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김신완 함대장이 발견한 배는 포르투갈의 범선이다. 범선들은 주산군도에서 교역하기 위해 왔다.
갑자기 40척의 배들이 양자강 안에서 바다로 몰려나오자 명나라 수군들이라고 판단했다. 명나라는 여전히 해금정책을 쓰기 때문에 범선들은 정신없이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보자 도망치는 것으로 보아 밀수선이 분명했다. 그러자 김신완 함대장은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김신완 함대장의 명령에 따라 판옥선의 전방에 장착된 천자총통이 매섭게 불을 품었다. 선회하느라 가장 근접한 범선을 노렸다. 지휘선에 있는 천자총통만 발사했다.
쾅! 슈우웅! 광! 와지직!
천보 이상이나 날아가는 천자총통에서 쏜 대장군전이 보기 좋게 날아가 범선의 작은 돛대 하나를 부러트렸다. 그러나 범선은 남은 돛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남쪽을 향해 멀리 달아났다.
범선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김신완 함대장은 투덜거렸다.
“에이, 너무 높이 조준했어.”
“함대장님, 추적할까요?”
“아니, 그냥 놔둬. 추적해도 잡기 어려워.”
판옥선에 많은 화물을 싣고 있고 범선과의 거리도 있었다. 더구나 남쪽 해역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으니 범선의 추적을 포기했다. 그리고 서양 배를 꼭 격침시켜야만 할 어떤 이유도 명확하게 있지 않았다.
“저 놈들은 분명 태대장군님께서 왜의 하타카 항구에서 항로에 대해 교육하시며 말씀하시던 서양인들이 타고 다니는 범선이야.”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주산군도로 온다던 밀수선이 확실하네요.”
“짐만 없었으면 나포하는 건데.”
사소한 사건이지만 이후로 포르투갈의 범선들은 한동안 남쪽에서 올라오지 못했다. 양자강 하구 지역에 있는 보타도를 위시한 주산군도나 영파로 밀무역을 하기 위해 단 한척도 올라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명나라가 지금까지는 없었던 수군을 본격적으로 양성해 해안까지 완전히 봉쇄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고 인식한 것이다.
더구나 전에는 없었던 이상한 대포로 무서운 공격을 당하고 보니 기겁했다. 돛대가 부러졌기 망정이지 뱃전에 박혔으면 단 한방에 침몰당할 위력을 지닌 무서운 무기다.
40척으로 구성된 제 1함대는 여유롭게 기수를 돌려 북쪽으로 향했다. 마침 날씨도 쾌청하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자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가게 되었다.
“전 함대. 백령도 쪽으로!”
“넷!”
제1함대는 백령도로 가기 위해 격렬비열도를 지니는 항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는 항로가 해류도 조금은 빨라 배가 더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고 주변에 암초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봉황성의 해군들이 최초로 서양인들 배와 조우한 것이다. 해군들이 서해에서 의외의 성과를 거두고 봉황성을 향해 북상하는 동안 멀리 백두산 근처에서는 또 다른 만남들이 있었다.
조선의 최북단인 압록강 변······.
추운 겨울이지만 비교적 날씨도 따듯하고 아직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최인범 일행은 덕원부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빠르게 개마고원으로 갔다. 개마고원을 지나서 혜산을 지나 완전히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넌 최인범은 빠르게 달리다가 말이 지치자 잠시 멈추어 쉬면서 철갑웅에게 물었다.
“철 중령, 척후병들은 얼마나 보냈나?”
“말을 각기 2필을 가지고 모두 10명이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이도백하에 도착했겠군.”
“대략 그런 정도 됐을 겁니다.”
당초 계획은 통화로 가서 건주 우위의 수장이 된 어린 아진태를 만나 후견인으로 확정하는 절차를 밟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동여진족들이 갑자기 1만명이나 되는 많은 기마병을 이끌고 이도백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곳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설화가 있지만 내가 직접 가서 금일여 등을 지휘하는 것이 좋아.’
근접경호 중대장인 이창수 중위가 약간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태대장군님, 혹시 적이 매복을 설 수도 있어요.”
그러자 최인범은 별 걱정을 다 한다는 듯이 쉽게 답했다.
“매복이 있어도 충분히 뚫어서 흑풍대와 합류할 수 있어.”
옆에 있는 철갑웅도 자신이 있다는 듯이 응수했다.
“친위대대는 최고 전사들이니 가능하죠.”
다각 다각.
말이 씨가 되는 것인지 전방에서 척후병 한명이 급하게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태대장군님, 전방의 개활지에 동여진의 병사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모두 3000명 정도 됩니다. 아무래도 우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보고를 받자 최인범은 급하게 물었다.
“다른 척후병들은?”
“우회하는 방법으로 이도백하로 갔습니다.”
동여진의 1만명의 기마병이 부대를 나뉘어 이도백하의 흑풍대를 포위해서 공격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정도면 충분히 흑풍대 병력으로 대적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물었다.
“다른 소식은 없나?”
“태대장군님, 이도백하에 지금 5천 기마병만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설화 이씨께서 통화로 데리고 갔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동여진족의 병력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아 보입니다. 소신의 판단으로는 약 1만5000명의 기마병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뭐라 동여진에 그만한 기마병이 있나?”
“소신의 판단으로는 어중이떠중이 다 끌어 모아 최후의 결전을 대비하나 봅니다.”
