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아, 그러셨군요.”
주세붕은 자신이 군수로 와서 보고 알게 된 새로운 농사법에 대한 기록서인 서책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결국 서책을 아직은 목판인쇄로 보급하기는 어렵고 그냥 필사해서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시면 되는데 왜 저에게 묻죠?”
“처음 시도한 분이 바로 총병관인데 제가 그것을 본인의 승낙도 없이 널리 알리면 안 되죠.”
“그런 이유라면 저는 상관없어요.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제 이름을 서책에 넣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멀리 타국으로 떠나는 입장이니까요. 군수님 명의로 서책을 만들어 널리 알리세요.”
이렇게 말하고 나자 다시 부탁했다.
“모두 한문으로 적혀 있는데 제 생각에는 훈민정음으로 적어서 일반 양민들도 쉽게 알아보도록 보급하는 것이 어떨까 하네요. 농사는 결국 그들이 짓는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네요.”
결국 이런 대화를 시작으로 주세붕은 자신이 구상한 서원과 학교 설립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그 문제도 쉽게 결정을 내렸다.
“서원은 군수님께서 양반들에게 모금하셔서 시작해보시는 것이 좋겠네요. 물론 저도 조금은 보태겠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경우는 제가 살던 이집을 내놓아 농업기술학교를 만들면 되겠군요. 안채의 경우는 여기서 지내던 사람들을 살게 하고 나머지는 교실이나 또는 기숙사로 사용하고요.”
“그렇게 되면 결국 나머지 농장 시설은 학교의 실습장이 되는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나머지 시설은 그동안 고생한 사람들의 몫이니 개인들이 공동 지분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집의 사랑채만 학교 기금으로 기부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실습장으로 사용은 해야죠.”
“잘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주세붕에게 서원과 학교 설립에 각기 금괴 5개씩을 넘겨주어 설립기금으로 사용하라고 전해 주었다. 학교의 경우 건물이 있다지만 기숙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해서 공사하거나 또는 운영비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천먹쇠를 불러 이런 사실을 말하자 화들짝 놀라며 반대했다.
“저는 반대합니다. 그리되면 영영 돌아오시지 않고 또 설사 돌아오지 않더라도 별장처럼 그냥 놔두어야 된다고 봅니다. 학교는 저희들이 부지런히 벌어서 별도로 세우겠습니다.”
“왜 큰 집에서 살다 좁은 안채서 살기 싫어서?”
“그건 아니죠.”
천먹쇠는 기술학교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감자나 고구마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면 가능합니다. 처음 공급하는 신품종이니 조금 비싸게 팔면 됩니다. 그래야 초기 단계인 지금 함부로 먹지 않아 보급이 더 빠르고요.”
“오라,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구나. 네 생각에는 얼마에 팔려고.”
“적어도 감자나 고구마 1가마는 미곡 20가마는 받아야 합니다.”
너무 기도 안차는 금액을 말해 놀랐다. 하지만 조금 생각하던 최인범은 쉽게 승낙해 주었다.
“알았어,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팔도록 해.”
천먹쇠가 제시한 가격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비싸야 먹지 않고 모두 종자로 파종하게 되고 또 많은 생산을 가져오면 쉽게 널리 보급되면서 서서히 가격이 내려간다는 뜻이라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놈 바라. 돈 버는 데는 귀신이네.’
천먹쇠의 이런 판매 방식 때문에 최인범은 봉황성이나 또는 백두산 근처에 보급된 감자도 이런 식으로 고가에 팔기로 결심했다.
‘고가로 파는 방법이 오히려 보급이 더욱 빠를 수 있어.’
그래서 후일 감자는 금저라는 이칭이 붇게 된다.
최인범은 월녀가 운영하는 백두상단에 대해 물었다.
“월녀는 어찌 한다고 하던?”
“월녀는 그냥 지금처럼 한양에서 시전이나 열어 비단과 인삼을 취급하는 장사를 한다고 하더군요. 아마 지금은 마지막으로 동여진으로 비단, 면포, 도자기 등을 팔러 갔을 겁니다.”
천먹쇠는 양민으로 변하는 동시에 조일순과 혼인하고 양돌쇠는 조이순과 혼인해 서로 동서가 되었다.
굳이 여기서 이룬 부를 봉황성으로 가져갈 이유가 없어 모든 재산은 천먹쇠, 양돌쇠, 조갑중에게 넘기게 되었다.
저택과 산소 터만 최인범의 소유로 남긴 것이다.
“이제 혼인도 했으니 잘 살아. 자식 많이 낳고.”
“예, 그래야죠. 총병관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인데 그래야죠. 너무 염려 마세요. 제가 산소나 집은 잘 관리하겠습니다.”
배도치나 그의 심복부하들과 부대원들은 일부 가족들과 이미 봉황성으로 떠났으니 여기서 챙겨줄 수는 없었다. 부대원은 50명에서 늘어 100명이 떠나고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이 포함되어 1000명이 일시에 봉황성으로 떠났다.
최인범은 풍기군으로 와서 주세붕과 같이 인삼재배 보급을 위한 작업이나 학교 설립들에 대해 협의하면서 지냈다.
조선을 떠날 생각인 최인범은 뭔가 표적이 남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인삼재배나 새로운 농법에 대한 것은 이미 넘겨준 셈이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내 삶이 어찌 변할지 모르는데.’
조선을 떠난 이후에 봉황성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본의 아니게 조선과 적대관계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앞으로는 정치가로 변할 수밖에 없어.’
물론 주변 사람과 다툴 여지는 적지만 그래도 다민족이 모여 사는 봉황성이 그곳에서 조율하거나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될 사안은 너무 많았다.
‘더구나 아내들도 다들 다른 나라 출신인데.’
