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한편 해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염전에는 200명 정도가 염부로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서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죄인들이 이곳의 염전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는 정상적으로 인건비를 받고 염부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철컹! 철컹!
죄인이 아닌 염부가 100명이고 나머지는 죄인들이다. 죄인들 중에 멀리 남쪽의 무안군에서 윤원형이 운영하는 염전에서 일하다가 여기서 염부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50명으로 그들은 소금을 나르는 소금 배에 타고 가다가 선장들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 격렬비열도에서 선상반란을 일으켰다.
“우리가 이렇게 죽지도 못하고 평생 고생하게 된 것은 저놈들 때문이야.”
밀무역하다가 추포된 이들에게 가해진 형은 염전에서 염부로 10년을 보내야하는 징역형이자 강제 노역형이다. 먹는 것은 잘 해주지만 너무 힘들어 10년을 버티고 살아날까 싶지 않았다.
그러니 염부들은 선장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선장 놈들을 죽여 버릴까?”
“선장들을 죽이고 같이 죽으려고? 죄수가 살인을 저지르면 가중 죄가 적용되어 무조건 20년 이상의 강제 노역형이야.”
“10년이나 30년이나 어차피 염전에서 소금에 절어 죽기는 마찬가지지.”
이들은 해군에서 만들게 된 염창 시의 염전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최인범은 해군에서도 염전을 직접 운영하게 배려했다.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은 해수면보다도 낮거나 사람의 배꼽 정도의 낮은 곳에 위치하게 된다.
무안 출신 죄수인 염부들은 처음에는 많은 일반인들이 소나 말을 가져와 방파제를 만들어 염전을 같이 만들어 앞으로 발목에 채진 쇠고랑 말고는 전과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고 판단해 그냥 팔자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발목에 쇠고랑을 찬 상태로 염전 일을 하다가 보니 상처가 나자 매일 같이 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차라리 광산이 좋아.”
“그러게.”
죄수로 광산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염전의 일은 그보다 2배는 힘이 든다. 소금이란 햇빛만 있다고 저절로 생산되지 않는다.
염전은 평평한 평지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저수지 쪽이 높고 결정지 쪽이 가장 낮은 구조로 되어 있다. 낙차를 이용하여 농도가 높아질수록 낮은 방향인 결정지 쪽으로 모여들게 된다.
염도가 점점 높아진 염수를 퍼 올리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작업이 너무 힘들다.
“하루가 천일은 되는 것 같아.”
“이 사람아. 우리가 지은 죄도 있으니 자살할 것 아니면 참게.”
저수지에서 올라온 해수는 하루 또는 이틀에 한 칸씩 햇볕 때문에 수증기가 증발한다. 물을 수중기로 변해 사라지고 소금기만 남아 점차로 진해져서 도중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10~20여일 후에 새하얀 천일염이 생산된다.
이곳 염창 시의 염전들은 모두 제일 힘든 과정은 죄수인 염부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냥 천일염이 생산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바닷물과 햇볕 그리고 죄수인 염부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땀방울이다.
소금을 쌓아놓고 간수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곳이 나무로 지은 소금창고로 그곳의 그늘에서 죄수인 염부들이 모여 작당을 했다.
“차라리 선장들을 죽이고 죄를 자복해 참형을 당해 죽어 버리자고.”
“그래, 좋아. 겨울은 쉴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니 차라리 그 놈들을 죽이고 우리도 같이 죽자.”
염전에서 염부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 자 그들은 같이 염부로 일하는 선장들을 살해하기로 모의했다. 드디어 그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가서 발목에 달린 쇠고랑을 연결하는 쇠사슬로 목을 감아 살해했다.
“죽어! 죽어!”
너무 힘들어 소금 창고의 그늘에서 쉬고 있던 선장들은 목이 졸려 모두 죽어버렸다. 4명이 한조가 되어 선장 10명을 일시에 죽여 버리는 대형 살인사건이 터져 버린 것이다.
진국의 행정체계는 시에 모두 법무부에서 발령해 보낸 재판관이 있었다. 고을 수령이 판결하는 조선과 달리 형사나 민사 사건이 터지면 재판관이 판결을 내린다.
물론 고을의 수령도 옆에서 같이 재판에 참여해 주심인 재판관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부심으로 죄인을 변호하는 권한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제도를 만든 이유는 지방의 수령은 고을에 있는 백성들의 어버이라 측은지심으로 죄인들에게 최소한의 인권이나 권리를 찾아 주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청의 검사가 죄인을 이미 심문했지만 법정에서 다시 물었다.
“왜 같은 입장인 죄수들을 살해했다나? 더구나 4명이 조를 짜서 일시에?”
죽음을 각오한 죄수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모두 토설했다. 모두 무안군수인 윤원형이 염부로 부리며 겉으로는 인건비를 준 것처럼 했지만 아주 극히 일부분만 주고 나머지는 주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금 배를 타고 소금을 나르는 중에 윤원형의 첩인 정난정과 여종들을 강간하고 나서 바닷물에 수장시켰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선장들이 먼저 일을 저지르고 나중에 우리도 여자들을 덮치라고 강요했습니다. 여자들을 죽이자고 한 것도 그들입니다.”
다들 능동적으로 동조하고 저지른 죄가 너무 무거워 은근히 겁이 나서 여자들을 목 졸라 죽여서 수장하자고 선장들에게 먼저 제안했었다. 이재에 밝았던 선장들은 여자들을 그냥 명나라로 끌고 가 노예로 팔자고 주장했었다.
선장들이야 이미 죽었으니 약간은 그들이 강제성을 보여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처음에는 죽자고 벌인 사건이라 강간과 살인을 토설했다.
“저희는 너무 억울합니다. 다 선장들의 농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선장들의 짓입니다.”