이런 척후병의 보고에 최인범은 잠시 생각했다. 우회한다고 해서 매복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적보다 차라리 수가 많은 보이는 적이 상대하기가 편하다고 판단했다.
“철 중령, 정면으로 돌진해서 가르고 통과하자.”
“넷! 준비를 하겠습니다.”
주로 중앙과 측면 돌파에 강한 기마전의 경우 선두에서 인솔하는 무장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 적의 진용을 쉽게 무너트릴 수 있었다. 많은 적들이 모여 있는 적진을 정면으로 돌파할 경우는 삼각 대형을 이루어 반으로 가르며 지나가게 된다.
‘다들 뛰어난 무술을 지녔으니 가능해.’
뛰어난 기마술과 무술을 지닌 200명의 친위대대 정도 병력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장기전은 모르지만 기습적으로 공격하면 어떤 기마 부대도 쉽게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대를 잠시 멈추고 전방으로 척후병을 보내도록.”
“넷!”
적이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지 알아야한다. 그 때문에 일단 이동을 멈추고 전방으로 척후병들을 내보냈다. 다행이 처음 보고된 그대로 동여진족은 개활지에 약 3000명이 포진되어 있었다. 나머지 병력은 다른 지역에서 포진해 있는 것 같았다.
“철 중령, 늦으면 병력이 더 증가될 것 같지?”
“그렇습니다. 파오를 보니 소부족장들이 모여 있는 본진의 지원부대 같습니다.”
아직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모르니 적들은 분산되어 있다. 만약 시간을 끌다가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면 완전히 포위될 위험성도 높았다.
“내일 동이 뜨기 직전에 통과하자.”
“넷!”
최인범의 명령에 부대원들은 모두 전투준비를 하며 푹 쉬었다. 그 동안 힘들게 이동했으니 말이나 사람이 지쳐있어 최상의 전력으로 돌진하기 위해서는 지금은 쉬는 것이 좋았다.
“최대한 무게를 줄여.”
“넷!”
1000명의 기마병이 무장할 무기나 기타 개인장구 그리고 당장 전투에서는 필요 없는 무기나 보급품은 작은 동굴 안에 넣고 입구를 나무로 막아 위장해 놓았다. 흑풍대와 합류하면 그들과 같이 다시 이곳으로 와서 그때 회수해갈 요량이다.
“장소는 확실하게 아는 거지?”
“넷!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병사가 찾은 동굴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이윽고 동이 뜰 무렵에 친위대대 기마병들은 이동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거진 숲길이 끝나고 넓은 개활지가 펼쳐졌다. 개활지에는 크고 작은 많은 파오들이 있고 간간히 기마병이 주둔하는 부대 주변을 도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군.”
“그렇군요.”
적진을 통과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대부분 날이 밝아오면 다소 긴장을 늦추는 경우가 많았다.
“2열 횡대로!”
명령을 받자 200명의 기마병들은 최인범을 중심으로 좌우에 2열 횡대로 밀착해 길게 도열했다. 아직은 숲속이라 적에게 노출된 상태가 아니다. 이곳을 통과해야 이도백화로 가서 흑풍대의 금일여 등과 합류하게 된다.
기마병들은 모두 활을 들고 있었다. 돌격과 동시에 화살을 연사하고 이후에는 장검을 들고 적을 베어가며 통과할 계획이다.
“속보!”
명령이 떨어지자 기마병들은 말을 조금 빠르게 몰아 전진했다. 제일 선두에는 최인범이 흑혈풍을 타고 옆에는 적혈풍이 같이 이동 중이다. 약간 뒤에는 철씨 형제가 언월도를 들고 보좌했다. 그 뒤로는 근접경호원 40명이 양쪽으로 나뉘어 내달렸다.
피리리링! 피리리링!
선두에서 빠르게 내달리던 최인범이 먼저 효시를 적진을 향해 날렸다. 그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전력 질주!”
전력 질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마병들은 화살을 날리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적진을 향해 내달렸다. 두 번째 화살을 발사해 적진에 화살이 도착하자 동여진족은 그제야 적이 나타난 줄 알고 급하게 움직였다.
“적이다! 적이야!”
크게 적이 나타났다고 크게 외치던 보초나 일찍 깨어 있던 여진족은 그런 소리를 외치며 죽어버렸다. 수없이 낙하되는 화살에 관통되어 죽은 것이다.
제일 선두에서 질주하는 최인범은 흑혈검을 좌우로 휘두르며 빠르게 돌진했다. 옆에서 달리는 철씨 형제는 언월도를 비켜들고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빠르게 달리는 속도 때문에 휘두르지 않아도 언월도의 날에 여진족들은 붉은 피를 품으며 힘없이 쓰려졌다.
사각!
“으악!”
사각!
“컥!”
매섭게 좌우로 크게 휘두르는 흑혈검의 칼날에 수많은 적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대충 베인 적들은 뒤에서 달려오는 기마병의 말발굽에 치여 죽었다. 일부는 기마병이 휘두르는 장검에 목이 달아나고 있었다.
“우악! 악!”
두두두두
“악! 으악!”
쐐기 모양으로 적진의 중심을 완전히 반으로 쩍 가르며 달렸다. 적들은 당황해서 양쪽으로 급하게 몸을 피했다. 그러나 중심을 통과하는 200명의 기마병들이라 피하지도 못했다. 최인범과 대대원들이 지나간 자리는 완전히 초토화 되어 버렸다.
최인범과 기마병이 통과한 중심지역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