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인걸들은 봉황을 따라>
이제 완연한 봄이라 넓은 들판에는 수많은 농부들이 파종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하들과 같이 염창시로 향하는 최인범은 작은 개울에 앉아 척계광과 대마불에게 망원경을 보여 주었다.
“이것을 눈에 대고 한번 멀리 처다 봐!”
“넷!”
주군이 명하니 그저 별 생각 없이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농부를 바라보던 척계광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전하, 너무 신기하네요. 멀리 있는 농부가 아주 가깝게 보이옵니다.”
“가깝게 보이니 못 보던 것도 보고 좋지?”
“그렇사옵니다. 정말 신기하옵니다.”
최인범은 충성심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는 공개하지 않던 망원경을 두 사람에게 선물로 넘겨주는 방법으로 슬슬 꼬이고 있었다.
척계광은 너무 신기해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망원경을 이리저리 자세하게 살폈다. 그러나 의외로 대마불은 감탄사를 한번 토하더니 계속해서 망원경으로 뭔가 자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꼴깍!”
더구나 망원경으로 살피다가 나른 침을 삼키자 최인범은 망원경을 들고 대마불이 살피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헉! 낮거리를 밭고랑에서 하다니.’
아주 멀리에 있는 밭고랑에서 젊은 농부인 부부가 한창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아마도 신혼이라 밭에서 일하다 말고 그 짓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군왕이라는 체면만 아니면 그냥 심심풀이로 보는 재미가 있으련만 부하들 보기가 민망해 크게 기침을 토했다.
“험! 봄이라 좋긴 하군.”
사실 젊은 몸으로 매일 여자와 잠자리를 해도 넘치는 정력이다. 그러나 젊어서 여색을 즐기면 늙어서 골골한다는 사실 때문에 최인범은 특별한 때 이외에는 왕비들과 잘 접하지 않고 있었다.
유일하게 여러 날 같이 지낸 여자는 아들과 같이 봉황성으로 오게 된 진유향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진 빈의 위세가 어느새 정향 대공주를 능가하려는 조짐이 보였다.
‘아무래도 진 빈은 당분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
부인이 5명이나 되지만 한 명은 여전히 독수공방으로 방치해 두고 3명은 사실상 별거나 다름없이 따로 살고 있었다. 많기는 하지만 실상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것이 아니다.
남녀가 벌이는 교접 장면에 마른 침을 삼키는 대마불을 보자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마불아, 너도 장가가고 싶냐? 가고 싶으면 언제고 말해.”
“아니옵니다. 아직은 장가가고 싶지 않아요.”
“왜? 여자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저는 바다로 나갈 생각이라 나중에 혼인할 생각입니다.”
태생이 바다와 밀접한 대마불은 여전히 해군이 되어 멀리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니고 친부모의 고향인 탐라도 가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지니고 있었다.
소금을 생산하는 염창 시로 가는 길이라 최인범은 작은 개울가에 앉아서 쉬며 한창 빛의 굴절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건 오목 렌즈라고 하고 이건 볼록 렌즈라고 하는 거야.”
“아, 안경알과 비슷한 것이군요.”
“그렇지.”
렌즈라는 단어가 처음 듣는 말이지만 두 사람은 별로 이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봉황성은 전에는 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미 유통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인재란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러서 나중에 성장해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시로 교육하고 단련시킴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었다.
풍기 5일 시장에서 상인들을 괴롭히던 왈짜패에 불과한 배도치나 그의 부하를 지금은 고급 장교로 만들었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사람에게 교육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체험했다.
최인범은 두 사람을 지근거리에 두고 교육시킬 요량으로 지시했다.
“마불아, 너 마차로 가서 지구본 하고 돋보기를 가져와.”
“넷!”
최인범은 마차를 가지고 이동할 경우에는 어김없이 많은 도구를 가지고 다닌다. 측량에 필요한 기구도 있고 지구본이나 역사서 그 외에 초등학교 교과서등 많은 것을 비치해 두고 주변의 부하들에게 수시로 교육시키고 있었다.
많은 영토야 전쟁을 벌여 차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라를 통치하려면 인재들이 많이 필요했다. 또 그래야 나라가 부국으로 강하게 성장하게 되니 철저하게 시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지구본으로 지구에 대해 설명하고 화산이나 해일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는 현상의 원인들에 대해 설명하자 척계광의 눈빛은 어느새 몽롱해 지고 있었다.
‘흠! 얼이 빠져서 맛이 가벼렸어.’
사람 사이에 첫인상이 매우 중요했다. 처음 만나서 자신이 범접하기 어려운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을 보면 저절로 굴종하는 것이 인간이다.
신분으로 보나 개인적인 무력으로 보나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더구나 새로운 학문에 박식하니 척계광은 마치 신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충성 정도가 아니라 맹종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변했다.
‘와! 이런 분을 내가 모시고 다니다니. 너무 영광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이곳 봉황성이야 말로 봉황이 날아오는 별천지라고 느끼고 있었다. 봉황이란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용, 기린, 현무와 함께 사령(四靈) 즉 신령스러운 네 가지 동물로 불리고 있었다.
척계광은 봉황성에서 있었던 짧은 기간 동안에 주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분은 용이자 범이고 또 봉황이라고 하니 그게 사실 같아.’
신령스러운 새인 봉황은 우는 소리가 퉁소를 부는 소리와 같고 살아 있는 벌레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절대로 살아있는 풀을 뜯지 않고 무리지어 머물지 않으며 난잡하게 날지 않는다.
