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계묘(癸卯: 1543)년의 새해가 밝아 왔다. 멀리 왜까지 떠났던 최인범이 봉황성으로 돌아오자 성내의 백성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환영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거리에는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부앙! 부앙!
마치 뱃고동 소리와 같은 큰 뿔피리 소리도 들리고 거리로 나온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많은 보병들이 장창을 들고 도로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충성! 충성!”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드디어 최인범은 진왕부(眞王府)로 바뀐 저택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공주부는 자연스럽게 조금 뒤의 측면에 위치해 왕궁의 내궁처럼 바뀌었다.
비록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왕부(王府)로 바뀐 위용을 나타내는 새로운 대형 건물이 조선양식으로 들어서 있었다.
명나라가 있는 대륙을 목표로 삼는다면 수도로 이곳 봉황성이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쪽의 연해주까지를 고려한다면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중심지 역할을 할 만한 좋은 위치다.
압록강 하구에 있는 단동에 있는 항구도 100리 정도 떨어져 있다. 도심 옆으로 압록강의 지류하천도 흐르고 있어 주민들이 필요한 식수나 농업용수도 충분히 조달되는 곳이다. 겨울에는 강이 얼어 사용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연간 6개월 이상은 하천을 이용해 물자를 수송할 수 있으니 적당했다.
빠르게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 최인범은 참모들을 모두 왕부의 편전으로 불렀다. 제일 먼저 질문한 내용은 새로 보급된 감자의 보급이다.
“감자의 보급은 어느 정도인가?”
이런 물음에 장주한이 나서서 답했다.
“전하, 전하께서 관할하는 전 지역에 감자의 보급이 끝나고 이번에 새로 편입된 동여진도 내년 봄이면 충분히 씨가 공급되어 파종될 것입니다.”
“식량이 부족하지는 않나?”
“보리나 콩과 밀은 남아도는 실정입니다.”
감자는 보리, 밀, 콩 등에 비해 생육기간도 짧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많았다. 그리고 다른 작물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큰 면적에 파종해야 수익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감자의 경우 날로 먹기는 어렵지만 삶거나 구워서 섭취하기 때문에 별도로 가공이 필요 없어 아주 작은 텃밭에서도 재배가 가능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섭취하는 식품이라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도 작은 터만 있으면 거름을 넣고 감자를 재배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풀이 자라지 않도록 비닐을 씌우지만 이곳에서는 그 대신 짚으로 덮어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고 있었다.
새로 보급된 고추도 마찬가지로 매운 맛이 나는 좋은 조미료기 때문에 재배 면적은 급격하게 늘었다. 더구나 씨를 뿌려 모종하는 방법의 파종이라 보급은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백성들은 이제 식량이 모자라 굶는 사태는 면하게 되었다. 감자는 장기적으로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지시했다.
“감자가 소출이 많더라도 장기 보관이 가능한 작물들도 계속 재배를 독려하시오.”
“예이.”
감자가 많이 생산되자 특히 돼지 사육두수도 대폭 늘어나고 식량의 증산은 대가축인 소나 말의 사육 두수가 느는 효과가 있었다.
왕부의 행정기구부터 확정할 필요성이 있었다.
“자순 태감! 그동안 조사한 인명부를 가지고 와!”
“넷!”
최인범은 자순과 이지함이 미리 선발해 놓은 인명부를 참고해 각 부처와 장관들을 임명하게 되었다. 부서가 정해지면 서 동시에 장관도 임명했다.
장관급으로 내무부, 외무부, 재무부, 법무부, 건설부, 상공부, 농산부, 교육부. 국방부, 해양부로 나누었다. 차관급인 청으로는 국세청, 경찰청, 검찰청, 조달청, 조폐청을 두었다.
지방 조직은 시도, 시군, 읍면으로 나누기로 했다. 시도의 경우 봉황직할시, 중앙도, 간서도, 간중도, 간동도로 나누고 시와 도청 소재지는 중앙도 단동시, 간서도 통화시, 간중도 이도백하시, 간동도 연해시로 정했다.
