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전라북도의 고군산군도를 지나 소금 배 10척은 드디어 충청남도 태안반도 서쪽에 위치한 격렬비열도 쪽으로 향했다.
완전히 초죽음 상태가 된 정난정은 소금 가마니에 기대어 공허한 시선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소금 배가 어디로 가고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게 됐다.
계속 혼수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자신들이 해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것을 전혀 몰랐다. 하늘을 바라보던 정난정은 다시 엎어지며 구역질을 했다.
“으으윽! 우엑! 우엑!”
정난정은 여전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심하게 토하니 완전히 혼미해져 버렸다. 며칠간 뭐를 입에 넣지 못하니 심한 현기증이 생겼다. 조금만 움직여도 눈앞에서 별똥별이 수없이 보였다. 더구나 같이 가며 시중을 드는 여종들도 5명이나 있으나 비슷한 처지다.
뒤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지린 것이 분명했다. 사공들은 그런 여자들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어휴! 더러워!”
“그냥 놔둬 목적지에 가서 바다에 넣었다 꺼내면 되니.”
“냄새가 나서 미치겠으니 그렇지.”
“조금만 참아, 격렬비열도도 거의 다 와가잖아.”
“알았어.”
소금 배를 몰고 가는 사공들이 향하는 격렬비열도는 북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 그리고 서격렬비도로 이루어졌다. 아무도 살지 않은 작은 무인도인 그곳은 먼 바라로 나와 고기잡이하는 일부 어부들만 아는 곳이다. 섬의 지형은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고 평지는 없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그래도 느낌이 너무 이상해 주변을 돌아보던 정난정은 육지가 전혀 보이지 않자 사공에게 급히 물었다.
“여긴 어딘가?”
“배 안이지 어딘 어디야!”
지금까지 고분고분하던 사공들이 투박하게 응수했다. 심하게 흐트러진 매무새를 비릿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난정이나 여종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달달달
자신들이 이미 배를 타는 순간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본능적으로 사공들이 자신들의 뭐를 원하는지 눈치 챈 것이다. 순간 정난정은 이제 여기서 죽었다는 공포감이 들었다. 자신들의 몸을 탐한 놈들이 살려둘 리 만무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리번두리번.
정난정이나 여종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가끔 날아다니는 갈매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넓고 푸른 바다만 끝없이 보이고 작은 어선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무진 꿈을 지니고 살던 정난정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너무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서 살아서 돌아가야 해.’
상황 판단이 빠른 정난정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를 단단히했다. 죽으면 뭐든 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전혀 겁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은 최인범이 알려준 천일렴 생산 기술 때문에 아주 심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한편 제물포의 포구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에 속한 대맹선들이 조운선으로 개조되어 부두에 정박해 많은 벼를 싣고 있었다.
조운선으로 개조되어 800석을 실을 수 있다. 그러나 먼 거리를 가야하고 안전항해를 위해 30척을 동원해 나를 계획이다. 수군만호의 책임으로 이곳에서 벼를 싣고 봉황성의 단동 항구로 가야 한다.
이미 봉황성과 조선 조정은 협상을 끝내 군량미로 벼 10000석을 봉황성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한창 벼를 싣고 있는 포구에 커다란 조운선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조운선들은 이미 많은 화물을 싣고 있었다.
“어디로 가려고?”
“저희들도 봉황성으로 갑니다. 안산의 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봉황성으로 보내려고요.”
수군만호는 선단을 이끈다는 선장을 만나 손을 내밀며 요구했다.
“수출 허가증을 보여주게.”
“여기 있습니다.”
모두 20척인 조운선에 소금을 척당 300가마씩 싣고 봉황성으로 가져가 판매한다는 서류다. 대맹선을 모두 조운선으로 개조해 화물을 나르는 것이다.
보아하니 같이 가려고 여기로 입항한 것 같았다. 수군만호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와 같이 가기는 어렵겠군. 벼를 선적하려면 아직도 멀어서.”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이 먼저 떠나죠.”
