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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02화 (302/519)

302화

이도백하를 떠나 통화로 향하는 중에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추운 지역에 드디어 눈이 오기 시작하니 이제는 병력을 함부로 이동시키기 곤란했다.

“빨리 마무리를 해야 되겠어.”

“칸! 내일 모래면 정월 초하루인 새해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한해가 어찌 지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당초에는 새로운 삶이라 보다 자유롭고 여유롭게 산다고 했었는데 이미 편안한 삶을 기대하기는 틀렸다.

‘후우! 아내도 여럿이고 너무 복잡하군.’

뭔가 차분하게 정리하려면 항상 복병처럼 새로운 사건이 터져 그동안 그런 일을 수습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매우 어수선하고 뭐하나 깔끔한 것이 없었다.

조선에서도 윤임을 그냥 살려주고 왔으니 끝난 일 같지도 않고 백삼수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처음 인연이 맺어졌던 윤 진사가족들은 비교적 정리가 잘된 편이다.

자신이 매우 특별한 삶을 사는 처지라 최인범는 인연을 매우 중시하고 있었다. 자신도 어떤 깊은 인연 때문에 조선 시대로 와서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잡스러운 생각을 하다가 문뜩 허전함을 느끼고 두리번거렸다.

“내가 뭘 흘렸나? 이상하네?”

“아, 항상 같이 다니던 백두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죠.”

“오라, 그렇군.”

호위병들도 늘어서 이제 신변 보호가 백두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백두도 우수한 품종이니 새끼들을 늘릴 필요성 때문에 자순 태감과 같이 봉황성으로 보냈다.

잠시 우수한 품종을 생각하다 보니 흑혈풍도 그렇고 적혈풍도 새끼들을 낳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봉황성으로 돌아가면 되도록 차분하게 질서도 잡고 그런 일을 하면서 겨울을 보낼 생각을 했다.

“암놈의 품종이 좋아야 새끼도 똑똑 할 건데.”

앞자락을 전혀 말하지 않고 갑자가 이렇게 말하자 철갑웅이 즉시 답했다.

“칸,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왕자님들은 모두 우수할 겁니다. 부인들의 머리가 모두다 우수하고 미모도 뛰어나니까요.”

“허!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내가 언제 있지도 않은 내 자식을 거론했나? 백두나 흑혈풍의 새끼들을 말하는 거지. 네 말이 조금 이상하다. 쯧! 쯧! 내가 언제 부인들을 암놈이라고 칭했냐?”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철 중령은 항상 그 입을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여러 번이나 충고했건만 여전하군.”

“앞으로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철 중령은 그게 탈이야. 입이 너무 요도 방정이라.”

막상 이렇게 나무라지만 철갑웅의 말이 투박해서 그렇지 크게 잘못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설화는 물론 정향 대공주도 야심이 너무 많았다. 물론 소피아나 왕미령도 야심들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 그녀들 소생들이 나중에 서로 권력을 가지고 다투게 될지 모르니 은근히 걱정이다.

‘형제간에 싸우는 꼴을 보기는 싫은데.’

하지만 아직 여자들이 임신한 경우가 없으니 벌써 그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해가 떨어질 무렵에 통화에 도착했다. 소식을 미리 알아서 그런지 여진족들이 대로로 나와 엎어져 절을 하며 환영했다.

“칸! 칸!”

일부는 천천세를 외치고 일부는 만만세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대륙의 영향을 받아 이제는 군왕의 신분리라고 해서 천천세를 외치는 것이고 만만세는 그보다는 더 큰 제왕이 된다고 예측하거나 염원해서 외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백두산 출신이라고 알려진 최인범을 여진족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사실 최인범을 배척하는 부류들이 제일 많은 곳은 왜나 명나라도 아니고 조선이다.

건주여진족이 뭉치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여진족들은 이미 건주여진을 일통한 최인범을 황제가 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제는 이들이 모두 내가 거두어야 하는 백성들이야.’

