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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46화 (246/519)

246화

죽게 생긴 윤임을 겨우 겨우 살려 놓았다. 그런데 또다시 윤원형의 패거리들이 윤임의 탄핵을 연달아 주장하니 그것을 잠재울 필요성이 있었다. 어찌 되었건 차남도 챙겨줘야 하지만 후계자로 장자인 왕세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되기 때문이다.

주상은 울며 매달리는 왕후의 요청을 모른척하고 있었다. 그저 나중에 좋은 자리로 보내준다고 다독이는 정도로 발령을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후일 원하는 자리로 보내 줄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오.”

이런 주상의 조치에 조정에서는 소윤 파에 속한 젊은 관료들이 나서서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아니? 종4품인 무안군수로 임명해 보내니 유배나 다름이 없지 않소.”

“주상전하께서 이미 하교를 내렸으니 어쩔 수 없지 않소.”

이들이 격렬하게 울분을 토하는 이유는 윤원형이 가야하는 무안군은 본시 종6품인 현감이 수장으로 있는 작은 고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기가 어려워 인구도 많지 않아 벽지인 그곳을 이번에 갑자기 군으로 승격시키고 가서 군수를 하라니 유배나 다름이 없었다.

“윤임 일당이 뒤에서 이렇게 조정한 것이 분명해.”

“내가 보기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우의정께서는 요즈음은 아주 조심하고 있어. 우의정께서는 주변 사람들과 별로 교류도 없고.”

“그거야 겉으로만 그렇게 행동하는 거지. 노회한 윤임이 뒤에서 모사를 꾸민 것이 확실하다고. 이건 누가 봐도 파직이나 다름이 없지 않소?”

사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최인범이 무안이 그저 종4품인 군수가 관장하는 큰 고을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단이 갑자기 벌어지자 정난정을 빠르게 움직였다.

‘내가 보기에는 윤임 대감이 영향력을 부린 것은 절대로 아니야. 분명히 다른 사람이 뒤에서 꾸민 일 같아.’

머리 좋고 재기가 넘치는 정난정은 빠르게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조정에서 무안군수에게 보내는 협조 공문을 작성해 최인범에게 이미 넘겨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군. 부마도위께서 뒤에서 벌인 음모야.’

그래서 다시 정보를 수집하고 보니 최인범이 무안으로 가서 새로운 사업을 벌일 계획도 알아냈다. 잘하면 이번 기회에 남편이 최인범과 밀착될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좋았어. 이번에 무안까지 따라가서 부마도위를 내가 직접 만나서 무슨 짓을 벌여서라도 화끈하게 담판을 벌여야 되겠어.’

뭐로 화끈하게 담판을 벌이려는 지야 당사자만 알겠지만 평범한 방법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이렇게 다부지게 마음먹은 정난정은 임지로 떠나지 않겠다는 윤원형을 설득해 떠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문정왕후를 조정해 첩실이니 임지에 같이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마마, 소녀가 따라가 내조를 하겠나이다.”

“그럼 나는 누굴 믿고?”

“제가 가야 빨리 올라올 수 있사옵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고을 사또의 경우 본처는 절대 임지로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 수청들 관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출신지역으로는 수령으로 보내지 않고 있었다.

출신지의 수장으로 보내면 향리와 결탁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큰일을 저지르거나 또는 반역하는 행동을 벌일 염려가 많아 제도적으로 막고 있었다. 제도야 좋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결국 사또의 품성에 따라 부침이 아주 심한 지방의 고을 형편이다.

애첩이 임지로 따라간다고 하자 윤원형은 반발하려다가 쉽게 수그러들고 무안군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들은 마침 가을이라 단풍놀이를 겸해서 느긋하게 남쪽으로 향했다.

“급하게 갈 것 없어요.”

“그렇지. 오랜만에 산천 구경이나 하면서 천천히 내려가자고.”

“내장산으로 가면 단풍을 구경합시다.”

사람을 부릴 때 무지막지하게 부리는 최인범이다. 무안군으로 가게 되어 자신들의 미래가 얼마나 험악하게 변하게 되는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인범의 주변은 그가 얼마나 남의 삶에 관여해 영향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큰 변화가 일어난다. 오래전 정난정에게 보낸 서찰에는 그녀가 평생 한으로 생각하는 신분 상승을 예견해 적어 보냈다.