죄인들은 염부의 일이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자백했으나 막상 죽게 되자 마음이 변했다. 그래서 살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들이 살해해버린 선장들에게 죄를 조금이라도 더 뒤집어씌우며 구구하게 변명했다.
재판관은 모두 듣고 나자 판결을 내렸다.
“죄수의 몸으로 살인을 모의하고 결행해 결국 살인죄를 저질렀으니 참형을 처함!”
그러자 염창 군수가 나서서 마지막으로 변호하고 결국 극형을 받게 되자 항소를 했다.
“사형은 반드시 1심으로 끝나지 않으니 상급심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니 항소합니다.”
결국 상급 법원이 있는 단동시로 죄수들은 이동되어 다시 재판을 받았다. 거기서도 역시 죄수로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다시 참형을 선고 받았다. 그래서 변호사 자격을 가진 염창 군수가 다시 상고해서 마지막으로 봉황의 대법원에서 법무장관이 주심으로 판결했다.
‘참형은 너무 과하다고 판단해 30년 징역형인 강제 노역형에 처함.’
아무튼 재판을 받는 동안은 염전에서 일하지 않게 되자 죄수인 염부들은 조금은 전보다 생활이 나았다. 그리고 다시 염창 시로 가서 염부로 일하게 되었다.
“우리 재판이나 받으러 다니자고.”
“그게 좋겠어.”
아무것도 법에 대해 모르던 염부들이지만 재판을 여러 번 받게 되자 이제는 법에 대해 나름 빠끔해졌다. 그래서 그들은 40명이 집단으로 봉황성주이자 군왕인 최인범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많은 사람의 연명한 탄원서는 반드시 군왕에게 보내진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자신들은 조선의 백성이니 조선으로 보내서 재판을 받게 해야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지함 내무장관으로부터 그런 탄원서가 염창 군수를 경유해 도착했다고 보고 받자 최인범은 직접 죄인들을 만나기로 했다.
참으로 고약한 사건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미 소금은 팔아먹어 똥이 되어 버렸고. 중범죄인의 인도 협약대로 죄인들을 모조리 조선으로 돌려보내면 소금도 돌려달라고 주장하게 생겼어.’
최인범은 직접 염창 시로 가서 교도소에서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몇 가지 새로운 법을 만들게 되었다.
“법무장관 앞으로 쇠고랑은 모두 가죽으로 싸서 채우도록 하시오. 그리고 강제 노역의 경우 하루에 10시간을 넘지 않고 10시간 중에 2시간은 반드시 휴식 시간을 주도록 법을 만드시오.”
“넷!”
전에는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중간에 1시간의 휴식 시간만 주고 있었던 강제 노역형에서 조금 완화된 것이다.
최인범은 즉시 조선의 주상께 이런 사실을 적어 서찰로 보냈다. 의주를 거쳐 빠르게 한양으로 보내진 서찰은 주상에게 전달되었다.
“허! 이런 끔찍한 일이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죄인들은 모두 소환해 재판을 열어야 하옵니까?”
이런 물음에 주상은 답을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대로 죄수들을 소환해 조선에서 재판을 연다면 윤원형 무안군수가 저지른 죄악도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덮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심하던 주상은 결국 봉황성에서 한양으로 와있는 진명하를 불러 협의하게 되었다.
“그대 생각에는 어떤가? 우리가 소환을 요구하면 들어줄 것인가?”
“전하, 그것은 양국에 별로 이득이 가는 일이 아니옵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 있나?”
“예이.”
진명하가 제시한 절충안은 매우 절묘했다.
범죄가 벌어진 곳은 무인도인 격렬비열도의 해상이라 어느 나라 영토도 아닌 공해지역이라고 주장했다.
“공해?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닌 해역이라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범인들은 조선 사람이 아닌가?”
“그야 조선 사람이지만 그 범인들이 죄를 저지른 장소인 밀수행위로 추포된 곳은 명나라의 적산포 앞 해상이니 당연히 발해산동군왕께서 법을 집행할 장소이니 진왕부에서 처벌해야 하옵니다.”
“그렇게 해석이 되나?”
“그렇사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들이 살인죄를 저지른 곳은 진왕부의 염창시라 당연히 그들은 진왕부에서 법을 집행해야 대옵지요.”
나름 논리를 가지고 범인 인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진명하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범인 인도를 거부한 이유는 바로 소금과 10척의 배 때문이다.
“전하, 그러니 그들을 조선으로 소환해 달라고 주장할 근거가 약하옵니다. 엄연히 공해상인 해역에서 벌어진 죄니까요. 그리고 강간이나 살인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고 어떤 증거품이 없으니 재판 자체가 성립이 아니 되옵니다.”
“그러나 화물인 소금이나 배는 조선의 소유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건비 대신 받은 소금이라고 주장도 하니 소금의 소유주도 불분명한 상태로 되어 떠돌게 됐고 또한 배는 본래 선장들 소유니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는 어렵사옵니다.”
“그런 법이 진왕부에 있다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만약 밀수 행위를 할 경우는 해당 밀수품에 2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납부해야 하는 벌금형도 같이 적용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배 역시 조선에서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사옵니다.”
약간은 억지와 같은 논리로 소금이나 또는 배를 보내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주상은 이번 사건이 수면 아래도 묻어 두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결국 범인들의 소환이나 배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기로 정했다.
이 때문에 조선의 사헌부 관리로 전라도로 암행어사나 어사의 업무를 갔던 관리들은 줄줄이 파직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무안군수인 윤원형은 멀리 제주도로 귀양을 떠나게 되었다.
“윤원형이 운영하던 염전은 모두 압수해서 공개경매로 처분해 버리시오.”
“에이!”
이런 과정을 거쳐 무안군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염전은 싼 가격으로 월녀가 매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