사람이란 자신을 좋아하면 그 쪽으로 정이 쏠리게 되니 최인범은 전과는 달리 여진족들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부하들의 구성원도 대부분 여진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환호하는 무리들 중에는 이제 족장으로 오른 어린 아진태도 보이고 아설화와 아진태의 어미인 진율향도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오라비인 진명화도 굽실거리며 환영해 주었다.

“봉황성에서 있던 소부족장들도 모두 모였군.”

“그렇습니다. 그들도 본시 여기가 고향인 사람이 많아서요.”

“그래? 처음 듣는 말이군.”

“금나라 시절에 여기서 살다가 서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환호성을 토하는 여진족들을 뒤로하고 커다란 저택으로 들어서자 뒤따라 많은 소부족장들이 들어왔다. 전통에 따라 최인범은 아진태의 후견인으로 확정되는 의식을 거행했다.

아진태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태워 생긴 재를 손가락의 피와 함께 소주에 타서 최인범에게 두 손으로 바치는 의식이다.

이런 특별한 의식을 거행하는 이유는 앞으로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모두 최인범에게 맡긴다는 의미다. 또한 피를 나눈 형제라는 의미가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아진태는 상속권은 전혀 없는 최인범의 수양아들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미 아진태의 아비인 아패록과 의형제를 맺었기 때문에 삼촌이자 아비로 변한 것이다.

최인범도 같은 의식을 행해서 피와 재로 변한 머리카락을 탄 소주를 아진태와 그의 모친에게 넘겨주었다. 아진태는 매우 황공하다는 듯이 크게 외쳤다.

“부왕, 너무 영광이옵니다.”

진유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격하고 있었다.

“전하, 소첩 영광이옵니다.”

아진태는 양자가 되고 그녀의 어미는 최인범의 첩실인 후궁으로 살게 된다. 이는 여진족 즉 부여, 고구려, 여진, 몽골 등 북방민족의 오랜 전통인 형사취수제에 따르는 것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굴종해 충성맹세를 함으로 새로운 강자의 일족이 되어 종족의 미래를 보장 받게 된다.

많은 소부족장들도 이런 의식 절차에 따라 아들들은 친위대로 이미 보냈고 이제는 딸들을 최인범에게 바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어린 여자도 있고 때로는 성숙한 처녀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조혼 풍습이 시행되는 곳이라 대체적으로 아주 어린 소녀가 대부분이다.

이미 소식을 전해서 그런지 서여진족인 소부족장들이 바치게 되는 딸들은 모두 30명이다. 동여진보다 인구수나 또는 군세가 자신들이 더 강하니 수가 많은 것이다.

최인범은 이제 명실상부한 건주여진족의 최고 수장이 된 것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왕이라고 칭해도 되는 영토와 군사를 지닌 위치다.

그래서 최인범은 이번 기회에 설화에게 확실하게 작위를 내릴 필요성이 있어 하명했다.

“이제, 아 부인은 앞으로 왕비로 칭하도록 하라.”

“에이.”

많은 여자들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아 설화의 공로가 제일 크고 그녀 때문에 쉽게 큰 군세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미 여진족을 나라의 주된 구성원이라고 인정해 국호를 진(眞)으로 결정했으니 주저할 필요도 없었다.

거창한 책봉식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자신도 군왕이란 어떤 즉위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설화는 드디어 자신을 왕비로 인정하자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물론 왕비로 됐다고 해서 정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다른 여자는 모르지만 정향 대공주에게도 왕비라는 칭호가 이미 봉황성에서 통용되기 때문이다.

서로 앞으로 진로도 협의해야 되기 때문에 최인범은 설화와 같은 침소에 들었다. 전통에 따라 대형 파오에서 지내는 것이다.

파오 안에는 여러 명의 소녀들이 같이 있었다. 소녀들이 보거나 듣는 가운데 정사를 벌리려다 보니 다소 어색하지만 이미 왕으로 살게 됐으니 제왕은 무치라는 생각에 잡념을 떨치고 격한 정사를 벌였다.

진하게 정사를 끝내고 나자 최인범은 자신이 구상하는 건주 여진들에 대한 군사 편제에 대해 설명했다. 6개 지역에 모두 현제 정예군으로 판단되는 1천명의 기병과 나중에 2천명으로 늘리고 나머지는 농민군인 보병 3000명으로 예비 연대를 둔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듣던 설화는 반대하는 의견의 토했다.

