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총병관님, 앞으로는 이 활을 써보세요. 활에 특수금속을 넣어 새로 만들었어요. 습기가 많은 왜로 가면 혹시 아교가 녹아 활에 이상이 생길까 넣어 봤어요.”
“그래? 네가 보기에는 어떻고.”
“아주 좋습니다. 반탄력도 지금 가지신 활보다 더 좋을 겁니다. 일반 궁사들은 이 활을 쓸 수가 없어요. 당기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최인범은 철갑웅이 새로 제작해 가져온 활을 당겨 보았다. 종전에 사용하던 활보다 확실하게 당기기는 힘들지만 힘이 좋은 자신이나 철씨 삼형제에게는 딱 어울리는 활이다.
활에 특수금속판을 넣어서 그런지 유엽전이나 편전을 쏘아보니 전보다 더 빠르게 멀리 날아갔다. 최인범은 새로운 강력한 무기가 생기자 너무 기뻤다.
“좋았어. 왜로 가서 호랑이 사냥을 하기가 더 쉽겠어.”
“총병관님, 백두가 입을 갑옷도 만들었습니다.”
이 말에 최인범은 너무 기쁜 표정을 지으며 크게 웃었다.
“하! 하! 너도 그런 생각을 다하는구나.”
“총병관님, 백두가 그동안 저희와 같이 다니며 이룬 공적도 많지 않습니까? 흑혈풍과 적혈풍의 마갑을 만들다 보니 백두도 생각났습니다.”
새로운 강력한 활이 생겼으니 최인범은 이후 낙동강을 내려가면서 강변에서 돌아다니는 오리를 잡으며 숙달시키고 있었다. 무인이기에 손에 들어온 새로운 무기를 숙달시키는 것은 습관과도 같았다.
아직은 겨울철이라 낙동강에는 겨울 철새인 오리들이 많았다. 최인범은 오리를 사냥하며 새로 생긴 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같이 가는 철갑웅이나 철을웅도 마찬가지고 궁술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본래 자신들은 근접경호원이 주된 임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도 다양한 무술 실력을 높일 필요성이 있었다. 모시는 분이 뒤에서 지휘하기 보다는 최전선으로 출전하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철갑웅. 하류로 내려가 부산포에 도착하면 앞으로는 언월도를 익혀.”
“넷!”
새로 구상한 다른 무기들은 아직 제작도 되지 않아 우선은 철씨 형제의 주된 무기를 더 숙달시킬 필요가 있었다.
한편 봉황성에서 보낸 군사들의 수는 당초 1000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진인 1500명이 더 조선으로 빠르게 내려오게 되자 그들의 정체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체력이 우수한 사람만 선발해 보냈다. 특히 단신이면서 힘이 좋은 사람들을 염포를 향해 보내자 그들을 어디에 활용하려고 보낸 것인지 알았다. 선박의 추진력인 노를 저을 격군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키가 작아야 유리하다.
1진이 염포에 먼저 도착하자 절도사인 임마력은 즉각 알았다.
“봉황성에서 수군을 양성하려고 내려 보냈군.”
“절도사님, 앞으로 약 1500명이 염포로 더 내려온다는 것을 보면 여기서 수군의 포수들까지 양성해 판옥선을 직접 인수해갈 모양 같습니다.”
“그렇군.”
판옥선에는 격군을 비롯해 모두 125명 이상이 승선한다. 대마도로 봉황성 병사들이 출전하면 조선으로부터 대맹선을 개조한 판옥선을 20척 가져가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판옥선을 인수해서 가져가며 기회에 봉황성에서도 수군을 양성할 필요성이 있어 보낸 것이다.
염포에는 봉황성에서 보낸 병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많은 군인들이 몰려오자 염포는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요즈음 같으면 염포도 살기가 좋아.”
“당연하지. 조선소를 크게 만든다니 앞으로도 더 발전될 거야.”
경상 좌수영이 있지만 약간 침체되던 지역 경기가 완전히 살아나 장사꾼들은 신이 났다.
명, 여진, 몽골, 조선 출신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봉황성의 병사들이지만 비교적 산동성 출신들도 많았다. 그들은 산동 반도에서 반란군들의 횡포에 견디지 못하고 어선을 타고 고향을 떠나 봉황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일부는 나중에 반란군을 몰아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의지로 자원한 사람들도 있다. 또는 인육을 먹는 가정제나 한족의 끔찍함에 명나라를 완전히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2500명의 봉황성 군사들이 염포로 오게 되자 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소에서 막일을 도우면서 지내게 되었다. 그들이 돕자 선박 개조 작업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었다.
