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아주 평범한 상식을 말하지만 주세붕은 전혀 다른 새로운 지식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을 너무 많이 아는 최인범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인물 정도로 생각되고 있었다.
‘조선의 백성들을 살리려고 백두산에서 여기까지 내려 온 분인데 조선에서 결국 받아들이지 않자 멀리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시는 거야.’
최인범이 백두산 출신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조선을 떠날 생각이라 최인범은 사고력이 완전히 깨어있는 주세붕에게 이런 사업 이외에 과학서적도 넘겨주어 필사하도록 했다.
“이 책도 필사하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놀라운 학설인 지동설이나 또는 도르래 원리나 지렛대나 톱니바퀴 등에 대한 서적이다.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등에 대한 내용도 있으니 전혀 새로운 지식이다. 내용 중에는 이미 조선에서도 널리 알려진 상식에 속한 지식도 있지만 체계적으로 적어 놓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수준의 과학적인 지식이지만 전혀 새로운 학설이라 함부로 발설하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최인범은 주세붕에게 신신당부했다.
“선비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학설에 대해서는 공개를 당분간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하면 지금 당장에 백성들 생활에 쓸모도 없는 새로운 학설로 군수께서 탄핵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저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만 전파하는 방향으로 하세요.”
“하지만 새로운 지식은 널리 알려야 하지 않나요?”
“제가 성주로 있는 봉황성에서는 아마도 학교에서 모조리 가르치게 될 겁니다. 거기야 제가 통괄하는 곳이니 설사 이런 사실이 명나라에 알려져도 말들이야 많겠지만 저에게 어떤 위해는 가하지 못할 것이니까요.”
“그렇겠군요.”
“하지만 조선이야 사정이 전혀 다르니 군수께서는 조심하세요. 제 판단에는 봉황성에서 가르치기 시작해 조선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무렵에 군수께서 동조하는 정도로 시작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최인범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주세붕이 곧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책을 읽어보고 이해하면 새로운 학설이라고 발표해 자칫 고루한 조선 선비들에게 주세붕 군수가 몰매를 맞아 전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잘못하면 시기가 나서라도 매도하거나 또는 모략해서 죽일 수도 있어.’
주세붕은 이미 역사적으로 그 성품이 검증된 사람이다. 또한 실제로 자신이 만나보니 마음에 들어 아끼는 생각에서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당부하는 것이다.
선각자들이 항상 그렇듯이 생전에는 핍박을 받다가 사후에나 인정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주세붕을 통해 새로운 농법을 보급되도록 조치했으니 중간에 좌절될 여지를 피해야 한다.
‘지식을 전파하거나 써먹기 전에 졸지에 도태될 수도 있어.’
사람이 싫거나 시기가 나서 집단의 힘으로 매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시도한 좋은 일이나 올바른 과학적인 지식마저도 매도되어 사장되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살던 전생에서도 그런 사건들은 너무 많았다.
정치적인 이유나 또는 지역적인 어떤 감정 때문에 심하게 매도해 사람 자체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가 개입되면 아무튼 매우 복잡해지고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조심스럽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최인범은 그동안 조선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지식을 마음 놓고 전수할 장소가 마련되었으니 편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내가 떠나니 지금 주세붕에게 알려 줘도 괜찮아. 현명한 사람이니 조심해서 새로운 학설을 공개할 것이고.’
조세붕은 서책을 필사하다가 새로운 글씨를 보게 되자 물었다.
“이건 뭐죠?”
“숫자입니다.”
최인범은 서책의 그림에 수치를 아라비아 숫자와 영어로 표기해 놓은 것이 많았다. 그래서 기호인 영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아라비아 숫자도 알려 주었다.
필사 작업이 모두 끝나자 최인범은 서책들을 모조리 챙겼다. 그리고 자신이 미처 기록하지 못한 새로운 농법에 대해서는 주세붕이 만든 서책을 받아 챙겼다.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나자 최인범은 서책들을 싼 보따리를 호위병에게 넘겨주며 지시했다.
“이것을 한양으로 가지고 가서 자순 보좌관에게 각기 100부식 필사해 놓으라고 해.”
“넷!”
나중에는 금속활자로 인쇄해볼 생각이지만 아직 그렇게 제작하기에는 체계적인 정리 과정이 필요해 이렇게 지시했다. 그리고 풍기와 봉황성 지역의 환경 자체가 다르니 함부로 서책을 대량으로 발간하기는 곤란했다.
최인범의 지시를 받은 호위병 2명이 빠르게 한양을 향해 떠났다.
막상 조선을 떠나려고 하니 뭔가 그래도 챙겨야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름 고심하다가 조금은 무리한 행동이지만 그것을 새로운 세력을 이룰 봉황성의 상징물로 삼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해 그것을 가져가기로 했다.
‘그래, 그것이 역사적인 의미도 있으니 제일 좋겠어.’
아직도 지하에 들어있는 중요한 유물이라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다른 물건들이나 유물은 자신의 생각과 부합되지 않아 그 유물을 발굴해 가져가기로 했다.
인삼재배와 표고버섯재배는 봉황성에서도 해볼 생각이라 천먹쇠에게 지시했다.
“먹쇠야, 올해 채취한 인삼씨는 모두 포장해. 봉황성으로 가져가서 재배해 보게.”
“알겠습니다. 표고의 종균도 싸도록 하죠.”
봉황성으로 가서 새로 산삼 씨를 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때문에 일단 이곳에서 채취한 인삼 씨를 모조리 가져가기로 했다. 표고버섯의 종균도 마찬가지고 우수한 품종인 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품종이 우수한 나무는 나중에 묘목을 생산해서 봉황성으로 보내.”