특히 간동도의 경우는 아직은 연해주 지역까지 군사나 행정 관료를 보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우선은 이름만 정해두고 이도백하의 간중도 도청에서 모두 관장하기로 했다.
왕부이기 때문에 내시부를 두어 비서실 업무의 책임자는 자순 태감이 담당하기로 했다. 각 부처가 결정되자 빠르게 인사는 마무리되었다.
“자순 태감은 앞으로 정보 업무는 취급하지 않도록 해.”
“넷!”
“시간이 나면 전에 해보고 싶다는 고대역사 연구나 역사서 편찬에 힘쓰고 세부적인 법령들을 만드는데 협조를 해주고.”
“명을 따르겠나이다.”
아무리 좋은 계책을 잘 쓰는 인물이라고 해도 견제할 필요성은 있었다. 함부로 자신의 허락 없이 비밀공작을 벌인 사건도 있어 정보업무는 하지 못하게 원천적으로 막아 버렸다.
‘항상 왕이나 왕비들과 밀착한 환관이라 조금만 풀어주면 명나라의 동창과 같은 꼴로 변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돼.’
전에야 술수도 필요했지만 이제는 되도록 명분이 있는 전쟁을 하거나 공명정대한 외교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민심도 얻게 되니 이렇게 결정했다.
최인범은 이지함을 따로 불러 물었다.
“내가 전에 말했던 행정 조직이 큰 무리는 없어 보이던가요?”
“넷! 명칭만 조금 생소해서 그렇지 별로 문제될 여지는 없습니다.”
“알았소. 그럼 내무장관께서 도지사나 기타 지방조직의 수령들은 추천해 보시오. 빨리 임명해야 되니 서두르세요.”
“넷!”
지방 행정 조직을 담당하는 내무부 장관에는 이지함으로 정하고 외무부는 진 빈의 오라비인 진명하가 결정되었다. 명나라에서 계속 활동하던 홍성철은 상공부 장관, 장주한은 농산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청장들로는 경찰청의 현영묵, 검찰청에는 임무영, 등이 임명되고 나머지는 명나라 출신이나 또는 조선에서 이주한 사람 그리고 고급 관리들은 여진족들이 임명되었다.
이지함 내무부 장관은 행정 조직의 수장을 겸하도록 해 자신이 봉황성에 없어도 그가 행정조직을 이끌 수 있도록 해두었다.
심복들은 대부분 군부에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진(眞)왕국은 사실상 군사정권일 수밖에 없었다.
수도인 봉황직할시도 1천명의 기마병과 보병 3천명, 포병1천명으로 구성된 총 5천명의 정규 연대가 결성되었다. 정향 대공주 측근으로 국방부 장관인 장전중이 겸직하게 되었다.
단동에도 5천명으로 구성된 정규군인 11연대가 주둔하게 되어 봉황직할시 안에서 주둔하는 10연대와 봉황산성에 주둔하는 12연대를 포함해 4사단이 결성되어 장전중 대령이 사단장도 겸직했다.
이런 조치에 철갑웅이 은근히 걱정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직책과 병력을 보유하는 것이 아닌가요?”
“무슨 소리야. 나야 봉황성에서 잘 지내지도 않고 항상 돌아다니는데. 주력군은 모두 다른 사람이 지휘관으로 정할 것인데. 그리고 전쟁이 나면 그들 중에 포병부대는 모두 제 1사단으로 배속될 것인데.”
“아하, 그렇군요.”
아무리 급하게 결정하는 조직이지만 함부로 검증이 안 된 사람에게 많은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권을 넘길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친위대인 제1사단은 각기 5천명으로 기마병으로 구성된 제1연대장 철갑웅 대령, 제2연대 장익덕 중령, 제3연대장 하후돈 중령으로 사단장은 철갑웅 대령으로 겸직시켰다.
“철 대령, 당분간 전투가 없고 외유도 없을 것이니 각 기마연대의 훈련에 집중하도록 해.”
“넷!”
