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대마항으로 판옥선들이 들어오자 최인범은 어느 정도 훈련이 됐다고 판단했다. 그제야 판옥선의 수군들에게 직책을 정해 주었다. 조선과는 차별화된 명칭을 사용하기로 해. 앞으로 이들에게는 수군이 아닌 해군으로 칭하기로 했다.
“수군이나 해군이나 같은 의미지만 바다 해를 쓰는 만큼 먼 바다를 항해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니 다들 더 노력하도록 해.”
“넷!”
먼저 판옥선의 지휘관인 함장을 중위로 보임하고 그 아래에 소위로 갑판장(사수장), 함포장, 격군장, 선장(조타수) 부선장(부조타수)의 간부들을 임명했다. 그 위에는 함대장으로 5척의 판옥선을 지휘하는 대위로 2명을 임명했다.
판옥선의 무장은 신기전을 날리는 화차가 1문, 천자총통 2문, 지자총통 20문, 승자총이 70정이 있었다. 기타 개인들이 소지한 검이나 활 그리고 창을 예외다.
포수와 탄약수가 모두 38명이고 궁수이자 승자총 사수가 20명으로 총58명이 전투병이다. 그리고 배의 추진력인 격군이 14개의 노에 각기 4명씩 배치되어 56명이 있었다. 총 114명의 군사와 장교나 준사관이 6-7명이 배치되었다.
현재 총승무원은 모두 125명이라 나머지 몇 명은 예비 병력에 속했다. 예비 병력의 경우는 대부분 격군으로 교대한다. 그렇더라도 적재능력은 여유가 있어 기마병이나 별도의 전투병을 싣고 운항이 가능했다.
함대장으로 임명된 김신완과 이민준은 전에 조선의 수군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다가 퇴역한 사람들로 나이가 50대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편이다.
최인범은 두 함대장에게 당부했다.
“이제 함대를 이끄는 지휘관이니 책임성을 가지고 함대를 잘 이끄시오.”
“넷!”
자신이 규슈로 넘어가 착호 활동을 펴면 두 사람이 협력해 함대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5척은 대마도를 떠나 전초기지인 섬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5척은 규슈의 해안을 따라 이동하며 최인범의 착호 활동을 간접적으로 돕게 되고 유사시 기마병 100명의 철수를 책임져야 한다.
함대의 지휘관들을 임명해 완전히 해군으로 만들고 나자 10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해상훈련을 떠나게 되었다.
최인범은 종전과는 다르게 함대장에게 명령했다.
“1함대장, 오늘은 조금 멀리 가지.”
“넷!”
10척의 판옥선은 2개함대로 구성되어 향하는 곳은 오키노 섬이다.
흔히 알려진 오키 섬 동북쪽에 위치한 오키노 섬은 아주 작다. 섬에는 30여 가구의 어민들만 살고 있었다. 대마항구에서 규슈의 북쪽에 위치한 시모노세키를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에 있었다.
작지만 군사적으로 조금은 중요한 위치라 최인범은 나름 목적이 있어 무력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그 섬에 사는 놈들은 어민이라고 하지만 모두 전에 왜구로 활동하던 놈들이야.’
사실 왜의 서쪽에 위치한 섬에 사는 어떤 어민도 왜구로 활동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특히 위치상으로 조선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섬이라 그 정도는 아주 심했다.
대마도가 이미 경상남도에 속한 대마도호부로 결정되어 통치하고 있었다. 대마도를 이미 조선에서 통치함에도 불구하고 그 섬에서 사는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러 왔다는 핑계로 자주 대마도 근해까지 침범했다.
조선의 수군이 불법으로 조업하는 그들을 나포하면 몰랐다는 식으로 발뺌을 뺐다. 전에 부터 자주 대마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보아하니 고기잡이는 그저 핑계에 불과하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대마도의 군사력을 정탐하는 것 같았다.
“함대장, 이번에 가면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줍시다.”
“넷!”
대마도에서 거의 부산포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했다. 그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해 천천히 이동해 드디어 해가 중심에 떠있는 무렵에 오키노 섬의 남쪽 해역에 도착했다.
“저 쪽에 보이는 암초를 목표로 사격해.”
섬에서 약간 떨어진 작은 암초를 향해 포격을 명령했다. 그러자 깃발이 오르며 동시에 대북이 크게 울렸다. 고수는 갑판장이 겸하고 있었다.
둥둥둥! 둥둥둥!
“전 함선은 일제사격!”
최인범의 명령을 받은 함장들이 명령을 내리자 10척의 판옥선에 있는 지자총통인 함포들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과과광! 쾅! 쾅!
갑판에 장착된 지자총통이 매섭게 불을 토하며 암초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다소 한가한 모습이던 오키노 섬의 어민들은 기절하듯이 놀랐다. 누가 봐도 자신들을 위협하기 위한 무력시위가 분명했다.
“우린 다 죽었어.”
“설마, 그냥 위협하는 거지.”
“무슨 소리야 저런 대포로 마을을 향해 쏘면 우린 다 죽는다고.”
섬의 길이가 겨우 1000보를 넘지 않으니 지자총통의 사거리인 1200보 이내에 모두 들어오니 어디로 도망칠 길도 없었다. 졸지에 배에 올라 도망치지 못하고 몰살당할 위험에 빠진 것이다.
어민들은 급하게 촌장에게 달려가 외쳤다.
“촌장님, 몰살당하기 전에 빨리 항복하죠.”
“그게 최선 같군.”
늙고 노회한 촌장은 뇌물로 뭘 가져다주고 항복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촌장은 소문에 함대를 이끈다는 우두머리인 장군이 여자를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다. 저택에 200명의 여자들이 모여 있어 그렇게 소문이 퍼졌다. 그 때문에 섬에 있는 처녀들을 모조리 모았다.
