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왜소(矮小)한 왜인(倭人)들>
가정제가 이끄는 중앙군이 산동 반도에서 활동하는 반란군을 공격했다가 태산 근처에서 복병에 걸려 대패했다는 소식이다.
“뭐요? 황제가 직접 친정을 나가서 패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경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남경으로 천도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총병관님을 다시 북경으로 부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답니다.”
원 역사와 전혀 다른 큰 반란이 드디어 명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다. 산동 반도의 반란군은 조정의 중앙군을 패퇴시키자 제태국(濟泰國)이란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다.
흔히 대륙에서는 황제에 반해 반란을 일으켜 크게 세력을 이루면 춘추전국시대를 기준해서 그 연고를 기준해 나라 이름을 정해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래전에 산동 반도 지역에 제(濟)나라가 존재했기 때문에 제라는 이름과 태산(泰山)에서의 승리에서 따온 국호 같았다. 이런 소식을 접한 최인범은 조금 마음이 다급해졌다.
혹시 그 여파가 조선이나 아니면 천진에 있는 소피아나 혹은 봉황성에 미칠까 염려된 것이다.
“반란군들이 영역을 확대하지는 않나요?”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비록 반란군이 승리를 했다고 하지만 그들도 피해가 커서 아직은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있은 것 같습니다.”
“그것뿐입니까?”
“그런 정도면 사실 제가 큰일이라고 말씀드리지는 않지요. 제태국에서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 교역하자고 요구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조정이 그 때문에 술렁이고 있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산동 반도에 반란군 세력이 확장되면 아무래도 조선이 가깝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산동 반도 지역은 해금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기술이 보유된 지역이라 수군을 만들어 조선을 침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를 무시하고 교역을 하자고 승낙할 수 없으니 조정은 그 문제로 술렁이는 것 같았다. 특히 명나라의 부마도위가 봉황성에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니 더욱 난감해 조정에서 어쩌면 갑론을박이 오가는 것 같았다.
‘조선은 잘나가다가도 명나라가 끼면 전혀 엉뚱한 짓을 하니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군.’
아무튼 산동 반도에서 큰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하지만 다행히 봉황성이나 조선은 정치적으로야 영향이 있겠지만 우선 당장은 경제적이나 군사적으로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이런 대화를 나누고 주상께서 취한 여러 가지 사면 조치나 또는 월녀에 대한 소식도 들었다. 당초 계획대로 월녀는 한양의 시전에서 큰 비단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명나라에서 큰 변수가 발생했으니 봉황성에서 새롭게 세력을 이루는 최인범으로는 매우 신경이 써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큰 위기일 수도 있고 또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었다.
‘왜에서 너무 시간을 끌 수가 없어.’
대륙에서 일어난 변수로 당초 계획보다는 조금 빨리 봉황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러자면 나가사키로 빨리 가서 호랑이를 잡아 주고 그곳의 영주와 무역협상을 끝내야 된다.
민천복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윤임 대감의 말을 전했다.
“윤 대감께서는 지난 일을 매우 후회하고 있어요. 그때는 윤원형 때문에 너무 예민해 있을 때라 대비의 소생인 딸과 혼인하면 정적이 된다고 판단해 그런 무모한 일을 저질렀다고요. 이제 주상께서 보위를 이었으니 서로의 묵은 감정은 잊도록 하자고 말하더군요.”
“그렇습니까? 다른 말은 없고요?”
“우의정께서는 이번에 왜로 가서 대마도에 대한 협상만 무사히 끝나면 정치에서 물러난다고 하더군요. 조용히 은퇴해 여생을 보내겠다고요.”
윤임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일단 상대방에게 화해하자는 제안을 하자 박절하게 거절하기 뭐해 답해 주었다.
“좋습니다. 은퇴하던 안하던 나야 상관안합니다. 다만 전에 진 빚을 나에게 어떤 식으로 갚을 것인지나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시고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어떤 확실한 표시를 해주셔야 된다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지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윤임을 직접 면대했으면 이런 정도로 부드럽게 말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무척 호의적인 민천복이 중간에서 나서서 중개하니 조금은 유하게 답했다.
최인범은 민천목과 헤어져 바로 부두로 가서 판옥선에 올랐다. 드디어 오래 기다리던 왜의 규슈로 가게 된 것이다.
“총병관님, 어디로 향하죠?”
“이키 섬 쪽으로 가자!”
“넷!”
이키 섬은 나가사키나 후쿠오카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큰 섬이라 우선 그 섬의 동향을 살펴둘 필요성이 있었다. 자칫 그냥 지나치다가는 10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중간에 뒤통수를 공격당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크다고 해봐야 별로지만 그래도 군대를 움직이고 있으니 매사 조심해야 된다. 더구나 많은 보급품을 싣고 다소 무리하게 선적해 배의 기동성이 떨어져 있으니 특히 그렇다.
드디어 이키 섬에 다다르자 이미 오키노 섬에 함포 사격을 해서 위협을 가한 사실이 알려진 것인지 이키 섬은 어선 2척에 많은 어물을 싣고 다가와 바치며 사정했다.
“장군, 우린 가난한 섬입니다. 앞으로 대마도호부로 세금을 자칠 것이니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지금 주민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생업을 전혀 못하고 있어요.”
그러나 최인범은 그저 침묵하고 답을 안 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협상하기가 격이 너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1함대장이 얼른 나서며 답해 주었다.
“그런 문제는 그대들이 알아서 추후에 하는 행동일 것이고. 나는 우선 당장 섬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 요구만 들어 주시오.”
“뭐가 필요한지요?”