봉황은 인간들이 만든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는다.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절대 먹지 않으며 아무리 배고파도 하찮은 곡식 따위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봉황은 고고함을 상징한다. 이러한 특성과 아울러 통치자인 군왕의 정사가 공평하고 어질며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봉황이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전에 이르길 ‘옛날 왕의 정치가 삶을 사랑하고 죽임을 미워하면 봉이 나무에 줄지어 나타난다.’라고 했다.
나라의 상징을 봉황으로 정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척계광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봉황성에서 본 큰 향로를 두고 물었다.
“전하, 왕궁 앞에 있는 큰 향로는 봉황성을 상징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아! 그거 본시 오래전에 발견된 고대유물을 크게 확대해서 만든 것이야. 실물은 요만해. 귀한 유물이라 왕궁의 비밀 창고에 실물은 잘 보관하고 복제품만 만들어 관아로 보내고 있지.”
“그렇군요.”
척계광은 최인범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명나라가 지구본으로 보아도 크기는 하지만 사실 지구라는 전체로 보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나이고 포부가 큰 척계광은 어느새 대마불과 같이 큰 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최인범은 지구본이나 돋보기를 가지고 자연과학에 대해 교육하며 척계광에게 지시했다.
“관료는 모두 일정 수준의 학문이 필요하니 무조건 학교를 나오거나 수료증을 받아야 하니 임지로 가면 반드시 야간학교를 다니도록 해.”
“넷!”
“지금은 과거나 관료 채용 시험이 없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모두 실시되니 자격이 안 되면 군인들도 고급장교를 못하니 그리 알고.”
“명심해서 학업에 전념하겠습니다.”
최인범의 이런 방침 때문에 봉황성은 학습 열풍이 불었다. 무조건 무력만 강한 군인들은 결국 준사관에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자 군인들이 먼저 야간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물론 너무 학문에만 중점을 두면 자칫 조선과 같이 변할 위험이 있어 적당히 무력 점수도 반영할 생각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은 준사관들의 급료에 대한 기준은 별도로 정하기로 했다.
최인범은 개구리도 잡아서 해부해 놓고 설명했다.
“대략 인간도 이런 식으로 내장이 형성되어 있어.”
“그렇군요.”
한창 자연과학을 설명하고 드디어 날이 어두워지려고 하자 다시 이동해 염창시에 도착했다. 염창시에 있는 교도소에는 각종 흉악 범죄나 무거운 형을 받은 죄수들이 모여 있었다.
무거운 노역형을 받은 사람들의 관료로 부정을 저지르거나 뇌물을 수수한 사람들이다. 새로 생긴 나라라 급하게 검증 없이 추천만으로 채용하다 보니 벌써 부정을 저지르는 관료가 나타났다. 검찰청에서 철저하게 조사해 가차 없이 최고형인 강제 노역형을 처해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천지라고 좋다고 왔던 조선이나 명나라 관료 출신들은 완전히 된서리를 만났다. 그들은 습관처럼 뇌물을 받아먹다가 다들 과도한 벌금형과 강제노역형을 받게 된 것이다.
‘나 별로 처먹지도 않았는데. 2년이나 강제로 노역하라니. 이주를 잘못 왔어.’
이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고통스러운 염부로 생활해야 하니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무안 출신인 죄수들이 집단으로 연명해 탄원서를 내면 혜택이 있다고 어설프게 조언해 그대로 따랐다가 형량이 더욱 무거워진 사람들도 있었다.
죄명은 죄인들은 집단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조항에 걸려든 것이다.
교도소를 돌아보고 나자 최인범은 척계광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시정할 점이 있어 보이냐?”
“전하, 있사옵니다. 보아하니 모두 흉악범이나 뇌물죄로 잡혀온 죄인과 같이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여 지옵니다. 그러니 그들은 분리해서 수용하고 작업장도 따로 배정해야 된다고 봅니다.”
“왜?”
“본시 머리를 쓰는 사람은 몸이 허약한 경우가 많고 힘을 과시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비록 염전이라도 분리해서 작업시키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렇게 판단했다면 부소장의 자격으로 직접 실시해.”
“명을 다르겠나이다.”
최인범은 고개를 저으며 설명해 주었다.
“내가 명령해서 수행한다는 그런 식이 아니야. 나는 여기서 그냥 살피러 왔을 뿐이지. 여기의 교도소 책임자는 소장대리인 부소장인 척계광이니 네가 알아서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재량권을 가지고 교도소와 염전 작업장을 관리해.”
“넷!”
이렇게 말하자 척계광은 급하게 교도소에 비치된 법령집부터 하루 종일 읽고 있었다. 그러더니 죄수들을 작업도 시키지 않고 놀리고 교도관부터 군기를 다잡고 있었다.
“뭐하나? 빨리 달리지 못하고?”
“헉! 헉!”
어느새 다녀왔는지 신병교육대 훈련 방식으로 교도관에게 기합을 주어 군기를 바로잡았다. 눈치 빠른 죄수들은 저런 교육을 교도관들이 받으면 이후로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떨어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죄수들은 삼삼오오 모여 새로 책임자로 온 척계광을 평가했다.
“알아서 기라는 뜻이야. 소장 대리가 어리다고 만만하게 봤다가는 골로 가겠어.”
“조심하자고. 작은 고추가 더 맵다고 하잖아.”
척계광이 교도소를 완전히 장악하는 대는 불과 4일이 걸리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작업장으로 가는 죄수들을 보며 최인범은 감탄했다.
‘역시 뛰어난 인물은 어려서부터 다르긴 다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