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조선이 봉황성으로 화포를 함부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제조에 필요한 구리 때문이다. 대부분의 구리를 왜에서 구입해야 하는 실정에 갑자기 많은 화포를 봉황성에 넘기면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긴다.
병조참판인 한정문은 그런 점을 강조했다.
“전하, 대맹선을 갑자기 팔아도 문제지만 의주에 있는 화포도 모조리 넘겨 달리니 그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리되면 완전히 의주는 무방비 상태입니다.”
“화포를 팔고 다시 만들면 되지 않나?”
“전하, 화포를 생산하려면 청동 재료인 구리 조달이 힘들어서 어렵습니다. 왜에서는 구리를 대부분 봉황성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주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참판의 걱정은 충분히 알겠지만 어찌 하겠소. 과인의 판단에는 봉황성에서 우릴 침범할 의사는 없고 협조를 구하는 것 같으니 우선 화포도 같이 넘겨줍시다.”
“전하, 북방의 방어란 항상 방심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참판, 북방의 방어가 문제라면 평양의 화포를 의주로 보내고 한양의 화포를 평양으로 보내는 것이 최선이니 그리 시행하시오.”
“예이.”
조선은 화포를 매우 중시하니 의형제라지만 함부로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왕실의 약점을 틀어주고 나서 슬며시 대맹선과 화포를 팔라고 요구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주상은 만약 전쟁이라도 터지면 무엇보다도 기마병이 문제라고 판단해 지시했다.
“이번에 전국으로 보낸 어사들에게 마정관리도 모두 살펴보라고 하시오. 과인은 그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주상이 결심을 하게 되자 이런 내용은 빠르게 파발을 통해 전국으로 연락되었다.
한정문이 주상과 독대한 사실은 대비 전에도 알려졌다. 독대해서 나눈 정확한 대화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주상이 왜에서 벌어진 암살 미수 사건의 증거인 면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자 윤 대비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대비전으로 대전의 침방 상궁이 찾아와 보고했다.
“마마, 주상전하께서 면포를 모두 불에 때웠사옵니다.”
“뭐라? 모조리 태웠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암살의 배후가 자신이란 증거인 면포를 주상께서 직접 태웠다고 하니 윤 대비는 우선은 안심할 수 있었다. 잘하면 그 사건은 덮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윤임을 살렸으니 내가 저지른 일도 덮기로 했군.’
이 무렵. 한양에서는 2건의 살인 사건으로 포도청이 발칵 뒤집혔다. 서대문 밖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주모와 역시 근처에 사는 무당이다.
처음에는 그저 원한이나 금품을 노리고 저지른 살인사건이고 별도의 사건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포도청에서는 특별히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좌포청에 속한 무료부장인 최복동이 사건조사에 투입되자 여러 가지 사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좌포도청에 속한 무료부장인 최복동은 좌포도대장을 만나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포도대장님, 이번에 벌어진 2건의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소신이 판단하기에는 살인청부업자인 검귀가 저지른 사건이 분명합니다.”
“뭐라. 어찌 검귀가 저지른 범행이라고 그렇게 쉽게 단정하시오?”
“사신을 대충 살펴보면 단검으로 찌른 것 같아 보이옵니다. 하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검술 실력이 뛰어난 범인이 장검으로 찌른 것이 확실합니다.”
“범인이 한 사람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2건의 살인이 모두 똑 같은 수법으로 정확하게 왼쪽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리고 사체를 유기한 방법도 똑 같고요. 또한 두 여자 모두 금품을 소지한 흔적이 없고 지니고 있던 상평통보도 그대로 있습니다.”
한양에는 사람이 많이 살기 때문에 끝없이 각종 범죄가 일어난다. 그러나 2명의 여자가 한 사람이 죽였다면 이는 그냥 평범한 살인사건이 아니다.
한양의 포도청에는 많은 죄수들이 감옥이 넘치도록 투옥되어 있었다. 갑자기 감옥의 죄수들이 늘어난 것은 벽서 사건 때문에 검문검색을 워낙 심하게 하다 보니 그동안 잡지 못했던 범인들을 잡아들이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포도대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검귀 조직을 완전히 소탕하기로 결정하고 투옥된 왈짜패를 문초하기 시작했다.
“너는 알지? 검귀 조직이 어디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지?”
“전 전혀 모릅니다. 제가 어찌 그런 무서운 검귀를 알아요.”
“어허! 네놈이 정녕 고신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저는 차라리 맞아 죽겠습니다.”
고신은 법으로 허용된 고문이다. 죄를 자복 받기 위해 매는 1회에 30대를 넘지 못하게 한다. 또한 3일 이내에 다시 고문할 수 없었다. 또한 고문은 하루 한 차례를 원칙으로 하고, 특히 중죄를 저지른 범인에게도 2회를 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법과는 전혀 다르게 심한 고문이 벌어진다. 그래서 죄를 자복하지 않는다고 심하게 매질해 죽는 경우가 많았다.
주상께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그것을 절대로 금지하도록 각 관아로 알렸기 때문에 법이 허용하는 범위 밖으로 고문을 가할 수 없었다.
매질해도 검귀의 근거지를 자백 받지 못하자 포도대장은 종사관을 시켜 회유책을 썼다. 왈짜패가 저지른 노름판 습격사건을 가지고 은근히 풀어 준다고 말하며 흥정했다.
“네놈이 저지른 범죄를 사면해 줄 것이니 사실 대로 말해.”
“저는 죽어도 모릅니다.”
왈짜패들은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검으로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이는 검귀 조직이 무서워서도 토설할 수 없었다. 자신이 토설한 사실을 알면 검귀 조직이 자길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왈짜패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감옥에서 지내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다.