“당분간 이키 섬에 우리 함선이 정박할 것이니 협조해 주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결국 큰 세력을 이루는 규슈의 항구에 거점을 잡기 보다는 작은 섬인 이키 섬을 전초기지로 삼아 보급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함대는 모두 이키 섬으로 들어가 일부 보급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적재량이 줄어 보다 가벼워진 판옥선을 운항해 나가사키로 향했다.
하라도 섬과 규수 사이의 아주 좁은 수로를 통과하자 해안에는 작은 키의 왜인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가끔 장검을 찬 사무라이들도 옹기종기 모여 손가락질을 하며 뭔가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최인범은 옆에 있는 대마불에게 물었다.
“도대체 뭐라고 하냐?”
“총병관님을 디이쇼군이라고 칭하는 겁니다.”
“아! 대장군!”
“넷!”
나라마다 호칭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풍토가 있었다. 소중화로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떠받드는 조선에서는 대장군이란 호칭이 거의 금기어와 같다. 여진족의 경우는 대족장이나 대칸이란 용어를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왜의 경우는 왕으로 불리는 인물들은 역사적으로 아주 많았다. 그러나 다이쇼군은 1192년에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즉 군부 통치의 우두머리가 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세이이 다이쇼군(征夷大將軍)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래 함부로 칭하지 못하는 명칭이다.
역대 쇼군이란 칭호는 무신정권의 수장(首長)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못한다.
무사 계급인 사무라이들이 최인범을 대장군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에 대한 명성이 이미 규슈에도 널리 퍼졌다는 의미다.
“다른 말도 하던데?”
“예, 스모 선수보다 더 덩치가 크답니다. 그래서 다이다이 다이쇼군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냐?”
좁은 수로를 따라 깊숙하게 들어가야 도착하는 나가사키 항구는 천연의 양항이다. 항구의 수심도 깊고 부두 시설도 그런대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교토의 무로마치 막부 정권이 왜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들이 높여 칭송하는 천황은 그저 종교적인 상징에 불과했다. 막부 정권에서 임명한 각 지역의 다이묘(大名) 즉 영주들이 난립해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축하는 전국시대다.
무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역의 실력자인 영주가 되니 배신이 밥 먹듯이 일어나고 후일 충성의 표본이라는 사무라이 정신이야 사실 그저 미화한 용어에 불과했다.
그래서 예와 충절을 매우 중시하는 명나라나 또는 조선의 경우 왜의 이런 무질서한 위계질서 때문에 완전히 미개인이나 단수한 도적의 무리인 왜구로만 취급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이미 약속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판옥선을 조심스럽게 운항해 아주 천천히 부두로 다가가고 있었다.
부두에는 예의를 차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무시 못 할 군사력을 영주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왜의 무사들이나 또는 갑옷을 입은 장교들이 줄지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덩치도 작은 놈들이 뭔 갑옷을 저렇게 입고 다녀. 호랑이도 잡지 못해서 남의 나라에게 요청하는 놈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최인범이 명령했다.
“사수! 불꽃 사격!”
“넷!”
사수들은 미리 준비한 신기전에 다는 화약통이 달린 화살을 하늘 높이 쏘았다.
쉬익! 쉬이익! 파바박!
궁수가 날린 화살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다시 화약통의 담긴 화약의 힘에 다시 더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높이 오른 화살은 다시 화려한 색의 불꽃이 터졌다.
우르르.
“와! 와!”
화려한 불꽃이 하늘 높이서 터지자 그나마 조금 질서를 유지하던 왜인들은 놀라 흐트러졌다. 너무 신기해 무질서하게 흩어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최인범이 화약통 끝에 터지는 화약에 색을 넣은 이유는 유사시 함대와 연락할 필요성 때문이다. 철수하거나 또는 함포 사격 요청을 하기 위해 신호용으로 개발했다.
이미 화려한 색의 불꽃놀이야 명나라에서 항상 사용하던 화약을 이용한 놀이라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철갑웅! 기마부대를 하선시켜.”
“넷!”
왜인들이 다소 혼란스럽게 움직이는 중에 어느새 판옥선들은 부두에 정박해 기마병이나 말들을 내려놓았다. 적지지만 최인범은 우세를 너무 떨 필요가 없어 완전 군장인 갑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최인범이 부두에 기마병들과 같이 내리자 왜인들도 놀라고 최인범도 놀랐다. 왜인들은 최인범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놀라고 최인범은 자신의 어깨 정도에만 이르는 작은 키의 왜인들이라 놀랐다.
‘키로 봐서도 대마도 주민들은 조선인들이 확실해 여기 왜인들은 대마도 사람들 보다 더 작아.’
작은 키에 왜소한 덩치로 긴 장검을 두 자루씩 찬 사무라이들의 모습은 정말 신기할 정도다. 최인범이 너무 크다는 사실에 놀란 나가사키 영주가 뒤를 급하게 돌아보았다.
영주의 뒤에는 기모노를 입은 남자들 보다 더 작은 왜녀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신장이 180센티미터인 최인범은 왜소한 여자들을 보자 그만 실소가 터졌다.
‘풋! 완전히 나와 비하면 반토막이네.’
그의 근접경호원인 철씨 형제는 키가 190센티미터에 달하니 그 차이는 더 컸다. 마치 거인족과 소인족이 같이 서있는 모습과 같았다. 더구나 철씨 형제가 들고 있는 무기는 투박하고 무섭게 생긴 언월도다.
더구나 두 형제는 중무장인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우람해 보였다.
처벅 처벅.
두 철씨 형제가 약간 소리를 내며 앞으로 먼저 나가자 나가사키 영주는 본능적으로 위압감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영주의 측근들도 거의 비슷한 동작을 보였다. 이미 첫 대면에서 왜인들은 기가 질려 바짝 오그라들어 있었다.
최인범은 두 형제의 약간 뒤에서 앞으로 다가가자 영주는 그만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다이쇼군. 방문해 주셔서 소신 너무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