“지금처럼 소규모 부대를 지휘하는 것이 아니고 대규모 부대인 기마병을 운용하게 되니 필요한 진법이나 전술들도 수시로 익혀두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명나라에서 총감부의 본위와 좌우위를 두라고 했으나 제1사단의 기마연대로 변경시켰다. 1사단의 1만5천명과 설화가 이끄는 5천명인 제4군단 직할 기마연대를 포함한 2만명의 기마병이 사실상 진(眞)나라의 주력군이다.
이제는 왕궁(왕부)으로 변하게 됐으니 인원은 적으나 제4연대로 명명된 왕궁의 외곽수비대는 1천명인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훈련소 교관이나 조교로 구성되고 연대장과 훈련소장은 배도치 중령이 담당하게 되었다.
왕부 내부의 경비연대인 제5연대는 명나라에서 데리고 온 고아출신과 여진족 소부족장 아들들로 구성했다.
경호 실장으로 변한 이창수 소령이 연대장이고 차장인 배지기, 아소패, 대마불 대위가 대대장을 겸직하면서 모두 1천명이 담당하게 되었다.
“경호 실장, 평소에는 1개 대대 병력이 호위하고 장거리의 경우는 2개 대대가 경호하도록 해.”
“넷!”
“대마불이 지휘하는 대대는 고아출신들을 주로 배치시키고.”
“명을 따르겠습니다.”
다소 어수선하지만 빠르게 필요한 행정이나 군사 조직을 끝내고 나자 최인범은 단동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으로 가서 해군을 정식으로 결성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조금 빠르게 이동하자 점심 무렵에 단동에 도착했다.
단동에서 제일 남쪽에 군항으로 만들어 놓아 판옥선 60척이 있었다. 이미 1함대와 2함대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직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이제 해군도 함정의 수나 병력의 수가 늘어났으니 계급을 조정할 필요성은 있었다. 지휘권 남용이란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그 문제는 경고하는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함대장, 아무리 대공주가 명령하고 또 자순 태감이 승낙한 군사작전이라고 하지만 내 명령 없이 군대를 이동시킨 것은 큰 잘못이야.”
“죄송합니다. 크게 잘못 됐습니다.”
“이번은 결과가 좋아 넘어가지만 앞으로는 위기 상황도 아닌데 지휘권을 함부로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
“넷!”
해군에는 아직 적당한 지휘관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아 종전과 같이 1. 2함대로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함대장들은 모두 중령으로 올리고 함장은 중위에서 대위로 올리기로 했다. 이미 하카타에서 해군들을 어느 정도 예우를 해주기로 해서 계급을 정해주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지시했다.
“육군에 비해 결코 대우가 낮지 않으니 일부 장교나 병사들만 따로 선발해서 1계급씩 올리도록 국방부에 문서로 보내도록 해.”
“넷!”
기본 틀만 잡아 주고 이제부터는 국방부를 활용할 생각이다. 군왕으로 하급 장교까지 진급에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그리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애로 사항이 있나?”
“넷! 부두 시설이 부족해 함정을 모두 접안하지 못해 상당히 불편합니다.”
“알았어, 내가 따로 생각이 있으니 불편해도 견디도록 해. 그 외에 다른 문제는?”
“남명에서 가져온 대형 화포를 어찌 처리하실 것인지요.”
“그 문제는 그 대포를 장착해 사용할 정도의 함정을 새로 건조해야 해결되니 창고에 잘 보관해 놓도록 해.”
최인범이 해군기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곳은 비사성의 대련 항이다. 어차피 산동 반도를 공략하려면 반드시 비사성과 대련항을 자신의 관할로 넣어야 하니 북경과 잘 절충해 볼 심산이다.
‘산동의 제태국을 분쇄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고 해서 점령해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하려면 외교부의 진명하 장관을 자금성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는 명나라로 사신을 보낼 수 없는 역적 자식인 신분이다. 그래서 그를 대신해 자순 태감을 보내기로 했다.
자순이라면 북경의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또한 자신을 감시하는 역할로 봉황성에 왔으니 한번 쯤 북경으로 보낼 필요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