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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59화 (259/519)

259화

‘나중에 왕세자가 머리가 아프겠어.’

군왕으로 자신의 딸을 최인범에게 시집보낸다고 했으니 추후라도 이 문제가 다시 표면으로 나타날 여지는 항상 있었다. 그래도 그것은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일이라 왕세자가 처리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상은 너무 의욕적으로 국정을 살피다 보니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얼마 살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병약하던 세자가 전보다 튼튼해지고 최인범과 의형제를 맺었으니 다행이야.’

욕심은 화를 부른다고 주상은 무리하게 뭔가 표시가 나는 큰 업적을 재임 중에 이루려다 보니 자신의 생을 어느새 갉아먹고 있었다.

중전의 처소인 교태전에서는 문정왕후가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었다.

‘자꾸만 요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주상께서 공주의 정혼을 파기하고 다른 부마도위를 받아들였다.

더구나 마치 죄인처럼 소리 소문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시집을 보냈다. 그러자 문정왕후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정왕후는 끝을 모르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최인범을 사위로 삼지 못한 것에 심하게 반응했다.

“어휴! 아까워 죽겠어.”

명나라의 총병관으로 임명된 최인범을 포섭할 필요성이 있었다. 힘을 쓰지 않아서 그렇지 총병관은 조선의 병사들도 어느 정도는 지휘할 권한이 부여된 막강한 직책이다.

그러니 자신의 소생인 딸을 총병관에게 시집을 보내 사위 삼기를 여전히 원했다. 기를 피지 못하는 후실이나 다른 체면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딸이 시집을 가서 어떤 수단을 쓰던 총병관만 자기편으로 끌어 들리게 유도하면 만사형통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왕세자를 밀치고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얼마든지 왕위로 밀어 올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아직도 기회는 사라지지 않았어.’

윤임이 최인범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다는 정보를 듣자 그것을 기화로 남동생인 윤원형을 움직여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외의 암살미수사건이 마포에서 터지며 돌변해 윤임은 결국 살아남았다.

오히려 더 윤임이 의심을 받아 죽어야 되는 데 오히려 누명이라며 살아나게 됐다.

‘마포에서 벌어진 암살미수 사건이 너무 이상해.’

어찌 이런 사건들이 마포 나루 근처에서 일어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움직여 마포에서 벌어진 암살미수사건을 면밀하게 조사하게 지시했다. 그래서 겨우 어떤 단서를 잡았지만 그것도 잠시 중단했다.

사건을 조사하던 정난정이 그만 남편인 윤원형을 따라 멀리 전라남도 무안군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권력욕이 강한 문정왕후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정난정이 아닌 다른 사람을 물색하기로 했다.

측근으로 부리는 김 상궁을 불러 조용히 지시했다.

“전에 자네가 용하다고 하던 무당을 불러와.”

“대궐로요.”

“무수리로 위장해서 데리고 들어와.”

“예.”

무당을 불러오려는 이유는 그 무당을 통하면 한양에서 은밀하게 살수조직으로 활동하는 검귀 조직과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정난정이 연결했던 조직이라 누굴 통해야 연결 되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은 비상사태라고 봐야 해.’

문정왕후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이 항상 꿈꾸던 목적을 달성하고 싶었다. 그 꿈이야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어린 아들이 군왕에 오르게 되면 당연히 자신이 대비로 수렴청정을 하니 조선 천지는 자신의 손아귀로 들어온다. 그것이 문정왕후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그런 원대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검귀를 동원해 왕세자를 살해할 생각도 있었다.

‘왕세자의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식을 보기가 힘들다고 하더니 어떻게 해서 세자빈인 박빈이 회임을 한 거야? 박빈의 소생으로 왕손이 태어나면 지금까지 구상한 내 계획이 모두 틀어지는데.’

