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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15화 (315/519)

315화

이황은 마음이 너무 복잡해 저절로 항아리에 들어 있는 표주박으로 손길이 가고 있었다.

“휴우! 내가 뭘 하느라 그 고생을 하며 공부를 한 거야.”

봉황성의 교육은 그야 말로 백성들의 삶을 위한 산교육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은 그저 학문을 위한 학문일 뿐이었다.

거창하고 뜬구름 잡는 논리만 장황하고 화려하지 실제로는 별로 써먹지도 못하는 그런 허깨비인 학문이라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자신이 알고 있던 우주나 지구에 대한 지식도 전혀 다르다 보니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에 큰 충격도 받았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잊으려는 것이다.

한편 위화도에서 단동 북항으로 돌아온 최인범은 조선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에 대해 조치를 내렸다.

“육로를 통해 비사성으로 이주하는 주민들의 경우는 염창 시를 지나가니 그곳에서 개인당 천일염을 반말씩 지급하도록 해.”

“전하, 어린아이도 해당되옵니까?”

“당연하지. 더 많이 주면 무거워서 가져가기가 곤란하니 그런 정도를 나누어 주도록 해.”

“넷!”

1만명이 집단해서 이주해 오다 보니 관료 채용 문제도 쉽게 해결되었다. 그리고 선박을 건조할 능력을 지닌 목수들도 많이 이주했다. 비사성의 항구 건설이나 기타 관공서 건물 신축에도 별 무리는 없어 보였다.

조선의 하층민들은 사실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많으니 농민들이나 어민들은 거의 대부분 목수가 하는 일을 조금은 할 줄 알았다.

전체를 감독하고 집짓는 문제야 전문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옆에서 대패질하거나 목재를 나르는 인부 노릇이야 대부분 할 수 있었다.

최인범은 단동에서 있으면서 통치를 위해 여러 가지의 필요한 조치를 내렸다. 특히 건주 본위에서 인수해야하는 군마 문제가 지금은 제일 큰 업무다. 군마 5000필을 순순하게 넘기느냐 아니면 반발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정해진다.

‘자순도 공이 크지만 외무장관도 큰일을 해냈어.’

진명하 외무장관의 경우 다른 직책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고 너무 탐욕스러워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외교 분야에서는 아주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를 심양의 건주 본위에서 5000필의 군마를 인수하는 책임자로 보냈다.

‘잘 인수해 오겠지.’

이주민을 챙겨 주고 선박건조를 위해 조선소 기술자들도 추려서 보내려다 보니 북항에서 이틀을 보냈다. 강변에서 위화도 쪽을 망원경으로 살피던 최인범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에 만취해 대자로 펴져서 자네.’

어설프게 이엉으로 엮은 움막에 이황은 잠들어 있었다. 한양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면 벌써 돌아가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넘어올 생각은 있지만 가족이나 다른 사람 때문에 망설이는군.”

“전하, 저분을 꼭 모시려는 이유가 뭐죠?”

“이유야 많지.”

사실 관료들의 인사를 모두 책임지고 행정을 책임지는 내무부 장관에 이지함을 임명하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그가 아직 30살도 넘지 않았으니 도지사나 또는 군수 시장보다 나이가 어리다.

이지함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오랜 전통인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하 직원으로 부린다는 것이 약간 무리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점이 없었으나 차츰 행정 체계가 잡히자 나이 많은 도지사들이 내무장관에게 머리를 쳐드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행정조직이 꼭 군대처럼 상하의 위계질서가 반듯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약간 잡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그런 잡음을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조금은 나이가 많은 내무장관이 필요했다.

‘이황 정도의 학식이라면 도지사들이나 시장들도 함부로 머리를 쳐들지는 못해.’

최인범은 기왕에 영입을 결심했으니 경호 실장에게 지시했다.

“퇴계선생님께 초등, 중학교 교과서를 모두 가져다 줘.”

“넷!”

“그리고 가서 농부들에게 부탁해서 밥도 보내주고 문방사우와 호롱불도 보내주고.”

최인범의 명령을 받은 경호 실장이 많은 물건을 준비해 이황이 머무는 움막으로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그저 허한 마음으로 술만 마시던 이황은 이날 이후로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공부라면 이골 난 이황은 새로운 학문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기존에 배웠던 학문과 충돌이 생겨 진도가 느렸지만 매우 빠르게 초등과 중등 과정을 습득했다.

공부에 매진하는 이황을 보며 최인범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공부가 모두 끝나면 올라오겠군.’

어떤 학문이고 어느 정도의 단계 오른 사람은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일 마음자세만 서게 되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익히게 된다. 본시 기본적인 두뇌도 있지만 그만큼 학습방법에 대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황이 공부에 매진하자 최인범은 단동 북항에서 떠나 봉황성으로 향했다.

“경호 실장, 기왕에 보내는 책이나 대학 과정 중에 경제학과 농과 책도 보내 줘.”

“넷!”

예외 없이 누구도 학교를 나와야 공직에서 근무하게 되는 규정을 만들어 이항도 정규교육과정을 거쳐야 된다. 물론 시험을 보아 수료증을 따면 되니 학교를 꼭 다닐 필요는 없고 기본적인 수강일수만 채우면 졸업은 가능했다.

봉황성의 왕궁으로 돌아온 최인범은 이제 감사원장이 된 이자함을 만나 지시했다.

“우선 장관 두 자리가 비었으니 장관을 추천하시오.”

“전하, 차관을 장관으로 올리면 될 것이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관료 출신이지만 이제는 많이 변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임명하지.”

