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서장관으로 따라온 부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감님, 앞으로는 봉황성 때문에 조선으로 오기가 겁나네요.”
“당연하지. 대공주께서는 남을 함부로 해하지 않는 부마도위님과는 성격이 전혀 달라. 공주님이야 본시 왕부에서 고귀한 신분으로 자라나 눈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벌을 준다고. 성격도 조금은 괴팍하고 그래서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몰라.”
왕충도 북경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봉황성에서 무사하려면 정향 대공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판단해 조용히 있다가 서둘러 한양을 떠난 것이다.
‘전에는 조선으로 오는 사신이 좋은 벼슬자리였지만 이제는 목숨을 걸어야 되고 돈 벌이가 전혀 안 되고 오히려 손해만 보는 자리야.’
대마도로 출병하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로 황제가 부여한 임무는 수행한 것이라 만족했다.
‘앞으로는 조선 사신으로 오지 말아야 해.’
한편 경상남도 좌수영이 있는 울산의 염포에서는 조선에서 제일 큰 전투함인 대맹선을 판옥선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와글와글.
해변에 있는 조선소에서는 많은 배들이 들어와 개조 작업이 진행 중이다.
건조한지 오래된 맹선은 해체해 다시 부식된 부위는 교체해 재조립하고 있었다. 조선의 배들은 모두 건축하듯이 끼워 맞추기 방식으로 제작한 선박이라 분해와 재조립이 가능했다.
대맹선은 평소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선박으로 이용한다. 그 때문에 각 수영에는 모두 일정 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한양으로 보내는 미곡은 이미 모두 추수와 더불어 보냈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대동미인 미곡은 염포와 부산포에 집결되고 있었다. 모두 군량미로 사용하기로 결정되어 대마도로 보내야 한다.
“장 만호! 그대는 누각을 책임 졌으니 빨리 누각을 만들 목재를 생산해야지.”
“예이, 경상북도에 있는 대목수들이나 목수와 인부들도 여기로 오게 되니 지금보다는 빠르게 개조될 겁니다.”
“다른 수영에서 있는 목수들도 여기로 오니 그들을 잘 통제해.”
“넷!”
최인범의 요구대로 맹선의 위에 상갑판을 깔고 그 위에 누각처럼 개조하게 되는 판옥선(板屋船)은 주로 화포 공격을 위해 개조되고 있었다.
그래서 판옥선은 하체와 상장으로 구분이 된다. 전형적인 조선식의 구조로 수심이 낮은 곳에서 기동성을 좋게 하는 평저선이다. 갑판 위에 누각을 새로 만들어도 복원력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미 한척은 완전히 개조해 화포나 수군을 싣고 해상훈련을 해봐도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작업 속도가 빠를 수 있었다.
판옥 구조는 상장의 너비가 하체너비 보다도 넓어 그 사이로 노를 저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추진력은 범선이지만 격군들이 노를 저어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다.
경상남도 좌수영의 임마력 수군절도사는 선체를 개조하는 목수들을 직접 독려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개조가 가능한가?”
“보름은 지나야 됩니다.”
새해가 되어 정월 초하루만 휴식을 취하고 작년 이른 겨울부터 개조를 시작했지만 의외로 진척도가 다소 늦었다. 개조에 필요한 목재를 근처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아 다른 지방에서 운반해 오기 때문이다.
대마도로 떠날 지상군인 보병들이 속속 부산포로 모인다니 임마력은 마음이 급했다.
대맹선의 개조를 책임진 수군절도사인 임마력은 개조가 늦어지자 중얼거렸다.
“차라리 부산포가 개조하기 편한데.”
군관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절도사님, 부산포는 왜의 본토에서 오는 왜인들이 많아서 정보가 새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재료 조달 때문에 너무 진도가 늦어서 큰일이야.”
“절도사님, 다른 수영에서도 분산해 대맹선을 판옥선으로 개조하면 빨랐을 것인데 굳이 가장 먼 여기로 모아서 개조하죠?”
“그야 앞으로 이곳을 판옥선을 전문으로 건조하는 최고의 조선소로 운영하기 위해서지.”
“그렇군요.”
