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다른 대상인들은 주춤거렸다. 난전이 벌어지는 그곳으로 가다가는 당장에 개죽음을 당하기 쉬웠다. 가서 빌자고 주장하던 대상인은 먼저 최인범이 사무라이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광장을 향해 내달렸다.
다른 대상인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잘 안다. 분명 자신들은 대장군을 호의적으로 대하고 무역을 통해 서로 협조할 마음이다. 그러니 자객들을 보내 대장군을 암습할 하등에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뒤로돌아서 도망치면 반드시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어 이후에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대상인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그런 정도를 짐작하거나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두렵기는 하지만 먼저 달려간 대상인을 따라 가는 수밖에 없었다.
“빨리 갑시다. 늦을수록 피해가 더 커집니다.”
“그럽시다.”
한편 효시를 연달아 날리고 활로 원거리에서 표창들을 날리던 닌자들을 빠르게 제거한 최인범은 분노했다. 그래도 먼 옛날 조상이 같다는 생각으로 호의적으로 대하려던 자신의 의중도 모르고 암습하자 열불이 났다. 더구나 그동안 암습을 여러 번 당해 그것도 크게 작용했다.
‘이놈들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분노의 불길이 가슴에서 불같이 치밀자 진득한 살심이 생겼다. 두 눈에서는 싸늘한 살기가 풀풀 풍겼다. 꽉 다문 입이 묘하게 비틀렸다. 그가 풍기는 강한 살기는 주변의 근접경호원에게로 퍼졌다.
뇌리에는 전생에 왜인들의 모든 치졸한 행위나 또는 정치인들의 망언들, 독도 문제나 일제 강점기에 당한 민족의 치욕, 태평양 전쟁 때 벌어진 위안부나 강제징용, 만주의 731 세균부대의 마루타 등 부수한 왜인들이 저지른 추악한 사건들이 뇌리에 가득 떠올랐다.
뜨겁게 끓어 오른 분노는 순간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분노한 최인범은 싸늘한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사그리 죽여!”
들고 있던 활을 등에 챙기고 다시 흑혈검을 들었다.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근접경호원들 사이에서 앞으로 튀어나와 돌진했다. 마침 수많은 사무라이들이 장검을 들고 달려왔다.
“이놈들이! 죽어!”
이후는 말이 필요 없었다. 전투에서는 말보다 검이 우선이다.
최인범은 크고 폭이 넓은 흑혈검은 아주 단순하고 절제된 동작으로 사무라이들을 빠르게 베어갔다. 가로 베기와 사선 베기 때로는 찌르기 동작을 간결하게 펼치며 천천히 전진했다. 그의 왼손에는 톱날이 달린 대검이 들여 있었다. 양손에 검을 들고 쌍검술을 펼쳤다.
사각! 획! 사각! 사각!
“크악!”
“컥!”
“으악!”
최인범이 휘두르는 두 개의 매서운 검에 사무라이들은 죽어갔다. 잔가지의 나무가 쓰러지듯이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대부분 단 한 번의 칼질에 절명했다.
때로는 부상당한 놈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놈은 뒤따라가는 철갑웅이 휘두르는 크고 긴 언월도로 모조리 숨통을 끓어버렸다. 철갑웅의 숨통을 끓어 버리는 동작도 아주 간결했다. 정확하게 목덜미를 언월도로 사정없이 잘라버렸다.
그 뒤를 따라가는 근접 경호원들은 그저 내달리기만 했다. 급하게 따라만 가지 상대한 적이 없으니 할 일이 전혀 없었다. 수많은 사무라이를 대장군이 거의 혼자서 베어나가는 모습은 아주 깔끔해 마치 검무를 추는 것 같았다.
“와! 대장군께서 화나니 진짜 무섭군.”
“내가 보기에는 멋진데.”
“그건 그래.”
오직 적을 효과적으로 베기 위한 간결한 동작만 있고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부나비처럼 최인범을 향해 달려드는 사무라이들은 너무나 엄청난 무력에 겁이 났다.
“헉! 저렇게 강할 수가?”
