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풍기군수 주세붕과 인삼재배>
최인범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동안 고심해서 결정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었다.
“일단 산동 반도에서 활동 중인 반란군들의 문제가 북경에서는 시급한 실정이니 조선에서는 하삼도를 떠나 떠도는 유민들을 최대한 모아 봉황성으로 보내면 됩니다.”
“그래도 되겠소?”
“어차피 명나라도 농민군이 대부분이니 그렇게 해도 병력으로 인정이 됩니다. 그러면 대략 그들의 수를 조선에서 파병 보낸 군사의 수로 계산해 출병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하삼도 지역에 있는 군선들을 조금만 보내시고 또한 선박을 건조할 기술자들만 봉황성으로 보내면 해결될 겁니다.”
“알겠소. 그럼 대궐로 돌아가 주상 전하께 보고 드리고 그리 처결하도록 하죠.”
먹고살기 힘들어 떠도는 유민을 병사로 속여 봉황성으로 보내야 한다. 조선에서 이주민을 받을 생각인 봉황성이라 이해관계가 같아 쉽게 협상은 타결되었다.
이미 평안도의 의주나 평양에서 부윤들과 협상을 타결해 놓은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양의 조정에서 정식으로 이주를 허가한 셈이다. 때로는 정식으로 이주하거나 또는 임시로 파견을 떠나는 형태로 봉황성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지역에서 거칠게 사는 부랑아나 왈짜패는 자연히 차출대상이 되었다. 그들을 보내면 조선으로는 불만 세력을 멀리 보내게 되니 좋았다. 또한 봉황성은 거친 지역이라 적응해 살아야 하니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필요했다.
일단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봉황성으로 떠나게 되자 최인범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을 요구하게 되었다.
“장군, 풍기에서 있는 착호부대원들을 차출해서 봉황성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하, 전에 대장군과 같이 호랑이와 산적을 잡던 부대원들을 말하는 군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들에게 연락해 보내기로 하죠.”
이런 밀약에 의해 풍기에 있던 배도치가 이끄는 착호 부대원들이나 기타 수하들은 모두 조선군으로 산동 반도의 반란군을 무찌르기 위해 파병을 떠나게 되었다.
자순은 이런 조치와 더불어 한양에서 남쪽에서 떠나는 사람들의 수를 모두 병력으로 계산해 북경으로 보내는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이제 얼마나 되나?”
“아직은 많지 않아요. 한창 하삼도 지역에서 올라오는 중이니까요. 일단 한양을 거쳐서 이미 떠난 사람은 5천명이 넘습니다.”
“그런 정도면 나중에는 몇 만명은 이주를 하겠군.”
“그렇습니다.”
봉황성이나 기타 봉토지도 한계는 있으니 사실 더 이상의 이주는 무리다. 그러니 이주가 쉽게 진행되는 정도면 충분했다.
어느새 가을이 되어 밤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최인범은 부상도 치료되어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자 풍기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런 과정 중에 도성 안에서는 윤임을 탄핵하는 상소가 빗발치고 있었다.
최인범의 위상이 올라가자 사림(士林)이나 조정의 신료들이 그에게 아부하기 위해 윤임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자순, 이거 또 다른 변수가 생기는군.”
“그렇습니다. 윤원형 무리가 반격을 가하고 문정왕후가 뒤에서 조정하니까 사림파가 더욱 날뛰는 것 같아요.”
같은 파평 윤씨지만 윤임은 명문거족이고 윤원형 집안은 밀리는 위치로 사실 윤임의 덕에 문정왕후를 배출했다. 그래서 훈구 세력은 윤임과 가깝고 새로운 신진세력인 영남의 사림파는 윤원형과 가깝다.
이제 어느 정도 한양의 문제는 정리하고 풍기로 떠날 생각이다. 최인범은 이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자 짜증이 났다. 계속해서 조선 조정의 정치적인 문제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조선에서 벌인 사업을 빨리 정리하고 봉황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사 그렇더라도 여전히 조선에서 해야 할 일들은 많았다.
‘다행이 조선 조정과 사이가 원만해졌으니 남쪽으로 내려가 천일염 생산을 해봐야 되는데 한양에서 발목을 잡혀 있을 수는 없어.’
천일염을 생산하기 위해서 한양과 가까운 곳도 좋은 후보지는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염도가 높고 갯벌이 많아 염전으로 만들기가 쉬운 전라도 지역으로 가서 시작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쪽은 자기를 생산하는 가마도 많으니 염전을 만들기가 쉬워.’
아무리 상황이 변해 봉황성에서 독립된 세력을 이루며 살아야 하지만 조선 백성들에 대한 애착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수익성도 고려해 천일염을 생산하는 사업은 전라도에서 해볼 생각이다.
한정문을 만나자 조정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안했다.
“장군, 장군께서 나서서 주상전하께 주청을 들여 윤원형을 멀리 귀양을 보내지요.”
“무슨 사유로요?”
“그야 법으로 금지한 붕당을 만든 죄를 물어 보내면 됩니다. 겨우 조정을 조용하게 만들었더니 또 소란스러워 조용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그리 조치해야 합니다.”
한정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건 알지만 왕후마마께서 어찌 나올지 몰라서.”
“저는 더 이상은 조정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빨리 풍기로 돌아가 전에 하던 일이나 마무리하고 전라도로 가 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조정에서 몇 가지 사항만 들어 주세요.”
“총병관께서는 뭐가 필요한가요?”
“일단 2두 마패는 돌려 드렸으니 남쪽으로 갈 때 역참을 이용할 마패를 새로 발행해 주세요. 그리고 전라도 무안군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무안 군수에게 협조하라는 문서를 만들어 주시고요.”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윤원형에 대한 처리는 주상께 잘 말씀을 드려 보지요. 사실 주상께서도 그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한정문이 이렇게 답하자 최인범은 좋은 생각이 떠올라 새로운 조언을 했다.
