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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75화 (275/519)

275화

<닌자(忍者)와 사무라이(侍)>

나가사키에서 하카타로 오며 중간의 도시에서 잠자고 다시 이동해 오후가 되어 도착했다. 하카타 외곽에 도착하자 호위하며 이동하던 나가사키의 사무라이들과 군사들은 그곳에 머물렀다.

하카타는 영주가 없는 자유무역지역이지만 상인들이 지배하는 곳이라 외부에서 많은 군사가 들어올 수 없었다. 만약 그리되면 침공으로 받아들여 전투가 벌어진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질 무렵.

최인범은 하카타 항구의 바닷가에 있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처음 도착해서는 하카다 만을 살피며 멀리 보이는 섬에 판옥선 10척이 정박한 모습도 확인하며 바닷가를 먼저 살폈다.

조선에서 들어온 배를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에서 다가가 선원에게 물었다.

“어디서 온 배요?”

“소속은 염포지만 부산포에서 출발해 직접 왔습니다.”

“대마항을 들리지 않고요?”

“예, 앞으로 염포 소속인 무역선 5척은 대마도호부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하카타에 올수 있습니다.”

조선은 전에는 항상 왜에서 찾아오는 무역선을 통해 교역했다. 하지만 염포소속의 무역선 5척에 한해서는 왜와 직교역의 길을 열어 놓았다.

‘흠! 조선도 많이 개방적으로 변했어.’

최인범과 철갑웅은 완전무장인 상태인 중갑옷을 입고 있다. 경호원들은 모두 쇄자갑으로 단단히 무장한 상태다. 하카타 거리는 화교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주로 남경 지역에서 보았던 음식들이 노점에서 팔리고 여각에서는 명나라 옷을 입은 여자들이 창가에서 앉아 지나가는 행인 유혹하고 있었다.

“대인, 들어오세요. 예쁜 소주 낭자가 있어요.”

“남경 미인도 있어요. 들어오세요.”

좁은 길의 양쪽에는 붉은 등을 켜진 여각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제 어두워지는 밤이라 붉은 등에 불이 들어오자 완전히 홍등가라는 느낌이 들도록 붉은 등이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와글와글.

거리는 밤이 되자 더 부산해지는 것 같았다. 떠도는 낭인인 사무라이도 보이고 고급 비단옷을 입은 사무라이도 무수하게 보였다. 이곳은 주인이 없는 사무라이들이 모여들어 살면서 상인들에게 가끔 보수를 받고 청부업을 하고 있었다.

거리는 매우 혼잡하고 또한 구걸하는 소년들도 보이고 호객행위 하는 홍등가의 여자들이 토해내는 간드러진 목소리 때문에 매우 소란스러웠다. 누각 형태로 지어진 큰 여각에서는 각종 악기들이 내는 아름다운 연주소리가 들렸다. 간간히 여자들이 토해내는 노래 소리로 더욱 요란스러웠다.

현대의 야시장 정도는 아니지만 여각 앞이나 넓은 공터에는 작은 노점으로 차려진 가게들이 많았다. 최인범은 배가 출출해 길거리의 노점에서 고치도 사먹고 경단도 사먹었다.

항상 그렇지만 옆에서 같이 다니는 근접경호원들에게도 음식을 사서 먹으라고 주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무질서 하지만 매우 활기가 넘치는 거리다.

전에 무역선을 타고 이곳을 여러 번 다녀 봤다고 하는 대마불에게 지시했다.

“마불아, 네가 하카타에 대해 잘 안다니 조금 한적한 곳에 있는 여각을 찾아가 예약하고 와라. 되도록 2층 전체를 전세 내는 방법으로.”

“알았어요. 제가 좋은 곳으로 가서 예약하죠.”

