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우연과 필연인 만남들>
대륙의 큰 강인 황하나 양자강은 모두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토사로 하구에는 무수한 모래톱이 있었다. 마침 불어온 북서풍을 타고 빠르게 황해를 이동한 제 1함대는 양자강의 하구에 접근했다.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인 함대는 낮은 수심에도 불구하고 쉽게 하구를 지나 양자강 안으로 들어섰다. 하구를 지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함대의 해군들은 다들 긴장했다.
만약 적으로 오인해 강변에서 명나라에서 화포를 쏘거나 또는 화공이라도 펼치면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폭이 넓다가 보니 판옥선들은 충분히 회피 동작을 취하거나 회전해서 대항할 수 있었다.
김신완 함대장은 함장들에게 명령했다.
“함장들은 격군을 줄여서 갑판으로 올라오게 해서 경계를 강화하고. 각 함정은 2척씩 조를 이루어 화포는 한쪽씩 담당하도록 해.”
“넷!”
언제고 양쪽의 강변에 적들이 나타나면 함포 사격으로 응사할 준비를 하고 천천히 이동했다. 역풍 바람을 타고 거슬러 오르지만 그래도 노를 저어가야 이동이 수월했다. 그러다 보니 40척의 선단은 길게 늘어서서 운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봉황성의 표시인 두 마리의 봉황이 그려진 대형 돛을 발견나자 강변에 있던 관원이 작은 배 2척을 타고 함대로 천천ㅌ히 접근했다.
관리는 큰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오는 어디 소속의 배요?”
“우린 봉황성의 수군이요. 남경의 헌강왕께 소금을 드리러 왔으니 길을 안내하시오.”
“알았소. 우리를 따라 오시오.”
명나라 관원이 타고 왔던 배 한 척은 급하게 강변으로 가더니 뭐라 대화를 나누었다. 이어서 병사가 말을 타고 신속하게 서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파발을 이용해 남경으로 알리려는 것 같았다.
서로 교전 없이 상대방의 소속을 정확하게 알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최인범은 가정제로부터 군왕으로 봉해졌으나 아직은 봉황성에서 독립된 나라라고 선포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니 명나라 관원으로는 적대할 수 없는 우군인 것이다.
많은 판옥선들이 넓은 양자강을 거슬러 천천히 올라가자 명나라 백성들이나 관원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강변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관원들은 조운선에 실린 엄청난 수의 소금가마니를 보며 욕심이 나는 듯이 마른 침을 삼키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게 다 소금이면 엄청난 재물이군.”
“역시, 대공주마마는 시집을 너무 잘 간 거야.”
이들은 전통적으로 받아만 먹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봉황성에서 부마도위인 최인범이 장인인 헌강왕에게 진상하기 위해 많은 소금을 보낸 것으로 착각했다.
설사 그런 착각이 아니더라도 관원들이나 백성들은 소금이 들어오자 다들 환호했다.
“와! 소금이다.”
명나라의 경우 소금은 대부분 산동성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소금가마에 불을 때서 자염을 생산하고 있지만 주된 생산지는 산동 지역이다.
산동에 제태국이 생기고 나자 소금의 유통이 중단되었다. 졸지에 그곳에서 생산된 소금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자 소금 가격은 금값으로 변했다. 돈을 많이 줘도 생활필수품인 소금 사기가 힘든 상황이라 백성들의 삶은 어려워졌다.
“이제야 소금을 살 수가 있겠어.”
“부마도위께서 우리 남쪽 사람들을 살리는군.”
“아내가 예쁘면 처가에게 잘하잖아.”
“당연하지.”
이들은 시집간 딸이 도둑이라는 소리는 모르나 보다. 아직도 남편과 합궁 조차하지 못한 정향대공주가 자신의 추락하는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친정에서 화포를 가져가려는 것을 전혀 모르니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이다.
드디어 남경에 도착해 정박하고 조운선에 실린 소금을 하역했다. 소금을 가져 왔다는 소식에 헌강왕이 너무 기뻐 부두까지 찾아와서 환영해 주었다.
“고맙네, 어려운 때 소금을 보내줘서.”
