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조선은 군사력의 기술에서 결코 왜에 뒤지지 않는다. 하나의 왕권으로 계속 다스려지기 때문에 반역을 일으키는 경우에만 필요한 군사력이라는 조정 신료들의 사고력이 큰 문제였다.
‘조선이 자신감이 생겨 어떤 기류가 흐를지 몰라.’
최인범이 판단하기에 조선의 해군력은 너무 막강했다. 특히 평저선에 장착해 쏘게 되는 화포의 위력은 왜로써는 당해내기 어려운 강력한 힘을 지녔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 방심하다가 결국 임진왜란을 겪었다.
‘사실 그때 수군의 전략이 잘 못되었어. 함포로 사격해서 왜선들을 격침을 시켰으면 초기에 오히려 승기를 잡을 수 있었어.’
조선은 예와 도덕을 덕목으로 아는 성리학을 매우 중시했다. 그러니 남의 나라를 침범하거나 먼저 전쟁을 일으키면 부도덕하다는 인식이 깊이 깔려 있는 정신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그런 상태이던 조선은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중종이 생의 마지막을 나름 뭔가 이루려는 욕심이 생겼다. 기존의 방침을 바꾸어 공격적인 태도로 변했다. 그래서 결국 남해안에 수시로 침범하는 대마도의 왜구를 완전히 소탕하고 도호부로 만들어 직접 통치하는 영토로 삼길 결정했다.
최인범은 막상 새로운 세상에서 살면서 목격한 판옥선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해상전투의 교범이라고 할 수 있는 함포 사격으로 적의 배를 격침시키는 모습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다.
‘조선의 해군력은 기술력에서는 현재 세계 최강이야.’
서양에 있는 배들의 위력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조선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면 조선 수군이 보유한 판옥선이 자랑스럽겠지만 지금은 조금 입장이 달라졌다.
‘조선이 변했으니 함부로 조선을 적대시 하다가는 봉황성이 조선에게 먹힐 수도 있어.’
조선을 돕겠다고 시작한 일들이 이제 와서 보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위험성이 높아졌다. 세상사란 본시 마음과 같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최인범은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판옥선에 대해 더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잘 관찰해서 봉황성은 이보다 더 우수한 배를 건조해야 돼.’
판옥선은 갑판을 이중으로 만들어 격군은 아래층에서 안심하고 노를 저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한 이층 구조의 판옥선이라 상당히 높았다. 그 때문에 수군들이 높은 자리에서 적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전투를 할 수 있다. 또한 그 때문에 적선들이 접근해서 배 안에 뛰어들기 어렵게 되어 있었다.
‘앞으로 봉황성의 해군도 판옥선을 기초로 선박을 건조해야 되겠어.’
멀리 영파까지 가서 굳이 포르투갈 범선을 찾았던 이유는 서양식의 범선을 만들어 이용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범선보다는 조선의 선박 건조기술의 진수인 판옥선을 기초로 선박을 건조해볼 심산이다.
발해만도 수심이 낮고 또 지형적으로 봉황성은 당분간은 대양해군을 꿈꾸기 힘든 여건이다. 그저 막연하게 바다를 통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는 좋다. 하지만 현재로는 우선 만주 지역이나 산동 반도 그리고 조선과의 무역만 원활하게 할 정도면 충분했다.
‘가정제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산동 반도는 반드시 공략할 필요가 있어.’
완전히 복속시키기는 힘들어도 그곳에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는 되어야 바다로 진출할 길이 막히지는 않는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최인범은 이번 기회에 수군을 혹독하게 훈련시킬 생각이다.
‘봉황성 근처에서는 지금처럼 해상 훈련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봉황성에 해군력이 강화되면 조선도 경계할 것이고 또 조선은 명과 결탁해 봉황성을 협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해군력을 높이는데 좋은 계기로 삼아야한다.
해상 전투란 본시 활로 적군을 사살하고 불화살을 쏘아 적선을 불로 태워버리든가 포탄을 사용하여 격침해버리는 방식이다. 그 때문에 판옥선의 갑판이 넓고 높은 것은 명중률을 높이는데 유리했다.
