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247화 (247/519)

247화

감자를 먹던 주세붕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맛에 대해 평가했다.

“이건 구황식물인 마와 맛이 조금 비슷하군.”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마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량도 많고 맛도 더 좋습니다.”

주세붕은 이곳에서 사육하는 동물들이 많아 그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결국 불을 때서 알을 부화시키는 인공부화장도 보게 되었다. 그는 어미닭이 품지 않고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을 보고 정말 놀랐다.

“허어! 이거야 원!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야.”

더구나 가을이 되어 여름에 심은 고구마가 생산되었다. 고구마는 거름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이의 머리통만 했다. 하나만으로 온가족이 허기가 면할 정도다. 더구나 빨간 고추가 다량으로 생산되자 그야 말로 이곳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여긴 신선이 사는 곳으로 변하고 있군.’

이런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주세붕은 고을 수령으로 당연히 한양의 주상께 이런 사실을 보고해야 하나 애써 참고 있었다. 이런 일을 처음 시작한 최인범을 만나 그가 조정으로 보고하는 것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아야 된다고 판단했다.

‘함부로 남이 시작한 새로운 일을 내가 발견한 것처럼 하면 안 되는 법이야.’

성리학자로 예와 도덕을 매우 중시하니 자신이 나설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정확하게 구분했다. 또한 조정으로 알리려면 반드시 견본품이 있어야 하는데 남의 귀한 물건을 함부로 달라고 할 수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모두 종자로 보급하기 위해 생산하는 과정이니 함부로 소모해서도 안 돼.’

주세붕은 이곳에 있는 사과 밭에서 나는 사과가 다른 곳보다 맛이 달고 크다는 점도 경이롭게 보였다. 넓은 과수밭 한쪽에 심은 감도 역시 마찬가지로 달고 컸다.

목화밭에 심은 목화도 수확량이 달라 보였다. 모두 신기한 것들이고 또한 옥수수라는 새로운 작물을 보자 더욱 놀라고 말았다.

‘여기서 천지가 개벽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농장에 속한 논에서 나오는 벼도 맛이 다르고 수확량이 많았다. 이런 사실에 놀란 주세붕은 관청의 급한 업무를 보고 나면 자주 이곳으로 찾아와 동물농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천먹쇠를 만난 주세붕은 과일들이 유달리 크고 맛이 좋은 것에 대해서도 물었다.

“거름을 많이 해서 그런가?”

“사또, 물론 그런 점도 많이 작용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키우는 과수나무는 모두 근동에서 제일 품종이 우수한 묘목을 심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허접한 과수나무들은 모조리 베어버렸죠. 그래야 품종이 나쁜 꽃가루가 날아오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것은 누구에게 배웠나?”

“모두 주인님께 배운 농사법입니다. 과수가 많이 열리게 하기 위해 이곳에는 꿀벌도 별도로 키우고 있고요. 수정이 끝나서 열매가 매달리면 그때는 허접한 열매는 과감하게 모조리 따서 버립니다. 그래야 과수나무도 무리가 안가고 남은 열매가 굵어지니까요.”

동물 농장의 근처에 있는 소나무 숲에는 참나무들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저건 또 무엇인가?”

“저긴 참나무를 이용해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곳입니다.”

표고버섯을 인공으로 재배한다니 주세붕은 너무 신기해 보였다.

“뭐라? 산에서 그냥 채취만하면 되는 표고버섯도 인공으로 재배를 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별로 어렵지는 않아요. 참나무에 구멍을 뚫고 안에 종균을 넣고 나무로 쇄기를 박아 막으면 됩니다. 그리고 너무 가물면 물을 주면 되고요. 하지만 표고버섯을 채취할 때는 반드시 조심할 일이 있어요.”

“그게 뭔가?”

“표고버섯을 키우다 보면 그곳은 음지라 습기가 너무 많아 아무래도 뱀들이 모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 그것을 방비할 가죽 장화를 신어야 좋습니다.”

“그렇군. 뱀에게 물리면 죽는 수가 있지.”

