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세상사는 아주 작은 변화로 그 여파는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시 삼포가 개항되지 않았으나 조선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최인범이 등장하고 변해서 문호를 개방하자 오우치 가문은 여파가 컸다.
여파가 큰 이유는 갑자기 호랑이가 규슈와 혼슈지역에 출몰했기 때문이다.
개방된 부산포를 통해 무역선을 통해 들어오던 호랑이 새끼가 간몬 지역에서 태풍을 만나 혼슈와 규슈 양쪽으로 넓게 퍼지게 되었다. 자연히 이 지역의 맹주인 오우치 가문이 제일 큰 피해를 입었다.
요시타카 영주는 호랑이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자 착호갑사로 호랑이새끼를 잡아서 왜로 팔아먹은 최인범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놈이 호랑이 새끼를 팔아먹은 놈이 분명해. 우리를 완전히 매장시키려고 일부러 팔아먹은 것이 틀림이 없어.”
이런 원망에 최인범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가라가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영주님, 그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역상들이 사가지고 오다가 재수가 없어 간몬 지역에서 난파당해 벌어진 일이죠.”
이런 응수에 요시타카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아무튼 그놈이 저지른 일이니 우리가 힘들다고 사정할 필요는 없어.”
사가라는 영주의 불편한 심정을 잘 아는 지라 더 이상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최인범을 여기로 불러 호랑이를 제거해야 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나가사키는 금방 해결을 했다니 부르기만 하면 잘 해결이 될 것인데 영주님이 반대하시니 걱정이야.’
과거에 큰 위세를 떨치던 가문의 영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시타카는 몰락의 큰 원인이 된 호랑이를 원망하다가 그 화살을 최인범에게 돌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요시타카 자신이 원인이다.
자신의 조상이 백제 왕자인 임성태자라고 공헌하는 요시타카는 조선의 풍물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조선산 호랑이새끼를 상인들에게 사오라고 명령했으니 원망하려면 자신에게 해야 된다.
잘나가던 오우치 가문의 갑작스러운 몰락에는 많은 원인이 있었다. 그 원인중 하나는 오우치 가문이 보유한 외딴 곳에 있던 광산들이 폐광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왜의 원숭이를 잡아먹던 호랑이들이 훈도시만 걸친 비실거리는 광부들이 변을 보기 위해 홀로 숲속에 들어오자 그 기회를 노렸다. 주변의 광부들이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단숨에 목덜미를 물어 멀리 끌고 가 마구 잡아먹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라진 광부는 광산일이 너무 힘들어 도망쳤다고 판단했다. 조금 뒤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 있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나중에야 조선에서 넘어온 호랑이새끼가 크게 자라 광부들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에서는 호랑이가 사람을 노리는 경우가 드물다는데 너무 이상해.’
왜인들은 아직도 호랑이가 왜의 원숭이를 처음부터 먹잇감으로 먹다가 사람도 원숭이로 인식해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호랑이가 원숭이와 사람을 잘 구분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과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도 그렇지만 특히 고양이과에 속한 동물은 야행성으로 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이다.
무력을 동원하는 강경책 보다 문치 위주의 정책을 선호하는 사가라는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영주님, 과거에 벌어진 일로 태대장군을 원망하기 보다는 은괴를 넘겨주더라도 호랑이를 잡게 해서 광산을 다시 개설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으로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런 건의에 요시타카 영주는 심한 불쾌감을 표했다. 군왕이란 칭호도 듣기 싫고 태대장군이란 호칭도 젊은 놈에게 어울리지 않고 그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가라, 불편한 내 심기를 자꾸 거스르지 말고. 명나라에서 왔다는 구운몽이란 소설책이나 가져와.”
“영주님, 구운몽도 최인범이 북경의 과시장에서 쓴 소설인데요.”
“뭐라!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러자 요시타카는 구운몽을 읽어 보려던 생각이 사라졌는지 돌연 무장에게 명령했다.
“병력을 총 동원해서 빨리 호랑이를 잡지 뭐하나?”
“영주님, 노력은 하지만 여자가 호랑이 등을 타고 장검까지 휘두르니 사무라이나 병사들이나 모두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니 도저히 잡을 수 없습니다.”
“부하들 훈련을 어찌시켜서 그 모양인가?”
“죄송합니다. 워낙 괴이한 일이라.”