임마력 절도사가 그들을 포수로 양성하거나 또는 판옥선을 운항할 선원으로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다. 모두 단순한 격군이나 인부로만 활용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아무리 지금 현재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해도 봉황성은 엄연히 다른 나라야.”
“그렇습니다. 절도사님, 저들에게 포술을 알려주거나 선원 교육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기술 유출을 염려해서 취하는 조치다. 그러나 봉황성에서 오게 된 병사들이야 힘든 격군보다 배를 운항하는 선원이나 전투원이 좋으니 조선 병사들을 만나 질문하는 방식으로 수군에서 필요한 기술을 서서히 습득하고 있었다.
어선은 운항해본 선원들이야 그저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여기서 판옥선을 운항하는 기술만 온전하게 습득한다면 초급군관으로 임명되니 그들은 조선의 수군에게 술을 사주면서 배우고 있었다.
심지어는 조선 수군을 설득하고 있었다.
“판옥선을 운항할 기술을 가진 사람은 봉황성에서 중급군관으로 임명하니 그대도 이번 기회에 봉황성으로 갑시다.”
“그게 가능한가?”
“그렇다니까요. 조선과 봉황성이 서로 협정을 맺어 얼마든지 개인들이 그곳으로 이주가 가능해요. 그래서 여기서 이주민 신청을 받기로 했어요.”
“대우가 좋은가?”
“좋죠. 조선 사람에게는 특별한 대우를 해줍니다. 성주님이 조선출신이고 장차 그곳에서 관리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조선출신입니다.”
“그렇다면 이주를 생각해 봐야겠군.”
조선출신으로 봉황성으로 먼저 이주한 사람들은 기술을 빼가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사람까지 포섭해 데리고 가려는 수작들을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자순에게 지시를 받은 사람들로 유능한 선장이나 포수들을 설득해 데리고 오면 그에 따른 포상도 해준다니 적극적이다.
그리고 여진출신이나 명나라 출신이 많은 봉황성에 보다 더 많은 조선인이 이주해 와야 유리하다고 판단해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작전에 나서는 것이다.
울산(염포)은 많은 배를 개조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많고 이래저래 매우 혼잡스러웠다. 그러자 울산에는 주막들도 늘고 기방도 대폭 늘어났다. 자연히 그곳에서 일하는 들병이들이나 기생들도 늘어났다.
하룻밤을 진하게 보낸 청년이 기생을 설득하고 있었다.
“배 타고 같이 봉황성으로 가면 되니 우리 혼인합시다. 비록 아직은 초급 군관이 아니지만 봉황성으로 가면 판옥선을 지휘하는 중급군관이 되니 여기서 이러고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하게 될 거요.”
날마다 남자를 바꾸어 웃음을 파는 기생 생활도 이제는 염증이 나서 지겨웠다. 젊은 사내가 자신에게 반해 이주하라고 설득하자 슬며시 승낙했다.
“알았어요. 같이 떠나기로 하죠.”
“그런데 내가 지휘하는 판옥선에 우수한 포수가 있어야 좋은데.”
“알았어요. 내가 포수를 꼬여 보죠.”
조선을 떠나기로 결심한 들병이나 기생들이 저 살자고 적극적으로 나서자 기술 유출이나 이주민 포섭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런 가운데 낙동강을 따라 내려온 최인범은 드디어 부산포에 도착했다. 이미 5척의 판옥선이 부산포에 와 있었다. 포섭된 조선의 선원들이나 봉황성에서 오게 된 군사들로 판옥선은 해상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해상 훈련은 아직 근해인 다대포에서 주로 하고 있었다. 포술 훈련도 다대포 앞의 작은 무인도를 향해 함포사격을 하고 있었다.
사실 대마도주가 조선으로 이주를 원하고 있어 대마도를 공격하기 위한 훈련은 아니다. 혹시 대마도를 합병하면 왜의 혼슈나 규슈에서 대마도를 공격해 올까 염려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최인범은 부산포에 도착해 이곳에 와있는 한정문을 만나게 되었다.
“승차를 축하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인사가 늦었군요. 부마도위가 되신 것을 감축 드립니다.”
작위를 받은 것에 대한 인사가 아니다. 잘 알고 지내던 최인범이 혼인을 했다니 인사하는 것이다. 한정문은 여전히 최인범을 명나라에게 빼앗겼다는 느낌이라 매우 섭섭한 상태다.
‘조선 공주와는 혼인을 죽어도 못한다고 하더니 대국의 공주와는 너무 쉽게 혼인했어.’
