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최인범은 어항에서 회를 먹었다. 조선 사람은 사실 별로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모습도 조금 이질적으로 보여 이지함이 말했다.
“날로 먹는 회는 잘 못하면 몸에 해로운 병균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되도록 삶아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가요?”
“짐승이나 어물은 생각 이외에 병균이 있을 수 있지요.”
뭘 특별히 병균에 대해 알아서 보다는 자연의 기본적인 이치를 터득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동안 내내 내륙지역을 이동했던 최인범은 많은 마른 어물을 사서 꽃게와 같이 자루로 담아 말 등에 올려놓고 어항을 떠나게 되었다.
최인범 일행은 왔던 길로 되돌아 드디어 부여에 도착하게 되었다. 부여현의 외곽인 능산리에 도착해 한창 발굴 작업 중인 호위병과 인부들에게 생선을 주며 말했다.
“추운데 수고 많습니다. 생선으로 반찬해서 밥부터 먹고 천천히 합시다.”
“와! 생선이 많네요.”
부여는 금강을 따라 서해안에서 나오는 수산물이 많지만 그래도 가난한 백성들은 비싸서 사먹기 힘들어 다들 좋아했다. 그러나 잔뜩 자루에 사가지고 온 꽃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꽃게는 맛이 별로인데. 왜 이렇게 많이 사왔죠?”
“그냥 맛있어 보여서.”
“참게를 먹어 보세요. 그러면 두 번 다시 꽃게를 먹지 않을 겁니다.”
최인범은 시대가 달라 음식문화도 다르고 또한 이 시절은 논에서 흔하게 나오는 참게가 많아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철을웅이나 호위병들은 보령에서 사온 꽃게가 너무 맛있다고 잘 먹는 다는 점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힘들게 사온 꽃게를 버리거나 또는 혼자서 먹어야 될 판국이었다. 아무튼 부여현과 인근 정산현 지역은 유달리 참게가 많이 나오는 지역이다.
이지함은 능산리의 발굴 현장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겨울철이라 땅파기도 힘든데 일정한 깊이로 파고 나서 작은 호미와 같은 것으로 땅을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이나 효율성에서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은 작업을 계속하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대장군,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겁니까?”
“아, 여기서 발굴 작업을 합니다. 중요한 고대유물이 있어 그것을 찾아보려고요.”
“대장군, 유물이라면 백제시대 유물을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백제시대 유물을 발굴해 봉황성으로 가져가려고요.”
이런 대답에 이지함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백제시대의 유물이라면 본시 이 지역 사람들 소유가 아닙니까? 그런데 마치 도적질하듯이 이렇게 함부로 발굴해 다른 곳으로 가져가면 안 됩니다. 그건 예에도 벗어나고 도의상 크게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나는 백제시대 유물을 꼭 가져가야될 필요성이 있고 이미 여기의 토지를 매입했으니 도적질은 아니죠.”
“대장군,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조정에서 발굴해 한양의 대궐이나 조정에서 보관한다면 모를까 타국으로 가져가는 것은 제가 보기에 도적질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죠. 저는 장군의 이런 행동은 너무 잘못된 것으로 봅니다.”
이런 소리를 듣자 최인범은 화들짝 놀랐다.
새로운 시대로 들어와 살면서 남에게 잘못 됐다고 자신의 행동을 지적받은 경우가 처음이다.
끝마무리를 좋게 하고 조선을 떠날 생각이던 최인범은 졸지에 이지함에게 도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끙! 졸지에 간단치 않은 감시자가 옆에 붙었어.’
그러나 이지함이 도적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자신의 목적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슬며시 이지함에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이 지역 사람들을 위해 뭔가 별도로 해주면 되지 않겠소.”
“대장군, 지역민에게 뭐를 해주려고요? 관아로 재물을 주나요? 그도 아니면 이 지역 사람인 모든 백성들에게 재물을 풀어 잔치를 베푸나요?”
