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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42화 (242/519)

242화

“아직 단정하기 힘드오. 조선에도 환관이 있으니 쉽게 확정하면 안 됩니다.”

“그렇군.”

철갑웅은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조금 단순해서 너무 사건을 함부로 예단해 판단했다. 그러나 자순은 설사 어떤 증거가 나와도 함부로 예단해서 입으로 발설하지 않았다. 치밀하게 검안을 하며 모든 증거 자료를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했다. 사건 발생 시간이나 또는 사살한 호위병이나 또는 나루터의 별장이나 나졸들 이름까지 기록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넘기지 않았다. 중요한 증거인 석궁도 직접 그림을 그려서 기록으로 남기고 나서 별장에게 말했다.

“증거가 3개나 되니 하나는 우리가 가지고 가겠소.”

“그렇게 하시죠. 저는 상관없습니다.”

검안을 모두 끝내고 증거들에 대한 자료까지 기록을 끝내고 나자 자순은 그 서류에 한 장 한 장 나졸과 별장의 수결을 받았다.

이번 사건은 분명 정치적인 목적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그 누구도 믿기 힘들다. 시간이 흐르면 처음과 달리 많이 변질될 위험성이 많아 초등 수사 자료를 철저히 기록해둔 것이다.

수결까지 받고 나자 자순은 그제야 시체를 완전히 조선 별장에게 넘겼다. 또 다시 증거를 넘긴 서류에 수결을 받았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철갑웅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주 철두철미한 행동으로 기록도 정확해.’

모든 절차를 끝내고 나서 두 사람은 마포나루의 주막으로 돌아갔다. 주막에 돌아와 보고를 드려야 하는 최인범이 이미 잠든 것을 알자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에 누었다.

다음날 다소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다가 깨어난 최인범은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방에는 많은 젊은 여자들이 빙 둘러 앉아 있기 때문이다.

‘헉! 이 여자들은 도대체 누구야?’

무명으로 만든 엷은 덧옷을 입은 여자도 있고 비단 옷을 입은 여자도 있다. 반대편에 하얀 덧옷을 입은 의관이 보이자 여자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았다.

‘음! 의녀와 상궁이군.’

이렇게 느끼고 나자 자신의 몸이 너무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인범은 명나라에서 획득한 금괴로 만든 갑옷을 입고 왔는데 그것을 누가 벗겼던 것이다.

탈취한 아편을 팔아 챙긴 금괴로 만든 갑옷은 조선으로 와서 사업을 벌일지도 몰라 한 벌을 입고 왔다. 갑옷을 만들지 않은 금괴는 천진의 소피아에게 주고 한 벌은 봉황성에 놔두었다.

힐끗 옆을 살펴보자 윗목에 자신의 군복과 황금갑옷이 가지런히 접혀서 비단으로 만든 보자기 위에 놓여 있었다. 자신이 깨어나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의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장군, 아직 열이 높은데 괜찮습니까?”

“괜찮소. 자순을 부르세요.”

“아! 그분은 지금 도성 안으로 들어가 명나라 사신을 만나고 있사옵니다.”

현재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은 고급비단으로 만든 바지저고리다. 더구나 자신이 입고 있던 무명으로 만든 속옷은 사라지고 모두 비단 속옷으로 변했다.

최인범은 슬쩍 옷을 살피며 의관에게 물었다.

“어찌된 일이죠?”

“대장군께서 자객들에게 습격을 받아 화살에 다치셨다는 소식을 듣고 주상전하께서 어의인 소신을 보냈습니다. 급하게 달려 와서 보니 열이 너무 높아 우선 찬물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혔습니다.”

“너무 고생들이 많군. 정말 고맙소.”

어의가 대장군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서는 자신을 공식적으로 대장군이라 칭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조선에는 대장군은 오직 주상만이 가질 수 있는 칭호다. 무관벼슬로 제일 높은 정3품 벼슬인 절충장군이 제일 높다. 그 위는 모두 문관의 벼슬을 받는다.

‘거동하기 불편하게 그렇게 칭하다니.’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던 최인범은 열이 높았다가 내려서 그런지 심한 갈증이 생겼다. 물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생피를 너무 먹고 싶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잘 아는 터라 크게 외쳤다.

“밖에 철갑웅이 있나?”

“예이!”

닫혀 있는 미닫이 문 바로 옆에서 철갑웅이 크게 답했다. 그러자 즉시 명령을 내렸다.

“가서 수탉 3마리 목을 잘라서 바가지에 피를 받아 오고 닭은 삶아서 소금과 같이 가져와. 그리고 내 군복과 속옷도 새로 가져오고.”

“넷!”

잠시 뒤에 철갑웅이 무명으로 만든 군복을 가져오며 커다란 바가지에 붉은 피를 담아 가져왔다. 바가지에 담긴 생피를 벌컥거리며 마시고 나니 갈증은 쉽게 해소되었다.

“카! 시원하네. 이제야 갈증이 풀리는군.”

철갑웅이 들어오며 약간 열려버린 문 사이로 마당을 바라보았다. 많은 관리들이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심에 관복을 입은 윤임의 침통한 얼굴이 보였다.

‘흠! 아직 감옥에 잡혀 들어가지 않고 버티는 것으로 보아 대단하군. 주상전하께서 아직도 명나라 국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버티는 것 같군.’

이는 명나라의 제후국인 조선으로는 매우 위험한 반응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독선적이자 괴이한 성품인 가정제가 이런 사실을 알면 군사를 보내서 침공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봉황성에 있는 군대를 조선으로 보내라고 명령을 내릴지도 모른다.

‘쉽게 판단할 사태는 아니야.’