머릿속에서는 뒤로 돌아서서 도망쳐야 된다고 본능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마치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부나비 떼처럼 사무라이들은 동료들이 죽는 뒤를 따라 그저 앞으로 내달리다가 죽어갔다. 집단의 힘에 이끌려 그저 속절없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사각! 사각! 휘익! 휘익! 사각! 사각! “큭!”
“크악!”
“컥!”
“으악!”
죽음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달빛 속에서 번득이는 흑혈검을 절제된 동작으로 빠르게 휘두르는 최인범의 동작은 진한 살기를 풍기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이때 이런 모습을 숨어서 보는 무리가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모두 창문을 닫고는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에 문틈으로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기녀들은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너무 무서워 공포에 질렸지만 마치 춤을 추는 모습처럼 사무라이들을 죽이고 있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처럼 토했다.
“어머머, 너무 멋진 분이야!”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는 살인 장면이 멋지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살았던 일생이 너무 험악하다보나 전쟁터에도 있었고 살인하는 장면도 무수히 목격했다. 그러니 온몸에 찌릿하게 강한 느낌을 가져오는 절제된 동작의 검술은 보지 못했다.
기녀들만 숨어서 보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도 바라보고 주민이나 상인들도 숨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덜덜덜 떨고는 있지만 문틈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저분은 신이야. 인간이 저렇게 무술이 뛰어날 수 없어.”
“당연하지. 그러니 타이다이쇼군이지.”
대장군으로 부족해 왜인들은 최인범은 일부 태대장군으로 칭하고 있었다.
극에 다다른 분노와 복수심으로 최인범은 무수한 사무라이를 베어 나갔다. 분노 이외에는 다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아지경에서 사무라이들을 베어나가던 최인범은 앞에서 다가오는 적들이 한 명도 없자 그제야 전진을 멈추었다.
“후우! 많기도 하군.”
그제야 긴 한숨을 토하고 뒤로 돌아서 지나온 길을 바라보자 무수한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죽은 시체들이 흘린 진한 붉은 피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강하게 자극 했다.
‘이제 끝났나?’
“와! 죽여라!”
우르르. 와글와글.
이때 옆 골목에서 30여명의 사무라이들이 떼로 몰려와 근접경호원들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 사무라이들도 근접경호원들이 휘두르는 장검의 칼날에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사각!
“으아악!”
획!
“으악!”
“으으윽! 살려줘!”
최인범과 접전한 사무라이들은 짧은 비명소리를 끝으로 절명했다. 하지만 경호원들과 접전한 사무라이들은 부상만 당한 놈들이 많아 쓰려져서 땅을 기어가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살려줘!”
“제발!”
그러나 근접경호원들도 이미 대장군의 강한 살기가 전이되어 그런지 냉혹했다. 엉금엉금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무라이들의 등에 장검을 깊이 쑤셔 박았다.
광장과 넓은 길에는 죽어가는 사무라이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더 이상 공격할 사무라이가 없는 듯이 고요해졌다. 간간히 근접경호원들이 널려 있는 시체들을 발로 툭툭 차서 살았는지 확인하는 작은 소음만 들렸다.
안쓰럽거나 또는 불쌍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항상 답답하게 막혔든 어떤 부분이 확실하고 시원스럽게 확 뚫렸다는 느낌만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체들을 보며 표정변화가 거의 없었다.
‘배후가 어떤 놈인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반드시 배후를 찾아서 처참하게 죽일 생각만 가득했다. 워낙 많은 사람을 죽이다 보니 사람을 죽이는 전투가 이제는 별로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이제야 정상적인 군인이 된 건가?’
이때 철갑웅이 시체의 옷자락에 붉은 피가 잔뜩 묻은 언월도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대장군님,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그렇군.”
광장과 넓은 거리에는 시체들만 가득하고 살아서 움직이는 그 무엇도 없었다. 흔하게 돌아다니던 개나 고양이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홍등가의 모든 호롱불들은 이미 모조리 꺼졌다. 누각인 여각들의 호롱불도 모조리 껴져 흐릿한 달빛만 전장 터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다다다다.
