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드디어 대망의 대마도 정벌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최인범은 통제선에 올라 부산포를 떠나며 옆에 있는 두 장군에게 말했다.
“제가 본시 바둑을 좋아해서 하는 말이지만 바둑에서 대마를 잡기가 결코 쉽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마가 아닌 다른 목표를 노리는 위장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인범은 왜인들의 대륙 진출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대륙으로 향하는 징검다리인 대마도를 조선에서 쉽게 병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미리 경고하는 것이다.
대마도는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로 독립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대마도주는 명나라에서 최인범에게 대마도를 정벌하라는 정보를 입수하자 전처럼 재빠르게 조선에 항복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대마도주가 조선으로 이주하겠다는 내용을 온전하게 믿기 어려웠다. 대마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도주가 그저 땅을 조금 준다고 해서 이주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시세가 불리하니 조선을 속이려는 수작에 불과해.’
양쪽에 빌붙어 사는 처세술이 발달한 역대 대마도주의 행동을 잘 안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대략 그런 쪽으로 이해하고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심하다가는 복병을 만날 수 있어.’
조선의 지휘관들은 다들 긴장은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마도주가 순순히 항복해 조선으로 이주한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화포에 화약이나 탄알도 장착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지금 놀러 가나? 전투 준비도 안하네.’
대마도 정벌의 총사령관인 총병관이지만 굳이 자신의 생각을 외부에 노출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지시했다가 조선의 판단대로 두 손 번쩍 들고 대마도주가 항복하고 이주를 하면 공연히 의심한 자신의 체면만 무너지기 때문이다.
‘훈련이 잘된 수군이니 위기감이 생기면 알아서 준비하겠지.’
최인범은 남을 걱정하기보다 우선 자신부터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새로 생긴 무기나 갑옷으로 단단히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항상 입고 다니는 속옷처럼 입는 방탄복이야 이미 입고 있고 그 위에 면으로 만든 군복을 입고 있었다.
“철갑웅, 내 갑옷 가져와.”
“넷!”
내피에 해당하는 쇄자갑을 먼저 입고 그 위에 특수금속판으로 만든 갑옷을 장착했다. 머리에도 투구를 쓰자 완전무장 상태로 변했다.
검은 빛인 갑옷의 가슴 부위에 커다란 두 마리의 봉황 문양을 넣었다. 어깨 부분의 좌측에는 용 우측에는 호랑이 문양이 황금으로 새겨져 있었다. 허벅지의 판갑에도 주작과 현무가 황금으로 문양이 있었다.
갑옷 자체를 완전히 사신으로 치장하고 봉황을 중앙에 새겨 봉황성이 중심임을 뜻하게 만들었다. 사신이란 본시 오행사상에서 출발된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鎭護)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사신(四神)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는다. 한족(漢族)은 중앙을 황룡을 넣어서 오행사상을 완성해 놓았지만 갑옷은 중앙에 봉황을 넣은 것이다.
최인범이 검은 색인 갑옷을 입자 철씨 삼형제도 역시 검은 색의 갑옷을 입었다. 그들의 갑옷은 똑 같은 모양이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문양은 동으로 새기고 백호만 나타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최인범은 유달리 자신만 돋보이자 슬며시 나무랐다.
“내 갑옷을 이렇게 독특하게 만들면 적이 눈치를 채서 주된 목표로 삼겠다. 기왕에 만들 것이면 너희들도 똑 같이 만들어야지.”
“총병관님, 그 생각도 해봤지만 사실 자세하게 누가 살피기 전에는 문양은 그게 그거로 보입니다.”
철갑웅의 말에 최인범이 문양을 다시 살피자 문양 주변에 구름이나 어떤 그림이 조금씩 같이 넣어진 형태라 철갑웅의 말은 신빙성이 있었다.
흑혈풍과 적혈풍에도 마갑을 입히고 나서 흑혈풍에 자신의 무기를 장착했다. 다른 준비 작업이야 철씨 삼형제가 하고 있지만 무기를 챙기는 작업은 항상 자신이 직접 했다.
전쟁터에 나가서 준비가 소홀해 위기를 겪고 나서 수하를 원망하기 싫어 습관화된 행동이다.
살동개 2개에 20발씩의 유업전과 편전도 챙기고 쪽도리나 통아도 챙겼다. 새로 생긴 활을 활동개에 넣고 허리에는 흑혈검을 치고 허벅지나 장단지 부분까지 올라오는 군화에는 대검도 찼다.
너무 많은 대검을 소지하자 임마력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총병관님, 대검을 그렇게 많이 차고 전투를 합니까?”
“저는 본시 늘 이런 식으로 대검을 4개 지니고 다닙니다.”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백두에게도 쇄자갑을 입히자 다들 어안이 벙벙해 바라보고 있었다.
‘허어! 개까지는 갑옷을 입히네.’
이들은 백두가 얼마나 영민한 개이고 전투력이나 추적 그리고 탐색에 훌륭한 역할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준비가 끝나자 최인범은 삼형제에게 물었다.
“쇠사슬도 챙겨.”
“넷!”
단단히 전투 준비를 마친 최인범은 그제야 대마도로 향하는 판옥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굴이 완전히 우거지상으로 면했다.
‘저런 쪽 팔리게.’
봉황성 수군을 뜻하는 깃발을 걸고 있는 판옥선은 다른 판옥선과 달리 먼 바다로 들어서자 운항 솜씨에서 차이를 보였다. 판옥선은 이리저리 심하게 요동치고 방향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하늘에는 간간이 작은 구름만 보이고 아주 잔잔한 파고를 이루자 운항하기 너무 좋은 날씨다. 측풍으로 솔솔 부는 바람을 잘 타는 다른 판옥선과 달리 질서가 없었다. 한 눈에도 아직은 먼 바다를 항해 하기는 무리로 보였다.