“전하, 이건 대공주 마마께서 보낸 서찰이옵니다.”
멀리 타국으로 시집을 보낸 딸이 서찰을 보냈다니 헌강왕은 기쁜 마음에 읽었다. 처음에는 좋아하더니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김신완 함대장도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오면서 생각해 보니 화포는 애당초 정향 대공주가 공짜로 달라고 했으니 공짜로 가져가고 소금은 팔아서 금괴나 다른 뭐를 가져갈 생각이다. 그러나 헌강왕의 일그러지는 표정으로 보아 화포를 공짜로 가져가기는 틀린 것 같았다.
‘에이, 소금은 덤으로 생겼으니 줘야겠네.’
김신완은 헌강왕이 서찰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표정이 밝아지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포는 뭐로?”
“마침 제일 크고 좋은 화포가 있으니 그것을 가져가게.”
“알겠습니다.”
김신완은 헌강왕과 같이 강변의 창고로 가보니 이건 평소에 장착하고 다니던 종류의 평범한 화포가 아니라 그야말로 엄청나게 큰 화포다. 모두 20문이 있었다.
너무 무거워 도저히 땅에서는 이동이 불가능해 보였다. 성곽 위에도 장착하기가 힘들어 성안에 장착해 놓고 그저 공성전에서나 사용하면 적당한 초대형 화포다.
“전하, 화포가 너무 크군요. 그런데 성능은 어떤가요?”
“철탄을 사용하면 3000보는 나가네.”
“그렇게 멀리 나가요?”
“우선 포가 조선에서 제일 크다는 천자총통 보다 3배는 더 크지 않나?”
3배까지 되지는 않고 조금 짧아 보였지만 분명 초대형 화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대륙인들이 무식하게 큰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야 알지만 아무튼 너무 거창해서 배에 싣기도 힘들어 보였다.
“전하, 소금을 주고 사가는 화포라 성능 실험을 해보고 가져가야 합니다.”
“알았네, 그렇게 하지.”
보아하니 욕심껏 무조건 크게만 만들어 놓고 이동도 불편하고 마땅하게 쓸 용도가 없어 창고에 처박아 놓은 초대형 화포다.
“그런데 제작은 언제?”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네.”
“그렇다면 별로 오래된 화포는 아니군요.”
김신완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이런 무지막지한 화포만 넘겨준다니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성능이 시원치 않으면 가지고 가서 녹여 다른 화포로 새로 만들 생각을 했다.
‘보아하니 폐기하기는 조금 미련이 있고 처치 곤란한 화포를 넘겨줄 요량 같군. 소금을 주고 사가는 것이니 고철로 싸게 사야 되겠어.’
김신완은 화포장을 불러 은밀하게 지시했다.
“저들이 시험 발사를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자네가 적당이 알아서 발사를 해보게.”
“알겠습니다. 약간 습한 화약을 써서 발사를 해보죠.”
“그게 좋겠어.”
결국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초대형 화포 2문을 땅에 거치하고 주변에 나무로 급하게 고정하고 실험발사를 해보았다.
콰쾅! 콰광!
귀를 솜으로 막고 발사해도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큰 소리로 초대형 화포는 발사되었다. 하지만 사거리는 헌강왕이 말했던 3000보에는 미치지 못하고 고작 2000보 정도만 날아갔다. 화포를 그냥 창고에 처박아 놓아 습기도 차고 더구나 화약까지 약간 불량품을 사용하니 사거리가 떨어져 버린 것이다. 가지고 가서 청소하고 화약도 상품을 사용하면 헌강왕이 말하던 사거리보다 멀 수도 있었다.
‘흠! 활용 방법만 잘 연구하면 아주 좋은 화포야.’
그러나 김신완은 매우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약간 불만스럽게 말했다.
“전하, 화포의 크기에 비해 성능이 별로 좋지는 않군요.”
“그런가? 대공주의 부탁도 있으니 가지고 가게. 내가 자져온 소금은 적당한 가격에 사주겠네. 저 화포에서 사용할 철탄도 1000발이 있으니 모조리 가지고 가게.”
“감사합니다.”