아직 봉황성이나 2개의 위의 병사들의 훈련이 열악하니 명나라 황제의 명을 함부로 거역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조선을 침공할 정도의 군세도 아니라 두 나라의 정치적 갈등은 자신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았다.

‘분명 정신병자인 가정제의 똥 머리로 나온 계책은 아니고 엄숭이나 동창의 무리들이 짜낸 이간책이야.’

바둑에서 아무리 대마가 몰리고 세가 불리해도 중간에 한 두 번은 역전의 기회란 있는 법이다. 상대방이 이간계를 쓴다면 자신은 고육계를 써서 대처하면 된다.

이미 고육계는 진행 중이고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기어 다녀. 나는 날아다니니까.’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의외로 삶은 닭은 빨리 들어왔다. 닭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산해진미가 가득한 큰 상을 궁녀들이 들고 들어왔다.

“철갑웅! 내가 시키지 않는 공연한 일을 왜 하냐? 음식에는 맹독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왜 확인도 안 된 음식을 함부로 가져와.”

“독요?”

“너는 자객들에게 습격당해 다치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최인범이 이렇게 호통하자 의관은 물론 의녀나 상궁 그리고 무수리인 궁녀들이 모두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자칫하면 무슨 트집을 잡혀 치도곤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놀라운 소리에 부엌에서 일하던 숙주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무서운 분이야.’

밖에서 읍소하고 있는 윤임 대감의 얼굴은 겁에 질려 퍼렇게 변했다. 이번에 나타난 자객들까지 자신이 보내고 자칫 음식에 독들 넣어서 암살하려고 했다는 누명까지 쓰게 생겼다.

‘건넌방으로 들어간 상에 스스로 독액을 넣는 식으로 자작극이라도 벌이면 우린 몽땅 죽게 생겼어.’

음모에 능하다보니 공연한 생각까지 떠올라 자신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덜덜덜.

남의 죄를 추궁할 때는 몰랐는데 죄를 짓고 처분을 기다리는 시점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바지춤이 조금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상을 물려!”

“예이!”

놀란 상궁의 명령에 궁녀들은 급하게 방으로 들어온 상을 부엌으로 물렸다. 그리고 명령받은 그대로 소반에 삶은 닭에 소금만 가져다 놓았다.

최인범은 삶은 닭을 먹으며 뱃속에 알이 들어 있자 투덜거렸다.

“철갑웅! 너는 왜 자꾸만 내가 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 하냐? 명령대로 수탉을 잡지 않고 암탉을 잡아서 가져오고 그래.”

“대장군, 수탉이 한 마리 뿐이라요. 물릴까요?”

“아니. 기왕에 가져 왔으니 우선 네 동생도 들어오라고 해서 먹자. 본시 시끄러운 암탉은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거려 감칠맛이 있기는 하지.”

이런 말에 상궁은 얼굴이 벌게지다가 다시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는 자신을 암탉으로 칭해서 저렇게 말한다고 판단해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요즈음의 저잣거리에는 문정왕후를 시끄러운 암탉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명나라 사신이 오기 전부터 윤임 대감이 북경에서 저지른 암살의 배후라 죄를 받게 됐다는 소문이 났다. 그 때문에 문정왕후의 권세가 늘고 소윤인 윤원형 일파가 머리를 쳐들었다.

여기로 온 음식은 문정왕후의 명령으로 가져온 것이다.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나름 최인범에게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암탉이 맛있다니 이건 분명 중전마마를 묘하게 조롱하는 것이 분명해.’

음식에서 조금만 이상해진다면 이는 문정왕후의 책임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중요한 발언이다.

‘부마도위님은 소윤파를 싫어하시나?’

최인범은 그저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황제국의 부마도위라는 막강한 위치인 그의 말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러다 보니 다들 각자 위치에서 임의대로 해석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최인범은 철갑웅과 철을웅과 같이 건넌방에서 삶은 닭을 같이 멋있게 먹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하들과 식사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이런 돌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하늘 같이 높은 부마도위가 호위무사와 같이 닭은 먹으니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고루한 양반인 고관들의 눈에는 너무 이질적이고 황당한 행동이다.

‘출신이 너무 미천해서 그런지 도무지 상하의 구분이 없어.’

한편 마당에서 읍소하는 윤임은 여전히 사색이다.

‘도대체 언제 벌을 준다고 명령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지.’

명나라 사신이 와서 국서에 자신을 명나라로 소환해 간다고 명시해 놓았으니 북경으로 끌려가기만 하면 죽은 목숨이다. 자신이 저지른 사건 때문에 죽는 거야 억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여파가 자신의 가족은 물론 가문전체나 왕세자까지 미칠까 걱정이다.

‘왕세자는 살려야 그나마 미래가 있어.’

이런 판국에 마포나루 근처에서 또다시 암살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윤임은 북경은 고사하고 당장 한양에서 능지처참을 당해 죽게 생겨 급하게 최인범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자신을 살려줄 사람은 최인범 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도야 한 눈에 읽을 머리는 되니 최인범은 달리 대처했다.

“철갑웅, 주모에게 말해서 마당에 차일도 치고 멍석도 깔아. 그리고 아까 먹기가 약간 거북해 물린 음식을 모두 대신들께 대접해 드리고.”

“예이.”

담장 밖을 바라보니 수많은 백성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리고 어린 애들이 기름진 음식 냄새 때문에 몰려와 침을 삼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최인범은 다시 추가해서 명령했다.

“돼지도 몇 마리 잡아 애들도 먹게 준비해.”

“넷!”

차일(遮日)이 처지고 마당에 멍석을 깔자 주막은 잔치 집처럼 변했다. 먼저 산해진미로 가득한 상을 받은 윤임이나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할 대윤파 소속인 관료들은 음식이 입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니 음식이 입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저 젓가락만 들고 다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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