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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94화 (294/519)

294화

한강을 나룻배를 타고 넘던 최인범은 마포 나루터에서 검문하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검문검색을 당하고 있었다.

“규찰이 너무 심하군. 다모도 있고.”

이미 자순 태감으로부터 자신을 배척하는 벽서가 한양에서 떠돌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때문에 결국 윤임이 좌의정에서 물러나 낙향하고 윤 대비가 좋아하고 있다는 내용도 보고 받았다.

‘자순이 조금 무리한 자작극을 벌였어.’

사실 벽서는 자순이 데리고 온 무뢰배를 동원해 살포한 것이다.

물론 범인들이야 살포를 끝내는 동시에 이미 봉황성으로 달아난 상태다. 조선 출신을 동원했으니 아무도 모르고 또한 무뢰배들은 어쩌면 자순 태감의 명령으로 중간에 살인멸구 당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자순을 철저히 제어해야 되겠어.’

자순 태감의 행동을 이대로 방치하다보면 나중에는 명나라의 동창과 같이 변할 위험성이 높아 이렇게 판단했다. 무심히 나루터를 바라보던 최인범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어라! 저 자식이.’

검문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백삼수를 발견하자 눈이 반짝 빛났다. 다시 백삼수를 보게 되자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반가운 것인지 노여움인지 모른다. 더구나 여자 차림의 백삼수를 보자 그를 처음 만났던 과정이 떠올랐다.

‘참으로 한심한 놈이야. 결국 여장한 박물장수로 나섰군.’

비슷한 처지로 있을 그 당시 이마가 터졌을 때 소주를 얻어 상처를 치료했다. 의도가 어디에 있던 남에게 뭘 받았던 것은 백삼수가 처음이다. 자신은 이제 군왕의 칭호를 받은 위치지만 백삼수는 여전히 떠돌이 신세인 여장한 박물장수다.

‘저 녀석 팔자도 어지간해.’

자신을 배신한 것은 모두 윤임의 농간 때문이라고 이해해 천진에서 살려 주었다. 이미 백삼수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라 이번에도 살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참으로 불쌍한 놈이야. 어쩌다가 그것만 큰 요상한 몸으로 태어나서 아직도 저러고 사나 모르겠어.’

잘만 머리를 쓰면 능력으로 보아 크게 성공할 녀석이다. 그러나 너무 편한 길을 찾다가보니 자꾸만 어긋나는 인생을 사는 녀석이다.

정황으로 보아 다모에게 몸을 수색당하면 백삼수는 무조건 죽은 목숨이다. 남자가 여장을 했지. 분명 패물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지니고 있으니 체포될 것은 분명했다.

‘그래, 어차피 살려주기로 했던 놈이니 이번에 한 번만 더 살려 주기로 하지.’

사실 군왕이 되어버린 최인범의 시각으로는 백삼수 정도는 그저 아주 초라한 백성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백삼수를 살려주기로 마음먹은 진짜 이유는 정작 달리 있었다. 백삼수는 암살범에게 돈을 건네준 장본인이라 잡혀서 문초하면 자연히 윤임 대감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최인범은 자신이 혈혈단신인 고아출신이다 보니 주상께서 외삼촌을 살리려는 애절한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암살 시도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았었다.

‘그래, 내 의형인 주상 전하를 생각해서 오늘은 너를 살려주마.’

드디어 나룻배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최인범은 즉시 백삼수 쪽으로 다가가 크게 외쳤다.

“네 이년! 백여우! 여기에 숨어 있었군.”

그렇지 않아도 겁에 질려 있던 떨고 백삼수는 큰 호통소리로 백여우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너무 놀라 그대로 땅바닥에 털벅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에구 머니야.”

이런 판국에도 여자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최인범은 그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무튼 ‘여자로 위장하면 저렇게 철저한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철 중령, 저 년을 당장 끌고 와! 저 년은 전에 내게서 도망친 년이야.”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나루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숲 옆에 홀로 앉아 철갑웅이 백삼수를 데리고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철갑웅이 기찰하던 포교에게 말하고 나서 백삼수를 끌고 왔다.

최인범은 즉시 철갑웅에게 명령했다.

“주상전하께서 조금 있으면 마포나루로 마중을 오신다니 경호원들은 말을 따로 놓고 도열할 준비를 해.”

“넷!”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떨고 있는 백삼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 쯧! 꼴이 볼만하구나.”

“전하, 한 번만 살려주세요.”

“백여우, 나를 배신했으면 잘 먹고 잘 살기나 할 것이지 꼴이 이게 뭐냐? 더구나 겁도 없이 명나라에서 하던 짓을 조선으로 돌아와서도 하고.”

최인범이 이렇게 부드럽게 나무하자 만나면 목이 달아날 것으로 판단하던 백삼수는 어쩌면 살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답했다.

“저 엉덩이 깔까요?”

“그래, 그냥은 보내 줄 수는 없으니 까라!”

백삼수는 급하게 소나무를 부여잡고 치마를 걷어 올려 입에 꽉 물었다. 엉덩이를 훌러덩 까고 뒤로 쭉 내밀었다. 처음 당하는 형벌이 아니라 자세는 어찌 취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안다.

그러자 최인범은 흑혈검을 뽑아 들고 까진 엉덩이를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철썩!

“오메메, 나죽네!”

철썩!

“어마!”

누가 들으면 꼭 소나무를 부여잡고 뒤치기 당하는 여자가 토하는 비명처럼 들리는 형국이다.

백삼수는 겁에 질려 엉덩이를 옆으로 틀지 못하고 꼼짝없이 곤장 20대를 맞았다. 검의 옆면으로 까진 볼기를 치니 조금만 잘 못 맞으면 중상 아니면 사망이다.