헌강왕도 이번 거래가 불만은 없었다. 막상 만들고 보니 이론과는 달라 화포가 너무 크기만 해 지상에서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철이나 다름이 없으나 딸의 요구대로 화포를 넘겨주어 체면은 차릴 수 있었다.
소금 역시 가격이 하늘 높이 올라서 큰돈이 된다. 하지만 그보다는 주변의 호족들에 소금을 분배해 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을 더욱 견고하게 다질 수 있다.
김신완은 본래 생각하던 화포와는 전혀 다른 초대형화포 20문과 철탄 1000발을 인수해 나포한 조운선에 싣게 되었다. 봉황성으로 가져가서 녹이면 얼마든지 다른 무기를 만들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딸이 어렵게 부탁한 화포인데 쓸 만한 것을 보내지 못해서 그러지 헌강왕은 다른 배려를 해주었다. 근처인 안휘성에서는 구리가 많이 나오고 다른 지역에서 주석도 비교적 많이 나오는 점 때문에 많은 구리와 주석을 넘겨주었다.
“봉황성으로 가져가서 필요한 화포를 새로 만들게.”
“알겠습니다.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헌강왕은 소금으로 이득이 많다는 점을 잘 아니 다시 그에 대해 강조했다.
“앞으로도 소금을 계속해서 보내 주게. 그때는 필요한 물품으로 교환하도록 하지.”
“전하,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선 구리와 주석을 많이 준비해 주세요. 지금 그것들이 제일 많이 필요합니다. 이주민들도 많고 자체적으로 청동으로 화폐도 만들어야 되니까요. 어쩌면 식량도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곳은 논농사를 짓기가 어려운 곳이니까요.”
“알았네.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해두지.”
조선은 지방 관아에서 화폐를 발행했었지만 지금은 한양에서만 상평통보를 발행한다. 명나라의 경우는 여전히 지방 정부에서도 화폐를 발행하기 때문에 화폐발행을 구실로 삼은 것이다.
김신완은 태대장군의 명령 없이 남경으로 왔기 때문에 봉황성으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독촉해서 화포와 구리와 주석도 싣고 더구나 각궁제작에 필요한 물소 뿔도 많이 구해서 떠나게 되었다.
“전하, 다음에는 상인들이 소금을 가지고 올 겁니다. 그들이 사용할 신분패를 발행해 주세요.”
헌강왕으로부터 10개의 구리로 만든 둥그런 신분패를 받게 되었다. 조선의 마패와 같이 신분패이면서 때로는 파발도 이용하고 또는 서찰을 보낼 때는 인장으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최인범이 왜에서 발행한 주인장과 비슷한 기능을 지녔다.
헌강왕은 신분패의 용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신분패 하나에 말은 5필씩 사용이 가능하네. 그리고 선박도 5척이 들어 올수가 있고. 다만 내가 관장하는 남쪽에서만 통용되니 그렇게 하시게.”
“감사합니다.”
헌강왕은 떠나는 김신완에게 별도의 신분패를 주었다. 함대를 이끌고 언제든지 남쪽 해안으로 들어와 항구에 정박할 수 있고 관아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
헌강왕은 북경의 방침과 달리 독자적으로 항구를 개방하겠다는 뜻이다. 이것도 아직 봉황성이 독립국가로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다.
헌강왕은 그것으로 부족해 금괴와 도자기 그리고 비단을 듬뿍 안겨주며 말했다.
“오느라 고생을 했으니 가지고 가서 쓰게.”
“감사합니다.”
황제국의 황족인 헌강왕이 직급도 애매모호한 일개 지방의 수군 지휘관에게 조금은 과할 정도로 잘 대해주는 이유는 정향 대공주 때문이다. 헌강왕의 판단에는 여기로 심부름을 보낼 정도면 정향 대공주의 심복부하라고 판단해 앞으로도 잘 보필해 달라는 뜻이다.
빠르게 이동해 양자강에서 나와 먼 바다로 막 접어들 무렵. 김신완 함대장은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보지 못한 요상한 배들을 섬들 사이에서 발견했다.
“어라! 저 배들은 도대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