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해군이 강화되면 난공불락이라는 산해관을 통과하지 않고 상륙작전으로 대륙을 공략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동반도 끝에 위치한 비사성과 대련을 수중에 넣을 필요성이 있었다.
최인범은 가정제가 자신에게 부여한 직책들을 최대한 이용해 반란군이란 표시를 내지 않으면서도 세력을 크게 확장할 생각이다.
그에게 주어진 발해요동산동 도독이란 직책은 요동이나 산동을 모두 통치하게 되는 지방장관이다. 또한 발해는 물론 황해 지역을 관장하는 해군제독이란 의미다. 더구나 산동 반도를 차지하면 그곳도 봉황성과 같이 일부가 자신의 봉토지로 변하게 되니 기회가 생기면 먼저 차지해야 될 곳이다.
‘비사성만 차지하면 요동 지역은 저절로 내 수중으로 들어오니 자순을 북경으로 보내서 비사성과 대련을 나에게 넘기도록 만들어야 돼.’
하지만 명나라에 가정제 같은 어리석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섣부르게 비사성을 달라고 해서 가정제나 명나라 신료들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는 없었다.
‘아직은 시기상조야.’
봉황성으로 돌아와 막상 통치기구를 국가형태로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 경험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행정조직이 움직이게 될지도 걱정이다.
“해군에서 필요한 함정이나 소금 배나 어선들도 모두 단동에서 건조해야 되니 해군기지 일부는 이전하고 조선소 부지로 내주도록 해.”
“넷!”
육로 수송에 필요한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니 가급적 해운을 이용하려면 배를 많이 건조해야 되니 해군기지가 있는 곳을 중점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있었다.
압록강의 의주 건너편에 있는 구 시가지의 경우 장소도 협소했다. 만약 조선과 전쟁이라도 벌이면 모든 생산시설은 조선의 화포공격으로 파괴될 위험성이 많아 다소 안전한 남쪽에 집중시킬 생각이다.
결국 단동시는 북항인 내항과 남항인 외항지역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해군기지가 있는 압록강 하구를 떠나 해변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다.
멀리 소룡도 대룡도라고 불리는 섬들이 보이고 있었다. 해군기지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해변에는 많은 염전들이 보였다. 모두 새로운 방법으로 천일염을 생산하는 곳이다.
“생각보다 더 큰 규모로 만들어 놨군.”
그러자 옆에 있는 대마불이 입을 떨 벌리고 응수했다.
“귀한 소금이 여기는 지천으로 널려 있네요. 소금 창고도 어마어마하게 크고요.”
대마불의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절도로 염전의 규모는 컸다.
“밥그릇 싸움을 장관들이 할 만 하군.”
상공부 장관인 홍성철과 농산부 장관인 장주한이 염전을 자기 관할로 두고 싶어 했던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다. 소금이 큰돈이 되고 또한 염전의 규모가 워낙 크다가 보니 벌어진 밥그릇 싸움이다.
결국 염전은 바다에서 나는 천일염이나 자염 이외에 암염도 포함된다고 해서 상공부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염전사업은 모두 최인범이 직접 투자했기 때문에 진왕부의 주된 수입원이다. 생산량의 2할은 국세청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왕실의 비자금인 내탕금이다.
염전이 생기면서 자연히 이곳에는 큰 소금 창고가 들어서고 소금 창고는 국세청이나 내수사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협조할 행정기구도 있었다. 새롭게 형성된 도시다 보니 작지만 계획도시처럼 도로도 넓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염창 시로 명명된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배를 이용해 요동은 물론 멀리 압록강 상류 지역까지 공급되었다. 그러나 황하에서 내려오는 황토 빛의 탁류 때문에 천일염은 약간 누런빛이다.
“소금의 질이 좋지 않군.”
최인범의 말에 진왕부의 내수사에서 파견 나와 있는 환관인 태일 태감이 이내 답했다.
“전하, 여기는 바닷물이 본래 그렇게 생겨서 그렇습니다.”
