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심하게 요동치는 왜의 열도>
하카타의 신산여각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매우 어수선했다. 구마모토 영주도 찾아오고 다른 지역의 영주도 최인범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구마모토 영주는 착호 활동을 해준 보답으로 은괴나 유황을 가지고 찾아왔다. 다른 영주는 기왕에 규슈에 왔으니 자신들의 영지에서도 착호 활동을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일단 부대 편성이 끝나면 고려해 봅시다.”
“전하, 정말 감사합니다.”
봉황성에서 기마병 100명을 추가로 보내며 정향대공주가 보낸 서찰에는 자신의 새로운 벼슬이 거창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기존에 벼슬 명칭에 추가한 내용이 있었다.
조선구려진봉황산동군왕 대부마도위 최인범(朝鮮句麗震鳳凰山東君王 大駙馬都尉 崔仁汎), 건주위 총감부 총감 도어사(建州衛 摠監府 摠監 都御司).
봉황성주 겸 발해요동산동도독 안찰사 겸 도지휘사 겸 산동해왕 왜 토벌평안 태대장군(鳳凰城主 兼 渤海遼東山東都督 按察使 兼 都指揮使 兼 山東海王 倭 討伐平安 太大將軍).
그냥 군왕으로 책봉하면 다른 직책이야 별로 필요 없는 무의미한 내용인데 굳이 기존의 직책에 군왕이란 명칭만 추가한 의도가 있었다.
‘가정제는 꼴에 나를 군왕으로 책봉은 하지만 휘하의 벼슬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다는 뜻이군. 그놈이 이런 수를 낼 정도의 머리는 아니고 아무래도 엄숭이나 태감들이 또 중간에서 수작을 부린 거야.’
설사 그렇더라도 동양에서는 대국인 명나라 황제가 내린 책봉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조선이나 왜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왜의 경우 대륙의 황제로부터 오래전에 왜왕으로 책봉을 받아 그것이 지금까지 큰 권위로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일본이란 나라로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왜왕국(倭王國)의 왕(王)이다.
군사정권으로 실질적인 통치권자인 막부의 수장은 그래서 왕이 아니고 쇼군(將軍)이다. 이런 비슷한 정치형태는 고려 시대에서 한동안 유지된 무신정권인 최씨들이 형성하고 있었던 경우가 있었다.
천황이란 사실 글자의 표현 그대로 황제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왜소국으로 주변국의 영향이 별로 없고 각 지역마다 왕으로 불리는 호족들이 너무 많다가 보니 차별성을 부여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천황은 통치권도 없고 제사나 어떤 의전만을 담당하는 상징적인 존재기 때문에 하늘 천(天)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황제국인 대륙의 패자는 가끔은 막부의 수장에게 군왕으로 봉한다는 칙서를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왜국에 전에는 없었던 사건이 터진 것이다. 황제국인 명나라 황제로부터 직접 군왕으로 책봉된 최인범이 규슈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왜에는 왕이 둘이 존재하는 셈이라 그 때문에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규슈 지방의 영주들이 흔들리는 정도지만 그 여파는 빠르게 전파되어 전국을 강타하고 있었다. 물론 조선도 매우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정신이 이상한 가정제는 저 죽는 줄 모르고 먼 나라의 일이라고 세상을 점점 난세로 만들었다. 그러니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이라 최인범은 용이 비구름을 만난 경우처럼 한없이 승천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우선 추가로 배치된 판옥선 10척은 기존에 1함대와 2함대로 배속시켰다. 아울러 함장이나 기타 장교들도 임명했다. 해군은 이제 판옥선 10척씩을 보유한 2개 함대로 변했다.
친위부대인 기마병들의 경우 근접경호부대원을 40명으로 늘리고 나머지 160명은 2개 친위부대로 나누게 되었다.
40명으로 늘린 근접경호원은 이창수 중위가 지휘하고 두 개의 친위부대는 배지기 중위와 아소패 중위가 담당하게 되었다. 아소패 중위의 경우 설화와 6촌인 충복으로 뛰어난 궁술과 기마술을 가진 20대의 젊은 용사다.
부대편성이나 임명이 모두 끝내자 최인범은 아소패에게 지시했다.