사실 검의 옆면이라고 해도 최인범의 힘이라면 백삼수는 몇 대 맞지도 못하고 사망이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하고 타격은 약한 수법으로 치기 때문에 20대를 채울 수 있었다.

소리만 요란한 볼기를 20대 치고 나서 최인범은 좋게 타일렀다.

“백여우, 앞으로 조용히 살아라. 참한 과부나 잘 후려서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것이 좋을 거야. 또 내 눈에 뜨이면 그 때는 진짜 죽을 것이니까.”

“예, 시골에서 꽉 처박혀 죽은 듯이 살겠어요.”

죽은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에서 최인범을 만나 오히려 살아났다. 볼기를 20대 맞은 것으로 사면을 받은 백삼수는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가끔 엉덩이를 감싸며 나룻배에 올라 무사히 한강을 넘어가게 되었다.

죽다 살아난 백삼수는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호! 호! 역시 나를 죽이지는 못해.”

나룻배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엉덩이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런 백삼수에게 같이 배를 타고 가는 화사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다가와 슬며시 물었다.

“아가씨, 아까 그분을 잘 아세요?”

“잘 알죠, 사실 중요한 비밀이지만 그분과 저는 과거에는 그렇고 그런 사이죠. 이제는 너무 신분이 차이가나서 헤어졌지만.”

“어마나! 그래서 그렇게 급하게 했구나.”

이 여자는 아무래도 볼기를 맞는 것을 달리 들었던 것 같았다. 이것으로 보아 분명 그런 짓을 해본지 오래되는 여자가 분명했다. 그게 언뜻 들으면 매우 비슷하지만 성교 경험이 많다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여자는 초년 과부가 확실해. 그리고 비단을 입고 한양을 나들이 다닐 정도면 부자고.’

아무튼 백삼수의 대답은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입고 있는 옷이 여장이니 듣고 해석하는 상대방이야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을 표하며 자신에게 접근하는 젊은 여자라 백삼수는 본능적으로 꼬이기 작전에 돌입했다.

“혼자 사세요?”

“그런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말이 씨가 되는 것인지 백삼수는 나룻배에 오르자마자 참하게 생긴 젊은 과부를 만나 어느새 주특기를 발휘하고 있었다.

나룻배에 타자마자 젊은 여자를 만나 수작을 거는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유부녀는 아니겠지.’

자칫 놈을 살려줘 남을 해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용서했으니 툴툴 털어버리기로 했다.

최인범은 근접 경호원들이 급하게 세운 작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기다렸다. 다모가 여자들을 검색하기 위해 천으로 만든 울타리는 주상과 만날 장소다.

‘전처럼 편하게 만나기는 힘들어졌어.’

조금 뒤에 주상이 나루터에 도착했다. 서로 격식을 따지지 않기로 해 주상은 상선을 대동하고 최인범은 혼자서 만나게 되었다.

“아우님, 이렇게 만나니 반갑군. 내 대신 왜로 가서 고생 많았네. 내 자네의 공을 잊지 않겠어.”

“아우인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공이라뇨. 형님 덕분에 구경 잘하고 왔습니다.”

이렇게 응수하고 최인범은 주상에게 옆에 쌓아놓은 호피를 지적하며 입을 열었다.

“막상 선물이 생각나지 않아 호피로 준비했어요. 그리고 왜인들에게서 진주 좀 사서 가져왔습니다.”

“고맙네.”

주상이 최인범에게 넘겨준 것은 곤룡포와 중전이 입는 화려한 예복이 무려 10벌이나 되었다. 최인범도 군왕이 되었으니 입고 그의 아내들이 많으니 나누어 주라는 뜻이다.

“아우님, 내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대가 조선 출신임을 잊지 말아달라는 뜻일세.”

“형님, 잘 알겠습니다. 계속 형제국으로 협조하며 살아야죠.”

“그래, 앞으로 뭐라고 칭할 생각인가?”

“형님, 아무리 조선에서 백성들이 이주를 많이 해도 여진족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도 무시하기 곤란해 국호는 참 진(眞)으로 정했습니다. 음이야 과거 그곳에 있었던 발해국인 진(震)나라와 같으니까요.”

“그렇군.”

과거 한반도 북쪽에 있던 진(震)나라는 흔히 발해국으로 불리지만 실제 국호는 진이다. 주상은 국호가 외자라는 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과거에는 달랐지만 대륙이 통일된 진(晉)나라 이후에는 통일한 황제국은 외자인 국호를 사용하고 제후국은 두 글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우님, 벽서 사건은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게. 세상에는 조금 튀어 보고 싶어서 돌출된 행동을 하는 부류도 있으니까.”

“저야 그런 소리 너무 많이 들어 별로 관심도 없고 신경을 전혀 쓰고 싶지도 않아요.”

“아우님이. 그렇게 너그럽게 생각해 주니 다행이군.”

“그러니 벽서 사건은 이만 덮어 두세요.”

“알았네.”

서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잠시 최인범이 왜에서 경험한 풍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특히 왜는 호환 때문에 한 동안 무슨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없다고 알려 주었다. 커다란 호랑이를 젊은 여자가 타고 다닌다는 소식에 주상은 매우 놀랐다.

“그런 괴이한 여자도 있다니 왜는 정말 이상한 나라군.”

“그렇습니다. 조선과는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다들 벌거벗고 다녀서 호랑이가 원숭이로 착각해 호환이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아우님이 고생 많았겠어.”

최인범은 주상께서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강조했다.

“형님, 그간 아프시다더니 지금은 건강하시고 무탈해 보여서 정말 다행입니다.”

“무탈하긴, 그동안 우환이 생겨 중전도 잃고 태중의 왕자도 잃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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