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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54화 (254/519)

254화

철을웅이 보기에 어젯밤 얼마나 진하게 기생과 즐겼으면 파김치가 되었나 싶었다.

자신은 밤이 깊도록 무술 수련으로 녹초가 되었는데 세상은 너무 공평하지 못했다.

‘나는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이래저래 날을 꼬박 세웠으니 너무 피곤해서 삼거리 주막에서 국밥을 먹고 골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호위병 한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는 공주로 가서 내가 부여를 들려 보령으로 간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부여에서 어쩌면 며칠 걸릴지 모르니 그리로 오고.”

“넷!”

아무리 건강한 최인범이지만 격한 정사를 벌이고 바로 밤을 새워 춘향전을 집필하고 다시 이동했으니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연산의 삼거리 주막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나서 목적지인 부여현으로 가게 되었다.

공주의 무령왕릉을 발굴해 귀한 물건을 차지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차마 조상들의 묘를 도굴하듯이 함부로 파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멀리 남쪽 신라시대의 귀한 보물인 금관이나 기타 많은 문화재가 매장된 왕릉들도 마찬가지다.

‘도굴하려고 조상 묘를 함부로 파버리면 그건 죄악이지.’

자신이 발굴해 가지고 가려는 것은 봉황성에 딱 어울리는 부여의 능산리에서 후세에 발굴될 백제금동대향로다. 제일 위에 봉황이 있고 아래에서 용이 떠받드는 형태라 봉황성의 상징물로 깊은 의미가 있었다.

‘상징물로는 그것이 제일 적당해.’

봉황은 본시 자신이 살던 시대에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동양에서는 봉황이나 용이 모두 중요한 영물로 취급한다. 명나라는 용에 더 비중을 두고 한민족은 봉황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명나라의 한족이 우리 한민족을 높이 떠받드는 형태의 상징물이라 적당해.’

자신의 봉토지가 봉황성이란 명칭이라 가장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이곳 부여는 본시 성왕이 백제의 수도를 공주에서 이전할 때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 칭하는 바람에 지명으로 남은 곳이다.

‘부여나 북부여의 맥을 이어간다고 주장하려면 뭐가 꼭 필요해.’

유물이 발굴된 정확한 위치를 아니 그곳의 토지를 매입해서 발굴해 가져갈 생각이다. 진품은 잘 보관하고 모조품을 똑 같이 만들어 상징물로 사용할 요량이다.

부여현에 도착해 목표인 토지를 매입했다. 주인은 토지 근처에서 사는 부여 서 씨라고 했다. 부여 서 씨는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자신이 알던 지형과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주변 산의 형태는 그대로라 발굴된 정확한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방 20미터 지점에 표시를 하고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근처 마을에서 인부를 사서 파 봐!”

“넷!”

“겉흙이 파고 나서 다른 흙이 나오면 그때는 조심해서 파고.”

“알겠습니다.”

겨울이라 발굴이 힘들지만 인건비를 넉넉하게 주니 작업에 동원될 인부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농사철이 아니라 먹고 노는 사람이 부여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부여는 본시 홍수 다발지역이고 습지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사비도성을 건설할 때 도성 내에 큰 연못을 파서 그 토사로 토성인 반월성을 쌓은 곳이다. 전생에는 소나무가 가득하던 부소산은 거의 민둥산으로 잡목들만 많고 산을 오르기도 열악했다.

최인범을 말을 타고 현청이 있는 곳을 지나 구두래 나루로 가서 나룻배 타고 고란사로 가게 되었다.

부소산에는 어떤 누각이나 볼만한 뭐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마나 낙화암 옆에 고란사란 사찰이 있어 그곳을 가보려는 것이다.

강변의 낙화암 옆에 있는 작은 사찰인 고란사는 자신의 기억보다 규모가 더 작았다. 종각도 없고 덩그렇게 작은 법당만 하나 있었다.

“완전히 암자에 불과하군.”

그래도 자주 마시면 장수하고 아들도 얻을 수 있다는 고란 약수의 물맛은 일품이었다. 서둘러 비탈진 바위 길로 올라 낙화암 정상으로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백화정도 없네.’

강의 건너편의 산들도 대부분 민둥산이다. 잠시 낙화암에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다 다시 고란사로 내려와 나룻배를 타고 구두래 나루로 돌아와 말에 올라 백제오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보리나 콩밭으로 이용되는 밭 가운데에 쓸쓸하게 오층석탑이 서있고 그 옆에는 이상하게 생긴 좌불 하나가 보였다.

‘나당 연합군이 철저하게 파괴해 부여는 남은 것이 전무하군.’

무왕이 만들었다는 궁남지도 그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논이나 늪지대로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다. 기대보다 더 너무 볼 것이 없어 최인범은 철을웅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무량사로 가자.”

“넷!”

급하게 말을 몰아 규암진 나루를 통해 백마강을 넘어 빠르게 말을 달려 무량사로 가게 되었다. 이곳은 쉽게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이 없으니 사찰에 묵을 수밖에 없었다.

산나물 무침의 절밥을 얻어먹고 나서 경내를 돌아보자 한쪽 구석에 참나무에 구멍을 뚫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는 거요?”

