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살면서 배우자의 사망이 제일 큰 충격이다. 주상은 왕후가 죽고 복중의 아이까지 죽었으니 후유증이 심해 보였다.
실언했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형님, 새로 형수님도 만났고 아이도 있다니 빨리 과거는 잊으세요. 그래야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요.”
“고맙네.”
이후 두 사람은 사담처럼 조선에서 장려해야 할 경제적인 조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 최인범이 말하고 주상이 동조해 주는 식의 대화다.
무엇보다 새롭게 보급된 작물인 감자나 고구마 재배의 장려와 벼를 모내기 방식으로 재배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또한 광산 개발 등도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방법으로 생산되는 천일염에 대해 말했다.
“조선에서는 계속해서 천일염의 생산을 장려하세요. 제가 봉황성으로 돌아가서 산동 반도의 반란군 문제만 해결하면 천일염을 명나라에 대량으로 수출할 길이 열리니까요. 물론 그 전에는 봉황성과 왜에 판매하면 되고요.”
“알았네. 그렇게 하지.”
서로의 신분이 전에 만났을 때와는 달라졌다. 두 사람 모두 군왕이라 정치적인 문제를 협의할 수밖에 없었다. 주상은 슬며시 옆에서 있는 상선에게 지시했다.
“자네 그만 나가보게. 개인적으로 아우님에게 할 말이 있으니까.”
“에이.”
상선까지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주상은 보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상선이 들어서는 안 되는 대화도 있기 때문에 내보내고 하는 터라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명나라를 의식해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제는 봉황성도 독자적으로 왕국처럼 세력을 이룰 것으로 결심했다. 그런 사실을 주상도 확실하게 알았다. 그래서 상호불가침조약과 같은 평화협정과 교역에서 관세 부과 방식에 대해서도 협의를 끝냈다.
주상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거론했다.
“아우님이 만드는 나라와 우리 조선은 법과 제도가 같았으면 좋겠네. 그래야 서로 다른 나라라는 느낌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되네.”
“알겠습니다. 가급적 조선의 경국대전을 참고해 법을 만들도록 하죠.”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라 단정하기는 힘들다. 어차피 조선에서 인재를 들여와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해야 되니 기본 골격은 조선의 법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물론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법이야 개정하거나 또는 새로 만들어야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법도 많으니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간이 나면 경국대전을 정독해 봐야 되겠어.’
특히 앞으로 정복 전쟁으로 세력을 확장해야 하니 조선식의 노비 제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를 물려서 노비생활을 시키는 점에서는 반대하고 있으니 조금은 조선과는 다른 제도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진지하게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나자 주상은 대궐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우님이 만드는 나라가 어떤지 나중에 가서 꼭 보고 싶군.”
“한 번 찾아오세요.”
“그렇게 하지.”
두 사람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주상은 대궐로 향하고 최인범은 여전히 마포나루에서 머물렀다. 월녀를 만나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최인범은 월녀를 만나 새로운 사업인 염전에 대해 묻고 그에 대해 몇 가지 지시했다.
“너무 독식하지 말고 적당히 사업을 벌여.”
“예, 오라버니.”
“기회가 생기면 경상남도에 있는 염전을 인수해서 왜로 수출해보고. 감자와 고구마는 아직은 왜로 반출되는 것을 조심해. 대신 분말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법을 연구해 봐.”
“어머, 그런 방법이 있겠네요.”
명나라는 유달리 튀긴 음식을 좋아하지만 왜도 생선에 녹말가루를 묻혀 튀기는 음식을 상당히 좋아한다. 튀김을 고급음식으로 섭취하고 있으니 사업 방침을 알려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월녀의 장래를 생각해 부드럽게 권했다.
“월녀야! 너도 이제 좋은 남자를 만나서 혼인해야지. 네가 잘 알아봐서 신랑을 고르도록 해.”
“알았어요.”
결국 그동안 거론된 남자나 또는 최인범이 권하는 남자들에 대해 월녀가 직접 알아보고 혼인을 결정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월녀까지 만나고 나자 조선에서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다.
월녀가 도성으로 들어가자 최인범은 근접경호원들과 같이 말에 올라 한강을 따라 이동했다. 도성의 동쪽에 주둔해 있는 친위부대와 합류하게 되었다.
최인범은 자순 태감을 만나자 즉시 하문했다.
“자순 태감, 떠날 준비는 끝났나?”
“넷! 풍기에서 인삼씨도 충분히 가져오고 표고버섯 종균도 가져왔습니다. 그곳을 들려 올라온 친위대원들은 별도로 1000명이 무장할 무기들도 구입해 떠날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됐군. 그럼 바로 떠나기로 하지.”
“넷!”
왕십리에 머물던 기마병들과 같이 빠르게 북쪽으로 향했다. 그가 한양에서 떠나는 가운데 어느새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더니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최인범은 옆에 있는 자순에게 말했다.
“압록강으로 올라가면 강물이 얼었겠군.”
“전하, 여기보다 추우니 그렇겠죠. 아마 평양의 대동강도 얼기는 했겠지만 말을 타고 도강하기는 힘들 겁니다.”
최인범이 강물이 어는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봉황성으로 가면 바로 군사를 움직일 생각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전쟁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적이 방심할 때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설화를 먼저 만나는 것이 좋겠군.’
봉황성으로 가서 챙기기보다 설화를 만나서 동여진족에 대한 문제를 먼저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야만 후방이 안심되어 요동 지역의 공략이 쉽다. 최인범은 가정제가 준 허울뿐인 군왕의 작위로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대원들과 같이 양주에 도착하자 자순을 불러 지시했다.