최복동은 죽은 두 여자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두 여자는 모두 윤 대비와 관련이 있는 여자들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범인의 실체를 어느 정도 밝히는 정도로 포도대장에게 보고했다.
검귀 조직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슬며시 자신은 뒤로 물러났다. 그 대신 그동안 수집된 정보를 동료인 포도청의 젊은 부장들이나 포교들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주막에서 젊은 포교를 만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네 요즈음 검귀 조직의 은신처 수사 때문에 바쁘지?”
“최 부장님, 말도 마세요. 집에 안 들어 간지 벌써 여러 날이죠.”
“내가 언뜻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뭔지 말해보세요.”
최복동은 목소리를 낮추어 은밀하게 입을 열었다.
“김 부장! 남산골로 가서 남정이란 기방을 한번 찾아가 보게. 잘하면 거기서 검귀가 어디서 숨어 있는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알았어요. 포졸들을 데리고 가보죠.”
최복동이 자신이 직접 검귀 조직을 수사하지 않고 동료에게 정보를 흘려주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살인청부업자 조직인 검귀를 완전히 소탕하기는 힘들다. 그러니 자신의 안전 문제는 염려를 안 하더라도 월녀가 혹시 검귀의 표적이 될까 염려해 뒤로 물어난 것이다.
‘백삼수를 태대장군께서 살려주셨으니 내가 더 이상 그 살인 사건에 개입할 필요는 없어.’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월하 아씨께서도 백삼수를 살려두고 그 사건에서 손을 털라고 했다. 최복동은 살인사건 대신에 마포나루에 있는 노점들을 돌아다니며 자나 말을 속이는 상인들을 찾는 일에만 전념했다.
한편 한양의 포도청에서 주모와 무당의 수사가 진행되고 범인으로 검귀가 지목되자 대비전의 윤 대비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김 상궁, 어찌해서 무당과 주모가 죽은 것인지 알 수 있나?”
“모르옵니다. 소인이 무당집에 찾아가 보니 사라져 이상했는데 죽었다고 하니 금시초문입니다.”
“난정이 소식은 없고.”
“없사옵니다. 사람을 제물포로 보냈지만 소금 배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너무 이상하군. 올 때가 벌써 지났는데.”
검귀에게 넘겨준 면포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부리던 검귀 조직이 포도청의 추적을 받자 윤 대비는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를 오래 진행하다 보면 자신이 최인범을 죽이려고 했던 사실이 완전히 표면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네, 당분간 대궐 밖으로 출입을 삼가게.”
“예, 마마. 그리하겠습니다.”
윤 대비는 긴긴 겨울밤을 가슴 졸이며 보내고 있었다. 벌써 한양으로 와야 할 정난정도 오지를 않았다. 무안군수인 남동생은 서찰을 보내 정난정이 왜 소식이 없냐고 물어 오니 은근히 걱정이다.
“왜 자꾸만 내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지? 이상한 일이야.”
“마마, 너무 염려마세요.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다소 일정이 늦어지는 거죠.”
윤 대비는 정난정도 기다리지만 그녀가 가져 올 소금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를 하려면 대신들에게 적당히 재물도 풀어야 세가 형성된다. 윤 대비는 내수사의 자금을 전혀 쓸 수 없는 위치로 변했다.
왜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게 된 주상은 비록 자신에게 어떤 문의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소사의 물건을 관리하는 주체는 자신의 손을 떠나 이미 중궁전으로 넘어가버렸다.
검귀 조직을 찾는 가운데 한양은 표면으로는 조용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그중에 한사람은 백삼수다.
백삼수는 마포나루에서 만난 젊은 과부와 같이 과천까지 내려와 약간의 재물을 챙기고 헤어졌다. 워낙 다급해서 젊은 과부와 살까도 생각했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자 양이 찰 수가 없었다.
결국 같이 살자고 울며 매달리는 과천의 젊은 과부를 뿌리치고 고향인 수원으로 내려가 있었다.
백삼수는 한양에서 자신과 연결된 주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기겁하며 놀랐다.
‘헉! 주모가 죽었다니 자칫하면 내가 범인으로 몰리겠어.’
숨어 살기는 고향이 좋았다. 하지만 나쁜 점이 더 많았다. 백삼수는 그래서 자신과 별로 연고가 없다고 판단되는 먼 고장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충청도나 전라도 쪽이 좋겠어.’
백삼수는 여장을 풀고 남자로 돌아와 남쪽으로 향했다. 인심이 좋다는 충청도로 가서 숨어 지내던가 아니면 음식 솜씨가 좋은 전라도에서 정착해볼 생각이다.
‘세상사는 재미가 없으니 입이라도 즐거워야지.’
백삼수는 입은 짧지만 미각이 매우 발달해 음식의 질이야 너무 잘 안다. 그러니 도망자 신세지만 입맛을 다시며 전라도 쪽으로 가기위해 천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령을 넘어 정산을 거쳐 부여로 해서 나룻배를 타고 강경이나 웅천으로 가면 되겠어.’
먹고는 살아야 하니 박물장사를 하며 이동하는 중이다. 그가 남쪽으로 가는 중 멀리 봉황성에서는 대공주가 화를 내며 외쳤다.
“뭐! 또 아 부인을 만나러 갔어.”
“그게 아니오라 동 여진의 준동을 막으려고.”
“무슨 소리야? 힘도 없는 동여진 때문에 그곳으로 가다니. 내가 보기에는 아 부인을 만나고 싶어 간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대공주는 부마도위가 자길 거들떠보지 않자 믿을 것은 친정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해군 1함대장인 김신완에게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함대장은 1함대를 이끌고 남경을 다녀오세요. 가서 내가 써준 서찰을 부왕께 보여드리세요. 그러면 주는 것이 있을 것이니 가져오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