“정이나 왕후마마의 반대로 윤원형을 멀리 유배를 보내기 어려우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요?”
“윤원형을 무안 군수로 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곳에서 제가 사업을 벌이면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게 되니 그때는 그런 공로로 다시 조정에 불러들이면 되고요.”
“아, 그렇겠군요.”
조정 정파의 하나인 소윤 우두머리라고 하지만 아직은 윤원형의 벼슬이 당상관으로 오른 정도는 아니다. 그 때문에 종4품인 군수로 보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직급은 높고 보직은 낮은 행직도 있으니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최인범은 전생에 무안에서 소금의 생산량이 많았던 점을 기억해 무안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윤원형을 그리로 보내면 쉽게 협조를 받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재물에 욕심이 많은 윤원형이니 추진력 하나는 좋을 거야.’
천일염 개발을 빨리 하려면 다소 무리수를 두더라도 빠르게 추진하는 수령이 있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염전의 개발은 지금은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전라도 나주 지역은 오래전부터 해운업이 발달해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선발 건조 기술자를 구해볼 생각이다.
제주도와 연결된 곳이고 또한 주변에 섬이 많으니 선박 건조 능력은 조선에서는 제일 발달한 곳이라 기술자들도 많다고 판단했다.
“장군, 조선에서 많은 배를 동원할 여력이 없으니 선박을 건조하는 기술자만 보내 주세요. 그러면 명나라에서 요구하는 산동의 반란군들 처리나 왜구들의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해운업을 해볼 생각으로 멀리 남경지역을 다녀 온 겁니다. 큰 배를 건조할 설계도도 이미 구했고요. 그러니 기술자만 보내면 봉황성에서 모두 해결해 드립니다.”
최인범의 이런 요구에 한정문은 대궐로 들어가 주상께 보고를 올려 빠르게 조치를 내려 주었다.
역참에서 말을 이용할 수가 새겨진 마패는 최고 5두까지 있었다. 조정에서는 5두 마패를 10개나 보내 주었다. 조선에서 필요하면 군사를 움직여야 하는 총병관이기 때문에 최상의 예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안군수와 풍기군수에게 총병관의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하라는 문서를 넘겨주었다. 한정문은 최인범을 찾아와 말했다.
“총병관께서 가게 되는 지역의 관찰사에게는 별도로 공문이 갔으니 관찰사가 지방 수령에게도 통보하게 되니 필요하면 관찰사나 지역의 수장들의 협조를 쉽게 받게 될 거요.”
“선박 기술자는 어찌 되었죠?”
“그곳은 수군절제사나 만호를 만나면 협조해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하면 그렇게 하죠.”
명나라 부마도위지만 조선에 전혀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상은 그에게 필요한 행정적이나 군사적인 협조를 최대한 해주기로 결정했다.
필요한 협조문서와 10개나 되는 5두 마패를 받게 되자 최인법은 그중에 2개를 자순에게 넘겨주며 지시했다.
“자네는 조선에서 역사서를 구하고 한양에서 처리할 일도 있으니 호위병을 10명 데리고 여기서 지내.”
“알겠습니다.”
조정의 일에 간섭할 필요는 없으나 대충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봉황성에서 급한 소식이 오면 자신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으니 자순도 마패와 호위병이 필요했다.
“혹시 조정에서 찾아와 무슨 소리를 하던 일체 관여하지 말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주민을 보내는 일을 적극적으로 챙기고.”
“넷!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최인범은 황금갑옷을 입고 급하게 30명의 호위병들과 같이 철갑웅과 철을웅을 대동하고 마포나루를 건너 풍기를 향해 내달리게 되었다.
최인범이 관여하지 않은 부분은 원 역사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풍기군에는 인삼재배를 보급했다는 주세붕이 현재 군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전에 구운몽이야 어쩔 수 없이 내가 중간에 도적질했지만 주세붕 군수가 인삼재배를 보급시킨 사실은 그대로 기록되도록 해주는 것이 좋겠어.’
너무 역사를 뒤틀면 어찌 미래가 변할지 몰라 최대한 자중할 생각이다. 물론 이미 큰 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일단 간여할 필요가 없는 부분은 그대로 놔둘 생각이다.
풍기를 향해 빠르게 말을 달려가면서 문뜩 처음 관여된 윤인병 진사가 떠올랐다.
‘아직도 내기 바둑을 좋아하려나?’
짧은 기간에 많은 사건을 겪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자신과 처음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은 풍기로 가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어찌 변했는지 너무 궁금하군.’
최인범 일행이 역참에서 계속 말을 바꾸어 타며 풍기로 이동하는 동안. 한양에서는 조금 소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예문관의 응교(정4품)으로 있는 윤원형을 주상께서 마치 유배를 보내듯이 아주 먼 전라도 남쪽에 있는 무안군수로 임명해 보내라는 교지를 내린 것이다.
대궐 안에서는 문정왕후가 늙고 병든 주상에게 매달려 결렬하게 반대했다.
“주상, 유배지에서 풀린 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전라도 끝으로 유배를 보내나요?”
“무슨 소리요. 그곳의 무안군수로 보냈는데.”
“그곳은 너무 멀고 거친 곳이라 병이라도 생기면 어쩌죠?”
늙어서 죽게 생긴 남편은 잘 챙기지 않으며 친정 동생을 끔찍하게 위하니 주상은 속으로 왕후가 조금은 괘심할 수밖에 없었다.
주상은 한정문을 통해 전해 받은 최인범이 제시한 계책이라 들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