“아직은 무더운 왜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니 당분간은 1중대장인 배지기 중위에게서 모든 것을 세밀하게 배우도록 해.”
“넷!”
“아 부인과 친척이라고 봐주지는 않을 것이니 그 점을 명심하도록 해.”
“넷! 명심해서 실수가 없도록 하겠나이다.”
기마병들에 대한 배치가 끝날 무렵·····.
드디어 12명의 하카타의 대상인들이 은괴 40짝을 준비해 내기바둑을 두었다.
덜덜덜.
사가키는 바둑돌을 잡은 손가락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최인범이 전보다 더 높은 직위인 군왕으로 오른 사실을 알자 사가키는 더욱 심하게 주눅이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형편없는 바둑을 두어 중간에 대마를 죽이고 바둑은 끝나 버렸다.
“너무 허접한 실력이군.”
“전하, 죄송합니다.”
대상인들은 은괴가 사라져도 전보다는 불평들이 없었다. 아무리 주눅이 들어도 그렇지 이미 바둑 실력의 차이를 느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내기 바둑을 두자는 소리를 안 하니 안심했다.
“이런 정도로 끝났으니 이제 우리의 요구를 말할 때야.”
“그럽시다. 뇌물을 받았으니 우리가 하는 요구를 들어 줄 거요.”
대상인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을 무작정 마시고 있었다. 최인범은 이들과 전혀 다른 생각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둑이나 또는 전투에서도 속전속결에 매우 능한 최인범이라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했다.
최인범은 대상인들을 압박한 증거를 확실하게 찾았다. 그 때문에 양에도 차지 않는 내기바둑을 더 이상 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부하들이 드디어 12명의 대상인 중에 누가 대마도 사무라이들의 농간에 동조했는지 찾았다. 하카타의 사무라이들에게 무작위로 생아편을 배포하고 요설로 난정을 부리도록 충동질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낸 것이다.
“이 중위, 대마도 출신인 사무라이들은 잡았나?”
“전하, 다는 잡지 못하고 일부인 10명만 잡고 나머지는 생아편을 싸게 판 자금으로 배를 구해 멀리 도망쳤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아마도 복건성이나 유구 왕국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렇다면 대대원을 모두 보내서 연루된 대상인을 잡아 오도록 해.”
“넷!”
기마병으로 구성된 친위대대원들이 4개 부대로 나뉘어 기습적으로 4명의 대상인들 저택을 공격했다.
우당탕! 와장창!
말을 타고 저택으로 난입한 친위대원들은 빠르게 저택에 있던 대상인을 비롯한 모든 식솔들을 포박했다.
“이게 무슨 짓이요?”
“전하의 명령이요. 하카타의 사무라이들이 전하를 노리고 난동을 부린 배후라는 죄목이요. 그러니 고분구분 따라 오시오.”
“헉!”
자신들의 죄목을 말하자 대상인은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비록 내기바둑이란 형태지만 뇌물을 충분히 넘겨줘서 하카타의 사무라이들이 벌인 난동사건은 그냥 넘어갈 것으로 판단했더니 전혀 그게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왕을 시해하려고 했으니 죄의 무게가 더 엄중했다. 이건 분명 반역, 반란죄에 해당하니 무조건 극형이다.
“한 번만 살려 주시오. 내 재산의 반을 줄거니 나와 멀리 도망칩시다.”
“뭐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최인범의 거처인 신산여각의 앞마당에는 죄수로 끌려온 4명의 대상인과 입회자로 소환된 8명의 대상인들이 모두 모였다.
웅성웅성.
그들 이외에 대마도출신 사무라이 10명도 포박되어 있었다. 물론 다른 증인들도 모두 소환되어 대기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약간 떨어져 구경꾼들도 모여 있었다.
워낙 중대한 재판이라 규슈의 영주들도 참석해 있었다.
이제는 군왕의 몸이라 상인을 상대로 추국을 직접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철갑웅은 임시로 재판관이 되어 대신 죄인들을 추국했다. 명백한 증거인 생아편이나 은괴 그리고 소문을 퍼트리던 증인들도 잡혀 왔으니 4명의 대상인들은 그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고작이다.
“살려주시오.”