“태감은 봉황성으로 올라가고 나는 여기서 함경도로 갈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해.”
“전하, 봉황성에서 공주님이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먼저 아 부인을 만나러 가시다니요?”
“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동여진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함경도로 가는 건데. 아무튼 봉황성으로 가서 조선의 경국대전을 참고해 모든 법이나 새롭게 만들어 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결국 자순 태감은 봉황성으로 향하고 최인범과 그의 친위대대인 기마부대는 함경도 쪽으로 향했다.
한편 최인범이 한양을 떠나고 나자 도성에서는 변화가 생겼다. 벽서사건으로 검문검색을 심하게 하던 규찰이 일시에 중단되었다. 사헌부나 사간원 관리들도 제자리로 돌아와 근무하게 되었다.
주상은 편전에서 대신들에게 명령했다.
“사헌부와 사간원 그리고 홍문관의 젊은 관리 중에 각 도로 보낼 어사를 추천하도록 하시오.”
“전하, 어사라 하심은?”
“암행감찰을 하는 어사가 아니니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소. 하지만 이번에 보낸 어사에게 지적되는 지방 수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그리고 고을을 잘 다스린 관리들에게는 그에 따른 포상도 실시하니 그렇게 아시오.”
“명을 따르겠나이다.”
주상은 대마도 정벌과 대규모의 이주민 발생. 새로운 염전의 개발 등으로 다소 어수선한 조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어사를 모든 도로 3명씩 보내서 지방 수령들의 업무를 감찰하라고 명령했다.
‘흠! 북쪽에 진나라가 생긴다니······.’
진(眞)나라는 군왕끼리 의형제까지 맺은 나라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북쪽에 강한 세력인 진나라가 출현하게 되니 자신도 소홀하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은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사이지만 언제고 적으로 돌변할 수 있어.’
나라를 책임지는 군왕이다 보니 사사로운 감정으로만 최인범을 대할 수 없었다.
요동 지역에 생기는 진나라가 강해지면 명나라의 간섭을 덜 받게 되어 좋다. 하지만 그에 반해 어떤 식으로든 진나라가 조선을 간섭할 수도 있으니 내실을 튼튼히 다지려는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진나라가 조선을 침략하거나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쪽의 여진족을 모두 합치는 순간부터는 전혀 상황이 달라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는 동반자가 아니고 퇴치해야 되는 적이 될 수가 있으니 주상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후우! 내가 죽고 나면 조선의 미래가 어찌될지 모르겠어.’
최인범의 성격으로 보아 최소한 자신이 살아 있을 경우에는 침략이나 적대행위는 안할 것으로 믿었다. 물론 자신도 잘 협조해 그런 사태를 막을 생각이다. 하지만 자신의 소생인 아들이나 또는 경원대군이 군왕으로 오르는 시점에는 전혀 다를 수 있으니 걱정하는 것이다.
이 무렵. 대비 전에서는 윤 대비가 마냥 좋아서 웃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윤임이 사직해 낙향하는 방법으로 살아남자 웃음이 사라져 버렸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윤 대비는 심복인 김 상궁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윤 대감이 벽서 사건도 터졌는데 운 좋게 살아남았어.”
“마마, 절대로 운이 좋아서가 아니옵니다. 주상전하께서 윤 대감에게 상선을 보내 그렇게 하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서 그리된 것입니다.”
주상이 뒤에서 미리 손을 썼다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왕권 국가에서 주상이 이런 방법으로 살리려고 한다면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해 당사자인 최인범도 이미 한양에서 떠나버렸다. 그러니 윤임이 저지른 암살 미수 사건은 다시 수면 아래로 숨어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우리가 패한 셈이군.”
“마마, 아직 기회는 많습니다. 윤 대감은 사직하고 낙향했으니 당분간은 조정이나 한양으로 올라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무안 군수님을 빨리 한양으로 불러 올려야 합니다.”
“그렇지, 원형이 한양으로 올라오면 전보다는 여건이 좋으니 승차시켜야 되겠어.”
김 상궁은 윤 대비의 말에 다소 급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마마, 그러시려면 이번에 전라남도로 떠나는 어사들부터 손을 쓰셔야 합니다.”
“오라! 그렇지. 전라남도로 담당하는 어사들을 모두 우리 편으로 보내야 순조롭게 승차해서 한양으로 올 수가 있겠군.”
아무리 군왕이 새롭게 뭔가 시도해도 하부의 관리나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기회로 개인의 영달을 취하려고 하니 조선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나라다.
윤 대비는 문뜩 김 상궁의 얼굴이 요즈음 들어서 화색이 돌고 전보다 미모가 돋보이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상하네, 봄 처녀가 동네 총각과 정분날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혼자서 실실 웃지를 않나? 자주 동경을 바라보는 것이 조금 수상하군.’
자태나 태도가 전과 많이 달라져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김 상궁이나 자신은 남자의 품에 안겨서 좋아할 기회는 영영 사라진 불쌍한 처지다.
‘후우!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처럼 나도 밤이 길기만 한 윤 과부가 됐어.’
겨울밤은 더 길기만 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애써 떠오르는 요상한 잡념을 애써 지우고 다른 것에 대해 물었다.
“난정이는 소금 배를 타고 한양으로 올라오는 중이라고?”
“예, 무안군수께서 파발을 이용해 소식을 보냈습니다. 지금쯤은 거의 제물포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알았어, 난정이가 한양으로 올라오면 대궐로 불러서 전라도에서 지내던 이야기나 들으며 긴긴 겨울밤을 도란도란 보내면 되겠어.”
대비전에서 윤 대비가 정난정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소금 배에서 큰 위기에 봉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