소금을 가득 실은 조운선들은 제물포(濟物浦)에서 필요한 식수가 일용품을 챙겨 급하게 부두를 떠나고 있었다. 대맹선은 군사 80인이 탑승할 수 있는 규모다. 개조해서 세곡을 나르는 조운선으로 이용될 경우에는 800석의 곡물을 운반할 수 있었다.
사실 수군만호가 책임지고 나를 화물은 벼 이외에 화살이나 단창 등 풍기에서 생산되는 군수품이 아주 많았다.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산동 반도의 반란군도 수군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믿기가 어려워. 그러니 비밀로 하는 것이 좋아.’
최인범은 왜에서 볼일을 마치자 조선으로 돌아온 이제 한양에서 볼일을 보면 봉황성 가게 된다. 봉황성으로 돌아가 산동 반도에서 활동하는 반란군을 물리치기 위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한양의 대궐에서는 여전히 주상께서 최인범을 맞이하러 가야하는 장소로 남대문과 마포나루를 놓고 대윤과 소윤이 심하게 다투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예를 갖추기 위한 논의였지만 감정싸움과 더불어 심한 정쟁으로 번졌다. 그러자 주상께서 나서서 마포나루로 가겠다고 했다.
“형으로 아우를 맞이하러 가는 길이 뭐 그게 대수라고 심하게 다툰단 말이요. 과인이 마포나루로 가서 만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에이!”
주상은 또다시 소윤의 편들어 준 결과를 낳았다. 그러자 대윤은 윤임이 선두에 나서서 격렬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결국 윤임은 두 번이나 연달아 주상에게 뭔가 제안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죄만 다시 거론되는 결과만 가져왔다. 그리고 대윤은 윤임과 같이 대궐에서 최인범을 맞이해야 한다는 주장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하던 소윤이 다시 머리를 쳐드는 것을 막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그건 가당치 않으신 행차이옵니다.”
그러자 주상은 인상을 쓰며 응수했다.
“도대체 좌상께서는 내가 결정한 일마다 반대를 하는 거요? 더구나 태대장군과 나 사이를 잘 알면 서도요. 좌상은 아직도 그가 그렇게 밉습니까? 더구나 전에 그에게 한 큰 잘못도 이미 용서해 준다고 했다는데 또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죠.”
단 한 번도 북경에서 저지른 암살미수 사건에 대해 거론하지 않던 주상이다. 그런데 계속 자신의 일을 반대하고 나서자 입을 막기 위해 그 사건을 거론했다.
그러나 윤임은 뒤로 물러설 생각을 못하고 다시 반대했다.
“전하, 동생이 형을 찾아오면 당연히 집에서 맞이하는 것이 예의이오니 남대문이나 마포나루가 모두 가당치 않사옵니다. 그러니 대궐에서 맞이해야 하옵니다.”
“그것은 태대장군이 이미 대궐에는 들어오지 않고 떠나겠다고 해서 논의에서 제외하자고 한 문제가 아니오.”
“하오나 전하! 마포나루로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어찌된 일인지 사사건건 자신이 하는 일을 반대하자 주상은 은근히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에는 깊은 내막이 있었다.
윤 대비는 궁중의 상궁이나 궁녀 또는 환관들을 오래전에 포섭해 놓았다. 그래서 주상이 뭔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려고 준비하면 윤 대비는 먼저 알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즉시 소장파가 주류를 이루는 소윤들에게 명령해 주상의 새로운 정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니 순발력에서 뒤진 원로들로 구성된 대윤은 소윤이 찬성하니 반대하고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대윤은 신진사림들 보다는 기득권을 가진 훈구대신들이 많다가 보니 자연히 새로운 정책은 그들이 누리던 기득권을 빼앗는 정책들이 많다는 점도 있었다.
“좌상, 아직도 그런 주장을 하세요. 태대장군이 정궁으로 들어오면 정식으로 복잡한 예를 갖추어야 하니 서로 그건 피하자고 했는데 왜 다시 그런 복잡한 문제를 또 다시 거론하는 거요. 도무지 좌상께서는 무슨 저의로 자꾸 일을 복잡하게 추진하는지 모르겠군요.”
“전하, 통촉하옵소서.”