호랑이와 친숙한 조선 사람들도 마주치면 담력이 좋아도 몸이 굳어버려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착호갑사의 선발에도 제일먼저 창을 던진 사람을 최고의 공적으로 인정한다.
호랑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던 낮은 계급의 농민군이나 또는 광부 또는 산골의 화전민들이야 호랑이는 그야말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담력이 아무리 좋아도 마주치기만 하면 완전히 몸이 마비된다.
산에서 약초를 캐서 살던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이나 명나라에서 약재를 사오던 왜는 더 많이 약재를 수입해야 하는 등의 경제 분야에서 심한 불균형이 생겼다.
“조선에서는 호랑이를 그물로도 잡는다잖아? 흔한 그물을 왜 사용하지 않나?”
“영주님, 물론 저희들도 그물을 사용했지만 호랑이를 탄 여자가 장검으로 그물을 잘라서 구해주니 그것도 힘이 듭니다.”
“뭐라? 여자가 그물에 걸린 호랑이를 구해 줘?”
“예, 어렵게 그물로 호랑이를 잡으면 어디선가 호랑이 떼가 몰려와 구해가지고 도망칩니다.”
“허어, 이런 괴사가 있나?”
호랑이만 상대하려고 해도 겁나는 판국이다. 그런데 호랑이 등에 탄 여자 무사까지 있어 호랑이를 구출하는 경우도 있다니 정말 너무 무서워 소름이 돋았다.
“그 여자는 도대체 하늘에서 내려왔나? 어떻게 무서운 호랑이를 타고 다녀.”
“그야 저희는 잘 모르죠.”
요시타카 영주는 이런 징조가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했다.
“혹시 하늘에서 우릴 돕는 것이 아닌가? 그도 아니면 우리가문을 멸망시키려고 이러나? 아무튼 하늘의 계시 같아.”
“영주님, 하늘의 계시라고요?”
“어쩌면 위기에 처한 우리 가문을 돕기 위해 하늘에서 신녀를 보냈는지도 몰라.”
요시타카 영주는 여자가 호랑이 등을 타고 다닌다는 보고에 문뜩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무튼 뭔가 신비한 것을 믿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다.
요시타카는 학문에 심취해 왜의 고대사에도 밝았다. 그래서 혹시 호랑이를 타고 나타난 여자가 과거에 왜국을 처음으로 건설한 여왕처럼 느껴졌다. 조선에서 넘어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되는 신녀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가문의 몰락은 순간에 벌어지고 원정을 갔다가 후계자까지 잃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요시타카 영주는 요즈음은 두문불출해 학문과 예술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렇다고 전국을 제패하고 싶은 야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요시타카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오랜 교훈을 떠올리게 되었다.
‘평범치 않은 사건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
어찌 되었건 왜에는 이제 왕이 둘이나 머물고 있는 상태다. 새로운 징조로 호랑이를 탄 괴이한 여자까지 나타났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최인범이란 무장의 능력이 대단하다니 일단 만나 보기로 했다.
“사가라, 고쿠라 성으로 가니 차비하라. 그곳에서 태대장군을 만나자고 전해. 혹시 모르니 내가 백제의 임성태자 후손이라는 것도 꼭 전하고.”
“넷!”
오우치 가문이 완전히 몰락하려는 기운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북규슈에는 고쿠라 성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명나라에서 군왕으로 봉해졌다는 최인범 태대장군을 만나 협상해볼 생각이다.
한편 오우치 가문의 근거지인 야마구치(山口) 서쪽에 있는 깊은 산속.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천연동굴에는 괴이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혼이 나간 상태인 젊은 여자들이 벌거벗은 상태로 누워서 호랑이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가슴이 크게 부풀어진 것으로 보아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인들이다.
젖을 먹이는 여자들의 눈동자는 완전히 초점이 사라졌다. 그저 멍한 것으로 보아 정신은 이미 어디론가 완전히 달아나 버린 상태다. 20여명의 젊은 여자들이 호랑이 새끼 3-40마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10여명은 허겁지겁 수놈 호랑이가 잡아와 붉은 피가 흐르는 토끼나 너구리를 날로 마구 먹고 있었다.
우걱우걱.
날고기를 먹는 여자들은 눈이 퍼래서 괴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혼은 완전히 나가고 그저 본능으로 배가 고파 날고기를 먹고 호랑이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대부분 안거나 누워 있는 여자들이다. 그들과 달리 서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덩치 큰 여자는 가끔 크게 괴성처럼 웃고 있었다.