왜에서 사용하는 안택선의 경우는 배 밑이 뾰족해 선회반경이 큰 반면 조선의 판옥선은 밑이 평평하여 제자리 선회능력이 뛰어났다.
조선은 서해나 남해안에 갯벌이 많고 수심이 낮으니 평저선 구조가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평저선의 경우는 상륙 작전에는 상당히 유리하다.
잡다한 생각을 하며 최인범은 굳이 왜로 오게 된 이유를 다시 상기시키고 있었다. 자신이 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황 때문이다. 왜에서 나오는 황은 그 품질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우수한 흑색화약을 개발할 생각이다.
‘이미 소총도 확보했으니 빨리 흑색화약의 원료인 황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은 무역로를 만들어야 해.’
조선을 경유하는 황의 거래는 상황에 따라 봉쇄될 위험성이 높았다. 그러니 황을 봉황성까지 운반해줄 왜의 무역선단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미 대마도는 조선과 합병된 상황이라 황을 공급받은 길은 규슈 밖에 없었다. 직접 규슈로 들어가 착호 활동을 하며 거래할 대상을 찾아 볼 생각이다.
최인범은 이후 대마도주가 살던 저택에 기마병 100명과 같이 거주하며 가끔 50명의 기마병과 같이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야생동물을 사냥했다. 가끔 해안에 깃발을 세워 함포사격을 하게 해 수군들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철갑웅이 부두에 나갔다가 저택으로 급하게 들어와 보고했다.
“총병관님, 봉황성 수군이 이끄는 판옥선 5척이 추가로 들어 왔습니다.”
“생각 보다 빠르군.”
“그 배들도 해상훈련을 해야죠?”
“당연하지. 빨리 기존의 배들과 합류해 합동으로 해상훈련을 시작하라고 전해.”
“넷!”
염포에서 개조한 판옥선이 추가해서 대마도로 들어오게 되자 봉황성의 수군도 판옥선이 10척으로 늘어나 해상훈련을 하게 되었다.
판옥선이 들어오자 드디어 대마도주나 그의 가족 그리고 부하들을 부산포로 보내게 되었다. 최인범은 대마도주를 만나 슬며시 제안했다.
“만약 북경까지 가서 살아남게 되면 되도록 봉황성으로 보내 달라고 하시오.”
“예? 봉황성으로 가면 살길이 있나요?”
“그렇소. 그대가 봉황성으로 오면 내가 살길을 마련해 줄 거요.”
“알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잡을 때는 언제고 살길을 마련해 준다니 다소 이상했다. 그러나 처세에 밝은 대마도주는 이내 최인범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말했다.
“저야 살기가 힘들 것 같고 제 자식은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나중에 자식이 찾아가면 돌봐 주세요.”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최인범이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지하실에 숨겨진 생아편 때문이다. 자식이라도 돌봐주겠다고 약속해 그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확실하게 입을 막아야 해.’
최인범은 이런 결정을 내리고 나서 이내 움직였다. 조선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대마도주의 아들 중에 서자 한 명을 빼냈다. 나이가 이제 14세에 불과한 소년이라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는 이유다.
이때까지 소년은 조선군이 쳐들어와 빠르게 점령해 사람들을 포로로 잡자 재빨리 비단옷을 벗어버리고 무명옷으로 갈아입는 방법으로 위장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도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어리지만 아주 영민하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타고났다.
최인범은 도주의 시녀들을 심문하다가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소년을 감옥에서 빼내고 나서 조용히 아비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힘에 눌리면 굴복해야죠. 저는 서자라 상관이 없어요.”
“그래도 억울하지는 않냐?”
“사실 서자라 형님들께 서러움을 많이 받아서 정이 별로 없어요.”
눈빛을 보니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인범은 소년에게 지시했다.
“너는 앞으로 이름도 바꾸고 성도 바꾸어서 내 시종으로 일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옥으로 찾아가 부자간에 상봉을 시켰다.