제포(진해) 부산포(동래) 염포(울산)은 모두 삼포로 칭해 왜인들이 교역하는 왜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왜관은 전과는 조금 다르게 운용했다.
제포나 염포는 대마도주가 보낸 왜의 상인들만 거주하거나 배가 들어올 수 있다. 왜의 혼슈나 규슈에서 오는 상인들은 반드시 부산포로 들어와야 한다.
“송판이 너무 부족해.”
“아무래도 잘 마른 송판을 모두 사용해 개조하기는 힘들겠어요.”
“목수들에게 말해서 큰 문제가 없으면 상판의 재료는 덜 마른 송판을 사용해 보라고 해.”
“넷!”
판옥선은 갑판을 2개가지고 있는 형태로 두꺼운 널판으로 되어 있다. 갑판은 매우 넓은 편이어서 화포를 유리한 곳에 배치해 적중률을 높일 수 있고 병사들이 싸우기에도 유리하다.
조정에서 보낸 재물이 많아 시간이 흐를수록 염포에서 진행하는 대맹선을 판옥선으로 개조하는 작업의 진행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한편 한양의 비변사에서는 누굴 대마도 정벌의 조선군 사령관으로 임명할지 고심했다. 비변사의 도제조인 왕세자는 측근인 한정문을 지목했다.
“내가 보기에는 용호용을 이끄는 한정문 장군이 적당한데 어찌 생각하시오.”
“마마, 소신이 보기에도 적당하옵니다.”
사령관도 필요하지만 대마도를 도호부로 만들기로 했으니 많은 관리를 임명해야 된다. 그 때문에 비변사에서는 많은 사람이 천거되거나 심사되었다.
결국 한정문을 종2품인 문관으로 바꾸어 조선군 총사령관인 부총병관으로 임명하고 수군과 육군을 같이 지휘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마도를 병합하고 나서 행직으로 도호부사를 겸직해 근무하기로 결정되었다.
“용호영의 군사들이 합병 작전이 끝나도 당분간 대마도에 주둔해야 하니 그게 좋겠소.”
“그렇군요. 적정한 임명이라고 봅니다.”
한정문은 오래된 왕세자의 측근이고 총병관인 최인범과 자별한 사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한양에서 대마도 정벌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멀리 낙동강 변에서는 최인범이 출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구도호부는 이제 경상북도 관찰사가 수령을 겸직하는 곳이다. 강변에는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 배들이 많았다. 최인범은 추풍령을 넘어 대구에 도착해 강변의 주막에서 묶었다.
아침 일찍 나루터로 가서 소금 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가려고 배를 기다리는 중. 역시 배를 타려고 다른 주막에서 나오는 철갑웅을 만났다.
“갑옷은 만들어 오는 중이냐?”
“넷!”
철갑웅은 자신이 만들게 된 갑옷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만나자 즉시 권했다.
“총병관님, 한번 입어 보겠어요?”
“필요 없어.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었겠어. 나중에 부산포로 가서 그때 마갑도 씌워보고 같이 입어 보자. 그런데 너희들 것도 만들었냐?”
“넷! 암석은 철과 황금으로 합금해서 갑옷으로 만들었습니다. 저희들 것은 철을 넣어서 만들고 총병관님은 황금과 철을 넣어서 만들고요. 그래서 총병관님의 갑옷이 여러 가지 면으로 좋습니다.”
잘했다고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 가벼운 특수금속으로 최인범의 경우는 특수금속 7 철 2, 황금 1 비율인 합금으로 만들고 자신들의 마갑이나 쇄자갑들은 모두 특수금속 4, 철 6로 합금해서 제작했다고 보고했다.
“대장장이들이 솜씨가 아주 좋아서 진짜로 멋지게 만들었어요. 가져간 금괴는 다 들어갔지만 진짜로 멋있습니다.”
철갑웅이 너무 장황하게 자랑하는 것 같아 최인범은 슬며시 입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알았어. 갑옷 입어보자고 주막으로 다시 갈 수는 없으니 소금 배에 오르면 입어보지.”
“넷!”
타고 다니던 말도 태워야 하니 사람이 타지 않는 소금 배를 기다리다가 3척을 빌려 2척은 말을 싣고 한 척에 부하들과 같이 탔다.