“뭔가 해줄 생각입니다.”
“지역의 유물을 가져가며 대신 뭔가 해준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뾰족한 좋은 방법은 없어 보이니 발굴을 중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이지함의 지적에 최인범은 내심 뜨끔했다.
‘녹녹치 않은 위인이야.’
백제의 마지막 도성인 부여는 패망하며 완전히 불이타서 남은 유적 유물이 드물다.
그나마 백제시대의 오층석탑이 남아 있지만 당나라 소정방이 답신에 자신의 전공을 기리는 문장을 새겨놓아 훼손했다. 그래서 백제탑은 흔히 백제를 멸망시키고 소정방이 전승을 기념하게 위해 세운 평제탑으로 불리고 있었다.
‘쩝! 겨우 겨우 설득한 이지함이 자칫하면 돌아설 수 있겠군.’
이지함이 지적한 그대로 백제시대 유물이 전무한 실정인 부여다. 그나마 나중에 국보급인 백제대향로인 유물을 자신이 가져가게 되면 사실 부여에 사는 주민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뭔가 해주기는 해야 하는데 뭐가 좋지?’
나름 고심하던 최인범은 결국 자신이 돌아본 지역에 전생에는 있었던 정자나 누각을 세워주기로 했다. 그리고 기왕에 하는 것이라 고란사도 크게 중건해 주기로 결심했다.
“좋소, 나와 같이 현청을 찾아 갑시다.”
최인범은 이지함과 같이 부여현으로 가서 수령인 현감을 만나 많은 금괴를 내놓고 말했다.
“이것으로 낙화암 꼭대기에 정자를 세우시오. 부여에서는 제일 풍광이 좋은 곳이니 나중에 관광하러 외지에서 손님들이 찾아 올 것이요.”
“아!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낙화암을 말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지함은 또 다시 지적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백제의 도성에 삼천명의 궁녀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건 전혀 도성이나 궁궐의 크기를 감안하지 않은 헛소리지요.”
“본시 전설이 그렇지 않나?”
“대장군, 본시 전설이란 실화를 바탕으로 출발하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절개를 지키기 위해 도성내의 부녀자들이 부소산으로 도망치다가 결국 바위에 떨어져 죽은 겁니다. 궁녀나 혹은 도성에 살던 아녀자들을 합치면 3000명이 될지 모를까. 제가 보기에는 궁녀는 겨우 100명 정도 떨어져 죽었을 겁니다.”
이지함의 이런 지적에 결국 정자의 이름은 100명의 궁녀가 떨어졌다는 의미로 백화정(百花亭)으로 결정되었다. 원역사의 정자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해석하기 나름이군.’
최인범은 이외에 너무 적다고 판단되던 고란사(皐蘭寺)도 대폭 중건해 주기로 결정했다. 근처의 작은 공간에 요사채도 짓고 강변에 돌로 쌓은 나루터를 만들기로 했다.
강변의 나루터와 접해서 사찰의 입구를 뜻하는 산문(山門)도 건립하거나 중간에 작은 사천왕문이나 구름다리를 놓고 종각도 세워주기로 했다.
대목수에게 단단히 이르고 있었다.
“천년을 갈 수 잇도록 잘 지어 주시오.”
“염려 마세요. 소나무가 잘 말라 충분히 천년은 갑니다.”
많은 금괴를 주어 중건하라고 하자 주지스님은 다른 발상을 했다. 바위를 깨서 주춧돌이나 석축에 이용하고 바위가 깎아진 절벽에는 크게 불상을 조각해 미관을 돋보이게 한다고 약속했다.
“너무 자연을 크게 훼손하시면 안 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궁남지의 연못 중앙에는 포룡정(抱龍亭)을 세우고 규암진 나루터 옆의 스스로 더워진다는 자온대(自溫臺) 위에는 수북정(水北亭)이란 커다란 누각도 건립을 주선하게 되었다.
