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흔히 닌자(忍者)라 불리는 살인청부업자들은 가마쿠라 시대와 에도 시대에서 다이묘(영주)를 섬기거나 섬기지 않았어도 첩보활동, 파괴활동, 침투전술, 요인 암살 등을 도맡았다. 그래서 닌자는 보통 개인이 아닌 집단에게 부여된 명칭이다.
닌자는 일종에 특수작전을 수행하던 무리들이라 다들 일반적으로 사무라이들이 지니고 있는 무기와는 전혀 달랐다. 사무라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장검 두 자루와 단검 한 자루를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닌자들은 낫에 줄을 맨 무기, 표창. 밧줄, 갈고리, 은신에 필요한 도구나 또는 독침, 독약, 마약, 미약, 연기를 피우는 화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닌자들이 이렇게 많다니 놀랍군.’
닌자들을 모아 놓고 보니 여자 닌자들도 여러 명이나 된다. 대부분 가슴이나 얼굴에 화살이 박혀 죽었다. 뒤에서 표창이나 암기를 날리다 대장군이 날린 화살 공격에 죽은 것이 분명했다.
전에 본국검법으로 왜의 사무라이를 단칼에 죽인 공적으로 중위에 보임된 이창수가 다가와 보고했다.
“대장군, 닌자는 모두 38명이고 사무라이는 575명입니다. 총 613명으로 전원이 사망입니다. 회수한 무기들의 수는 장검이·····. ”
“됐어. 무기 수량은 보고할 필요 없어.”
“넷!”
이때 최인범 옆으로 다가온 대상인들은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 절했다. 먼저 여러 번 절하며 납작 엎드린 상태로 대상인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하소연을 토했다.
“대장군, 저희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흠! 용서라!”
최인범이 불쾌한 표정을 띠우자 당황한 대상인이 다시 급하게 변명했다.
“대장군, 방금 벌어진 사태는 저희들과는 무관하옵니다. 그러니 부마도위께서 바다 같이 넓으신 아량으로 널리 헤아려 주옵소서.”
“용서하옵소서.”
다른 대상인들도 따라서 용서를 빌었다. 대상인들이 용서를 빌며 선처를 부탁하는 하소연에 최인범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이들의 처리를 어찌해야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죄를 묻기는 해야 되지만 보다 명확한 증거를 찾고 나서 추궁할 생각이다.
그저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격군들을 바라보며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여기는 상황이 끝난 것 같으니 회수한 사무라이의 무기를 가지고 배로 가서 섬으로 돌아가도록 해.”
“넷!”
격군들은 사무라이들이 남긴 장검이나 단검을 모조리 챙겨들고 빠르게 달려 판옥선으로 향했다. 비록 왜인들이 사용하는 검이지만 판옥선으로 가져가면 유용하게 쓸 수 있어 보낸 것이다. 판옥선의 격군들은 기본적으로 무기를 지니고 있지만 조금은 허술했다.
최인범은 격군들이 판옥선으로 돌아가자 천천히 광장에 모여 있는 시체들을 살폈다. 사무라이 시체야 그저 건성으로 지나치고 있었다. 이번에 벌어진 사건은 최초로 닌자가 공격을 했으니 그들부터 잘 살펴 뭔가 단서를 찾아야한다.
“횃불부터 밝혀!”
“넷!”
근접경호원들은 급하게 근처에 모닥불을 피우고 횃불을 준비해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광장 전체가 환해지자 최인범은 닌자들의 시체로 다가가 하나씩 품속을 살폈다. 손바닥을 펼쳐 자세하게 살피다가 근접경호원에게 지시했다.
“이 무기는 저쪽 시체 옆에 가져다 놔! 그 시체의 무기는 이 시체 옆에 놓고.”
“넷!”
다소 애매한 경우는 시체를 옮겨 놓고 가운데에 무기를 놓았다.