서찰에는 이름 풀이 식으로 ‘정난정이란 정국을 난세로 이끌며 정경부인이 된다.’ 라고 써서 보냈다.

최인범은 그 당시야 역사를 뒤흔들 마음이나 힘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그저 역사서에 나오는 그녀의 미래를 적어 보낸 것에 불과했다.

‘그 서찰은 분명 고승이 보낸 예언서야.’

미천한 신분출신인 첩실로 정경부인이 된다는 것은 정난정으로는 최고의 꿈이다. 야심이 많은 정난정은 그런 서찰을 받자 자신의 역량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문정왕후의 뒤를 철저하게 보필하고 있었다.

스스로 최면을 걸듯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매번 이리 생각했다.

‘나는 하늘에서 정경부인으로 이미 점지한 몸이야. 그러니 이런 고난은 순간에 지나간다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작도 달라졌다. 그래서 남편이 무안군수로 떠나게 된 사실도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세상사란 항상 위기가 바로기회인 거야. 그 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인다는 부마도위를 만나서 연결만 된다는 정경부인이 되는 꿈도 이룰 가능성이 높아.’

아직은 본부인도 있으니 요원한 일이지만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본부인을 내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열이 나면 자살할 지도 몰라.’

병약한 왕세자라 슬하에 자식도 없으니 잘하면 문정왕후의 아들인 경원대군이 왕위를 이을 수 있다. 그리되면 남편은 지금과는 비하기 어려운 고위직에 오르고 자신도 신분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가을에 떠나는 단풍놀이 정도로 이해하고 신이 나서 윤원형에게 말했다.

“가다가 꼭 내장산에서 단풍을 구경해요.”

“알았어. 그렇게 할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

목민관으로 임지로 떠나며 어찌하면 백성들의 삶을 보살필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놀이 삼아 떠나는 것으로 보아 쓸 만한 위인은 안 되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음자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이 군수로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목민관도 있었다.

한편 최인범이 처음 터를 잡았던 풍기군에서는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 때문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주세붕은 경남함안 출신으로 승문원 교리를 거쳐 예빈시첨정(禮賓寺僉正)으로 있다가 풍기군수로 왔다.

그는 효심이 깊어 모친의 상을 당하자 3년간 상막의 짚자리에서 거처했다. 학식이 높고 백성들의 삶을 유독 세심하게 보살피는 그는 풍기군수로 부임하자 이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도대체 어떤 인물인데 그렇게 빨리 대국인 명나라에서 크게 명성을 날리지 너무 궁금하군.’

멀리 명나라로 가서 최인범이 큰 성공을 거두고 부마도위에 오르자 그가 살던 동물농장을 자주 방문했다. 주세붕은 평소부터 조정으로 보내는 산삼의 공납으로 지역민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동물농장으로 와서 산삼 씨를 뿌려 1년을 키우고 나서 큰 삼포에 이식해 대규모로 키우는 모습을 보자 매우 놀랐다. 그래서 이제 양민으로 저택을 관리하는 천먹쇠에게 물었다.

“이런 재배방법은 누가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인가?”

“사또. 처음 시작이야 누가 한 것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여러 곳의 절에서 이런 식으로 산삼을 재배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요. 저희 주인이신 부마도위께서 이런 방법으로 산삼을 재배해 보라고 명령해서 그대로 따라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설명에 주세붕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허! 조선에 귀인이 탄생했는데 그런 사람을 중하게 쓰지 못하고 타국에게 빼앗겼어.”

최인범은 명나라의 부마도위가 되어 봉황성주가 되어 그곳에서 정착한다고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주세봉은 그가 명나라나 혹은 여진족과 더불어 살게 되자 안타까운 것이다.

주상전하께서 근본도 잘 모르는 최인범을 부마도위로 삼고 중하게 쓴다고 할 때 자신도 입에 거품을 품으며 극렬하게 반대했었다.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어.’

너무 잘난 사람을 몰라본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예빈시에서 근무하던 주세붕은 그에 대한 소식을 많이 접한 편이었다.