“감히 전하를 가당치 않은 요설로 음해하고 사무라이들에게 아편을 풀어서 난동을 부리게 하다니.”
“죽을죄를 졌습니다.”
“험! 대명률로 보아 대역죄에 해당해 능지처참으로 처해야 하나 죄를 순순히 자복했으니 가산은 모두 몰수하고 가족이나 식솔은 모조리 관노비로 만들고. 죄인에게는 전하의 높으신 아량으로 참형에 처하고 효수한다.”
최인범이 이제는 명나라 황제의 책봉을 받은 군왕이라 대명률로 판결을 내렸다. 더구나 군사적인 반란에 해당되는 무력을 동원한 난동을 부렸으니 당연히 극형에 해당된다.
입회자로 참석한 8명의 대상인을 매섭게 노려보며 철갑웅이 다부지게 물었다.
“재판의 입회자로 판결에 이의가 있으면 말하시오.”
“저희들이야 그저 선처를 바랄 뿐입니다.”
“판결에 이의가 없으면 입회자로 판결서류에 서명하시오.”
결국 입회자로 참석한 8명의 대상인이나 규슈의 영주들도 연서로 서명하게 되었다. 그들의 서명이 모두 끝나자 철갑웅이 최인범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전하, 죄인들이 모두 자복해 죄를 인정해 판결이 끝났습니다. 전하, 처형은 언제 하옵죠?”
“지금 즉시 시행해.”
명령을 받은 철갑웅도 놀라고 모인 사람들이 다들 입을 벌리며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며칠은 놔두다가 처형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벌이 칼로 목을 베는 참형(斬刑)이고 몸에서 떨어진 머리를 긴 장대에 꽂아 놓는 효수(梟首)라 집행관인 망나니가 문제다.
“고통이 덜하도록 철 소령이 직접 참형을 시행해.”
“넷!”
지금은 어찌 보면 타국으로 파병되어 오게 된 준 전시상황이다. 그러니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빨리 하카타의 사무라이 난동사건을 종결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었다.
4명의 대상인들만 재판하는 것이 아니다. 대마도의 사무라이도 있고 대상인의 수족으로 움직인 죄인들도 있었다. 먼저 대상인들의 참형 집행이 시행되었다.
흔히 망나니가 죄인의 혼을 빼기 위해 한다는 요란한 사전 예비 동작도 없었다.
휙! 툭! 획! 툭!
죄인인 대상인의 머리를 조금 앞으로 내미는 동시에 언월도로 단번에 목을 싹둑 잘라버렸다.
형은 판결하고 동생은 직접 목을 잘라버리는 형태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죄인들에 대한 재판도 끝나고 형도 집행되어 20여개의 목이 조금 떨어진 거리에 긴 장대에 걸렸다. 자유무역도시인 하카타 항구는 또다시 심한 공포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몰수된 재산에 대한 처리가 남았다. 이미 몰수한다고 판결했지만 여기에는 관청이 없는 상황이다. 철갑웅이 그에 대해 물었다.
“전하! 몰수된 재산과 노비는 어찌 처리하옵죠?”
“관노비는 모두 나가사키 영지로 보내고 몰수된 재산은 8명의 대상인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도록 조치해.”
“넷!”
이런 판결을 통보 받은 8명의 대상인들은 기뻐야 당연한데 얼굴이 완전히 흑색으로 변했다. 그러나 관노비를 자신의 영지로 보낸다는 조치에 나가사키 영주는 내심 환호성을 토했다.
‘됐어,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규슈는 내 손 안에 있는 거야.’
그가 판단하기에 힘없는 천황이나 또는 쇼군이 부여한 권위보다는 최인범이 직접 자신을 영주로 인정한 조치다. 그러니 전에 지니고 있던 권위보다는 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영주들은 조금 안색이 변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영지만 종전처럼 그대로 인정해 주면 별 탈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외로 다니며 만고풍상을 겪기도 하고 경험이 많은 8명의 대상인들은 이재나 처세술에 밝았다. 그래서 산동해왕 왜 토벌평안 태대장군이자 조선구려진봉황산동군왕인 최인범이 왜 이런 식으로 쉽게 조치를 내린 것인지 빠르게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