간간히 근접경호원들이 최초로 공격당하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닌자들의 시체 옆에 놓인 무기들도 옮겼다. 전투는 이미 끝났으니 이들의 배후를 캐기 위해 닌자들부터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대장군, 이놈은 저에게 달려들며 장검을 들었던 놈입니다.”
“그래, 그게 확실하면 무기를 바꿔!”
“넷!”
닌자들의 얼굴도 자세하게 살피고 다른 얼굴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중요한 단서가 나을 수 있으니 하나라도 소홀히 다룰 수 없었다. 사용하던 무기의 종류도 자세하게 비교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야 많이 걸렸지만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다다다다. 와글와글.
이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며 많은 군사들이 무질서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각을 예약하러 같던 대마불이 흑선풍을 타고 먼저 다가왔다. 이어서 나가사키 영지 소속인 사무라이와 병사들이 도착했다.
나가사키 영주가 급하게 물었다.
“다이쇼군, 다행이 무사하시군요. 급하게 온다고 했지만 늦었군요.”
늦었지만 그래도 약속은 철저하게 지켰다. 이런 행동으로 보아 나가사키 영주는 이제 자신에게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자유도시인 하카타에 나가사키 영지군이 진군하면 다른 영주들이 여기로 몰려올 명분을 주기 때문에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영주, 오느라 수고 많았소. 상황은 이미 끝났고 자칫 다른 영지의 영주와 마찰이 생길 수 있으니 병사들은 빨리 주둔지로 돌려보내시고 영주와 일부 호위무사만 남도록 하시오.”
“넷!”
결국 나가사키 영주를 보호할 50명의 사무라이만 남았다. 다른 병사들은 본래 있던 장소인 경계선 근처로 가서 주둔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카무라 영주는 측근으로 상급사무라이인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영지로 돌아가서 추가로 1500명을 더 보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런 가운데 여각을 예약한 대마불이 보고했다.
“대장군, 여각으로 가나요? 여각에는 바로 옆에 마방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 가야지. 여각의 주인에게 말해서 여각을 우리가 통째로 사용한다고 계약하고 말들도 모조리 여각의 마구간으로 옮겨.”
“넷!”
대상인들의 저택으로 가서 지낼 수는 있다. 하지만 암살당할 위기에 처했었으니 당초 생각한 그대로 여각으로 가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최인범은 아무런 공을 새우지는 못했지만 군사를 이끌고 왔으니 나가사키 영주도 뭔가 역할은 줘야 된다고 판단해 지시했다.
“영주는 우선 사무라이 시신들의 연고자가 있는지 확인해. 시체를 넘긴 기록을 해놓고 가족들에게 시신을 넘기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여름이라 시체가 집단으로 모여 있으면 전염병이 생길 위험성이 높아 시신들을 빨리 처리할 생각이다. 이런 대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때까지 멀리서 눈치를 보던 사우라이 가족들이 달려와 죽은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흐으윽! 여보!”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남편이나 아비가 갑자기 죽어서 싸늘한 시체로 변하자 남은 가족들은 슬프게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런 가족들의 행동을 영주가 나무랐다.
“험! 조용하지 못할까? 다이쇼군을 공격한 죄를 가족들에게 묻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해야지. 왜 울고 난린가? 사무라이들은 연고자가 확인됐으면 시체들을 보내줘.”
“넷!”
떠도는 낭인들인 사무라이들이라 연고자가 있는 경우보다는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영주는 시신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무라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부하들에게 지시해 치우도록 했다.
왜는 장례 방법이 본시 화장을 주로 하는 터라 시체들은 커다랗게 피워 놓은 장작더미에 던져 넣는 것이 고작이다.
나가사키 영주는 죽은 사람의 품속을 뒤져 그래도 뭔가 유품이 될 만한 것들은 따로 모아놓았다. 나중에 가족이 찾아오면 전해준다는 뜻이지만 가족들이 알고 찾아올 확률은 낮았다. 영주는 자신의 개인사찰에 유품이나 유골들을 보관시킬 생각이다.