나이가 젊지만 이번에 동여진과 전투를 벌이다가 공교롭게 화살이 물건에 박혀 고자가 되었다. 그래서 내시부의 내수사 소속의 환관으로 이곳 염전의 소금 창고장으로 임명했다. 태일은 개명한 이름으로 최초의 환관이라는 뜻이다.
큰 자금을 만지는 곳이라 자순 태감 대신에 여진 출신의 환관을 내수사(內需司)의 관리로 임명해 내시부의 힘을 분산했다. 태일 태감은 내시부(內侍府)의 2인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소금의 질이 별로라 앞으로 계속 조선에서 천일염을 수입해야 되겠어.”
“전하, 한양에 계신 월녀 공주님께서 계속 보내줄 겁니다.”
“그렇겠군.”
진(眞)왕부는 왕비가 4명이고 빈이 1명, 궁녀가 150명, 환관은 자순태감과 태일 태감이 유일하다. 그리고 세습제가 아닌 의형제로 아진태 왕자와 월녀 공주가 있었다.
하층민의 경우 누런 소금도 황송해서 다들 좋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삶이 윤택해지는 백성들은 소금도 좋은 것으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라 조선에서 생산되는 소금(천일염이나 자염)을 수입할 생각이다.
마침 장주환 장관이 이곳에 와 있다가 급하게 찾아와 인사를 했다.
“전하, 어인 일로?”
“아무리 바빠도 한 번은 돌아 봐야지. 여기도 제법 큰 도시로 변했으니 군대가 주둔해야 되겠어.”
중요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자 봉황성의 직할 봉토지로 군량미를 생산하는 중요한 곳이라 군대가 지킬 필요성이 있었다. 또한 염전은 죄수들이 강제로 노역하는 장소라 반드시 군인이 있어야 한다.
범죄자의 경우 징역형으로 판결 받으면 수감 생활의 대부분은 강제 노역을 한다. 강제 노역 장소는 봉황성주가 소유한 직할 봉토지에서 농사일을 하거나 직할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게 된다.
사형인 극형이나 태형들을 줄이고 대신 징역형으로 판결해 생산성이 있는 사업 분야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게 조치를 내린 것이다.
“여기 염창 시에 6연대를 두면 되겠군. 법무부의 교도소도 건설하고 포로수용소도 만들어 두는 것이 좋겠어.”
“넷!”
이런 결정으로 배도치의 부하인 민정만이 6연대장으로 보병 2천명을 데리고 주둔하게 되었다. 병력이 많지 않지만 3개 연대가 구성되자 육군훈련소 소장인 배도치에게 추가로 제2사단장의 직책을 겸직시켰다.
‘왈짜패와 훈련소 교관이나 조교 출신들이니 죄수들의 군기는 확실하게 잡겠어.’
최인범은 장주환에게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경은 어디서 만들고 있나?”
“넷! 그건 봉황 성 내의 직영공장에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려준 망원경도 만들고 있나?”
“넷! 계속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망원경은 창고에 잘 비축해 두고 안경은 조선이나 왜로 수출할 수 있도록 해. 염전에 깔 자기를 생산하던 도공들은 본래 직업인 도자기 생산에 전력하도록 하고.”
“명을 따르겠나이다.”
망원경은 매우 중요한 군수품이라 아직은 군 장교들에게 보급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널리 보급하면 자칫 명나라나 다른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 망원경을 보유해 전투에서 유리한 점을 소멸시킬 수 있어 공개를 뒤로 이룬 것이다.
‘적당한 시기를 선택해 해군에게 먼저 지급하는 것이 좋겠어.’
상공부에 염전을 관할하도록 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광산 개발이나 또는 새로운 생산 시설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무부에서 국세를 부처별로 나누어 처리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재물을 모으는 부서다 보면 다른 곳에 비해 쉽게 예산배정을 받을 수 있어 그리 조치했다.
염창 시 북쪽은 넓은 평야지대로 이곳은 모두 봉황성주의 봉토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는 주로 감자가 많이 심고 있었다.
최인범은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염창시의 민항기 시장에게 지시했다.
“감자 보급이 어느 정도 됐으니 앞으로는 군량미 확보를 위해 밀이나 보리 콩을 심어야 되겠어.”
