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숙소로 정해진 영지 저택의 별채로 가자 기마병들이 다들 돼지를 잡아서 구워먹고 있었다. 왜인들이 준 식사량이 너무 적다가 보니 돼지를 사다가 직접 잡아서 모닥불에 구워먹었다.
“더 달라고 하지?”
“총병관님, 그런 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더 달라고 해서 먹어도 너무 적더라고요. 계속 달라고 하기가 민망하더군요.”
“알았어, 내일부터 산에서 사냥해 고기 좀 먹게 해주지.”
왜인들은 생선을 주식으로 알지만 이들은 생선이란 그저 간식거리로 느껴지니 더욱 허기가 진다는 것이다.
최인범은 우선 숙소로 들어와 대마불에게 지시했다.
“너는 밖에 나가서 주민들의 분위기도 알아보고 또 어디에 사냥물이 많은지 알아 봐.”
“넷!”
“오리가 많은 곳도 상관없어. 그리고 지도도 구해오고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는 곳은 지도에 표시해 가져와.”
“알겠습니다.”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서 방안을 자세하게 돌아보았다. 다다미방의 특징상 더운 지방에서 지내기는 좋아 보였다. 예우를 하기 위해 방바닥에는 조선에서 생산된 큰 화문석(花紋席)이 펼쳐져 있었다.
다른 사람이 쓰던 방이라 한쪽 벽에는 왜인들이 사용하는 길고 폭이 가는 장검들이 걸려 있었다. 아마도 상급 사무라이들이 머무는 것 같았다.
“어! 바둑판이네.”
구석에 바둑판이 보이자 최인범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왜의 바둑은 조선에서 두는 바둑과 다르다. 현대식으로 포석하며 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최인범은 혼자서 오래전에 배운 왜인들이 남긴 고전(古典)의 대국을 복기해 보고 있었다.
톡! 톡!
기억을 더듬어 기보로 남았던 명국을 복기해 보며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 전 왜인들이 했던 불쾌한 행동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못된 짓은 바로 손님으로 불러놓고 위해를 가하는 짓이다. 그런 치졸한 행위는 모든 인간의 잔악행위를 용서하시는 신께서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 세계적인 통념이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져도 서로 보내는 사신의 경우 죽이지 않는다. 그런 행위는 자국민이나 군인 그리고 상대바에게도 맹렬하게 비난을 받고 어떤 역사서에서도 질책하는 논조로 기록된다.
최인범이 왜인들의 행동을 비난한 이유는 자신들이 전투력이 뛰어나서 모면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손님으로 불러 놓고 위해를 가한 비열한 짓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놈들이야.’
왜는 본시 한반도의 도래(渡來)인들이 어떤 특정지역에 도착하면 대부분 왕이라고 칭했다. 섬이 많고 산이 높은 곳이 많다가 보니 쉽게 외부와 접하기 어려웠던 왜인들은 새로운 물물을 가져오는 사람들을 왕이라고 칭했다.
사실 천황이란 칭호도 너무 왕을 자청하는 지역의 토족세력이 많다가 보니 생긴 것이다. 뭔가 그들과는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천황이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저 국가적인 제사나 의례만을 담당하는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다.
각 지역에 분산된 소위 지역에서는 스스로 왕이라 칭하던 무리들이 싸움을 벌여 복종시킨 우두머리인 쇼군이 실질적으로 통치권을 행하는 곳이 왜다. 즉 막부(幕府)는 군사정권이다 보니 자연히 수장을 쇼군이라고 칭하고 왕이라고 칭하지 않고 있었다, 중앙집권체제가 발달한 조선과는 전혀 다른 정치형태다 그래서 주변국들이 천황과 쇼군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혼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바둑 복기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밖으로 나갔던 대마불이 처소로 돌아와 그림지도를 들고 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바로 근처 산에도 호랑이가 산답니다.”
“알았어, 산을 뒤지다 보면 찾겠지. 사냥터는 알아 봤고?”
“넷! 지도에 표시해 놨습니다.”
먼저 하명한 내용을 보고하고 나자 대마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지역에서 바둑을 제일 잘 둔다는 스님이 바둑을 두고 싶다고 찾아 왔어요.”