“표고버섯을 키워보려는 겁니다. 이곳을 자주 찾아오는 불자가 이렇게 하면 표고버섯을 쉽게 키울 수 있다고 해서요.”

“그렇군요. 아주 좋은 새로운 농사법이군요.”

최인범은 자신이 풍기에서 벌인 표고재배 기술이 이미 주세붕 군수 때문에 이곳까지 흘러들어 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러니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전생에서 넘어온 사람이 사나?’

너무 신기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인삼도 재배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런 말까지 듣자 최인범은 몰골이 송연해지고 말았다.

‘헉! 나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어.’

문뜩 자신과 같은 과정을 거쳐 조선시대로 넘어온 사람이 이곳에도 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졸지에 경쟁자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대충 살면 안 되겠어.’

어쩌면 경쟁자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날 최인범은 빠르게 무량사를 떠났다.

성주 사지를 지나 높은 고개를 넘어 보령으로 가게 되었다. 보령향교를 들려 먼저 이지번을 찾기로 했다. 건장하게 생긴 젊은 청년을 잡고 물었다.

“이지번이란 사람이 있소?”

“어! 우리 형님인데 왜 찾으시오.”

이런 대답에 너무 반가워 최인범은 청년의 두 손을 잡고 외쳤다.

“토정선생.”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나보고 토정이라니.”

사실 토정이란 명칭은 후일 마포에서 움막을 짓고 살게 되면서 생겼다. 아무튼 최인범은 원하던 사람을 쉽게 만나자 그와 같이 주막으로 가서 술을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기대하던 만큼 학문이나 기타 여러 가지 재주는 아직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매우 총명하고 재기가 넘치며 세상을 널리 바라보는 안목은 확실히 남달라 보였다.

“백성들이 잘 살려면 뭐를 조정에서 해야 합니까?”

“그야 농사에만 매달리지 말고 광산도 개발하고 어업도 장려해야죠. 그리고 소금 생산도 권장해야하고요.”

일단 몇 가지를 물어 역사서와 비슷한지 알아보고 나서 마음에 들자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아실지 모르지만 나는 봉황성주인 최인범이요.”

“아! 그렇습니까? 어제 제가 사는 집 근처에 있는 벽오동나무에 봉황이 날아오는 꿈을 꾸었더니 귀한 분을 만나게 됐군요.”

꿈을 진짜로 그렇게 꾸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인범은 이자함과 진지하게 천문지리와 과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천재들이 늘 그러하듯이 전혀 새로운 학설이나 과학적인 정보에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가 사는 땅이 본시 달처럼 둥글고 하루에 한번 돌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최인범은 초등학교 수준인 지구에 대한 이야기나 기타 과학상식을 말해주며 이지함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학문을 이룬 이지함을 설득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일 같이 주막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설득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이지함은 자연과학이나 새로운 농업기술에 관심을 보였지만 봉황성으로 가서 관리로 사는 것에 거부반응이 심했다.

“조선백성으로 조선에서 살아야죠.”

“그곳에도 조선출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누군가 이끌어 줘야죠.”

“제게는 그런 학문이 없어요.”

“저를 믿고 같이 그곳에서 웅지를 펴봅시다.”

며칠을 같이 술을 마시며 신기한 이야기를 해주며 집요하게 설득했다.

이지함은 결국 당분간 같이 다니고 자신이 직접 최인범의 행동을 보고 그때 판단한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조선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나와 같이 당분간 같이 다녀보기로 하죠.”

“예.”

이지함은 자존감이 강해 명나라 벼슬인 총병관이나 또는 부마도위란 칭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최인범이 무력이 높고 군사들을 지휘한다는 점을 인정해 장군으로 칭하고 있었다.

“대장군, 그런데 나를 누가 소개한 것입니까?”

“주세붕이란 분입니다.”

“아, 전에 충주에서 만났던 풍기군수로 간 분이군요. 그분은 잘 지내시나요?”

“그렇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이지함은 같이 여행을 떠난 다는 기분에 괴나리봇짐을 지고 최인범을 따라나섰다.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지켜보다가 최종적으로 거취를 정한다는 뜻이다.

‘쉽게 따라갈 생각이 없다는 뜻 같아.’

이렇게 되자 최인범은 마치 자신의 행적을 감시하는 감시자를 한 명 달고 다니는 격이 되어버렸다. 다행인 것은 이지함도 말을 탈줄 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보로 이동할 판국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마침 보령 5일장이라 장터에는 허접한 말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별로 마음이 들지 않아 군마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그래도 타고 다니기에는 불편할 정도는 아닌 중급 말을 구할 수 있었다.

이지함이 탈 말까지 구하자 최인범은 어항이 있는 바닷가로 가게 되었다.

어항은 그리 번창한 모습은 아니었다. 조정에서 수산업을 장려하지 않고 오히려 통제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흔하게 나오는 꽃게를 자루로 몇 자루를 사자 이지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러 맛도 없는 꽃게를 그리 많이 사는 겁니까?”

“부여에 지금 호위병들이 있어 그들을 가져다주려고 사는 겁니다.”

최인범의 이런 대답에 이지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흔하게 논에서 나오는 참게를 사서 줄 일이지 크기만 하고 맛도 없는 꽃게를 사다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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