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영주가 땅에 납작 엎드리자 부장들이나 호위무사들도 다들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사람이란 본시 만물 중에 한 종이다. 그래서 보통 덩치로 우위를 비교하는 본능을 지녔다. 즉 기본적인 힘을 따지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전투력이다. 얼마나 상대방보다 공격력이 강하냐에 따라 우위가 결정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용맹함으로 얼마나 적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덤비느냐다. 흔히 이걸 기세라고도 한다.
이것이 보통 약육강식의 동물에 세계에서 통용되는 서열이다. 그러나 사람은 만물의 영장인 두뇌가 있고 지적인 사고력이 있으니 그런 것에 추가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위세다. 위세는 자금력도 있고 지위가 높아서 생기는 권세도 있으며 남들에게 추앙을 받아서 생기는 명성도 있었다.
영주는 이 모든 것에서 최인범에게 뒤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납작 엎드려 가장 낮은 저자세를 보인 것이다.
“그대가 요청해서 왔으니 어서 일어나 어디에 호랑이가 있는지 알려 주시오.”
“아, 그렇군요. 하지만 배를 타고 오시느라 힘들었을 것이니 우선 안으로 들어가 잠시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주의 말에 최인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앞에 서서 길을 안내했다. 그러자 말을 타고 있던 기마병들은 재빨리 무리가 나뉘어졌다. 기마병들도 해군과 같이 이제는 정확한 직책과 편제 그리고 계급이 주어졌다.
100명 중에 10명씩 8개 분대로 나뉘어 분대장은 소위로 대원은 모두 하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20명도 소위로 근접경호원이다. 경호대장은 중령인 철갑웅이고 철을웅과 철병웅은 소령으로 경호부대장이다. 세 사람은 항상 좌우에서 시위(侍衛)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들이 계급이 모두 높은 이유는 지근거리에서 경호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장차 모두 친위대의 장교나 준사관으로 근무를 시킬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간부로 양성되는 기마병들에게 각기 10명씩의 부하만 생기면 친위기마부대의 병력은 1천명이 되니 쉽게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근접경호원들은 말에서 내려 말을 다른 기마병에게 넘기고 최인범의 옆에 두 줄로 도열해 근접 경호를 하고 있었다. 모두 손에는 단창을 들었다.
척! 척! 척!
해군들이 해상 훈련을 하는 동안 기마병들도 나름 제식훈련이나 경호방식을 집중적으로 훈련해 동작들은 매우 절도가 있었다.
영주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명나라의 부마도위이자 봉황성의 성주이고 대장군이 최인범을 자신의 영지로 초청했다. 그를 초청한 이유는 호랑이 추포라는 목적도 있지만 최인범의 명성 때문이다.
왜인들에게도 명성이 널리 알려진 최인범을 자신의 영지로 초청해 그가 호랑이를 잡아주며 머문다면 자신의 명성도 같이 오르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성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큰 저택으로 가게 되었다. 왜인들은 조선과는 달리 저택 안에 정원을 정성스럽게 꾸며 놓고 있었다. 조선은 보통 자연 속에 집이 있는 형식라면 왜인들의 경우는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형태의 정원을 만들었다.
작은 다다미방이 즐비한 안채로 들어가 상좌인 정중앙에 최인범이 앉아 영주는 다시 한 번 가신들과 같이 엎드려 절을 올렸다. 이것은 자신의 집을 방문해 고맙다는 인사다.
커다란 상에 각종 해물을 비롯한 음식들이 차여져 들어오고 영주나 가신들 그리고 최인범의 부하인 철시 형제들에게는 작은 소반에 아주 간단하게 음식이 차려졌다.
‘흠! 소식하는 습성 때문이군.’
물론 덩치도 적지만 곡물이 풍족하지 못하니 소식(小食)을 할 수밖에 없어 그게 하나의 식생활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철씨 형제는 자신들 앞에 놓인 육편이나 감질나게 놓인 생선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이놈들이 손님을 이따위로 대접 해? 굶어 죽으라는 소리지 이게 뭐야. 병아리 모이도 아니고.’
음식도 적지만 그릇도 적고 더구나 술잔은 너무 적어 손으로 들고 먹기가 거북할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풍성하게 차려진 최인범의 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힐끗! 힐끗!
화려한 비단으로 만든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종종거리는 걸음이나 무릎으로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최인범이 보기에 이들이 하녀인지 영주의 딸들인지 아니면 기녀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최인범이 턱짓으로 통닭과 커다란 육편을 지적하며 두 형제를 바라보았다. 상에 있는 음식을 가져다주라는 의미다. 옆에서 시중들던 여자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면서 빠르게 음식을 작은 소반에 담아 무릎걸음으로 철씨 형제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제야 철씨 형제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고 그 대신 왜인들은 매우 놀랐다. 왜인들의 경우 상전의 음식을 이런 식으로 즉석에서 부하에게 나누워 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최인범은 백구를 데리고 옆에 서있는 대마불에게 지시했다.
“그 물건 영주께 드려!”
“넷!”
영주에게 선물로 넘겨준 것은 백제시대의 와당이다. 연화 무늬의 와당을 넘겨주며 슬며시 설명했다.
“그 와당은 내가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군에서 직접 구두래 나루에서 수집해 온 거요.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의미가 있어 주는 거요.”
“아! 정말 귀한 물건이군요.”
이런 말에 대마불은 너무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최인범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들고 와 영주에게 넘겨준 백제시대 와당은 본시 아비인 대마도주가 너무 귀한 보물이라고 애지중지하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하거나 이상하게 행동하지 않던 주인께서 능숙하게 거짓을 말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이런 말에 철씨 형제는 사실이라고 믿고 태연하게 응수했다.