“알았어. 두기는 하지만 나는 내기 바둑이나 아니면 지도 대국 이외에는 안두니 그렇게 전해.”
내기바둑의 뜻은 이해하는데 지도대국은 잘 이해를 못해 물었다.
“총병관님, 지도 대국은 뭐죠?”
“그야 돈을 받고 바둑을 둬주는 것이지. 바둑도 두다보면 매우 피곤하니 고수가 하수에게 그냥 둬 줄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군요. 그럼 나가서 스님에게 말씀드리지요. 그런데 지도 대국은 한 판에 얼마나 받아야 되죠?”
“그야 한판에 미곡으로 100가마는 받아야지.”
이런 응수에 대마불은 입이 떨 벌어지며 놀라고 말았다. 바둑에 대해 전혀 모르는 대마불이라 이런 대답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시종으로 사실시키면 그대로 따라야 하니 대마불은 얼른 방에서 나와 찾아 온 스님에게 가서 전했다.
“미곡 100가마를 내면 두신다고 하네요.”
“다른 말씀은 없고?”
“예, 그게 싫으시면 미곡 200가마를 걸고 내기 바둑을 두시던가 하고요.”
“알았어. 나중에 찾아오지.”
가난한 스님으로 그만한 재물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왜는 조선과 달리 스님들이 자식도 있고 많은 재산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이 그만한 재물을 쉽게 내고 바둑을 둘 형편은 되지 못해 그저 나중에 찾아온다고 하며 돌아선 것이다.
최인범은 여전히 바둑복기에 여념이 없고 간간히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방으로 들어와 차를 가져다주고 조용히 물러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마음에 들어 최인범은 중얼거렸다.
‘여자들은 행동이 쓸 만하군.’
밤이 늦도록 바둑을 혼자서 복기해 보던 최인범은 그대로 바둑판을 옆으로 밀치고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왜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는 최인범은 일단 호랑이를 잡아 주고 나서 황의 거래를 말해볼 생각이다.
‘오자마자 황을 거래하자고 하면 시세를 비싸게 부르기가 쉬워.’
더운 지방이고 집안에도 나무나 또는 작은 연못도 있어서 그런지 유독 모기가 많았다. 최인범은 대마불에게 명령했다.
“마불아! 모기장 쳐라.”
“넷!”
부여군에서 주민들이 만들어준 모기장은 대나무로 뼈대로 삼아 만든 것이다. 모기장을 치고 누워 잠을 자려고 눈을 감자 옆에서 앉아 있던 대마불이 큰 부채로 부채질을 했다.
살랑살랑 부는 부채바람에 최인범은 시원함을 느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부채질하던 대마불도 한참을 부치다가 졸려서 그대로 옆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때 조심스럽게 미닫이문을 열고 하얀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자들이 방안으로 들어와 같이 잠든 두 사람을 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랐다.
‘어마나, 다이쇼군께서는 남색을 좋아해.’
이렇게 판단한 두 여자는 급하게 종종걸음으로 방에서 나가 사라졌다. 두 여자는 사실 영주의 명령을 받고 잠자리 시중을 들러 온 처녀들이다.
영주가 두 여자를 방으로 보낸 것은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보냈다. 모두 사무라이의 딸들로 아비의 계급이 오를 기회도 되고 또한 영주에게 몸값을 받아 시집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도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를 과하게 준비하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자식 중에 딸이 셋이면 기둥뿌리가 뽑아진다는 말이 있다.
왜는 그보다 더욱 심해 지참금 제도도 있다. 특히 여러 겹을 겹쳐서 입는 기모노는 주로 명나라에서 수입해 오는 비단으로 만드니 그런 비단옷 몇 벌 만들어 시집을 보내려면 부모로는 죽어난다.
딸이 셋이면 왜에서는 부모는 살가죽을 세 번은 홀라당 벗겨야 된다는 소리가 있다.
그래서 왜의 사무라이 집안의 딸들은 처녀시절에 한번 어떤 재력가인 상급 사무라이에게 몸을 주고 혼수를 마련해 같은 계급인 사무라이에게 시집가는 것이 제일 큰 꿈이다.
사실 현대에 어린 여학생들이 나이 많은 중년과 원조교제하는 것도 오랜 전통이 있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문화처럼 널리 퍼졌던 것이다.