“호! 호! 잘 먹이네. 네 새끼들이니 많이 먹여.”
사람이 호랑이 젖을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는 있다. 하지만 호랑이 새끼가 사람의 젖을 먹고 자라고 있으니 괴이한 일은 분명했다. 여자들은 완전히 혼이 나가 젖을 빠는 호랑이 새끼가 자신의 자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호랑이들은 처음에는 여자들을 잡아다 무조건 먹이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절한 여자의 젖을 새끼들이 빨아 먹자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젖이 잘 나오는 여자들을 잡아다가 자기가 낳은 새끼를 끼워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은 별 어려움 없이 사냥만 하게 되니 많은 새끼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여러 가지 이점도 있었다. 젖을 안 물리니 다시 발정이 와 수놈을 만나 다시 교접하게 된다. 그러면 빠른 시기에 개체수를 늘릴 수 있었다. 천적이 전혀 없던 이곳에 얼마 전에 천적이 나타났으니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새끼를 퍼트려야 된다고 인식했다. 새끼를 아주 안전한 곳에 놓고 사냥하니 멀리까지 이동도 가능했다.
젖이 잘 나오는 여자들을 고르는 거야 아주 쉬웠다. 인육에 맛이 들어서 젖이 잘나오는 여자의 냄새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 완전히 나간 여자들에 비해 조금은 나은 상태인 신녀 출신인 여자는 호랑이가 잡아온 동물들을 장검으로 갈라 주거나 또는 가죽을 벗겨 주기도 했다.
본시 덩치가 너무 커서 주변에게 괴물 취급을 받아 정신이 약간 이상해져 신녀로 살았다. 그녀는 이미 반인반수와 같이 변해 가끔은 하늘을 향해 두 손 모아 빌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너울너울 괴이한 춤도 추었다.
야마구치 영지는 조선에서 통신사가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다. 그 때문에 이번에 오게 된 통신사에게 호랑이 사냥 방법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부사로 오게 된 한정문에게 호랑이 사냥 방법을 배우고 또한 호랑이 사냥은 최인범이 조선에서도 제일 뛰어나다는 것도 들었다.
사냥 방법을 알아냈지만 호랑이는 변해 떼로 몰려다니는 경향이 많았다. 또한 조선보다 산림이 우거져서 그런지 호랑이의 은신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화산지대다 보니 호랑이가 숨을 천연 동굴도 많아 이론과 같이 호랑이 사냥이 녹녹치 않았다.
결국 마음을 바꾼 영주는 드디어 규슈로 넘어가 최인범을 만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찜찜해도 뇌물은 줘야 되겠지.”
“그렇습니다. 하카타에서 뇌물로 은괴 40짝을 넘겨줬다니 최소한 그 정도는 줘야 합니다.”
“흠, 그래도 체면이 있으니 60짝을 넘겨주자고. 어차피 산에서 호랑이만 사라지면 은광과 금광도 다시 개설해 깰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명나라와 조선과 과거부터 거래 관계가 깊고 위치상 필요하면 노략질도 자주했다. 조선이나 명나라에서 광산 기술자들도 잡아와 다른 지역보다 광산 개발기술이 조금 앞서고 있었다. 호랑이만 사라지면 광산을 다시 가동해 충분히 과거의 세력을 다시 이룰 수 있었다.
명나라는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 전 지역에 대해 해금 정책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최인범은 전혀 다르게 주인선을 발부해 얼마든지 무역할 길을 터준다니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요시타카는 회담 장소로 가기 위해 배를 이용해 관몬 해협을 넘었다.
“고쿠라 성에서 회담하기로 사가라가 잘 협상했는지 모르겠군.”
“만나서 잘 진행하시겠죠. 조선말도 잘하시는 분이니까요.”
규슈를 떠나 봉황성으로 갈까 망설이던 최인범은 바로 떠날 수 없었다.
체면이란 것이 뭔지 지진이나 화산폭발에 놀란 부하들 앞에서 도망치듯이 왜를 떠나는 것이 여간 거북하지 않았다.
‘지금 떠나면 쪽 팔리게 화산폭발이 겁나서 도망치는 꼴이야.’
시기를 기다리는 중에 야마구치에서 찾아온 사가라를 만났다. 열도를 완전히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