“총병관님, 언제 그런 물건을 부여에서 챙기셨어요. 저희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튼 부여에 너무 흔해 귀한 것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소산에 올라가다가 보면 발이 채이던 것인데.”
“다 나중을 생각해서 챙긴 거다.”
이러 대화를 나누고 나자 최인범은 대마불에게 지시했다.
“너도 상에 같이 앉아서 먹어.”
“예? 저도요?”
“그래.”
대마불이 옆에 앉아 주섬주섬 음식을 은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가끔은 백두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그런 뒤에 최인범은 그제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런 방법은 궁중에서 음식에 독이 들었나 하고 기미 방법과 같은 효과를 보며 또한 항상 부하들과 같이 음식을 똑 같이 먹던 습관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기모노를 입고 진하게 화장한 무녀들이 나와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시간이 지나자 마지막으로 차를 마시고 나서 일단 음식이나 여흥을 즐기는 환영 행사는 모두 끝나게 되었다.
영주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이쇼군, 혹시 스모를 아세요?”
“알죠. 왜 지금 스모 대회가 열립니까?”
“예, 특별히 열리고 있습니다.”
최인범 일행은 스모를 겨루는 장소인 도효 (토표:土俵)로 가게 되었다. 아직은 대형 실내 경기장에서 하지는 않고 원형인 씨름판에 조금 치장하고 새끼줄을 치는 정도에 불과했다.
왜인들이 보기에는 거구고 최인범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덩치로 몸만 우람한 두 선수가 괴이한 소리를 내며 겨루고 있었다. 스모 선수는 리키시(역사: 力士)라고 부르고 있었다.
영주는 나름 이런 경기는 자신 있다는 듯이 슬며시 제안했다.
“다이쇼군. 리키시와 한번 해보시겠어요?”
“내가 말이요?”
“부하들 중에 누구라도 나와서 한번 겨루어 보지요.”
겁도 없이 슬며시 도전장을 내밀자 최인범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내 부하들은 모두 전사들이라 저런 경기를 해도 봐주지를 않아 자칫하면 사람이 죽어요. 공연히 아까운 역사를 죽게 하지 마세요.”
은근히 열받은 최인범은 슬며시 격장지계를 썼다. 표면적으로는 굽실거리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머리를 쳐드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경기는 소위인 하동에서 씨름 선수로 황소를 여러 마리 탔던 조선출신 선수가 나와 하게 되었다. 서로 비슷한 덩치가 벌이는 경기다.
스모 선수가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구르고 이어서 요란하게 돌진하자 씨름 선수는 교묘한 방법으로 스모선수의 훈도시를 잡고 몸을 뒤로 제키며 잽싸게 뒤집기를 시도했다.
“탓!”
붕! 과당!
족히 두 길은 날아가 스모 선수가 그대로 땅에 처박히며 자신의 체중에 목뼈가 부러져 죽어 버렸다.
기마병들은 그동안 최인범에게 특공무술인 각종기술도 간간히 배워 남의 힘을 역이용하는 능력이 전에 비해 대폭 늘었다. 그러자 본시 뛰어난 씨름 선수라 씨름 기술인 뒤집기와 후리기 기술을 혼합해 육중한 체구인 스모선수를 멀리 날려버린 것이다.
공연히 객기로 도전하다가 아까운 스모 선수만 졸지에 죽게 만들자 영주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상태로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런 영주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이 조용히 일침을 가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은 법이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함부로 자신의 좁은 시각으로 보인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바라보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자신들이 추앙하던 유명한 스모선수가 죽어버리자 사무라이들이 울분을 터트리고 있었다.
“검술은 자신합니다.”
“검술로 한번 해 봅시다.”
참으로 한심한 무사들이다. 최인범이 데리고 있는 경호원들은 조선이나 혹은 여진족 그리고 멀리 명나라에서 한다하는 무술 고수가 많았다. 그들은 높은 무술 실력에 비해 신분 사회의 제약 때문에 야인으로 살다가 최인범이 신분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모으자 몰려들었다.
가혹 명문가 출신들도 있고 그들은 진정한 무술 고수들이라 자신보다 무술이 뛰어난 최인범을 추앙해 모여든 경우도 있었다.
최인범은 환영행사로 참석한 자리를 피바람 부는 장소로 만들고 싶지 않아 다시 조용히 말했다.
“어허! 방금 충고를 해도 모르네.”
그러나 이미 눈에서 핏발이 서린 사무라이들은 기어이 진검으로 승부를 내는 무술 대결을 해보고 싶다고 서로 나서고 있었다.
최인범은 금방 죽을지 모르고 부나방 같이 오직 영주에게 충성을 보여 벼락출세에 눈이 어두운 사무라이들을 보며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저 죽을지 모르고 사시미 들고 날뛰는 야쿠자들이나 똑 같군.’
다 이상 피를 부르고 싶지 않아 최인범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지 말고 서로 검술을 시범 보이죠.”
“진검으로 승부를 내야 진짜 실력을 아는 것 아닙니까?”
결국 최인범은 부하들 중에 본국검법의 고수인 소위를 내보내게 되었다. 서로 노려보다가 사무라이가 먼저 검을 높이 들고 아래로 빠르게 내리 베었다.
삭!
“컥!”
사무라이가 검을 뽑아 높이 들고 내리 벨 때 그제야 검집에서 검을 빠르게 뽑는 발검술로 사무라이의 목 줄기를 단번에 사선으로 싹둑 잘라버렸다.
서로 무슨 검이 부닥치는 치열한 접전을 벌인 대결도 아니다. 일발필살의 검술로 상대를 죽여 버린 것이다. 순간 목에서 품어 나온 붉은 피 때문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뒤로 돌아서며 아주 조용히 투덜거렸다.
“에이, 공연히 원숭이 피만 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