“칸! 다른 곳은 별 상관이 없지만 이도백화는 칸의 고향입니다. 그곳에 예비 연대만 배치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그곳은 은광이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고 반드시 더 많은 군대가 주둔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지휘관이 그곳에는 있어야 합니다.”

현지 사정이야 자신보다 설화가 잘 알기 때문에 최인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정했다.

“이미 병사들의 배치가 모두 끝났으니 그럼 이렇게 하지. 이도백화에 남았던 2천명을 다시 그곳으로 보내고 지휘관은 금일여를 대령인 사단장으로 정해서 11 예비사단 본부를 두는 것이 좋겠군. 기마병 2천명은 사단장 직할 기마부대로 정하고 나머지 3천명은 보급이나 일반 보병으로 새롭게 차츰 늘려서 구성하면 되겠어.”

“아하, 그런 방법이 있군요.”

결국 당초계획에서는 약간 변경되어 환인에 28예비연대, 집안에 29예비연대, 백산에 30예비연대가 주둔하고 통화에는 10사단 본부를 두고 이도백하와 똑 같이 2천명의 기마병과 3000명의 보병을 두기로 결정되었다.

예비연대나 예비 사단들은 그 지역의 치안도 담당하고 유사시 적국으로 변할 수도 있는 조선과 대응하기 위한 지역 방어부대다.

“예비 연대나 사단은 치안과 암록강과 두만강을 지키는 지역 방우 임무를 띤 방위부대라 함부로 주둔지에서 이동하면 안 되는 부대야.”

“알았어요.”

10사단장은 금이여로 연대장들은 금오여, 금육여 금칠여로 입명하게 되었다. 모두 그동안 흑풍대를 잘 이끈 공로를 인정해 지역방위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다.

금삼여와 금사여는 사단장의 직할 기마부대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기마병들은 일부는 아진태 부하들이고 대부분 동여진 출신들을 배치하기로 정했다.

결국 흑풍대를 이끈 10명의 지휘관들은 모두 2개 예비사단의 중요한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배치하게 되었다.

이런 배치가 끝나고 나자 설화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거취를 물었다.

“전하, 저는 앞으로 어디에서 머물죠?”

“왜? 대공주가 있으니 봉황성으로 가기는 싫은가?”

“예, 그곳은 꼭 다른 사람 집 같아 좋아 보이지 않아요.”

“알았어. 그럼 설화는 지금처럼 5천명의 기마병을 데리고 통화에서 계속 주둔해 있어.”

“알았어요.”

단순하게 봉황성의 대공주 때문에 이런 조치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심양을 공략하려면 반드시 통화에 기마부대가 주둔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비 연대와 사단은 이동시키면 안 되기 때문에 환인에는 총감부의 우위장인 하후돈이 지휘하는 5천명의 기마병을 주둔시키고 통화에는 설화가 지휘하는 기마병 5천명을 주둔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 설화는 10과 11사단을 지휘하는 군단장으로 계급은 소장이야.”

“어머, 저는 그런 보직은 별로인데요. 그냥 기마부대를 직접 지휘하는 것이 좋죠.”

“설화야 직속부하로 5천명의 기마병이 있잖아. 군대의 지휘체계는 명확하게 잡아야 하니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금일여 등 흑풍대 출신인 지휘관들을 잘 통제하라는 뜻이야.”

“알았어요.”

아진태가 이끌던 통화의 기마병 3천명과 남게 된 동여진 출신들 2천명을 포함해 5천명을 데리고 봉황성으로 가게 되었다. 이제 후실과 수양아들로 결정된 진유향과 아진태 그리고 진유향의 오라비인 진명화도 같이 떠나고 있었다.

진유향에게도 직급이 내려져 빈으로 칭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명목이야 어린 아진태가 건주우위라는 세습인 직책을 물려받은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건주여진을 관리하게 만든 조직들은 겨우 이름만 남기고 완전히 소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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