최인범은 전에 일부러 바다에 빠져 대마불의 충성심을 확인했다. 대마불이 아비인 도주나 형제의 죽음을 별로 슬퍼하지 않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사실 제주도 해녀인 어미와 아비인 온전한 탐라 혈통이다. 처녀로 임신 중이던 해녀인 어미가 도주에게 납치되어 대마도로 끌려와 첩으로 살다가 대마불을 낳자 칠삭둥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어미는 도주의 아들들에게 핍박을 당해 결국 모진 목숨을 끊었다. 어린 자식을 두고 목숨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죽어버린 것을 보면 거기에도 알려지지 않은 깊은 내막이 있어 보였다.

최인범은 그런 내용을 알고 나서는 대마불을 아꼈다. 특별히 어떤 대우를 하기보다는 많은 경험을 하도록 지금과 같이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말들은 모두 대마불이 주선한 마방의 마구간으로 넣어 놓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저기가 좋겠다.”

“대장군님, 면을 드시려고요?”

“그래, 시원한 해물로 만든 면을 먹어보자.”

최인범은 철갑웅과 근접경호원 20명을 데리고 포장치고 면을 파는 노점으로 가게 되었다. 소식하는 왜인들이라 면은 양이 많지 않아 다들 2인분을 시켜 먹었다.

최인범과 철갑웅은 의자에 앉아서 먹고 근접 경호원들은 주변에 서서 부지런히 긴 젓가락을 놀렸다.

후르륵! 후르륵!

항상 사주 경계해야 하는 근접경호원이다 보니 양이 적기도 하지만 빠르게 소리를 내며 먹었다. 심부름을 보낸 대마불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오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시했다.

“철 중령, 이번에는 우선 자네가 계산해. 나중에 마불에게 받고.”

“넷!”

주로 이런 잡비 계산은 대마불이 은자를 지니고 다니며 했다. 그 때문에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계산을 끝내고 이제 어두워진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쉬익! 팅!

갑자기 날아온 작은 철화살이 최인범의 갑옷에 부닥치며 튕겨나갔다. 그와 동시에 백두가 몸을 웅크리며 앞으로 돌진하려는 약간 낮은 자세를 취하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릉! 크르릉!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작은 표창과 괴이하게 생긴 암기들이 날아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중갑옷을 입고 있어 모조리 튕겨나갔다. 중갑옷이 아니면 이미 벌집이 되어 죽었을 매서운 공격이다.

팅! 팅! 철커덕! 챙! 챙!

“적이다!”

이런 소리와 함께 철갑웅은 자신 쪽에서 장검을 들고 달려드는 상인차림인 사내의 몸을 언월도로 베어버렸다.

“감히!”

획!

“크아악!”

반월도는 정확하게 달려드는 괴한의 목을 삭둑 잘라버렸다. 목에서 품어진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겼다.

이와 동시에 최인범에게 여자자객이 품속에서 몰래 꺼낸 단검을 꼬나들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여자자객은 최인범이 강하게 올려친 주먹에 턱이 바수어지며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퍽!

“악!”

바지직!

턱이 바수어지며 땅에 쓰러진 여자자객을 철갑웅이 발로 목덜미를 밟아 비틀어버리자 바동거리던 몸을 축 늘어트렸다. 이때 바로 옆으로 다가온 역시 상인 차림인 남자에게 백두가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왈!

“크아아악!”

사방에서 검은 야행복을 입은 괴한들이 최인범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밤에 기습적으로 당하는 공격이라 누가 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최인범은 빠르게 뽑아든 흑혈검으로 달려드는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적들은 접근과 동시에 하나 둘 붉은 피를 품어내며 죽어갔다. 습격하는 무리는 최인범이나 철갑웅에게만 달려들지는 않았다. 옆에 있는 경호원들에게도 달려들어 완전히 혼전의 양상이다.

“살인이다!”

누군가 크게 외치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거리를 배외하던 사무라이들이 장검을 꼬나들고 떼로 달려들었다. 거리는 순간 치열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혼잡하기만 하지 최인범 일행에게 달려드는 사무라이들은 경호원들의 검에 모조리 죽어갔다.

쉭!

“크악!”

챙! 챙!“크악!”

챙그랑

“크악!”