자신의 자비로움을 선전하는 뜻도 되고 놀라운 전과를 거둔 대단한 전투에 자신도 참여했다는 공적도 기리기 위해서다.
‘20명이 무려 600명의 사무라이를 몰살시킨 전투는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거야.’
아무튼 후일담이지만 하카타 대전으로 동양 삼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단 10명이 1000명의 사무라이를 몰살시킨 기록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하카타 대전에서 최인범이 거둔 승리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역사서에 생애가 기록된 인물은 1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렇게 후세로 전해졌다.
12명의 대상인들도 시체 처리를 협조하기 위해 죽은 사무라이의 신분을 확인해 주었다.
“이 사람은 가족이 없소. 내가 부리던 사무라이요.”
“좋습니다. 확인해 주시죠.”
대상인들이 고용한 사무라이는 이런 방법으로 확인을 끝내고 화장해 버렸다. 물론 배후로 지목된 중요한 용의자인 대상인들 말만 듣는 것이 아니다. 꾸역꾸역 모여든 주민들에게도 물어 2중 3중으로 확인이 끝나면 화장해 시체를 처리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여각으로 가려다가 아직도 여기서 남아 확인할 일들이 많아 대상인들에게 지시했다.
“내기 바둑을 둔다는 사가키도 부르고 내기바둑을 둘 준비를 하시오. 그리고 의원들은 여럿 불러와 닌자를 검안하도록 하시오.”
“넷!”
죽은 시체들이 즐비한 옆에서 내기바둑을 둔다니 다소 황당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지 않고 시체들의 처리를 지켜보겠다는 뜻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상인들은 급하게 광장에 큰 차일을 치고 그 주변에는 면포로 울타리처럼 만들고 내기바둑을 두는 대국 장소를 마련했다. 야지라 탁자도 옮겨다 놓고 커다란 의자도 준비해 놓았다.
어수선한 가운데 내기 바둑은 진행되었다. 하카타의 최고수라는 사가키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끌려와 시체들이 가득한 광장 옆에서 바둑을 두려니 정신이 어지럽고 손이 떨려서 정상적으로 바둑을 둘 형편이 아니다.
사가키는 떨리는 손으로 바둑돌을 놓으면서 그만 떨어트려 바둑판을 흐트러트려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최인범은 천천히 복기해 다시 정상으로 만들어 놓고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차분하게 바둑이나 두시오.”
“예! 예!”
엄밀하게 말해 이러면 패배하게 된다. 아무튼 신분이 너무 높아서 부담되던 내기바둑이다. 내기에 걸린 금액이야 자신의 재물이 아니라 상관이야 없었다. 모두 대상인들이 내놓고 대신 대국하니 금전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명국은 남겨줘야 나도 할 말은 있는데.’
그러나 명국은 고사하고 정상적으로 바둑돌을 판위에 올려놓기도 버겁다. 오면서 들으니 혼자서 조금 전에 수백명이나 되는 사무라이를 죽였다니 너무 겁이 나서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장고바둑을 두기 때문에 최인범은 바둑을 두다가 대국 장소를 떠나 검안하는 의원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떤가? 모두 왜인들이 틀림이 없나?”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조선 사람도 보입니다. 머리를 밀어버린 흔적이 불과 하루나 이틀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두발이 본시 상투였다는 거지?”
의원은 자신에 찬 표정으로 다부지게 답했다.
“넷! 대장군께서 지목하신 사체들은 모두 상투를 튼 흔적이 보입니다. 조선 출신들이 확실합니다.”
“더 자세히 살피시오. 그리고 화공을 불러서 얼굴도 그려놓고.”
“예.”
최인범은 범인인 닌자들이 왜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닌자들이 지닌 무기를 소지했지만 그 무기를 오래 수련한 흔적이 손바닥에는 전혀 없었다. 다른 무기를 오래 수련한 흔적만 발견해 의문을 품었다.
‘소지한 무기와 수련 흔적이 너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