섭섭한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고 이제는 총병관의 지휘를 받아야하는 조선을 대표하는 지휘관인 부총병관이다. 그러니 대마도 합병을 위한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총병관님, 이미 판옥선 5척이 부산포로 왔고 며칠 뒤에는 판옥선이 5척 더 들어오니 출전 준비를 해야죠.”
“알았어요. 나야 언제든지 출발해도 되지만 대마도로 보낼 조선군의 준비가 어떨지 모르겠군요.”
“저희야 오래 훈련한 용호영 군사들이 출병하니 별 문제는 없습니다.”
조선은 대마도로 출병하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100년 전에도 출병해 대마도에서 활동하는 왜구들을 소탕한 군사작전을 펼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이종무 장군이 보고한 내용도 비치되어 있으니 사실 그 보고서를 참고로 출전할 생각이다.
그때야 왜구를 소탕만 하고 철군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점령해 그곳을 경상남도에 속한 대마도호부로 만들어야 하니 어찌 보면 전혀 다른 군사작전이다.
최인범은 대마도 보다는 규슈를 가야하는 입장이라 자신 휘하로 판옥선을 이끌고 가야한다. 두 사람은 부산포에 있는 부산진으로 가서 보다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수군 사령관인 임마력 절도사도 부산진으로 와서 작전회의를 같이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이미 왜의 영주들이 부산포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알고 있다고 판단해 임마력에게 제안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또 다른 변수가 생길 수 있으니 판옥선 5척이 더 부산포에 도착해 10척이 확보되면 바로 대마도로 넘어가겠어요.”
“총병관님, 그렇다면 봉황성의 군사들로 먼저 단독작전을 펼친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일단 5척은 봉황성의 수군이 이끌고 그들은 주로 부산포와 대마도 사이를 오가는 군수품 운반을 책임지겠어요. 조선 수군 소속인 판옥선 5척은 대마도 동쪽 해상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면 되고요. 조선에 판옥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중맹선이나 소맹선도 있으니 조선의 보병이나 포병인 지상군은 그런 배들로 운송해 대마도로 보내면 되고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판옥선 15척이 부산포로 오게 되면 출병하기로 하죠.”
임마력은 5척의 판옥선으로 대마도 동쪽을 모두 경계하기는 버겁다고 판단해 10척이 되면 움직이자는 의견이다. 최인범은 반대할 의사가 전혀 없어 즉시 답해 주었다.
“절도사께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면 그리하세요.”
의외로 순순히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임마력은 몰랐다. 그는 최인범이 총병관이란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었다.
‘이상하군. 순순히 내 의견을 받아들이고.’
최인범은 다음 계획에 대해 말했다.
“출병은 일단 다른 배는 모두 무시하고 판옥선만 기준합니다. 다른 배들은 조선군이 알라서 할 일이니 간섭하지 않습니다. 일단 15척이 부산포로 오면 출병해 그중에 10척은 대마도의 동쪽 해상에서 초계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대마도에 있다는 호랑이를 사냥하죠.”
“총병관께서는 언제 왜로 넘어가고요?”
“부산포로 5척이 더 도착하면 그 배는 봉황성 수군이 운항해 대마도 동쪽 해상을 초계하는 배에 포함됩니다. 동쪽을 초계하는 판옥선 수가 20척으로 늘면 그때 제가 봉황성 소속 수군들이 이끄는 판옥선 5척을 데리고 호환을 해결해줄 군사 100명과 같이 규슈로 넘어가니 그렇게 아세요.”
봉황성 소속인 판옥선이 10척이 대마도에 도착하면 그때는 규슈로 자신이 넘어 간다고 말하자 임마력은 그제야 최인범의 속셈을 정확하게 알았다.
‘봉황성의 수군 양성을 빨리 해달라고 독촉하는 의미군.’
조선군으로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작전회의는 이것으로 끝났다. 회의가 끝나자 조선 수군들이 부산포로 속속 집결했다.
아직 개조가 안 된 맹선들도 모여 들었다. 부산포로 15척의 판옥선이 도착하자 대마도 정벌을 위해 출전하게 되었다.
일시적으로 많은 병사와 화포 그리고 군수품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동원된 배는 무려 200척이나 되었다. 부산포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기대와 염려하는 눈빛으로 전송했다.
남해안에서 활동 중인 수군 함정을 비롯한 고기잡이배들까지 총동원해 병사와 군수품을 수송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왜에서는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출전한다고 받아들이기 쉬운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