조선 수군은 아주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대형을 갖추고 있지만 봉황성의 수군은 서로 부딪칠까 겁나 멀리 각자 떨어져 이동하고 있었다.
훈련 상태가 엉망이라는 것이 열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저걸 해군이라고 믿고 끌고 왔으니 나도 참 어리석군.’
급하게 수군을 만들어 격군도 노를 젓는 솜씨가 엉망이다. 배의 돛을 조정하는 선원들도 아직 판옥선에 익숙하지 않아 벌어진 사태다.
“흠! 대마도로 가서 해상훈련을 단단히 시켜야 되겠네. 저런 운항 실력으로는 적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모두 해안에 도착하면 난파당하게 생겼어.”
봉황성 수군의 훈련을 책임진 임마력은 이런 말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금은 고의적으로 봉황성 수군의 훈련을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총병관님, 훈련기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저건 나룻배 사공보다 못한 실력입니다.”
최인범은 즉시 지시를 내렸다.
“봉황성 수군은 뒤에서 멀찍이 따라 오라고 연락해.”
“넷!”
같이 이동하다 보면 조선 수군의 배와 충돌이 일어날 염려가 많아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직속 부하들과 대마도로 상륙하기는 틀려버렸다.
‘첫 전투에서 이게 무슨 꼴이야.’
약간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됐지만 그래도 대형 함대를 이룬 배들은 순풍을 타고 대마도로 향했다. 부산포와 대마도는 얼마 떨어지지 않아 먼 바다로 나온 지 1각이 조금 지나자 대마도의 해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상륙 목표 지점은 아소만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제일 끝이다. 함대가 드디어 아소만으로 들어서자 작은 배들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황한 모습이 분명하고 일부는 도망치는 동작이지만 대부분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한정문은 급하게 임마력에게 물었다.
“대마도주가 거짓으로 항복한다고 한 것 같소.”
“그렇군요.”
적의 거짓을 알자 임마력 절도사는 급하게 군관에게 명령했다.
“전 함대 전투 준비!”
둥둥둥! 둥둥둥!
요란한 북소리가 울리며 전투 준비를 하라는 깃발이 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명령을 받자 아소만으로 느긋하게 전진하던 판옥선들이 그 자리에 멈추고 일제히 전투 준비를 했다. 10척의 판옥선이 전투 준비를 마치자 임마력 절도사는 빠르게 명령 했다.
“전 함대 전진!”
둥! 둥! 둥! 둥!
공격 신호에 판옥선 10척만 아소만으로 진입해 깊숙하게 전진했다. 군사들이나 보급품을 실은 맹선이나 기타 배들은 아소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판옥선들이 전진하자 해안에 있던 왜구의 작은 배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배에는 많은 왜구들이 장검들을 들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왜구의 전통 전추 방식인 접근해서 백병전을 펼치려는 것이다.
“저놈들이 왜구군.”
“총병관님, 아무래도 전투를 벌여야 되겠습니다.”
“알았소. 알아서 왜구들 배를 격침시키시오.”
“넷!”
드디어 총사령관의 전투 명령이 떨어지자 조선 수군이 운항하는 판옥선에서 화포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쾅! 쾅! 과광!
판옥선의 상갑판에 장착된 천자총통이 불을 품으며 무거운 철탄을 발사했다.
쉬익! 쉬이익!
많은 화포에서 일제히 발사된 철탄이 왜구들의 배로 날아들자 이내 하나 둘 격침되었다. 일자 대형으로 전진하며 함포를 발사하자 왜구들은 전근해 백병전을 펼치려다 급하게 배를 돌려 해안으로 향했다.
“화차 발사!”
판옥선에 각기 한 대씩 장착된 화차에서 100발의 신기전이 동시에 도망치는 왜구를 향해 날아갔다. 사거리가 긴 신기전은 해안에서 무기를 들고 모여든 왜구를 향했다.
수많은 화살이 해안가로 날아들자 미처 생각지 못한 매서운 공격에 왜구들이 죽어갔다. 막강한 화력을 지닌 판옥선에서 발사되는 화포의 위력에 왜구들은 급하게 배들을 해안에 접안했다. 왜구들은 급하게 배에서 뛰어내려 숲속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통제선의 제일 높은 위치에서 이런 왜구들을 바라보던 최인범이 천천히 갑판으로 가서 활과 화살을 챙겨 다시 올라 왔다. 삼형제도 똑 같이 활을 챙겨 올라오자 명령했다.
“갑옷 입은 놈만 편전으로 저격해.”
최인범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활에 통아를 걸고 시위를 당겨 편전을 날렸다.
팅! 쉭!
이때 먼저 언덕에 오른 왜구들도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활을 들고 대항했다. 하지만 왜구의 화살은 판옥선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사거리에서 두 배나 차이가 났다. 그 때문에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자 겁에 질린 왜구들은 언덕에서 도망쳤다.
“후퇴!”
후다닥.
허겁지겁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왜구들의 등에는 어김없이 최인범을 비롯한 삼형제가 날리는 짧은 화살이 깊숙하게 박혔다.
판옥선에서 쏘는 함포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 무서웠다. 더구나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오는 보이지도 않는 화살에 갑옷 입은 두목들이 죽어 가자 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갑옷 입은 두목 놈들을 노렸지만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거의 벌거벗은 상태인 왜구들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고 있었다.
해안에 대항하는 왜구들이 한 명도 없자 최인범은 명령했다.
“한 장군, 후위의 보병부대를 상륙시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