검들이 부닥치며 파란 불꽃이 일었다. 혼잡을 이루는 난전이 벌어지는 가운데에도 최인범을 노리고 표창과 암기 그리고 화살들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모조리 갑옷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려드는 사무라이 수는 많아지고 죽거나 중경상을 입고 쓰러져 신음하는 수도 늘어났다. 거리는 이제 민간인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사무라이나 혹은 야행복을 입은 닌자들만 보였다.

적들이 떼로 달려들자 경호원들은 진용을 짜고 최인범을 완전히 에워싸고 검을 휘둘렀다. 간간히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닌자들을 향해 경호원들은 대검을 던져 잡았다.

일단 경호원들이 자신을 완전히 에워싸자 최인범은 들고 있던 흑혈검을 땅에 박아 놓고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이층인 여각 위에서 표창을 날리는 닌자를 향해 화살이 날아가자 닌자는 지붕에서 떨어져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신호해!”

“넷!”

신호하라는 명령을 받은 철갑웅이 하늘을 향해 화살을 연달아 날렸다.

삐리리리릭! 삐리리리릭!

철갑웅이 날린 화살은 화살촉 대신에 구멍이 뚫린 신호용 화살인 효시다. 효시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크게 소리를 내자 거리는 일순 공포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거리는 붉은 피가 고이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다소 무질서하지만 전쟁이 없고 다른 곳에 비해 풍요롭고 평화롭던 이곳에서 드디어 전쟁이 터진 것이다. 어느새 거리에 수없이 많았던 노점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홍등가의 붉은 등들도 하나둘 꺼지고 말았다.

뜨거운 여름밤의 어둠이 짖어지는 가운데 계속해서 검들이 부닥치거나 또는 사람이 죽어가며 토해내는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사방에서 달려오는 사무라이들의 소란스러운 나막신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탁탁! 타가닥 타가닥! 타타다탁!

연달아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조금 지나면 사무라이들이 토해내는 기합소리와 죽어가며 지르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한편 최인범을 맞이하려고 거리로 가던 상인들은 최인범이 닌자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마도위이자 대장군인 최인범의 심기를 어지럽혀 문제가 발생할까 염려하는 판국이다. 그런데 여기서 암습을 받았다니 사태가 너무 심각해졌다.

“그래서 대장군께서 다치지는 않고?”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무사하실 겁니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무라이들이 닌자들과 같이 합세해 공격해서 어찌될지 잘 모르겠어요.”

“뭐라? 사무라이들이 왜 대장군을 공격해.”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카타 항구에서 돌아다니는 사무라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고용하고 있는 군사들이다. 그들이 대장군을 공격했다면 이건 너무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어쩌지?”

“일단 몸을 피하고 사태를 지켜봐야죠.”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하늘 높이 날아가는 효시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상인들 모두 넋이 나가 멍하니 하카다 만을 바라보았다. 효시의 신호를 받은 10척의 판옥선 빠르게 하카다 부두 쪽으로 매섭게 다가왔다.

이때 동쪽에 주둔하고 있는 나가사키의 병사나 사무라이들이 빠르게 하카타 항구 쪽으로 뛰어오는 발자국소리가 요란했다. 간간히 말을 탄 사무라이가 크게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와! 와!”

“다이쇼군님을 구해!”

“와! 모조리 죽여!”

이런 외침과 더불어 요란한 대포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부두로 다가오는 10척의 판옥선에서 일제히 수많은 대포를 발사하며 위협을 가했다.

쾅! 쾅! 과과광! 쾅! 쾅! 과과광!

전혀 의도하지 않고 예측하지도 못한 긴급한 상항이 벌어지자 12명의 대상인들은 거리에서 급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쩌죠. 진짜 위기상황이 아닙니까?”

“낸들 뭘 알아야 대처하죠.”

그러자 아까부터 최인범을 호의적인 인물로 평하던 대상인이 슬며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대장군님께 빨리 가야 합니다. 가서 우선 그분에게 백배사죄하고 그 후에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아니면 우린 진짜 몰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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