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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98화 (298/519)

298화

이런 명령이 떨어지자 김신완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출신이라 명나라 대공주가 정실부인으로 판단하고는 있지만 봉황성으로 와서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인구의 수로 보나 군사력을 지닌 위치로 보아 분명 아설화인 여진 여자가 정실 같았다. 그리고 정실부인을 정향 대공주로 인정해도 이건 분명히 군권에 관한 사항이다.

‘이것 난감하군. 거절하기도 그렇고.’

봉황성은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 태대장군이 부재중일 경우는 누가 군권을 행사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일견 그런 이유로 다소 무질서해 보인다. 하지만 외부의 침입이 전혀 없고 각자 본분에만 충실하니 별로 문제되지는 않았다.

김신완은 명령을 받기는 했다만 뭐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물었다.

“대공주마마, 남명으로 가서 여기로 가져오시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요?”

“그야 남명에 있는 화포를 가져오려는 거지요. 부마도위께서 화포를 많이 필요하신 모양이니 우선 그곳에서 대포를 가져와 전력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니 다녀오세요.”

화포를 남명에서 가져 오라는 명령이라 대답했다.

“명을 따르겠나이다.”

“속히 다녀오세요.”

“에이.”

김신완은 일단 대답하고 나서 대공주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대답했다고 해서 당장 남명으로 떠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와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해볼 필요가 있었다.

김신완은 2함대장인 이민준을 만나 먼저 상의했다.

“대공주님께서 우리에게 남명으로 가서 화포를 가져오라니 어찌 하면 좋겠소. 태대장군의 명령도 없이 해군을 움직이기는 곤란하지 않소.”

“그렇군요. 대공주님의 성품도 보통은 넘어 보이는데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고 문제를 삼겠군요.”

두 사람이 만나도 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함대장들은 이곳 봉황성에서 제일 높은 지위에 있는 자순 태감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 벼슬로 제일 높기도 하고 최인범이 자순 태감을 군대의 전술을 짜는 책사(策士)인 군사(軍司)로 쓴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가 결정권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자순을 만나 대공주의 명령을 보고하자 자순 역시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허! 대공주마마께서 고약한 명령을 내리셨어.”

자순 역시 군대를 움직이는 중요한 문제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자순은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함대장은 대공주마마의 서찰을 가지고 남명을 다녀오도록 하시오. 어차피 남명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협조해야 되니 이번 기회에 남명과 교역로를 개척하는 차원에서 다녀오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쪽의 상황이나 또는 헌강왕의 의중도 알아보는 것이 좋겠소.”

“하지만 제가 떠나면 해군 전력에 이상이 생기지 않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이미 대맹선 50척과 화포를 조선의 의주에서 넘겨받기로 했으니 별로 문제되지는 않아요. 기왕에 가는 길이고 산동 반도에 포진한 제태군의 수군을 만날 수도 있으니 판옥선 30척으로 1함대를 구성해 남명에 다녀오세요. 조선에서 조운선으로 개조된 대맹선 30척을 판옥선으로 교체해서 2함대는 새로 구성할 것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해군은 왜에서 활동하거나 부산포에서 많은 화물을 싣고 오게 된 30척의 판옥선을 모조리 제1함대로 포함시켜 남명으로 떠나게 되었다.

많은 판옥선이 해군으로 편입되자 이제는 압록강 내의 내륙항을 함대의 모항으로 쓰기는 곤란했다. 겨울이면 얼음이 어는 터라 전략적으로 매우 불리한 곳이다.

“다른 곳에 해군 기지를 만들어야 되겠어.”

“태대장군께서 오시면 결정해 주시겠죠.”

이들이 단동을 떠나는 가운데 조선의 제물포를 떠난 소금 배나 또는 벼와 무기를 적재한 조운선 즉 대맹선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김신완 함대장은 남명과 직항로를 개척할 필요성이 있었다. 종전에 이용한 한반도 쪽이 아니 산동 반도의 제일 동쪽 끝인 적산포 해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산동 반도를 공략해야 하니 한번 가보자고.”

“넷!”

산동 반도 끝의 적산포 항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조선과 교역하던 항구라 익숙한 곳이다.

적산포 지역이 훤하게 보이자 해군들은 환호성을 토했다.

“와! 산동이 별로 멀지 않네.”

“그렇군.”

조선의 웅진 반도와 산동 반도의 끝은 100킬로미터를 조금 넘는 정도라 사실 중간 해역을 지나가다보면 양쪽의 육지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운항한다고 할 정도의 거리다.

함대는 모두 3개의 무리를 이루고 남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선쪽에서 10척의 조운선이 빠른 속도로 적산포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어떻게 조선의 조운선이 여기로 오는 거야?”

“함대장님, 혹시 조선에서 우리 봉황성 몰래 제태국과 교역하는 것 아닐까요?”

“설마? 밀수선이겠지.”

“함대장님, 조운선으로 밀수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저렇게 10척이나 동원해 밀수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장차 조선도 가상의 적이 될 수 있고 산동에 생긴 제태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 나라가 밀착할 경우에는 태대장군께서 어렵게 이룩한 왜와의 교역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반드시 나포해서 조운선에 싣고 있는 화물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김신완 함대장은 즉시 전 함정에 명령을 내렸다.

“전 함대! 전투준비. 함포 사격은 각 함정 당 1발씩 위협으로.”

“넷!”

둥둥! 둥둥! 둥둥!

지휘선에서 대북이 울리고 여러 개의 깃발이 오르자 함정들에 있는 격군들이 힘차게 노를 저었다.

