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깊고 어두운 밤. 날씨까지 흐려 주위가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한 숲속.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지나 추수의 계절인 가을철이라 밤에는 선득선득했다.
사락! 사락!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물체가 있었다. 어둠을 뚫고 이동하는 물체는 최인범을 비롯해 철씨 형제다. 근접경호원들은 이곳과 약간 떨어진 개울가에서 숙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하카타 항구를 떠나 판옥선 20척을 끌고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했다. 기마병들은 모두 오우치 가문의 사무라이나 군사와 같이 해안에서 주로 착호 활동을 펼쳤다.
야마구치에 도착해 자신이 만든 생태지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사가라가 말해준 정보가 사실임을 알았다. 아무튼 많은 정보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머리도 좋지만 사가라가 얼마나 호랑이 때문에 고심했는지 알 것 같았다.
생태지도가 재차 확인되자 근접 경호원 40명과 같이 목적지에 도착해 숙영을 지시하고 세 사람만 정찰을 겸해 먼저 숲을 수색했다.
드디어 호랑이 굴인 천연동굴을 발견하고 매복을 서는 중이다. 호랑이가 사는 굴은 바위틈으로 사람은 도저히 뛰어서 힘든 낭떠러지를 넘어야 되는 곳이다.
철갑웅이 호랑이굴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혹시 다른 쪽에 출입구인 굴이 있지 않을 까요?”
“그야 모르지. 일단 여기로 지나다닌 호랑이 흔적이 많이 있으니 기다려야지.”
세 사람은 가벼운 복장으로 옷을 입고 몸 전체에 진흙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냄새를 풍겨 호랑이가 눈치를 챌 수 있기 때문이다.
바스락! 바스락!
이때 어두운 숲에서 아주 작은 소음이 들렸다. 숲에 쌓인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이더니 드디어 커다란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는 계곡을 뛰어 넘기 위해 어슬렁거리며 높은 바위로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입에는 작은 꽃사슴을 물고 있었다. 먹이를 잡자 보금자리로 찾아오는 것이 분명했다.
세 사람은 아주 조심스럽게 활을 당겼다.
스르륵! 쉭!
거의 동시에 시위를 놓자 화살은 아주 빠르게 호랑이에게 날아갔다. 빠르게 날아간 화살 셋은 정확하게 호랑이의 이마와 목에 깊이 박혔다.
크아앙! 크아앙!
연달아 아주 큰 비명소리를 토하던 호랑이는 바위 위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비명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슬금슬금 기어 나와 빠르게 절벽을 뛰어넘었다.
죽어 있는 호랑이에게 다가가더니 크게 울었다.
크아아앙! 크아아앙! 푸드득! 푸드득!
귀가 멍멍할 정도로 쩌렁쩌렁 크게 비명을 토하자 숲에서 잠자던 새들이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나 크게 울던 호랑이는 최인범과 철씨 형제가 날린 화살 3대에 그 자리서 죽어버렸다. 너무 어두워 명중률이 떨어질까 염려해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다.
세 사람은 호랑이 2마리를 잡고 동굴 앞에서 계속 매복했다. 숨을 죽이고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이게 끝인가?”
“전하, 더 기다려 보시려고요?”
“날은 새워봐야지.”
“넷!”
밤을 새워도 다른 호랑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새벽이 되자 세 사람은 매복해 있던 지점을 떠나 경호원들이 숙영하는 개활지에 도착했다. 철갑웅은 이창수 중위에게 명령했다.
“이 중위, 가죽을 해체할 병사를 데리고 가서 호랑이를 가져와.”
“넷!”
“다른 호랑이가 나타날지 모르니 20명을 데리고 가서 흔적을 잘 지워.”
잡은 호랑이 2마리는 덩치가 황소처럼 크다. 또한 잘못하면 근접경호원들이 다른 호랑이에게 공격당할 위험성이 높아 많은 사람을 보낸 것이다.
이날 이후 최인범은 호랑이 굴 앞에서 5일간을 매복해 후가해서 4마리를 잡고 끝났다. 모두 암놈들로 유달리 덩치가 큰 놈들이다. 호랑이는 한번 사냥하면 포식하고 보통 3일을 견딘다.
그래서 천연동굴 앞에서 계속 매복했으나 더 이상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최인범은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준비를 단단히 하기 위해 지시했다.
“갑옷 준비해.”
“넷!”
중갑옷을 단단히 입고 밧줄을 타고 호랑이 굴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횃불을 밝혀 안으로 들어가자 석회암 동굴로 안은 공간이 아주 넓었다. 뭔가 흐릿하게 보이자 화들짝 놀랐다.
“헉! 저게 뭐야?”
동굴 안에는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완전히 벌거벗고 산발한 여자들이 30명이나 있었다. 입에는 붉은 피를 머금고 쓰러지거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자들의 눈빛들은 이미 트릿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뚱뚱해 보이는 여자가 유일하게 호랑이 새끼 2마리를 품에 껴안고 젖을 먹이는 것을 보자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기도 안 차는군. 호랑이가 사람을 마치 노예처럼 부려 먹었어.”
“그러네요. 호랑이 새끼의 유모로 써먹었어요.”
동굴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보니 수십 마리의 새끼호랑이가 있었다. 대략 10여 마리의 큰 호랑이들이 같이 살았던 것 같았다. 분명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던 여자가 살던 곳이지만 이미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 같았다.
최인범은 호랑이 굴에서 밧줄을 늘여 아래로 내리는 방법으로 완전히 돌아서 히쭉거리는 여자들을 구했다. 그게 끝나자 철씨 형제에게 명령했다.