예빈시(禮賓寺)는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대접하는 업무를 하는 기관이다. 그곳의 참정으로 근무하며 지켜본 바로는 외국에서 사신들이 와 항상 찾는 것은 조선에서 생산되는 산삼이다. 약효가 워낙 뛰어나니 조선으로 오면 반드시 먹고 가거나 사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삼이란 그저 농작물처럼 대량으로 마구 생산되는 식품이 아니다. 그러니 산삼 생산이 많다고 해서 풍기지역은 조정으로 공납할 양도 많아 백성들이 산으로 가서 산삼을 찾기 위해 생업을 전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운이 좋아 큰 재물이 생기기도 하지만 산삼 채취로 백성들의 삶은 너무 고달팠다.

귀한 산삼을 이제 밭작물처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자 주세붕은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재배 방법을 널리 보급만 하면 이 지역의 삶이 풍요로워 진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네, 산삼 재배 방법을 소상하게 말해보게. 하나도 빼놓지 말고.”

그러자 천먹쇠는 전에 최인범이 당분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망설였다.

“주인께서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요.”

“그건 염려 말게. 그분이 오시면 내가 말씀드릴 것이니까. 우선 재배방법에 대해 서책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니 말해 주시게. 내가 그분의 허락이 있으면 그때 다른 사람에게 알릴 것이니까.”

전에 있던 풍기군수들과는 전혀 다르게 백성들의 삶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사또다. 천먹쇠는 빈 말은 아니라고 판단해 그동안 해오던 재배 방법이나 처음 싹을 띠우는 방법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럼 그렇게 믿고 말씀드리죠.”

주세붕은 천먹쇠의 설명을 귀를 기울여 들으며 아주 소상하게 적었다. 또한 삼포를 만들거나 또는 관리하는 방법을 중간 중간에 그림으로 그려서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이곳 동물농장을 자주 찾았다. 자신이 직접 삼포의 관리 장면을 지켜보거나 또 삼포에서 같이 농사일도 거들었다.

“사또께서 왜 이런 일을?”

“나라님께서도 농사일은 가끔 직접 하시는데 고을 수령인 군수가 농사일을 거드는 것이 이상할 것이야 없지.”

“아, 그런 가요?”

그러던 중 이곳의 밭에 새로운 작물인 감자가 심어져 하지가 되어 캐자 또 다시 놀랐다.

“이건 또 어디서 나온 작물인가?”

“명나라에 계신 주인께서 이른 봄에 심고 수확하고 나서 다시 심으라고 보낸 감자입니다. 이 작물 때문에 주인께서 일부러 명나라로 가셨고요.”

“뭐라? 이 작물을 구하기 위해 명나라로 떠났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종자를 구해서 조선 백성들이 봄만 되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허덕이는 굶주림의 삶에서 면하게 해준다고 했어요.”

“그랬었군. 그래서 굳이 남쪽으로 갔었어.”

최인범이 명나라에서 행한 행적은 조선의 관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특이한 행적은 마치 영웅전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호의를 표하는 양반들 사이에는 이야기책으로 적혀 널리 전파되었다.

감자는 가물어도 재배가 어느 정도 가능하고 수확시기도 식량이 가장 부족할 여름철이다. 주세붕은 감자 재배방법도 자세하게 기록했다. 너무 신기해서 날로 감자를 먹어보니 단기는 있으나 약간 아렸다.

“어! 감자를 그냥 드시면 아린 독기가 있어 반드시 굽거나 삶아서 먹어야 됩니다. 그리고 올해는 단 한 톨도 식용으로 사용하지 마라는 엄명이 있었어요.”

“왜?”

“그야 새로운 작물이라 빨리 많은 곳으로 보급할 종자라 함부로 먹으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도 먹고는 싶지만 참고 있어요.”

아무리 그런 엄명이 있더라도 천먹쇠는 먹성이 너무 좋아 참을 수 없었다. 몰래 구어도 먹어보고 삶아서도 먹어 보았다. 먹어보니 입에서 살살 녹는 기분과 함께 달콤한 맛이라 너무 좋았다.

고을의 사또가 자주 찾아와 농사일도 돕자 천먹쇠도 한 바가지를 굽거나 삶아서 넘겨주었다.

“사또, 남에게 말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맛만 어떤지 보시라고 드리는 겁니다. 맛이 진짜 죽여줍니다.”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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