“이 아이는 앞으로 내 시종으로 자랄 거요.”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미래가 불분명한 상황에 비록 서자로 어리지만 핏줄을 이어준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런 만남이 있고 나서 대마도주는 보급선에 실려 부산포로 떠났다.
그를 배웅하고 있는 소년에게 최인범이 넌지시 지시했다.
“너는 앞으로 대씨로 칭하고 이름은 마불이라고 해.”
“대마불요?”
“그래, 그렇게 부르면 돼.”
대마불(大馬不)은 바둑 용어에서 따온 매우 의미 삼삼한 작명이다.
“앞으로 내 말을 돌봐!”
“넷!”
최인범이 도주의 아들인 마불을 살린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생아편의 비밀도 입 다물게 하고 어차피 조선에 원한이 있는 아들을 나중에 필요하면 활용할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서자지만 제일 영민해 보이고 용감하니 쓸모가 많아.’
대마도주가 보급선에 실려 부산포로 떠나자 대마도에도 점령정책이자 새로운 영토로의 움직임이 있었다. 대마항구에는 신속하게 도호부가 설치되고 이주민들을 받아들였다.
한정문 부총병관이 저택으로 찾아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총병관님, 여기 건물을 앞으로 도호부 청사로 쓰면 안 될까요?”
“아직은 인계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마병들이 분산해서 숙영할 형편이 아니라 그건 곤란해요. 나중에 제가 규슈로 갈 때 비워드리죠.”
“알겠습니다.”
사실 저택을 비워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하실에 있는 생아편 때문이다. 그리고 봉황성으로 데려갈 처녀 100명의 수용도 문제라 나중에 떠날 때 비워주기로 했다.
빨리 생아편을 봉황성으로 옮길 필요성이 있어 투덜거렸다.
“보급품을 가지고 와야 하는 판옥선이 왜 안 오는 거야?”
“총병관님, 개조가 다소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약속했으니 올 때가 됐는데.”
최인범은 추가로 와야 하는 봉황성의 수군을 기다렸다. 대마도로 올 판옥선은 10척이다. 그 배들은 이곳에 보급품을 날라다 주고 전리품을 챙겨서 남해안을 지나 멀리 봉황성으로 가게 된다. 그편으로 필요한 군수품인 화살이나 건초도 대마도로 가져오기로 했으니 기다리고 있었다.
대마도주를 부산포로 보내게 되자 그런 소식은 빠르게 봉화를 통해 한양으로 연락되었다. 물론 봉화로는 자세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마도를 완전히 점령했다는 정도는 알릴 수 있었다. 물론 최인범이 북경으로 보내는 장계나 한정문이 보내는 장계를 지닌 파발도 빠르게 한양으로 보내졌다.
그러자 한양의 비변사에서는 급하게 파발을 부산포로 보내 대규모로 주민을 이주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보냈다. 이주민에 대해서는 각종 특혜가 부여되었다. 향후 5년간 세금은 완전히 면제고 그 이후에도 육지보다는 낮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부산포에는 대마도로 떠나는 어민들이 많았다. 살기가 열악하지만 그래도 세금의 부담이 없고 고기잡이는 마음 놓고 할 수 있어 이주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서 아소 만에서 고기만 잡아먹어도 굶지는 않게 생겼어.”
“식량은 부산포에서 날라다 준다며?”
“계속은 아니지만 한동안은 기본적으로 배급해준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가야지.”
대마도에서 살던 섬사람들이 모두 조선으로 끌려와 관노비가 되니 빈집도 많아 빈 몸으로 가도 살아갈 길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백성들은 서둘러 대마도로 이주했다.
부산포는 대마도에서 끌려온 섬사람들이나 떠나려는 백성들로 큰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부산포에 판옥선이 들어왔다. 모두 10척으로 최인범이 기다리던 배들이다. 부산포에서 보급품과 군수품을 실은 판옥선 10척은 빠르게 대마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