“알겠습니다.”
토질이 너무 달라 어쩔지 모르지만 일단 이곳에서 한 차례 품종 개량이 된 식물들의 묘목이나 씨앗은 봉황성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자신은 언제 봉황성으로 돌아가게 될지 몰라 그런 물건은 모두 호위병 5명에게 서책과 같이 넘겨주며 지시했다.
“우선 이것을 가지고 한양에 들려 자순을 만나고 나서 봉황성으로 가도록 해.”
“알겠습니다.”
“우리는 충청도로 가니 특별한 소식이 있으면 그리 연락하라고 전해.”
“넷!”
이외에 봉황성으로 가서 우선 당장 시행할 일들이 적힌 서책도 넘겨주었다. 경제적인 사업도 있지만 군사를 양성하기 위해 이미 북쪽으로 떠난 배도치를 비롯한 부하들에게 군사를 조련하는 훈련소를 만들도록 지시한 내용이다.
“가지고 가서 철병웅에게 넘기면 그가 알아서 처리할 거다.”
“넷!”
경제도 중요하지만 우선 당장 여력이 있는 한도에서는 군사를 양성할 생각이다. 많은 지시가 담긴 서책을 가지고 호위병들이 북쪽으로 떠나게 되자 이제 자신도 풍기에서 떠나기로 했다.
짧은 기간이라고 하지만 정이 들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자꾸만 머뭇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최인범은 결단을 내렸다.
‘이러면 안 돼.’
일단 양부라고 해도 터를 잡게 해준 은혜가 있어 최용민의 산소로 올라가 제사를 지내고 나자 과감하게 상투를 잘랐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자순의 말대로 이제는 과거 즉 조선을 버릴 각오를 단단히 한 것이다. 그런 결심의 상징으로 조선의 오랜 전통인 상투를 자르는 단발을 결행했다.
상투를 자르고 나서 머리에는 커다란 삿갓을 썼다.
몸에는 군복을 입고 삿갓을 쓰자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풍기를 떠나면 다른 삿갓인 챙이 평평한 중국식으로 쓰고 다닐 요량이다. 위기에 처하면 방패로도 사용하는 삿갓이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천먹쇠는 문뜩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영영 풍기를 안 오시려고 저러시나?’
떠날 준비를 마치고 저택에서 말을 끌고 나설 무렵.
풍기군수인 주세붕이 나무상자 하나를 가지고 찾아왔다. 작별 인사를 겸해 특별한 물건을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게 뭔가요?”
“제가 이곳 군수로 부임해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심마니가 산에서 우연히 발견했다는 특이한 바위입니다. 아무리 살펴도 이 바위가 뭔지 몰라 혹시 총병관께서는 알지 몰라 드리는 겁니다.”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흑백색인 바위에 불과해 보이는데요.”
“그렇게 보이지만 이 바위는 특별합니다.”
주세붕을 두 손으로 안아 들어야 될 정도로 큰 바위를 한손으로 쉽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세요. 이상하죠. 흑백색이라 철분이나 은이 들어 있어 보이지만 그건 아닙니다. 이렇게 제가 한손으로 들 정도로 아주 가볍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단단합니다.”
최인범은 주세붕이 넘겨주는 흑백색인 바위를 들어보게 되었다. 표면은 조금 거칠어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미끈하고 상당히 단단하면서도 의외로 너무 가벼웠다.
혹시 안에 빈 공간이 있어서 그런가 생각됐다. 그러나 두들겨 보고 만져본 느낌이지만 안에 공간이 없는 바위덩어리가 분명해 보였다.
‘이상한 암석이야.’
유학자인 주세붕은 바위를 선물로 받았지만 이것을 어디에 써야 될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냥 수석처럼 관상용으로 놔둬야 할지 몰랐다.
주세붕은 귀한 선물들을 최인범에게 너무 많이 받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너무 특이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는 바위를 선물로 넘겨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한편으로는 최인범이 워낙 뛰어난 새로운 지식을 지녔으니 혹시 이 바위의 정체를 알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최인범도 처음 보는 물건이라 알 수 없었다.
“총병관님, 혹시 뭔지 알아보겠어요?”
“군수님, 저도 잘 모르겠군요. 아무튼 특이한 금속 덩어리 같습니다.”
“그런가요. 저는 이것을 그저 관상용으로 사용할까 했는데 총병관께서 가지고 가셔서 혹시 쓸모가 있으면 사용해 보세요.”
흔히 가벼운 물체를 종잇장 같다고 표현한다. 제주도의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석이 물에 뜬다고 할 정도로 가벼운 것처럼 바위는 그보다 더 가벼웠다.
‘특이하다는 것은 잘만 구상하면 매우 유용한 곳에 사용이 가능해.’
특이한 바위를 선물로 받자 사용에 대해서는 추후에 정하기로 했다. 금속 덩어리라고 판단되는 바위를 호위병에게 넘기고 말에 오르려고 하자 주세붕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총병관, 봉황성에 인재가 필요 없나요?”
“필요하죠. 그래서 아직 봉황성에는 어떤 행정 조직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 생각에는 되도록 조선 출신을 저를 보좌하는 관리로 채용할 생각이지만 그게 뜻처럼 쉽지 않네요.”
이렇게 답하자 주세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풍기군수로 발령을 받으며 오던 중에 청주에서 만난 젊은 선비를 소개하죠. 본관은 충청도 한산으로 특이한 능력을 지닌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학식이 아주 높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과거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 아까운 인물입니다.”
“그게 누구죠?”
“청주가 처가고 보령이 집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이지함이라고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