자꾸만 자신의 계획이 심하게 옆으로 틀어지고 있었다. 뭔가 크게 잘 못 되어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귀양을 가던 참수당해 죽는다고 판단하던 윤임이 멀쩡하게 살아났으니 그건 진짜로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늙은이가 명줄도 길어. 그런 위기에서도 싱싱하게 살아나다니.’

왕세자가 후손이 없어야 순조롭게 경원 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게 아니면 너무 복잡해지니 제거 대상은 왕세자를 비롯해 세자빈인 박빈도 목표로 삼았다.

‘회임했으니 큰 충격만 받아도 유산할 수 있으니 뭐든 움직여 봐야해.’

자칫 잘못해 거사를 벌이다 실패하면 배후로 지목되어 자신이나 아들이 죽게 된다.

설사 왕세자 부부의 제거 작전이 실패해도 자신이 배후에서 저지른 사건이 드러나면 안 된다. 그러니 매우 조심해서 움직일 필요성이 있고 여차하면 대신 죽어줄 놈도 필요했다.

그런 원대한 목표가 있어 무당을 우선 처소로 부른 것이다.

‘검귀 조직에 수족처럼 부릴 충성심이 강한 놈이 있어야 하는데.’

다음날 대궐로 나이가 많은 무당이 무수리 차림으로 몰래 숨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문정왕후를 은밀하게 만나고 나자 대궐을 떠나며 신이 났다.

‘오랜 만에 큰 청부를 받았어.’

그녀의 품속의 주머니에는 지금까지 만져 보지 못한 큰 재물인 금괴나 보석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문정왕후는 드디어 무당을 통해 뭔가 진행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한양에서 활동하던 검귀들은 사라진 명나라의 동창 무리들의 행방을 추적했다. 사실 검귀들은 자신들의 영역인 한양에서 벌어진 암살미수사건이라 그동안 조심스럽게 조사하고 있었다.

“두목! 사라진 명나라 놈들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어디야?”

“예성강의 나루에서 천진으로 가는 배를 타고 이미 명나라로 도망갔답니다.”

“뭐라? 그러면 청부받은 내용을 완수하기가 틀린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명나라 놈들만 저지른 암살사건이 아닙니다. 개성의 왈짜패들도 마포나루에서 같이 부마도위를 화살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검귀들은 수집한 정보를 신속하게 무당을 통해 대궐의 문정왕후에게 전해졌다. 이어서 검귀들은 개성의 왈짜패를 은밀하게 잡아들이게 되었다.

깊은 숲에 있는 사냥꾼 집과 같은 허름한 곳에 끌려온 왈짜들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고문이 처음부터 살가죽을 벗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으아아악! 살려 주시오.”

“살기는 틀렸고 비밀을 말하면 고통 없이 죽여는 주지.”

이렇게 잔인하게 말하며 살귀들은 잡아온 왈짜들을 심문했다. 결국 고문을 견디지 못한 왕짜들은 하나 둘 사실을 토해내고 있었다.

“명나라에서 온 동창의 살수들이 저희에게 은자를 줬습니다. 그래서 공격한 겁니다.”

“공격 대상이 누군지는 알고?”

“그 당시는 몰랐습니다. 동창의 살수들 말에는 상인들이 명나라에서 생아편을 많이 가지고 왔으니 습격해서 털게 되면 반씩 나누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격한 것이고요.”

“뭐라? 생아편을 지니고 있어 공격하자고 했어?”

“그렇습니다.”

명나라에서도 생아편이 그냥 의약품 정도로 거래되고 고가로 팔린다. 명나라와 달리 조선은 생아편이 중독성이 강한 위해한 물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조정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생아편을 생산하기 위해 양귀비를 기르면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흡입하거나 복용하는 사람도 엄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극히 일부분만 의원의 처방을 받아 의약품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부마도위께서 국경선이나 관문에서 검문검색을 받지 않는 것을 기화로 엄청난 생아편을 명나라에서 들여왔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동창의 무리들이 그걸 알아낸 것이죠.”

“알았어.”