같은 민족이라도 서로 권력 다툼 때문에 피가 터지게 싸운다. 때로는 불만세력이 결집되어 반란도 일어난다. 그러니 봉황성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다 보면 조선도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을 대할 수 있다.
‘나중에는 조선과 경쟁관계가 될 수도 있으니 지금 알려줄 수 있는 지식을 주세붕에게 알려 주자고.’
미래의 일이란 항상 변수가 많으니 최인범은 비록 조선에서 떠나기로 했지만 자신의 조국이라는 강한 이끌림에 결국 자신의 지식을 주세붕에게 일부를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무한정 이곳에서 주세붕에게 새로운 학문을 교육시킬 형편은 되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조선 백성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알려주기로 했다.
‘우선 그동안 적어놓은 쉬운 과학 지식만 전달해야 되겠어.’
최인범은 슬며시 자신이 전라도 무안군으로 가서 직접 사업을 벌여 보려던 천일염 생산 기술에 대한 서적을 꺼내 놓았다.
“군수님, 이건 제가 전라도 끝자락에 있는 무안군으로 가서 새로운 방법으로 소금을 생산하려던 계획서입니다.”
“아! 그러세요? 이 계획서대로 하면 소금을 쉽게 생산하나요?”
“그렇습니다. 물론 전에 염수를 가마에 넣어 불을 때서 생산하는 방법보다는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만 자금도 많이 들고 힘들기는 합니다.”
“어찌 되었건 새로운 방법이라면 전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무튼 제가 이 서책을 군수님께 드릴 것이니 조선의 남쪽이나 서쪽 지역에 널리 보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추가해서 윤원형에 대해 말했다.
“무안군수로 윤원형을 보내도록 한 것은 조선 조정이 너무 시끄러워 제가 주상께 건의해서 보내게 된 겁니다. 제가 살펴보니 윤원형이 비록 탐욕스럽기는 하지만 추진력은 있어 보여 그를 통해 대규모로 염전을 만들어 보려고 했었지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무튼 천일염을 무안군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군수님께서 널리 보급해 조선 백성들이 싼 가격으로 소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저도 봉황성 근처에서 천일염을 생산해 보려고 이미 시작했지만 여건상 그곳은 염도도 낮고 또한 바닷물이 흐려서 소금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그건 왜 그렇죠?”
“그야 황하의 흐린 물이 발해만으로 흘러나오니 그렇지요. 아무튼 염전을 만들기는 전라도 남서쪽의 무안 신안 쪽이 제일 여건이 좋습니다. 물론 남해안지역도 조건이 좋은 곳이 있을 수 있고요.”
최인범 이렇게 말하고 서책을 펼치고 천일염 생산을 위한 입지 조건이나 염전을 만드는 방법이나 바닷물을 퍼 올리는 수차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갯벌이 염전을 만들기가 쉽지요.”
“그렇군요.”
“여기 그림에 나오는 수차를 만들어 바닷물을 퍼 올리면 좋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물레방아와 비슷한 수차도 있지만 바람의 힘으로 풍차를 돌려 물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새로운 수차도 있었다.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기술자들이 보면 쉽게 만들 수 있게 기록되어 있었다.
바람의 힘으로 풍차를 돌려 바닷물을 퍼 올리는 그림을 보자 주세붕은 눈이 커지며 놀랐다.
“이런 방식이면 동해안에서도 염전을 만들 수 있겠네요.”
“그야 그렇지만 여건이 별로 좋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그러나 전라도나 남해안에서 소금을 생산해 멀리 날아오는 운임을 생각하면 생산 단가가 조금 비싸도 가격경쟁력은 있겠네요.”
주세붕의 말에 최인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건 그렇겠네요. 하지만 울산의 염포 정도에서 생산해 소금을 공급하면 가격이 오히려 쌀 것도 같으니 신중하게 시작해야 될 겁니다.”
“그렇겠군요. 자금이 많이 드니 신중하게 시작해야 되겠군요.”
최인범은 다시 서책에 대해 말했다.
“제가 한부만 만들어 놨으니 일단 2부를 필사해서 한부는 전라도 무안군수로 떠난 윤원형에게 먼저 보내주세요.”
“꼭 그래야 하나요?”
“예, 그래야 제가 주상전하께 윤원형을 무안군수로 보내라고 조언해 드릴 때 한 약속을 어기지 않으니까요. 다른 한부로는 군수님께서 잘 아는 지방의 수령이나 재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서 시작해 보라고 하고요.”
“알겠습니다.”
자신이 무안군까지 가려던 계획을 최소했기 때문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최인범은 자못 심각한 어조로 당부했다.
“천일염 생산방법은 한양으로 먼저 알리지 마세요. 염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생산해 평평하게 깔아야 하니 상당한 자금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한양의 고위층들이 염전 사업을 독점하려고 규제를 만들 수 있으니 그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그렇겠군요.”
천일염을 생산하는 대규모의 염전을 만들려면 자금의 소요가 많으니 일반 백성들이 쉽게 시도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재력이 좋은 양반들이나 부자인 양민들이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양보다 지방에서 먼저 시작하면 최소한 한양의 양반들에게 부가 집중되는 문제점을 약간이라도 분산하는 효과는 가져온다고 판단했다.
“군수님, 천일염 생산이 많아지면 저린 어물의 유통이 활발해지니 어민들의 생활이 지금보다는 조금은 나아질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금이 싸지면 지금은 잡아도 상품가치가 없어 버리던 어물도 젓갈을 담거나 또는 소금에 절여 전혀 새로운 식품을 만들 수도 있고요.”
“그렇겠군요.”
주세붕은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말들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혹시 하나라도 빠트리면 큰일이라고 판단해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