“알겠습니다.”
민항기 시장은 본시 충청남도 부여도호부의 염창리 출신으로 초시만 통과해 실업자로 자내다가 이곳으로 와서 졸지에 시장을 하니 벼락출세를 한 셈이다.
진(眞)왕부의 관할지역에는 민항기 시장과 비슷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대부분 행정 관료는 조선에서 넘어온 선비들이 차지하게 되자 벌어진 현상이다.
그러나 조선출신 관리들은 부정부패는 꿈꾸기 어렵다. 우선 내무부 장관인 이지함이 워낙 청렴한 사람이고 치안이나 사법권을 행사하는 대영묵 경찰청장이나 여무영 검찰총장이 모두 여진 출신이기 때문이다.
최인범은 다시 단동시 남항 지역으로 돌아와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지시하며 지내고 있었다. 임인기 해양부 장관에게 명령했다.
“해군에서 필요한 함정이나 조운선도 건조해야 하니 시설을 더 확장하고 인부들을 더 많이 고용하세요.”
“넷!”
초대형 화포를 선박에 장착하려다 그것은 포기했다. 선박 건조 기술자들 말에 그렇게 하면 투자한 재물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 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인범은 새로운 선박 건조는 돌격선인 거북선으로 정했다. 본래 있던 거북선보다 더 크고 적재된 화포의 수도 늘려서 건조하기로 했다.
“모두 8척을 건조하시오.”
“넷!”
화포 제작이나 거북선의 철갑은 명에서 가져온 청동대포를 녹여서 새로 제작하기로 했다.
“새로 제작하는 화포는 조선에서 들여온 화포보다 조금이라도 성능이 좋도록 개량해 보시오.”
“넷! 최선을 다해 개량해 보겠습니다.”
해양부 장관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는 이유는 해양부에서 소총이나 화포 제작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해군의 경우 승자총을 휴대하고 있으니 해군들에게 먼저 화승총인 소총을 지급하기 위해 해양부가 총포에 대한 개량이나 생산을 맡긴 것이다.
한편 봉황성에서는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진명하는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정식으로 왕국이라고 선포하지도 않았으니 타국에 사신을 보내는 업무도 없다.
또한 외무부는 조선의 예조와 비슷하지만 무슨 의례를 담당하지도 않으니 더욱 업무가 없었다. 다만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문제만 하면 다른 업무는 없었다.
“뭐 하는 일이 없으니 너무 지루하군.”
이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조선과 관계를 담당하는 조선국장이 급하게 장관실로 들어와 보고했다.
“조선의 의주에서 협상을 하겠다고 찾아 왔습니다.”
“무슨 협상?”
“구경에 관한 사항인데 위화도에 우리 주민들이 넘어가서 농작물을 재배해 국경선을 침범한다고 의주 부윤이 관리를 보냈습니다.”
“알았어, 가보도록 하지.”
아는 일이 별로 없던 처지가 진명하는 급하게 말을 타고 단동으로 가게 되었다. 상황을 들어 보니 압록강 내에 있는 삼각주인 위화도에 봉황성 주민으로 변한 조선출신들이 다시 들어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저희들은 본시 여기서 농사를 지었던 농부들입니다.”
“이제는 다른 나라가 아니요. 왜 분란을 일으키는 거요?”
“그게 아니죠. 아직도 소유권은 저희가 가진 땅입니다.”
“뭐요?”
위화도의 경우 전에는 거의 버려두던 땅이었으나 새로운 작물인 감자를 그곳에 심게 되자 맛이 좋아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이주해서 다른 나라 국민이 되었으니 위화도로 와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의주 부윤의 생각이다. 사실 위화도 이외에도 그런 분쟁 지역은 많았다.
결국 외무장관은 마침 단동에서 지내는 최인범을 만나 보고를 했다.
“전하, 아무래도 조선의 한양으로 가서 협상을 해야 될 것 같사옵니다.”
진(眞)왕부는 조선과 접한 곳에 터를 잡다가 보니 개국을 선포하기도 전에 국경분쟁이 터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