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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74화 (274/519)

274화

해군들이 훈련하는 가운데 조선에서 들어온 무역선들이 항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선에는 건장한 체구인 청년들이 상인 복장으로 승선해 있었다.

“하카타 부두에 도착하면 옷은 갈아입어야죠?”

“당연하지. 야행복으로 사서 입어야 해.”

“알겠습니다.”

옷이야 상인이지만 그들의 대화나 행동은 검객의 모습이 분명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임무를 부여 받아서 그런지 표정들은 모두 굳어 있었다. 또한 얼굴이나 팔에는 깊은 칼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카타 항구는 조선, 명, 왜를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관문이다. 이곳은 일찍이 11세기 말에 중국인 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번성한 곳이다.

본래 신라시대 해상왕인 장보고도 이곳을 중요한 무역거래처로 상단을 보내 활동했다. 일찍 조선, 대륙, 왜로 연결된 삼각 해상무역을 하던 곳이다.

그 때문에 하카타는 왜에서는 최초로 다수의 외국 상인들이 왕래하는 국제항구가 되었다. 송나라 때에는 대륙과 하카타를 오가는 선단이 활발히 왕래했다.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대륙의 상인들은 하카타에 거주하며 상업 활동을 활발하게 해 하카타의 사원과 결탁해 그 힘은 왜의 중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사실 대륙의 상인들은 더 먼 역사로 보면 해상왕국으로 많은 지역에 담로를 건설한 백제에서 파생된 유민들이다. 그래서 보타도에서 만난 무역상들은 하카타 상인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여기도 보타도 출신인 화교들이 큰 세를 이루는 항구야.’

여전히 자유도시인 하카타 항구는 12명의 상인들이 큰 부를 이루고 무역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전 최인범이 대륙에서 만났던 밀무역하던 왜인들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또한 부산포에서 거래한 왜의 상인들도 이들이기 때문에 사실 오랜 인연이 있는 곳이다.

하카타 항구에 도착한 최인범은 거대한 중국식 저택이나 여각들을 보고 이곳이 중국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허, 여기가 진짜 왜구의 소굴이군.”

최인범의 말에 대마불은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군님, 대마 도주는 여기 상인들이 만든 연합 조직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여기는 진짜로 부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냐?”

대륙출신 혹은 백제의 유민 출신들이나 왜 출신인 상인 12명이 하나의 조합처럼 단결해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왜인인 선원들이나 사무라이들을 고용해 평소에는 밀무역하다가 여차하면 왜구로 돌변해 노략질로 재물을 모으니 여기 상인들이 이룬 부는 정말 대단했다.

그런 사실 때문에 왜에서는 후세에 명나라 시절에 일으킨 왜구들의 노략질을 모두 중국의 해적들이 저지른 노략질이라는 주장했던 것이다.

이들이 밀무역하는 이유는 대부분 고율의 세금 때문이다. 하지만 명나라나 조선이 거의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어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조선의 삼포 왜관이 다시 열리게 되자 정상적인 무역을 하고 있었다.

명나라의 남쪽에서는 밀무역하고 천진에서는 정상적으로 무역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인범은 이곳에 있는 무역상들을 만날 필요성이 있어 내기 바둑에 순순히 응했다.

‘털어 먹으려면 여기에서 근거지로 삼아 노략질로 부를 이룬 상인 놈들을 털어야 해.’

하카타는 독자적인 군사력은 보유했다고 하나 그 힘이 미약해 주변의 영주들이 항상 노리는 지역이다. 상인들은 많은 부를 이용해 그동안은 막부나 천황에게 뇌물을 바치고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막부의 힘이 약해지고 지방의 영주들이 날뛰는 전국 시대로 접어들었다. 상인들은 주변의 영주들에게 뇌물을 주어 상호 견제해 현재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인근인 나가사키 영주와 긴밀하게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해외무역으로 유지하는 나가사키 영주도 협조해야 좋으니 우호적이다.

조선이나 대륙과 관계 깊은 하카타 항구는 그런 이유로 외침을 받은 곳이다. 과거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은 1274년에 900척의 함대와 고려군이 포함된 3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규슈 북부인 하카타를 침공하였다. 첫 번째 침공은 군사적 무능함과 폭풍으로 실패하였다.

최인범은 대마불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 혹시 과거에 원나라에서 여기로 대군이 쳐들어 왔던 일을 아냐?”

“예, 압니다. 여기서 태풍 때문에 몰살당했다고 하더군요.”

“몰살은 아니고 피해가 커서 물러난 거야.”

“그런가요? 저는 책에서 두 번이나 모조리 수장되었다고 배웠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2차 원정을 결정해 1281년에 4,000척의 함선과 140,000명의 원과 고려의 연합군인 군대를 동원해 또다시 하카타를 공격하였다. 40,000명의 왜군은 몽골과 고려 연합군에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때 태풍이 불어 몽골군의 함대가 침몰되고 많은 병사들이 익사했다. 그때 왜를 구했던 바람을 가미카제(신풍:神風)라고 부른다.

“마불, 그럼 너 신풍도 알겠구나.”

“예, 당연히 알죠. 지금도 여기서는 그런 바람을 고마운 바람이라고 신사에서는 태풍이 오면 항상 제사도 지내는데요.”

“그러냐?”

미래에서 살던 최인범은 태풍이 자주 오는 여름철이지만 너무 잔잔한 하카타 만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문뜩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이마에 두르던 신풍이란 머리띠가 저절로 떠오르고 있었다.