둥둥! 둥둥!

그동안 계속 돛을 이용해 운항하던 판옥선의 격군들은 힘차게 노를 저었다.

“영차! 영차!”

격군은 힘든 보직이지만 때로는 매우 편할 때도 있었다. 순풍을 만나면 격군은 그저 배안에서 잡담을 나누며 장기나 두면서 시간을 보낸다.

격침되면 그대로 수장될 수 있지만 상갑판 때문에 전투가 벌어져도 거의 피해는 없었다. 그러니 격군들은 위에 사정과는 무관하게 격군장이 두들기는 북소리에 그저 힘차게 노만 저으면 된다.

이윽고 격군장의 북소리가 느려지고 있었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북소리에 맞추어 격군들은 노랫가락을 토해내며 노를 저었다. 이윽고 격군장이 북을 아주 작게 난타하자 격군들은 노를 끌어 올렸다. 보아하니 적선과 조우하는 것 같았다.

“격군! 모두 무기 들고 갑판으로!”

“예이! 쌍 무슨 일이야.”

무기를 들고 갑판으로 나오라고 명령하니 이건 분명 백정전이라 격군들은 은근히 짜증이 났다.

“화포는 뭐에 써먹느라고 한발만 쏘고 지랄이야. 포수가 다 죽었나?”

말이야 이렇게 하지만 동작들은 매우 빨랐다. 급하게 갑판위로 나와 보자 염려하던 백경전이 아니고 조선의 조운선을 나포하는 중이다.

“어라? 왜 조운선이 여기에 있지?”

“그러게 이상하군.”

높은 위치에서 조운선을 내려다보자 배 안에는 소금 가마니가 가득했다. 이미 갑판에 있던 사수 20명이 조운선에 올라 사공들을 추포해 밧줄로 묶고 있었다.

격렬비열도에서 여자들을 수장한 사공들은 밧줄로 묶여 판옥선에 올랐다.

“우린 무안 군수가 시키는 대로 소금을 싣고 적산포로 가는 중입니다.”

“무슨 소리야? 그 소금 배는 제물포로 갔는데.”

“그게 아닙니다. 제물포로 간다는 것은 허위고 사실은 적산포로 소금을 판매하러 가던 중입니다.”

이미 사공들이 판옥선을 보자 도망치려고 했다. 사공들이 변명하는 말도 배마다 다르고 하는 행동들도 의심할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김신완 함장은 더 이상 그들의 행적을 문초하지는 않았다. 빨리 이동해야 된다고 판단해 함장들에게 즉시 명령했다.

“나포한 배를 끌고서 남명으로 간다. 그리고 사공들은 일단 선실에 가둬.”

“넷!”

남명으로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김신완 함대장은 소금 배와 같이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일단 소금은 남경으로 가지고 가서 화포 대금으로 넘겨줄 생각이다.

‘태대장군께서 남의 신세를 지지 않는 성격이니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거야.’

정향 대공주의 친정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전혀 다른 나라다. 그러니 굳이 처음부터 그쪽의 신세를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조선의 여자가 정실이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명나라 공주보다는 여진족인 아설화가 훨씬 진(眞)국의 왕후인 정실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백성들의 분포가 여진이 제일 많으니 그게 제일 좋아.’

조선과 다소 풍습은 다르지만 모습이나 또는 실생활에서 닮은 점이 많은 여진족이다. 사실 함경북도 쪽의 사람들이나 여진족은 거의 같은 식생활이나 풍습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소금 배도 달고 가기 때문에 김신완 함대장은 함장들에게 명령했다.

“기수를 약간 동쪽으로 돌려. 너무 명나라 해안선에 가깝게 접근되지 않도록 해.”

“넷!”

그렇다고 해서 조선 수군들이 혹시 침공한다고 오해할 소지가 많다가 보니 조선의 해안선과도 가깝게 항해할 수도 없었다. 결국 30척에서 소금 배를 포함해 이제 40척으로 늘어난 함대는 동쪽에 있는 격렬비열도 쪽으로 기수를 돌려 이동하게 되었다.

명나라 동해안과 가깝게 접근하다 보면 제태국의 수군과 조우될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조선쪽으로 더 다가서서 운항하는 것이다.

특히 명나라 해안지역은 모래톱이 많아 접근해서 운항하기도 약간 문제가 있었다. 사실 명나라가 오래전부터 내륙에 운하를 건설한 이유도 동해안의 해안이 배를 운항하기가 열악했기 때문이다.

생각지 못한 우연으로 많은 소금을 차지한 김신완 함장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설마하니 소금을 팔아서 화포를 사서 돌아가면 잘못한 행동이라고 문책 당하지는 않겠지.’

한편 격렬비열도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정난정은 갑자기 근처 해역에 나타난 대규모 선단을 발견하고 너무 기뻤다. 섬의 높은 곳에 올라 손을 미친듯이 흔들고 크게 외쳤다.

“여기요! 여기!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격렬비열도에서 제1함대의 해군들의 배가 환하게 보인다. 하지만 너무 멀어 그녀가 애타게 외치면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미쳐. 미리 불 피울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는 무심한 배들을 바라보며 정난정은 비통한 심정으로 크게 외쳤다.

“배 터지게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놈들아!”

사실 너무 멀어서 군선인 판옥선이 아니고 무역선으로 판단해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정난정은 욕하다 때로는 너무 기가 막혀 크게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무인도에서 너무 오랫동안 혼자 보내다 보니 점점 정신분열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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