너무 큰 사건이라고 판단한 검귀 두목은 나중에 증인으로 써먹기 위해 개성의 왈짜패를 그냥 살려두기로 했다.

“토굴에 잘 가두어 놔. 죽지 않도록 물이나 음식은 수시로 공급해 주고.”

“넷!”

대궐에서 무당을 통해 이런 보고를 받은 문정왕후는 나름 좋은 계책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명나라 부마도위라고 하지만 대량의 아편을 조선으로 들여왔다면 그건 큰 문제가 되니 그것을 빌미로 협상해볼 생각이다.

‘이제 총병관이 가진 생아편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돼.’

이렇게 판단한 문정왕후는 검귀에게 지시를 내려 최인범의 뒤를 밟아 생아편을 찾아보라고 했다. 대궐에서는 미래의 권력을 목표로 서서히 새로운 음모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한 조정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었다.

비변사는 많은 재물을 부산포 지역으로 보냈다. 그리고 은밀하게 많은 젊은 부부를 모집했다. 선발 자격은 모두 군에서 화포를 다루어본 포수를 제일 우선순위로 두었다.

명나라 사신인 왕충은 왕십리에서 주둔하던 용호영의 병사들이 남쪽으로 떠나자 더 이상 산동 반도의 출병은 독촉하지 않았다. 그저 조선의 대신들과 같이 향응이나 즐기다가 처음 주장한 윤임의 소환도 흐지부지 독촉하더니 소리도 없이 북경으로 돌아갔다.

그는 모화관을 떠나며 한정문에게 당부했다.

“대마도 정벌이 끝나면 바로 산동 반도로 군사들을 보내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총병관님께 전해지요.”

“황제 폐하의 진노가 심하다고 꼭 정하시오.”

“예.”

왕충은 더 이상 조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왜나 산동반도의 출병 시기의 결정이나 교전이나 지휘권은 총병관인 최인범이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명나라에서 직접 조선 조정을 향해 출병을 독촉할 사안은 아니었다.

독촉하려면 지휘관인 최인범에게 먼저 해야 된다. 그러나 왕충은 그것을 잘 알면서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다시 돌라갈 때 만날 정향 대공주가 은근히 겁나기 때문이다.

‘심기가 매우 사나운 대공주를 건들 필요는 없어.’

왕충은 전에 남경에서 동창지부장으로 지냈던 경력이 있어 정향 대공주의 무서움을 잘 안다. 그녀는 나이가 어리지만 성깔이 보통은 아니다.

“예쁘고 온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상당히 냉혹해.”

“태감님, 혹시 공주께서 우리도 억류하고 협박할까요?”

“그야 봉황성으로 가봐야 알지.”

저번에 왔던 사신인 진상과 팽지평은 조선에서 북경으로 귀국하다가 봉황성에서 정향 대공주의 명령으로 잠시 억류됐었다.

표면으로는 그저 먼 길을 사신으로 오가느라 고생해서 며칠간 봉황성에서 향응을 베푼다고 했다. 하지만 잔칫상을 차려놓은 바로 옆방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비명소리가 계속 들리게 했으니 사신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대공주의 의중은 은근히 자신의 남편을 동창의 살수를 동원해 암살하려고 했으니 언제고 죽이겠다는 무서운 협박이다. 그래서 겁에 질린 명나라 사신들은 별수 없이 살아서 북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향 대공주에게 뇌물을 주기로 했다.

한양에서 부마도위에게 넘겨준 재물의 액수와 비슷한 재물을 추가로 바쳤다. 거액의 차용증을 써서 정향 공주에게 혼인 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넘겨주고 봉황성을 무사히 떠나게 되었다.

“여차하면 우리도 전에 사신들이 했던 것처럼 대공주님께 뇌물을 주고 북경으로 돌아가야지. 그리고 조선에서 있었던 일이야 모조리 토해야 될 거야.”

“그렇겠네요. 공주님께서는 조선에 대해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였으니 알고 싶은 정보가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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