“입구에 불을 지펴서 연기를 피워!”
“넷!”
호랑이가 불 냄새나 연기를 아주 싫어한다. 그 때문에 다시 돌아와 살지 못하게 나뭇가지에 기름을 붙고 불을 질렀다. 불을 피워서 또 다른 입구나 또는 다른 서식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젖은 솔가지를 불 속에 넣어 연기를 피우자 천연동굴이라 사방에서 연기가 품어져 나왔다. 호랑이가 출입이 가능한 굴이 무려 10여개가 되니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 살필 수는 없었다.
“철 중령, 계속 입구에 불이나 피워!”
“넷!”
호랑이가 남아 있으면 연기에 튀어나올 것이다. 그게 아니면 불 냄새 때문에 당분간은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호랑이가 집단으로 서식하던 천연동굴을 공격해 모두 6마리를 잡았다. 해변이나 강가에 있는 갈대밭을 수색하던 기마병들은 10마리를 잡았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동쪽으로 사라져서 그런지 호랑이가 우는 소리는 야마구치 근처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철수해서 영주가 사는 야마구치의 성으로 돌아오자 요시타카 영주가 전과는 달리 굽실거렸다.
“타이다이쇼군. 정말 감사합니다.”
최인범은 호랑이 가죽 2장과 새끼 호랑이 2마리를 넘겨주며 말했다.
“천연동굴에 살았던 호랑이 중에 일부는 잡고 일부는 달아났소.”
“다시 오지 않나요?”
“당분간은 근처에서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을 거요. 앞으로 호환을 피하려면 어린 아이도 앞으로는 절대로 벌거벗겨서 밭이나 길에 돌아다니지 않게 하세요.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보기 흉한 훈도시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절대로 안 됩니다.”
“더운데 옷을 꼭 입으라고요?”
“그렇습니다. 왜로 와서 착호 활동을 해보니 호랑이가 왜 사람들을 공격한지 정확하게 알았어요. 원숭이를 잡아먹다가 보니 비슷하게 사람도 잡아먹은 겁니다. 그러니 항상 옷을 입어야 원숭이로 보이지 않아요. 옷을 입어야 만이 호환을 면하게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반드시 옷을 입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제 착호 활동은 끝나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요시타카 영주의 보고에 의하면 호랑이를 탄 여자는 많은 호랑이를 몰고 동쪽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여자를 등에 태운 아주 큰 호랑이가 동쪽으로 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확실하게 멀리 떠났군요. 서식지로 사용하던 천연동굴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으니 여자들을 구한 천연동굴에 사찰을 세우던지 무슨 조취를 취하세요. 자주 그곳의 동굴에 불을 피우는 방법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호환을 대비하는 방법도 알려주게 되었다.
“영주께서도 병법을 아시니 타초경사를 잘 알겁니다.”
“그야 알죠.”
“호랑이를 잡기 어려우면 타초경사 방법으로 퇴치하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뭐가 제일 좋죠?”
“호랑이는 본시 쇳소리에 아주 민감해요. 그러니 조선에서 사용하는 꽹과리를 많이 구해서 호랑이가 살만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되도록 시끄럽게 난타하세요. 그렇게 되면 그 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호랑이가 거의 안 옵니다. 잡지는 못하지만 물리치기는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조선에서 면포와 꽹과리를 많이 수입해 와야 되겠네요.”
전국을 떠도는 사당패들이 호환은 전혀 안당하자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사당패들은 호환이 있다는 높은 고개나 숲을 지날 때 항상 힘차고 무질서하게 두드리는 꽹과리 소리를 내고 지나다닌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에서 꽹과리를 사오려면 다른 악기도 같이 사와서 사용하면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전통악기인 꽹과리. 징. 장구. 북을 이용해 호랑이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라고 알려주었다. 요시타카 영주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오매무망 원하던 소원대로 호피 2장을 비롯해 호랑이새끼 한 쌍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자들을 어찌 처리하죠?”
“가족에게 돌려보내야죠.”
호랑이에게 납치되었다 구해진 여자들은 자꾸만 동굴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완전히 돌아버린 여자들이라 가족들도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 달리 방법이 없어 여자들 처리에 대해 말해 주었다.
“저런 지경이면 속세를 떠나야죠.”
“아, 그런 방법이 있겠네요.”
결국 호랑이에게 납치되었다 구해진 정신 나간 여자들은 머리를 박박 밀어 비구니를 만들었다. 천연동굴에 세우기로 결정한 사찰에서 기거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야마구치에서 착호 활동을 끝낸 최인범은 시모노세키에서 판옥선에 올라 즉시 부산포로 떠나게 되었다. 처음과는 달리 요시타카는 최인범에게 타이다이쇼군이라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타이다이쇼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꼭 오세요.”
“그러죠. 앞으로도 방심하지 마시고 조심해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인범이 떠난 왜의 혼슈의 동쪽 지역에는 호환이 발생해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서쪽 끝인 야마구치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폭 늘어난 호랑이 때문에 연일 사람들이 죽어갔다. 전에도 호환이 있었지만 더욱 심해진 것이다.
더구나 호랑이를 탄 여자를 목격한 외인들은 그녀를 호녀장군이라고 부르며 신처럼 떠받들기 시작했다. 왜에는 천황이외에 살아 있는 새로운 신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전에도 권위가 보잘 것 없었던 천황은 새로운 신인 호녀의 등장으로 권위가 더욱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