지니고 있던 금괴를 대부분 풀어서 건립하도록 해준 것이다. 그러자 이지함은 너무 많은 재물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도대체 유물이 얼마나 가치가 높은데 이렇게 많은 재물을 쓰시는 겁니까?”
“그대 말대로 고대 유물의 가치는 재물로 따지기는 곤란해 내가 보기에 이런 정도를 해주면 고대유물이 부여에서 사라짐으로 생기는 불이익은 후손들이 받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나중에나 건립될 정자나 누각을 지금 세워줌으로 부여가 관광지로 다른 곳에 비해 뒤지지 않은 기반 조성을 조금은 해주게 된 것이다.
부여에 동시 다발로 여러 개의 정자나 누각이 건립되는 건축 붐이 불었다. 그러자 부여에서 사는 백성들은 겨울에 일자리가 생겨 활기에 넘치고 있었다.
“요즈음 같으면 살만한데.”
“당연하지 겨울에도 일을 해서 면포를 버니 전보다 살기가 좋지.”
재물만 넘겨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각이나 또는 정자 터도 정해야 한다. 그 때문에 여러 날을 허비하며 현장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이지함은 고란사 바로 옆의 조룡대도 다른 쪽으로 해석했다.
“전설이지만 당나라 소정방이 백강구를 통해 부여로 배를 몰고 쳐들어 올 때 안개가 너무 끼어 전투를 벌이기 전에 수호신인 용을 낚아 올렸다는 전설이 담긴 조룡대도 사실이라고 가정해 해석해 보면 이곳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어디라고 보는 거요?”
“장군, 여기서 조금 떨어진 장암에는 이와 비슷한 바위가 백마강 너머의 강변에 있어요.”
“그런 비슷한 곳이 있어요?”
“그렇습니다. 전설을 제가 해석해 보면 아마도 소정방이 전투를 벌이기 전에 그곳에서 백마를 잡아 강에 던지는 승전을 위한 제사를 지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백제군이 부소산성에서 돌덩이를 던지면 죽게 생긴 위치에서 제사를 지내지는 않는 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제사도 지내고 기다리는 사이에 진했던 안개가 사라지자 후일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아 올린 곳이라는 전설이 생긴 것이고요. 아무튼 두 곳 모두 잉어를 낚시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최인범은 듣고 보니 어느 정도 타당한 해석이라고 판단해 이지함과 같이 그곳으로 가보게 되었다. 또한 이지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현장을 보자 고란사 옆의 조룡대와 거의 비슷한 바위다. 최인범은 이지함의 의견에 동조해 바위 근처에 작은 정자를 짓도록 했다.
“이곳도 풍광이 조금 그럴 듯하니 정자를 지어놓으면 좋겠어.”
“또 정자를 지어요?”
“그렇소. 뭔가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하니 정자가 제일 좋죠. 낚시꾼들이 비를 피할 곳으로 사용해도 되고. 근처에 사는 노인들의 휴식 공간되니 좋다고 봅니다.”
그러자 이지함은 그 정자의 이름을 정했다.
“장군께서 바둑을 잘 두시니 이곳 정자를 포석정(布石亭)이라고 지으면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낚시질도 하고 정자에서 바둑을 두겠군요.”
최인범은 겨울에 하게 되는 유물발굴이라 시간이 지체되자 결국 생각지 않은 재물을 소모해 부여에 여러 개의 정자를 짓도록 기부를 하게 되었다. 이지함을 포섭하려다가 많은 재물을 허비하자 최인범은 이리 생각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군.’
부여에 도착해 발굴 작업을 하는 중에 벌써 한해가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부여로 왕세자가 찾아왔다. 왕세자는 주상의 명령으로 총병관인 최인범과 중요한 협상을 하기 위해 급하게 찾아온 것이다.
“세자저하, 연말이라 한양에 바쁜 일들이 많으실 것인데 어찌 여기까지?”
“아우님을 만나 급하게 상의할 문제가 있어 전하께서 나를 보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