‘여기가 극우세력이 높이 추앙하는 신풍이 불었던 격전지야.’

더구나 조선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임진왜란의 출발 지점이다. 여러 가지 전생의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최인범은 하카타 항구를 보자 수많은 잡념과 함께 심정이 매우 어수선했다.

‘하긴 등신 같은 천황도 따지고 보면 조상이야 같지.’

천년도 더 지난 과거의 조상이 같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련만 그래도 조금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역사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지만 자신이 살던 조선과도 결별한 입장이라 먼 과거의 인연은 지워버리기로 했다.

‘현실에 충실하자고. 이미 풍습이나 언어도 그리고 사고방식도 너무 다른 놈들인데.’

봉황성에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상이 같다는 인연을 존중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적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바둑을 둬 보면서 살펴봐야지.’

본시 상인들이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 때문에 잘만 하면 여기 상인들은 자신의 휘하로 집어넣거나 우호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쟁을 벌여 점령해 약탈하면 남는 장사도 되지만 자칫 엄청난 전비만 날려 나라가 위태로울 수 있었다. 더구나 아직 나라의 골격도 완성하지 못한 초기 단계에서 무리수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지금은 강경책 보다는 유화정책이 필요한 시점이야.’

최인범은 이미 봉황성을 기점으로 나라를 건국할 결심을 했으니 매우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조금은 홀가분한 상태라 왜로 와서 움직이지 나중에는 오고 싶어도 침공 이외에는 올 수도 없는 곳이다.

‘지금은 그저 포석 단계라고 보자고.’

그런 이유로 하카타에 들어 왔지만 정작 대상인들은 만나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곳이 돌아가는 상황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우호적인 생각으로 찾아 왔지만 만약을 몰라 갑옷을 모두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자신이 조금만 방심하면 계속 암살 하려는 시도가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다.

‘여기는 여러 세력이 노리는 곳이라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야.’

한편 하카타에서 사는 대상인들은 대마도가 조선의 수중으로 들어가자 바짝 긴장했다. 과거의 원나라에서 침공한 기억 때문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은 커다란 저택의 안채에서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명의 부마도위 의중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조선을 움직여 규슈로 쳐들어올 확률도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다른 상인이 나서며 의견을 말했다.

“그가 비록 산동 왜의 토평 대장군으로 조선군까지 지휘하는 총병관이지만 얼마 전에 조선 통신사로 여기를 들렸던 윤임 대감의 말에는 조선은 규슈를 침공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했으니 안심해도 될 거요.”

이렇게 말하자 다른 상인은 다른 논리로 반박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듣기로는 윤임은 이제 전혀 힘이 없는 처지로 변했는데.”

“힘이 없는 사람이 통신사로 와요?”

“비록 통신사로 와 권력에 다시 복귀하는 것 같지만 이미 윤임은 그 세력이 약해져서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해요. 최 대장군이 결심만 하면 조선에서는 따를 수밖에 없어요. 더구나 봉황성에 많은 군대가 포진되어 있는데 대장군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이들은 의외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최인범이 그동안 벌였던 대부분의 일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포르트갈 배를 털었던 것이 확실해요.”

“그러니 걱정이 아니요. 목표가 있으면 약탈도 불사하는 성품이니.”

“그런 점에서 우리와 같으니 잘하면 우호적인 사이가 될 수 있소.”

“그가 만약 우리의 재산을 노리면 어찌 할 것이요.”

“그런 다고 재산을 주나요? 우호적인 사이와 재물이야 별도지.”

12명의 상인들은 이외에 최인범이 남경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헌강왕의 사위라는 점도 강조해가며 추후에 최인범을 만나 협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창 회의를 끝내고 헤어지려는 순간 사무라이가 들어와 보고했다.

“항구의 입구에 조선의 판옥선 10척이 진입에 섬을 점령해 버렸어요.”

“뭐? 판옥선이 항구를 봉쇄해?”

“그렇지는 않고 만의 입구인 섬으로 상륙해 대대적으로 군사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고를 받자 상인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이건 분명히 침공을 위한 거점 확보 작전이 아니오?”

“자꾸만 왜 침공을 말합니까? 내가 보기에는 다른 저의가 있어서 침공을 주장하는 것 같군요.”

“뭐요?”

하카타가 침공당할 위기라면 인근의 영지에서 군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으니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려는 수작이 아니냐는 뜻이다.

비록 같은 조합에 속했으나 이들 사이에도 경쟁은 있으니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여러 상인들이 서로의 주장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중에 드디어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대인, 대장군님께서 하카타로 들어오셨어요.”

“지금 어디에 계시나?”

“호위무사들과 같이 거리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사먹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네요.”

“뭐? 거리에서 음식을 사먹어.”

“넷!”

최인범이 의외로 기마병을 구마모토로 보내 착호 활동을 펼치게 하고 자신은 그저 20명의 근접경호원들만 데리고 하카타 항구에서 거리를 배외한다는 소식이다.

“빨리 나가서 모시고 옵시다.”

“그럽시다.”

12명의 상인들은 급하게 저택에서 나와 최인범이 배외한다는 거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재력이 많아도 최인범은 막강한 위치인 부마도위이자 대장군이라 직접 가서 배알해야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르르 달려가던 그들은 중간에서 발걸음 모두 멈추고 말았다.

사무라이가 앞에서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토해내는 보고에 다들 안색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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