이 많네.”
“새로 만드는군.”
장하 시도 한창 천일염을 생산하기 위해 염전을 만들고 있었다. 염창 시에 이어 대규모로 천일염을 생산하는 단지를 만들고 이곳은 모두 일반인들이 운영하는 염전이다.
최인범은 염전을 만들고 있는 해변을 돌아보며 장하 시장에게 물었다.
“언제 염전들은 완공이 되나?”
“전하, 늦더라도 가을에는 모든 염전이 완공되어 늦가을이나 초겨울에는 소금이 생산되기 시작할 겁니다.”
“운반하는 문제가 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모두 천진으로 보내게 되니 포장을 규격대로 잘 하시오.”
“넷!”
명나라나 조선과 같이 진(眞)국도 염전사업을 아무나 할 수 없었다. 거액을 국가에 헌납해 허가를 내야 염전을 만들고 또한 소금도 허가 난 상인들만 유통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재정적인 문제도 있지만 천일염 생산 기술이 다른 곳으로 쉽게 퍼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이유로 최인범은 염창 시와 장하 시만 염전을 만들게 하고 또 집중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장하 염전은 모두 민간인이 투자한 형태다. 하지만 깊은 내막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염전에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타타르 부족 출신들이다. 천진에 있는 소피아가 심복들을 보내 대규모로 염전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최인범은 조선 출신인 장하 시장에게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물었다.
“염부들은 불평 없이 일들은 잘하나?”
“넷! 내후년에는 노예에서 풀리게 된다고 말해 주니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집단으로 난동을 부리면 큰일이니 잘 다루게.”
“넷!”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충부의 관리는 조선출신, 중간층은 여진족, 제일 하층은 새로 이주한 노예 신분인 이주민들이다.
오래전에 서쪽으로 다시 돌아갔던 타타르 부족은 작년 가을에 또다시 북경 북쪽 초원지대에 나타 10000필의 말과 청년 2000명이 요하를 넘어 요동의 장하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소피아는 아설화의 영향을 받아 자신도 주변에 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타타르 부족의 용사들을 요동으로 보내주기를 원해 그녀의 아비인 족장이 1개 기마부대를 보냈다.
거의 방치되어 있던 일대에 정착한 청년들은 요동 남쪽에 사는 여진족인 여자들과 혼인하는 방법으로 급격하게 세를 늘렸다. 그들은 멀리 서쪽에서 획득한 많은 황금을 이용해 여러 명의 부인을 맞이하는 방법으로 부족의 수를 대폭 늘린 것이다.
더구나 타타르 부족들이 다시 서쪽으로 떠나며 1만명이나 되는 부족민을 남겼다. 그들 역시 이곳으로 이주해 일대는 모두 타타르 부족 출신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변했다.
보다 정확하게 이주민들을 분석하면 마지막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다른 부족들이다. 모두 천산산맥 동쪽의 타림분지 지역에서 사는 위구르 족으로 타타르부족과는 약간 다르고 전쟁포로로 잡혀온 노예들이다.
장하 시를 돌아보던 최인범은 대마불에게 지시했다.
“마불아, 너는 여기서 노예 염부들을 대상으로 군사를 모집해.”
“넷!”
“제일 중요한 것은 언어를 빨리 익힌 사람을 우선 노예에서 풀어주고 기마병이나 해군의 격군으로 근무하게 된다고 말해줘서 원하는 사람만 받아들여.”
“명을 따르겠습니다.”
대마불을 장하 시의 포로수용소 책임자인 소령으로 임명해 근무하게 하고 최인범은 선단을 이끌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오래전 고구려의 수군기지가 있던 장사군도근처에 도착하게 되었다. 최인범은 섬을 망원경으로 자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섬에는 사람이 전혀 안사는 무인도로 변해 있었다.
“2함대장이 철저하게 소개했군.”
최인범의 이런 말에 김신완 함대장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전하, 힘없는 늙은 어부들은 살던 섬으로 다시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힘없는 사람을 보내면 어떻게 먹고 살고? 우선은 대련 항구에서 먹여 살리다가 차츰 차츰 섬으로 보내주어 처음과 같이 돌려 놔야지.”
이런 응수에 김신완 함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당분간 더 섬을 비워둬야 될 것 같네요.”
산동 반도 북쪽의 발해만이나 황해에 있는 모든 섬에 대해 소개령을 발동해 사비성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그래서 그들의 노동력으로 대련항이나 비사성을 새로 축조하고 있었다.
드디어 장산군도도 지나서 대련항으로 들어서자 많은 함정들이 보였다. 전에는 보잘 것 없이 작은 규모이던 항구는 어느새 시설이 대폭 확장되어 많은 배들이 안전하게 접안해 있었다.
일시에 많은 배들이 항구로 들어서자 일순 항구는 매우 복잡해지고 있었다. 부두에 판옥선이 접안하자 최인범은 즉시 지시했다.
“항구의 접안 시설도 부족하니 소금을 실은 배들은 보급을 받고 바로 천진으로 떠나도록 해.”
“넷!”
“천진으로 가서 발해 상단에 소금을 넘기고 무조건 식량으로 바꾸어 오도록 해.”
“명을 따르겠습니다.”
이번에 천진으로 보내는 천일염은 조운선 30척으로 운반하게 된다. 모두 척당 300석을 조금 넘게 실어 총 1만석을 천진으로 보내게 된다.
‘가정제가 좋아서 입이 벌어지겠군.’
비사성을 자신의 봉토지로 만들어 준 조건이라 일단 그것부터 해줄 생각이다. 소금을 넘겨주고 화북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콩이나 또는 면포 그리고 밀을 사올 생각이다.
이곳의 주민들이 대부분 비사성 축성이나 또는 항구 건설, 도로 확장 공사나 시가지 조성 등에 투입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자급자족할 정도로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인범은 기존의 비사성을 내성으로 하고 새로 건설하는 성을 외성으로 하는 이중 방식으로 성을 축조하도록 했다. 그래서 외성의 경우는 중간 중간에 포진지가 구축되는 형태다.
외성의 경우 반도 양쪽에 여러 개의 포진지가 건설되면 포병은 앞으로 해안 포대로 운영될 예정이다.
비사성을 크게 확장해 만들게 되자 근처에 사는 명나라 출신이나 여진족은 소규모 단위로 찾아와 충성 맹세를 하고 있었다.
“철갑웅, 성을 쌓은데 도우라니 엉뚱한 일을 하고 다니는군.”
“전하, 군사를 시켜 성을 쌓기보다는 주변의 부족들을 끌고 와 성을 쌓은 것이 더 빠릅니다.”
비사성 신축에 동원하라고 보낸 기마병들을 동원해 철갑웅은 주변의 소부족들을 찾아다니며 위협하자 겁에 질린 많은 사람들이 강제노역장으로 동원되었다.
“철 대령, 벌써 우리의 힘을 과시하면 후유증이 생길 수 있어.”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부락을 찾아다니지 않겠습니다.”
봉토지 내의 100리야 당연히 쉽게 굴종하지만 그 외 지역은 여전히 어디에 붙어야 좋을지 관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인범의 명령에 기마병들이 외부로 나가는 활동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주민들도 아닌 장년들이 50여명씩 무리를 이루어 도착하고 있었다. 모두 비사성에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위용에 겁이 나서 협조하겠다며 굽히고 들어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