잠시 공석이던 상공부 장관에는 윤길영 차관이 임명되고 농산부 장관은 조인국이 임명되었다.

최인범은 임명장을 주며 윤길영 상공부 장관에게는 광산에서 나오는 폐석처리에 신경을 쓰라고 당부했다.

“한번 오염되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기니 광산을 개발하면 그런 점을 유념하시오.”

“넷!”

이어서 농산부의 조인국 장관에게는 백두산 지역에서 대규모 벌목이 진행되는 점에 대해서 지시했다.

“반드시 벌목한 이후에는 새로 묘목을 심도록 하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특별히 개간하는 작업할 경우 이외에는 화전을 일구는 일은 불법으로 정해 철저히 단속하고요.”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멀더라도 장관이 직접 훈춘으로 가서 연해주지역의 개척에 힘을 써주시오. 간중도의 도지사가 담당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니 장관이 직접 가보는 것이 좋을 거요.”

“알겠습니다. 바로 떠나도록 하죠.”

최인범은 동해와 접한 연해주 지역을 간동도로 정했지만 아직 개척되지 않은 토지라 농산부 장관을 보내 그 지역을 개척해 볼 생각이다. 그래야 동해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만주 지역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서 어느 정도만 인구가 살면 도지사를 보내고 관료들을 보낼 것이니 혹시 그곳으로 이주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데리고 가시오.”

“넷!”

최인범은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인다며 초등학교에 들어가 1학년 과정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이 거의 만들 교과서라 지식 습득이 목적이 아니다.

자순 태감에게 지시했다.

“자순도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니지.”

“넷!”

낮에는 관공서에서 근무하고 야간에는 장관들도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교육부 장관도 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최인범은 자순 태감에게 쉬는 시간을 기해 명령했다.

“왕궁의 모든 여자도 학교를 다니도록 해. 왕실의 내명부에 속한 여자들은 최소한 중학은 나와야 하고 빈 정도는 최소 중학과정은 나와야 된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자 왕궁 안에는 어린 궁녀들에게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개인교습이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상궁들도 관료라 배워야 하고 왕비나 빈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세상에 시험을 보면 꼭 점수를 공개해 버리니 난리가 났다. 산수에서 40점을 받은 정향 대공주는 어린 궁녀들 보다 못한 성적으로 개망신을 당해서 더욱 열이 났다.

‘나를 괴롭히기로 작정했어.’

같은 반이 학생인 진 빈은 계산속이 빨라서 그런지 항상 산수를 100점 만점 받으니 더욱 그렇다. 체육시간에 여학생들에게 시키는 율동도 자신은 매번 여선생에게 못한다고 지적을 받지만 진 빈은 칭찬이 자자했다.

“진 빈 마마는 어쩜 그리 잘하세요. 저보다 잘 하시네요.”

“평소에 늘 하던 운동이니 그렇지.”

“어머, 그렇군요. 아무튼 대단하세요.”

기생 출신인 여선생은 작은 대나무로 교탁을 탁탁 두드리며 크게 외쳤다.

“자! 자! 다시 손을 허리에 올리고 엉덩이로 크게 원을 그려요.”

최인범이 여학생들에게 보급하는 것은 태권도 에어로빅이다. 그러니 엉덩이를 빙빙 돌리는 과정도 있다. 아이까지 출산하고 성경험이 많은 진 빈이야 밤일이나 진배가 없다고 판단해 쉽게 터득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런 요상한 동작을 해보지 못한 정향 대공주는 잘 될 리가 없었다. 너무 쑥스럽기도 하고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허리 동작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어설프기만 했다.

‘이런 것을 왜 배우라는 거야?’

이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목적도 모르고 목표도 없으니 전혀 늘지 않았다. 그러자 상궁이 조심스럽게 귀가 번쩍하는 귀하고 귀한 조언을 해주었다.

“공주마마, 이런 동작은 오래 익혀서 숙달되면 남편과 잠자리에서 아주 유용하게 써먹는 비술을 터득하는 기초단계입니다. 그러니 잘 익혀야 하옵니다.”

“어머머. 그게 정말이야?”

“마마, 틀림이 없사옵니다.”

이런 상궁의 고귀한 충언을 듣자 정향 대공주는 율동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낄 정도로 학습에 열중했다. 그것으로 부족해 궁으로 돌아와 밤에도 시간만 나면 엉덩이를 돌리고 튕기는 율동에 매진했다. 그러자 허리가 유연해지고 움직임이 전과는 달라지고 있었다.

‘노력하니 되네.’

기생출신 여선생들이 요상한 동작을 가르친다고 해서 일부 관료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효과가 좋아서 그런지 모르나 지금은 아주 조용했다.

최인범은 학교생활의 전 과정을 빠르게 복습하듯이 익혀가며 교과서나 교육과정을 모조리 새롭게 만들었다. 직접 몸으로 때워가며 반복하다 보니 지워졌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더욱 알찬 교과서로 보강하게 된 것이다.

최인범은 이황의 거동이 궁금해 경호 실장에게 물었다.

“그분은 지금 뭐를 하나?”

“가족들이 모두 위화도로 와서 움막에서 생활하며 이황 선생님으로부터 학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 남에게 뒤떨어진 가문은 되기가 싫다는 뜻이군.”

“소신도 그렇게 판단됩니다.”

움막에서 장기적으로 지내는 이황을 보며 최인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토정이란 호는 이황에게 줘야 마땅하겠어.’

최인범은 우선은 내실을 다지는 일에 전념하다가 이황을 내무장관에 임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자신의 봉토지로 변한 비사성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지내며 산동 반도 공략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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