먼 위에 조상 때부터 그렇게 풍습으로 전해졌으니 그런 행동들이 전혀 부끄럽거나 또는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혼탁한 전국시대다 보니 부하가 남편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차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곳이 왜다. 그저 전남편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던 혜택만 그대로 받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성리학을 기초한 윤리의식 뇌구조를 지닌 조선과 명나라는 그런 점 때문에 왜를 항상 미개인들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사무라이 딸들이 어떤 오해를 했던 최인범은 한산세모시로 만든 모기장에 모시옷을 입고 무더운 여름밤을 아주 시원하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최인범은 옆에서 쪼그리고 자는 대마불의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다독이고 있었다. 이때 세숫물을 떠서 방으로 들어오던 처녀들은 그런 모습에 오해가 완전히 깊어졌다.
‘어머머, 진짜네.’
식사도 옆에서 같이 하지 잠도 같이 자니 왜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첩의 경우도 보통 각방이 기본이라 이런 모습은 오해가 생길 여지가 많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최인범은 기마병을 이끌고 인근의 야산부터 뒤져가며 야생 동물인 토끼, 너구리, 사슴 그리고 멧돼지를 모조리 사냥했다.
“한 마리도 남기지 마.”
“넷!”
북방민족은 본시 사냥이 기본적인 생활방식이고 또한 집단을 이루어 하게 되는 사냥은 아주 훌륭한 실전에 버금가는 군사훈련이다. 몰이, 매복, 일제 사격, 또는 기습 공격 등 모든 사냥은 치열한 전투와 똑 같았다.
점심때가 되자 기마병들은 말을 모아 놓은 곳으로 돌아와 잡은 사냥물로 점심식사를 했다.
“총병관님, 왜에는 무지 많다고 하던 빨간 엉덩이의 원숭이는 한 마리도 안보이네요.”
“모르지 따로 모여서 사는지.”
그러자 대마불이 주민들에게 주워들은 정보를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원숭이는 호랑이가 모조리 잡아먹어서 보이지 않는 겁니다. 원숭이가 사라져버리자 호랑이들이 마을로 들어와 사내아이들을 잡아먹은 것이고요.”
“그래? 호랑이가 사내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상하게 호랑이는 여자들은 잡아먹지 않고 항상 사내아이나 덩치가 작은 사람을 잡아먹어서 그런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호랑이나 일본원숭이의 특징을 잘 알기 때문에 호랑이가 왜 사내아이들만 잡아먹는지도 잘 안다. 왜인들은 가난해 아이들에게 옷을 거의 입히지 않는다.
물론 가난할수록 더했다. 더구나 두발도 사내아이들을 박박 밀어 버리니 호랑이 눈에는 원숭이나 사람이나 똑 같이 인식하는 것이다.
호기심 많은 일본원숭이의 경우 처음 보게 되는 호랑이에게 스스로 접근하면 호랑이는 그저 필요한 양식을 쉽게 조달한다고 판단해 등에 태우고 다니다 잡아먹는 경우도 많았다.
‘아직도 왜인들은 호랑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군.’
호랑이는 그런 행동이 습관이 되다 보니 자연히 외진 밭고랑에서 벌거벗고 노는 사내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다니다 잡아먹었던 것이다.
더구나 성인이라도 덩치가 작다가보니 이미 덩치가 우람해진 호랑이가 보기에는 사람이나 원숭이가 똑 같았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항상 잡아먹던 원숭이나 어린 아이로 인식해 나중에는 성인사내들도 잡아먹었다. 그 역시 더운 지방이라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벌거벗고 훈도시만 겨우 차고 다니니 원숭이와 거의 구분이 전혀 안 가는 것이다.
최인범은 잡아 달라는 호랑이를 추적하지 않았다. 영주가 사는 주변의 모든 야산을 포위해 야생동물을 사그리 잡아 버리고 있었다.
“특히 멧돼지는 절대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돼.”
“넷!”
최인범은 호랑이의 특성을 잘 안다. 야산에 야생돌물이 모조리 사라지면 호랑이가 자연히 멀리 사라지거나 스스로 모습을 나타낼 것을 예상하고 우선 호랑이 먹이부터 사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