10여명의 처녀들을 살펴보던 늙은 촌장이 혀를 찼다.
“쯧쯧! 다들 너무 못생겨서 소용이 없겠어.”
“촌장님, 아무래도 다른 물건을 바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내가 봐도 예쁜 처녀는 하나도 없어.”
자신이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섬 처녀들이 모두 얼굴도 검고 피부도 거칠며 체구도 너무 작았다. 덩치가 산처럼 크다는 명나라의 장군에게 보내도 별로 소용이 없어 보였다.
덩치가 크면 그것도 클 것이 분명한데 모인 섬 처녀들은 너무 덩치가 작아 도저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흠! 덩치 큰 호랑이에게 모습만 닮았다고 작은 대마고양이와 접하라는 것과 같으니 소용없어.”
“그건 그러네요.”
대마도에는 눈이 유달리 귀엽게 생긴 특별한 고양이가 산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흔히 대마고양이라고 칭하고 이곳에서도 살고 있었다. 별 수 없이 가진 것은 어물뿐이라 건조대에 말려 쌓아 두었던 건어물들을 모조리 수거하고 방금 밥아 놓은 모든 어물을 어선에 싣고 판옥선으로 다가가 높아 보이는 위를 향해 크게 외치며 사정했다.
“장군, 저희들이 인사가 늦었으니 제발 어물을 받아주고 그동안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매달 어물을 대마항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김신완 함대장이 나서며 응답해 주었다.
“알았소. 앞으로 대마도 근처로 와서 조업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규슈나 혼슈에서 대규모로 배가 오면 반드시 대마항으로 연락하시오.”
“예,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킬지 모르지만 오키노 섬의 주민들도 앞으로는 대마도호부 소속으로 세금을 바친다고 촌장은 굳게 맹세했다.
일단 왜의 본토 쪽에 전초기지와 같이 활용할 섬을 확보해 포탄 값이나 화약 값은 충분하게 하게 된 셈이다. 조선을 완전히 떠날 생각이지만 그 전에 규슈에서 당분간 활동할 계획이다.
최인범은 오이키 섬을 봉황성 소속인 수군들이 최소한 물이라도 공급 받는 전초기지로 활용하려고 사전에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이다.
‘대마도에서 규슈나 혼슈 지역을 다니며 보급 받기는 너무 멀어서 어려워.’
앞으로 더 좋은 위치의 섬이 생기면 그곳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는 이 섬이 제일 적당해 보였다. 섬에는 별도의 무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키노 섬을 일단 공략한 최인범은 다시 대마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모든 보급품을 판옥선에 싣고 규슈로 떠날 생각이다.
최인범은 대마항으로 돌아와 그동안 쌓아 두었던 군량이나 또는 비축 무기들을 모조리 선적하도록 명령했다.
“우린 비축된 물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싣고 떠난다.”
“넷!”
다른 보급품은 현지에서 어느 정도 조달이 가능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화약과 포탄이다. 그리고 기마병들이 쓸 화살이 중요한 군수품이다.
최인범이 판옥선 10척이 군수품을 모두 싣는 중에 한정문이 찾아 왔다.
“총병관님, 이제 규슈로 떠시려고요?”
“예, 가기로 약속했으니 가야죠.”
이미 규슈의 나가사키 영주와 약속했다. 나가사키 근처에서 출몰하는 호랑이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나가사키와 황을 거래할 계획이라 최인범은 해주기로 약속했다.
한정문은 최인범이 떠난 다는 말에 자신의 신변에도 변화가 있다는 점을 말해 주었다.
“총병관님, 저도 대마도의 도호부사와 부총병관을 그만두고 혼슈로 떠나야 합니다.”
“그래요? 혼슈는 왜 가는 건가요?”
“이번에 주상전하께서 윤임 대감을 정사로 저를 부사로 임명해 왜에 통신사로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왜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면 병조참판을 하게 될 것이고요.”
“아, 그렇군요. 승차를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주상은 두문불출하는 윤임 우의정을 활용하기로 해 우선 왜의 통신사로 보내기로 했다. 대마도를 완전히 복속하는 것을 묵인하거나 또는 좋다는 외교적인 결정을 보기 위해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정문도 왜의 사정이나 대마도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안다고 판단해 부사로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면 병조참판을 보도록 해 조정에 새 바람을 불어 넣기로 결정했다.
최인범은 약간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여기 도호부사는 누가 오나요? 처음이라 힘들 것 같은데.”
“여기 도호부사는 전에 단양군수를 하던 민천복이 오고 있습니다.”
민천복은 최인범이 단양에서 활동하던 산적을 소탕할 때 단양군수로 있던 인물로 눈 속에서 구해줬었다.
“그 사람이 언제 오나요?”
“내일이면 윤임 대감과 같이 도착할 겁니다.”
“그렇군요.”
당장 떠나야 하는 상황도 아니라 최인범은 한양에서 오게 되는 민천복을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자길 해하려고 했던 윤임은 만나기가 싫어 그에 대해 말했다.
“나는 오늘 떠날 생각이니 그렇게 아세요.”
“알겠습니다.”
최인범과 한정문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게 되었다.
다음날 윤임 대감이 대마항에 도착해 한정문과 합류하자 하룻밤만 머물고 즉시 시모노세키로 떠났다. 윤임은 이번 기회에 최인범에게 사과하고 풀려고 했지만 피하는 것 같아 빨리 떠난 것이다.
그제야 최인범은 도호부로 찾아와 도호부사로 오게 된 민천복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여기서 만나는 군요. 반갑습니다.”
그러자 민천복은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려 큰 절로 인사했다. 과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하며 현 주상의 의형제라 예의를 깍듯이 차린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자 민천복은 최인범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뭐요? 그게 정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