이때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뭐야? 또 남았어?”
근접경호원들이 다시 검을 빼어들고 다가오는 무리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달려오는 사람들은 손에 무기가 들려 있지 않고 비단옷을 입은 대상인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멈춰!”
달려오던 대상인들은 전장 터에 도착해 수없이 널려 있는 시체를 보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추고 말았다. 너무 많은 시체가 널려있으니 입을 떡 벌리고 다들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일방적인 전투라 기가 막혔다.
‘이렇게 많은 사무라이가 겨우 20명에게 죽이다니.’
대상인이라 전쟁터를 수없이 목격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무라이가 죽어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검사인 사무라이는 전쟁터에서 그래도 간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큰 전투에서도 사망자는 불과 2-30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다들 검을 들고만 있고 창을 든 농민군들이다.
‘사무라이가 다 죽었으니 이제 우리는 알몸이야.’
자신들을 보호해줄 어떤 무력도 이제 하카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대상인들은 꼼짝없이 최인범의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본시 사무라이는 다이묘(영주)에 딸린 중간계급인 무사들을 칭한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해 여기에 죽어 있는 사무라이는 모두 진정한 사무라이는 아니다. 흔히 낭인이라고 부르는 떠돌이 검객들이다.
그러나 영주들이 데리고 있는 사무라이들 보다 검술 실력은 최소한 한 두 단계 위다. 그런 사무라이들이 모조리 죽어 버렸으니 너무 기가 막혔다. 500명 이상 되는 사무라이들이 단 20명에게 몰살당해 버렸으니 이건 전쟁도 아니고 전투도 아니다.
‘완전히 일방적이네.’
전쟁이나 전투라고 부르면 그래도 상대편에게 작은 피해라도 입혀야 된다. 그러나 대상인들이 보기에는 다이쇼군이 이끄는 부하들은 단 한명도 사망자가 없어 보였다. 다만 가벼운 부상을 당해 팔에 하얀 붕대를 감은 모습만 간간히 보였다.
다다다! 척! 척!
이때 화포를 발사하며 부두에 도착한 판옥선 10척에서 해군들이 빠르게 하선해 전장 터로 달려왔다. 창이나 검을 들고는 있지만 모두 상체를 벗은 모습들이다.
이들은 모두 격군들로 판옥선이 부두에 정박하자 비치된 무기를 들고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줄지어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일정했다.
‘흠! 이제야 조금 군기가 바로 섰군.’
착! 착! 착!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이루고 빠르게 달려오는 격군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즉시 명령했다.
“무기는 모두 한쪽에 회수하고 시체들을 모두 광장으로 모으고 닌자들도 있으니 그들은 따로 구분하고 무기는 시체 옆에 놓도록 해.”
“넷!”
10명의 근접 경호원들은 여전히 최인범 옆에 도열해 경호했다. 다른 10명은 다가온 격군들을 지휘해 시체들을 광장에 가지런히 모아 놓았다. 시체들이 소유한 장검들은 따로 수북하게 쌓아 놓았다.
격군들도 너무 많은 시체에 놀랐다. 둘씩 시체를 들어 나르며 중얼거렸다.
“떼로 달려들다가 죽어 버렸어.”
“죽은 사무라이들의 반 이상을 대장군께서 죽였어.”
“그렇군.”
이들이 쉽게 이런 단정을 내리는 이유는 대장군의 흑혈검에 죽은 시체는 대부분 검상이 깊으며 아주 깔끔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치열하던 전투는 이미 끝났으니 전과는 기록해야 된다. 사방으로 널려 있던 시체들을 20구씩 줄지어 가지런히 모아놓았다. 그러자 광장에는 수많은 시체들에게 파리 떼가 모여들었다.
대장군이 지시한 대로 사무라이와 닌자로 보이는 시체는 따로 따로 모았다. 구분이 쉬운 것은 그들의 옆에 놓인 무기가 전혀 다르고 또 입고 있는 옷이 다르기 때문이다.
‘흠! 닌자들이 사무라이와 결탁해서 동시에 공격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