인공으로 키운 표고버섯은 자연산에 비해 품질은 조금 떨어질 수는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주세붕이 판단하기에 그 차이가 그리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또한 똑 같은 모양으로 농산물이 생산되니 오히려 보기가 좋아 상품가치는 더 높아 보였다.

‘허어! 표고버섯을 잘 말려서 명나라나 왜로 팔면 산삼 못지않게 돈벌이가 되겠어.’

볶은 음식을 좋아하는 명나라 사람들이라 향이 진하고 좋은 표고버섯도 많이 먹는 편이다. 더구나 제사에서 항상 사용하는 곶감도 이곳에서는 많이 생산하고 생산 방법에서 조금 차이를 보였다.

다른 곳은 감의 껍질을 손칼로 일일이 깎는다. 이곳은 발로 밟아 돌리면 빙빙 돌아가는 기계에 감을 끼우고 이상하게 생긴 칼로 껍질을 쉽게 벗겨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하는 속도도 무척 빠르고 품이 적게 들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보였다.

“이런 식이면 곶감 가격이 내려가겠어.”

“그야 그렇겠지요.”

제사에 지극정성이라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곶감이 수시로 필요하니 관심이 많았다. 주세붕이 보기에 동물농장에서 시작하는 모든 사업들은 전혀 새로운 농법들이다.

“여기는 전혀 다르게 농사를 짓는군.”

“가축도 그렇습니다. 축사의 모양도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고 또한 가축들의 품종도 전에는 무조건 수를 늘렸지만 이제는 차츰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서 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품종이 시원치 않으면 도축해서 팔고요.”

“도축도 여기서 직접 하나?”

“예, 백정과 갖바치가 근처로 이사를 와서 도축하고 가죽을 가공해 조정으로 보내는 군수품을 대량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주세붕은 지금까지 자신이 백성들의 삶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했으나 동물농장을 와서 보고 새롭게 느끼는 점들이 너무 많았다.

“허어, 나는 지금까지 너무 고리타분한 사고력으로 살았어.”

예와 도덕 그리고 윤리 교범만 따르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변해버렸다. 사회지도층인 양반이자 관리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오만했어.’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새로운 시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교육기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세붕은 자신이 주관해 새로운 교육기관인 서원(書院)을 열어볼 구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조선을 지배하던 성리학이 아닌 훗날 실학이라고 평가되는 그런 실질적으로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학문을 배우는 서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살며 성리학에 깊이 빠진 주세붕은 두 가지를 병행할 생각이다. 물질적인 풍요만 강조하다 보면 정신세계가 각박해지고 예와 도덕이 무너진다는 점을 중시했다. 기존에 성리학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인성교육에 치중하기로 했다.

“그런 일은 상놈들이 담당할 수는 없으니 우리 양반들이 그런 분야는 담당하게 해야 해.”

여전히 성리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중인이나 상놈을 통해 새로운 농업기술을 널리 전파하려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이름도 조금 달라야 하니 양반들이 다니는 곳은 서원으로 칭하고 중인이나 평민이 다니는 곳은 학교라고 하면 되겠어.’

모두 뭔가 배우는 장소지만 서원(書院)이 조금 품격이 높다고 판단했다.

학교(學校)란 단순하게 뭘 배우는 곳을 뜻하지만 서원(書院)은 글을 즉 한문학을 배우는 장소라는 뜻으로 해석해 이렇게 정한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여전히 훈민정음은 그냥 천한 백성이 사용하는 언문이고 글이란 배우기 어려운 한문이라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하긴 모든 서적이 한문으로 적혀 있으니 학문을 하려면 한문이야 필수다.

명칭이야 어찌 부르던 자신들만 모여서 학문을 연구하고 뭔가 배워야 하며 백성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해야 된다는 고루한 생각에서는 크게 벗어났다.

동물농장을 보고 나자 주세붕은 왕조국가의 우민화 정책이 나라의 경쟁력을 얼마나 떨어지게 하는지 이제야 절절하게 느낀 것이다.

‘상놈들도 혼자만 기술을 알도록 해서는 안 되고 좋은 기술은 널리 알려서 가르쳐야 돼.’