주섬주섬 나무상자에서 꺼내는 갑옷을 보니 내피로 입는 갑옷은 쇄자 갑옷이 아니다. 마치 방탄복처럼 비단과 면으로 감싸고 안에 금속판을 빼곡하게 넣은 모습이다.
“총병관님, 이건 평복 속에 입어도 표시가 나지 않도록 합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끼처럼 입고 국부까지는 가려집니다.”
“그렇군.”
자신이 전생에 입었던 방탄복의 기억이 생생해 허접한 그림 솜씨로 그려주다 보니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안은 비단을 2겹으로 대고 밖은 면을 4겹으로 댔는데 아주 튼튼해 보였다.
군복 위에 입는 갑옷은 본래 쇄자갑과 같이 기본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고리를 걸어 고정시키는 금속판인 갑옷이 또 있었다.
마치 중세의 중기병들이 입는 갑옷처럼 만들었다. 투구도 눈만 보이고 그나마도 그물처럼 내리면 아예 눈까지 가는 철망으로 가린 형태다.
“총병관님, 눈은 물론 발까지 완전히 전신을 감싸 화살이나 또는 어떤 무기도 방어할 수 있어요.”
“어디 투박해서 입고 다니겠냐?”
“아닙니다. 관절 부위는 쇄자갑이라 유동성이 있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들고 볼 때와 막상 입어보니 불편한 점은 전혀 없었다. 내피에 해당하는 쇄자갑은 그저 가죽갑옷을 입을 정도와 같았다. 무게가 가벼워 그렇고 움직여보니 가죽 갑옷보다 더 움직임이 편했다.
“잘 만들었네. 너희들도 똑 같이 만들었냐?”
“아뇨, 모양도 약간 다르고 저희들 것은 이 갑옷 보다는 철이 많이 들어가 약간 움직이는데 불편하고 조금 더 무겁습니다. 하지만 다른 갑옷에 비하면 아주 가볍고 좋습니다.”
“그럼 너희들도 안에 입는 방탄복은 항상 입고 다녀.”
“넷!”
철씨 3형제는 큰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활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옆에서 항상 따라다니는 근접경호원으로 쓸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특수금속으로 만든 갑옷을 만들어 준 것이다.
철갑웅의 말에는 도끼로 찍으면 모를까 칼이나 화살은 튕겨 나가는 방탄 효과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방어가 좋아도 취약점은 있었다. 무거운 철퇴를 맞으면 충격은 있으니 다칠 수 있었다.
세상사란 아무리 치밀하게 방어하는 무기를 만든다고 해도 상대적인 무기는 있는 것이다. 아무튼 아주 가는 동아줄처럼 긴 쇠사슬도 만들어 오자 최인범은 그제야 용도에 대해 말했다.
“이건 우리가 쓰는 모자를 쇠로 만들어 던지면 차양에서 칼날이 나오는 무기를 다루는 줄로 사용할 거야. 그게 아니면 끝에 낫을 달면 특이한 무기가 되지. 앞으로 너희들이 사용해. 물론 지금처럼 방패로도 사용하고. 필요하면 줄로도 사용하면 되니 다용도지.”
“그렇군요.”
전투에서 얼마나 위력적일지는 모르지만 특이한 형태라 상대방에게 위협적인 무기로 보일 수는 있다고 판단했다. 쇠사슬이 가늘어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비행 무기로 공격한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부하들의 마갑이야 조금 가벼운 일반 마갑과 같았지만 두필의 말에 장착하는 마갑은 쇄자마갑에 철편으로 만든 마갑이 2중으로 장착되는 형태다.
“만드느라 신경을 많이 썼군.”
“이걸 만든 장인은 하늘에서 내린 신병이라고 하더군요.”
운석으로 만들어 신병(神兵)일 수도 있지만 그거야 사용하기 나름이다. 아무튼 좋은 방어 장비를 만들었으니 앞으로 왜에서의 행보가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최인범은 여유를 가지고 강가에 돌아다니는 오리를 잡아먹을 요량으로 활을 들었다. 그러자 철갑웅은 또다시 다른 무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