“좌상, 그대는 왕십리에 와있는 군대나 자순 태감의 독촉이 걱정되지 않아요? 왜 자꾸 일을 크게 만들려고 해요. 이쯤 했으면 자중해야죠.”
최인범은 처음 귀국했을 때 조정에서 자신에 대한 예의를 거론할 때 자신은 대궐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사실 대궐로 들어가 거창한 정식 의전행사를 하는 것이 마냥 어색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풍기를 들렸다가 다시 왜로 건너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은 이미 봉황성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세력을 만들 생각이라 대궐로 들어가서 주상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자칫하면 자신의 마음이 흔들릴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솔직하게 말하기는 곤란했다.
왜에서 귀국한 뒤에 부여도호부에서 한정문을 만나자 그가 대궐로 입궁하는 문제가 다시 거론됐었다. 그때 최인범은 마포나루만 건너면 바로 왕십리로 가서 부대원들과 같이 한양을 떠나 봉황성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주상이 만나기를 원한다고 하자 대궐에는 이제 막 임신한 중전이 있으니 복잡한 행사를 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며 입궁을 거절했다.
이 무렵. 봉황성으로 갔던 자순이 가정제로부터 태감의 벼슬을 받고 한양으로 와 있었다. 정식으로 황제가 보낸 국서를 지닌 사신은 아니다.
가정제는 봉황성으로 교서를 보내 조선에서 산동 반도로 파병하는 문제와 그간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국서를 보내 거론한 문제들을 확실하게 매듭지으라고 독촉했다.
그런 내용을 이행할 봉황성주인 최인범이 조선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자순은 최인범의 참모와 감찰하는 자격으로 사전에 조선 중신들과 교섭하는 권한을 가지고 한양으로 내려와 머물고 있는 것이다. 윤임이 나대면 상황이 어디로 흐를지 모른다.
자순은 최인범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조선의 중신을 만나 자기가 그런 임무로 한양으로 왔다는 정도만 알리고 왕십리에서 친위부대원들과 같이 지내고 있었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 윤임이 자꾸만 자신의 결정을 반대하자 주상은 그런 점을 주지시킨 것이다.
“좌상, 지금은 자중 또 자중해야 될 때입니다. 자순 태감이 아무리 정식사신이 아니더라도 우리 조정으로 얼마든지 전에 보낸 국서 내용을 독촉할 위치이니 조심하지 않으면 다시 과거의 일이 거론됩니다.”
“전하, 그래도 예가 아닌 일을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알았소. 좌상께서는 과인을 믿고 당분간 조정으로 출사하지 말고 외부출입을 일체 삼가고 태대장군이 한양을 떠날 때까지 잠시 집안에만 계세요.”
주상은 매우 부드럽게 말했지만 윤임에게 가택연금 명령을 내린 것이다.
‘후우! 지금 상황이 칼날이 목에 다 있는 줄 모르고 왜 저러시나 모르겠어.’
효심이 깊은 주상은 어려서 돌아가신 모후를 생각해 외삼촌인 윤임을 어떻게 해서라도 살리고 싶어 자중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윤임은 드디어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물러났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소신 명을 따르겠나이다.”
운임은 전에 비해 상당히 정치적인 판단력이나 순발력에서 떨어졌다. 이런 일들이 조정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돌연 사대문과 저잣거리에 익명의 벽서가 붙거나 나돌았다.
-봉황여진(鳳凰女眞) 조선환란(朝鮮患亂) 원교근공(遠交近攻) 금적금수(擒賊擒首)- 벽서 문구를 해석하면 봉황성주인 최인범은 본시 여진족이고 조선을 배신한 역적이라고 했다.
또한 먼 나라인 명나라는 친하고 가까운 적인 여진족을 물리쳐야 하니 이번 기회에 우두머리인 그를 반드시 죽여 된다는 뜻이다.
병법에 나오는 글인 금적금왕(擒賊擒王)을 금적금수(擒賊擒首)라고 적어 군왕인 최인범을 짐승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완전히 격하시켰다. 누군가 벽서를 이용해 조선과 최인범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이런 괴이한 벽서가 크게 써져 사대문과 가까운 성벽에 붙었다. 저잣거리에는 작은 종이로 써진 이런 글들이 무작위로 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