풍기군수인 주세붕은 이런 새로운 사고력을 가지고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에 대해 기록하며 필요한 서책을 만들었다.

주세붕은 군수로 다른 업무도 수행하기 때문에 이방에게 명령했다.

“이방, 내가 적어놓은 서책을 똑 같이 필사하게. 그리고 함부로 밖에 노출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예이.”

이방은 대답은 했지만 필사 작업을 천민으로 학식이 많은 노인을 불러 필사 작업을 지시했다.

“이것은 사또가 지시한 것이니 5권을 필사해서 나에게 보내.”

“예, 빨리 그대로 필사해 가져오죠.”

노인은 지방의 아전으로 권세를 부리는 이방의 명령에 정신없이 필사 작업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그저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 작업만 했다. 그러나 5부나 필사 작업을 수행하다가 보니 내용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건 귀한 산삼을 농사처럼 재배하는 방법이야.’

노인은 자신이 필사하는 서책이 많은 새로운 농사법을 적어 놓은 중요한 서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그래, 전라도 금산으로 시집가는 딸에게 혼수로 보내 주자고.”

너무 가난해 변변하게 옷이나 혼수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시집을 먼 곳으로 보내게 되자 이런 것으로 만회해볼 요량이다.

노인은 한문으로 써진 서책을 새롭게 적었다. 딸이 언문만 겨우 아는 터라 별수 없이 언문으로 해석해 적는 수밖에 없었다. 딸만 보내 주자니 또 아들도 주면 좋다고 판단했다.

노인의 아들은 영동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본시 관노비로 살다가 뿔뿔이 흩어져 겨우 전에 조정에서 면포를 받고 면천을 시켜줄 때 노비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번 재물은 면천에 모조리 사용해 양민으로 삶이 노비 시절보다 못했다.

‘산삼만 인공으로 밭에서 재배를 한다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고.’

양민이 되었지만 농토가 없어 산비탈에 겨우 밭을 구해 어려운 삶을 사는 아들이다. 그래서 노인은 금산의 딸과 영동의 아들에게 언문으로 새롭게 적은 산삼 재배를 비롯한 새로운 농사법에 대해 적어서 보내주게 되었다.

평야지대보다 다소 고지대인 이곳 풍기나 영동이나 금산은 자연환경이 비슷하다는 점도 고려해 새로운 농법이나 신품종의 재배를 권하게 된 것이다.

“감자나 고구마 씨는 내년이면 많을 것 같으니 동물농장으로 가서 일해주고 구하면 되겠어.”

노인이 언문으로 필사해 보냈지만 이방도 딴 행동을 했다.

노인이 5부를 만들어 오자 이방은 3부는 주세붕 군수에게 전했다.

“사또, 필사해 왔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군.”

이방은 남아 있는 2부에서 1부는 자신이 지니기로 했다. 1부는 멀리 충청도 부여의 무량사 근처로 시집보낸 딸이 친정을 다니러 오자 넘겨주었다.

“이것 가지고 가서 잘 사용해.”

“알았어요. 그런데 한문으로 쓴 서책인데 어떻게 제가 읽어서 새로운 농사법을 배워요?”

“너는 그런 간단한 요령도 없냐. 근처에 유명한 절인 무량사가 있으니 스님에게 서책을 보여주면 해석해 줄 것 아니냐. 절에는 무조건 아들 낳게 해달라며 불공만 드리러 다녀. 스님과 친하면 유용하게 살림살이에 이용할 줄도 알아야지.”

“어마, 그러네요.”

“그리고 표고버섯 요리를 많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니 너도 많이 먹고.”

“알았어요.”

그곳은 보령과 청양과 접한 지역인 산골마을이라 논은 드물고 밭이 많고 산에서 석탄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만큼 살기가 어려운 곳이다. 근처에 야산에서 산삼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 산삼 씨를 구해서 농사처럼 재배가 가능하다.

‘참나무도 많은 곳이라니 분명 표고버섯을 재배할 여건도 좋은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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